당육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당육전은 당나라의 통치 체제를 기록한 법전으로, 주례의 체제를 따라 육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 관직과 지방 관직의 체계, 토지 제도, 부역, 조세 제도 등 당나라의 제도와 경제 관련 내용을 상세히 담고 있다. 편찬 과정은 초기 편찬, 장열 등의 참여, 이림보의 완성으로 이루어졌으며, 실제 시행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은 남송본이며, 명나라 정덕본, 일본 고노에본 등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김택민의 번역으로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당육전은 동아시아 통치 제도 연구 및 한국사 연구에 기여했다.
주례의 체제를 따라 육전(六典), 즉 치전(治典), 교전(教典), 예전(禮典), 정전(政典), 형전(刑典), 사전(事典)으로 구성되어 있다.
2. 편찬 과정
2. 1. 초기 편찬
2. 2. 장열 등의 참여
2. 3. 이림보의 완성
3. 주요 내용
3. 1. 구성 체계
당육전은 중앙 관직과 지방 관직으로 구성된 체계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중앙 관직에는 삼사(三師)인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와 삼공(三公)인 태위(太尉), 사도(司徒), 사공(司空)이 있었다. 삼성(三省)은 상서성(尚書省), 문하성(門下省), 중서성(中書省)을 가리키며, 육부(六部)는 이부(吏部), 호부(戶部), 예부(禮部), 병부(兵部), 형부(刑部), 공부(工部)로 구성되어 행정을 담당했다. 이 외에도 비서성(祕書省), 전중성(殿中省), 내시성(內侍省) 등의 육성(六省)과 어사대(御史臺)가 있었다.
구시(九寺)에는 태상시(太常寺), 광록시(光祿寺), 위위시(衛尉寺), 종정시(宗正寺), 태복시(太僕寺), 대리시(大理寺), 홍려시(鴻臚寺), 사농시(司農寺), 태부시(太府寺)가 포함되었다. 오감(五監)은 국자감(國子監), 소부감(少府監), 군기감(軍器監), 장작감(將作監) 외에 여러 감(監)들로 구성되었다. 십이위(十二衛)는 좌우위(左右衛), 좌우효위(左右驍衛) 등 여러 위(衛)와 제위절충부위부(諸衛折衝都尉府)를 포함한다.
동궁관속(東宮官屬)에는 태자삼사(太子三師), 태자삼소(太子三少) 등이 있었다.
지방 관직으로는 친왕부(親王府), 친사부(親事府), 장내부(帳內府), 친왕국(親王國), 공주읍사(公主邑司)와 삼부도호주현관리(三府都護州縣官吏) 등이 있었다.
3. 2. 주요 관직
당나라의 주요 관직으로는 삼사(三師)와 삼공(三公)이 있었다. 삼사는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를 말하며, 삼공은 태위(太尉), 사도(司徒), 사공(司空)을 가리킨다.
행정 기관으로는 육부(六部)와 육성(六省)이 있었다. 육부는 이부(吏部), 호부(戶部), 예부(禮部), 병부(兵部), 형부(刑部), 공부(工部)로 구성되었다. 육성은 상서성(尚書省), 문하성(門下省), 중서성(中書省), 비서성(祕書省), 전중성(殿中省), 내시성(內侍省)을 말한다.
이 외에도 어사대(御史臺), 구시(九寺), 오감(五監), 십이위(十二衛) 등이 있었다. 지방에는 친왕부(親王府) 등을 두었다.
3. 3. 제도 및 경제 관련 내용
당나라의 토지 제도는 균전제(均田制)를 근간으로 하였다. 농민에게는 구분전(口分田)과 영엽전(永業田)을 지급하였으며, 구분전은 사망하면 반납해야 했지만 영엽전은 세습이 가능했다. 이러한 토지 제도는 농민 생활 안정과 국가 재정 확보에 기여했다.
부역(赋役)은 조(租), 용(庸), 조(調)의 세 가지 형태로 구성되었다. 조(租)는 곡물로 납부하는 것이었고, 용(庸)은 노동력으로, 조(調)는 특산물 등으로 납부하는 것이었다.
당나라에서는 지역별 특산물인 토공(土贡)을 징수하였는데, 이는 각 지역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였다. 또한, 호등(户等) 제도를 통해 가구를 9등급으로 나누고 차등을 두어 세금을 부과하는 차과(差科) 제도를 시행하여 조세 형평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변경 지역에서는 둔전(屯田)을 설치하여 군량미를 확보하고 국방력을 강화했다. 둔전은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황무지 개간을 통한 농업 생산량 증대에도 기여했다.
4. 실제 시행 여부 논란
4. 1. 미시행 주장
4. 2. 일부 시행 주장
5. 전승 및 판본
《당육전》은 당 왕조 때에 사본이 전해지고 있었고 북송 신종 원풍 3년(1080년)에 판각되어 그 인쇄된 판본을 각기 근신과 관각에 하사하였는데, 이를 북송본(원풍본)이라고 하지만 현전하지 않는다.[2]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당육전의 판본은 남송 소흥 4년(1134년) 온주(溫州) 주학(州學)에서 찍어낸 《대당육전》 잔본 15권이다(남송본). 남송본은 그 원서가 중국 베이징 도서관, 난징 박물원, 베이징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훗날 명(明)의 석문동(席文同), 이립경(李立卿)이 왕감(王鏊)의 《명회전》 편수에 함께 참여하면서 궁에 들어갔다가 《당육전》을 발견하고 이를 필사해 가져왔고, 이를 정덕(正德) 2년(1515년) 총 30권으로 간행하였다.[2] 이것이 정덕본이며, 정덕본 당육전은 또 이곳저곳으로 퍼져서 가정본(嘉靖本, 명)에 이어 '소엽산방본'(掃葉山房本, 청), '광아서국본'(廣雅書局本) 그리고 '고노에 본'(近衛本, 일본) 등의 판본이 생겨났다.[2]
고노에 본의 경우는 일본 에도 시대의 구게(公家) 고노에 이에히로(近衛家熙)가 정덕본을 저본으로 삼아 고정(考訂)한 것으로, 교호(享保) 9년(1724년)에 완성되어 이에히로 사후에 책으로 간행되었다. 또한 일본의 학교법인 히로이케 학원(廣池學園)에서 1973년 《당육전》의 '히로이케본'을 내놓았는데, 일본의 법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히로이케 지쿠로(廣池千九郎)가 훈점을 찍은 것에 우치다 시게오가 보정을 행한 것으로, 남송본 당육전과 송대 손봉길(孫逢吉)의 《직관분기》(職官分紀)를 주된 저본으로 해서 고노에 본과 교차 대조해 완성한 것이다.[2]
5. 1. 남송본
1134년 온주(溫州) 주학(州學)에서 간행된 《대당육전》 잔본 15권이 현존한다.[2] 이 남송본은 그 원서가 중국 베이징 도서관, 난징 박물원, 베이징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2]5. 2. 명나라 정덕본
1515년 명나라에서 석문동(席文同)과 이립경(李立卿)이 《당육전》을 발견하여 필사해 가져와 총 30권으로 간행한 정덕본(正德本)이 간행되었다.[2] 정덕본 《당육전》은 이후 가정본(嘉靖本, 명), 소엽산방본(掃葉山房本, 청), 광아서국본(廣雅書局本), 고노에 본(近衛本, 일본) 등 다양한 판본의 출현에 영향을 주었다.[2]5. 3. 일본 고노에본 및 히로이케본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의 구게(公家) 고노에 이에히로(近衛家熙)가 정덕본을 저본으로 삼아 고정(考訂)한 고노에본이 교호(享保) 9년(1724년)에 완성되어 이에히로 사후에 간행되었다.[2] 또한 학교법인 히로이케 학원(廣池學園)에서 1973년 히로이케 지쿠로(廣池千九郎)가 훈점을 찍은 것에 우치다 시게오(內田重雄)가 보정을 행한 '히로이케본'을 내놓았는데, 이는 남송본 당육전과 송대 손봉길(孫逢吉)의 《직관분기》(職官分紀)를 주된 저본으로 해서 고노에 본과 교차 대조해 완성한 것이다.[2]6. 한국어 번역
《당육전》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 김택민의 번역으로 전 3권으로 도시출판 신서원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김택민은 앞서 임대회와 함께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당률소의》를 번역 주석한 《역주 당률소의》를 한국법제연구원에서 출판하기도 하였다.
6. 1. 김택민 번역
김택민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임대회와 함께 《당률소의》를 번역 주석한 《역주 당률소의》를 한국법제연구원에서 출판하였다. 이후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당육전》을 번역하여 전 3권으로 도시출판 신서원에서 출간하였다.7. 의의 및 영향
7. 1. 동아시아 통치 제도에 미친 영향
7. 2. 한국사 연구에의 기여
참조
[1]
서적
범태사집(范太史集)
[2]
서적
唐六典簡介
中華書局
1992-0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