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부부인 송씨
1. 개요
대방부부인 송씨는 판중추부사 송복원의 딸이자 지돈녕부사 송현수의 누이로, 영응대군과 재혼하여 딸 길안현주를 낳았다. 성종 대에는 폐비 윤씨가 폐위된 후 어린 연산군을 잠시 보살폈으며, 승려 학조와 간통하여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송씨의 질투심 많고 사나운 성품과, 궁중에서 외명부로서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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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군
견성군 이돈은 조선 성종의 아들로 연산군 시대에 횡포와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나 중종반정 이후 공신이 되었고, 이후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사사된 후 신원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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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 마사모토
호소카와 마사모토는 무로마치 막부 말기의 세키가와 가문 당주이자 관령으로, 명응의 정변을 통해 쇼군을 옹립하고 실권을 장악했으며, 기행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능력으로 호소카와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후계자 문제로 인한 암살 사건으로 요절하여 가문이 쇠락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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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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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조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 세도정치 종식 후 권력을 장악하여 개혁을 추진했으나, 쇄국정책과 독재적 통치로 비판받았고, 실각 후 재집권을 시도하다 톈진으로 압송, 명성황후 암살 의혹 등 격변기 조선의 대표적 인물로 긍정·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2. 생애
판중추부사 송복원의 딸이자 지돈녕부사 송현수의 누이이다. 몸이 병약하여 강제 이혼당하여 친정으로 돌아갔다. 영응대군은 재혼했지만 아내를 잊지 못하여 송씨의 사가에 찾아갔고 두 사람 사이에 두 딸이 태어났다. 단종 때 송씨는 영응대군과 재결합했다. 영응대군과의 사이에 아들을 여럿 낳았으나 모두 죽고 살아남은 것은 길안현주 뿐이다. 1479년 성종 대에 윤씨가 폐위되자 어린 원자는 잠시 송씨의 집에서 보살핌을 받았다.
2.1. 학조와의 간통과 무오사화
김종직은 학조를 매우 혐오하여 경멸하고 비판했는데, 그의 제자들 중 누군가가 실록을 편찬할 때 송씨와 학조의 불륜 사실을 기사로 넣어 문제가 되었고, 이는 무오사화의 한 원인이 되었다.
송씨는 군장사란 절에 올라가 설법을 듣다가 계집종이 깊이 잠들면 승려 학조와 사통을 했다. 이 사실은 무오사화 당시 사초에도 들어 있었다.
박경은 김일손과 기맥이 통해 홍인문 밖에서 '영응대군 부인 송씨가 중 학조와 사통(私通)을 했다'는 방문(榜文)을 보고 알렸다가, 김일손이 사초에 적는 바람에 호된 고문을 당하고 겨우 살아난 적이 있었다.
3. 성품 및 평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송씨가 질투심이 많고 사나운 성품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응대군은 송씨를 매우 총애하다가 나중에는 두려워했으며, 누군가에게 낡은 옷을 한 벌 주려 해도 송씨의 허락이 필요했고, 허락 없이는 주지 못했다고 한다.
송씨는 평소 궁중에 자주 드나들면서 외명부 중에서도 각별히 총애를 받았는데, 조카 송영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송씨 덕분이었다. 송영이 논핵을 당했을 때, 송영의 처가 8촌 오라비 홍석보의 집을 찾아가 남편의 일을 청탁하며, 시고모인 송씨가 마음이 불편해 병이 났다고 전하자 윤은로 등이 송영을 탄핵하였다. 그러나 성종은 이를 듣지 않고 윤은로 등을 벌하였다. 송현수의 아들 송거가 아버지의 죄로 인해 관직에 나아가지 못할 때, 송씨는 조카의 과거 응시를 성종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성종과 연산군이 송씨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노비와 쌀, 베 등 물품을 하사한 기록이 등장한다.
4. 가족 관계
5. 기타
대방부부인 송씨와 관련된 사건은 무오사화의 원인 중 하나였다. 김종직은 승려 학조와 송씨의 간통 사건을 혐오하여 비판했는데,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실록 편찬 시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무오사화로 이어졌다. 박경은 김일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가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하여 고초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