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림
1. 개요
대연림은 발해 건국자 대조영의 후손으로, 요나라 장군으로 복무하다가 1029년 흥료국을 건국하고 천흥황제를 칭하며 천경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흥료국은 발해 유민들을 기반으로 고려, 여진과 동맹을 맺었으나, 1030년 요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대연림은 부하의 배신으로 요나라에 사로잡혔으며, 이후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들이 고려로 망명하여 밀양 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 이름 | 대연림 |
|---|---|
| 원래 이름 | 대연림(大延琳) |
| 휘 | 대연림(大延琳) |
| 다른 이름 | 미상(未詳) |
| 작위 | 폐하(陛下) |
| 직업 | 흥료국 폐하(興遼國 陛下) |
| 별칭 | 미상(未詳) |
| 출생일 | 생년 미상(生年 未詳) |
| 출생지 | 미상(未詳) |
| 사망일 | 1030년 |
| 사망지 | 미상(未詳) |
| 사망 원인 | 미상(未詳) |
| 재위 기간 | 1029년~1030년 |
| 작위 | [흥료국의 1대 국왕 |
| 매장지 | 미상(未詳) |
| 배우자 | 미상(未詳) |
| 자녀 | 대탁(大鐸) |
| 친인척 | 미상(未詳) |
| 부왕 | 대씨(大氏) |
| 모후 | 미상(未詳) |
| 형제자매 | 미상(未詳) |
| 후임자 | 흥료국의 멸망 |
| 호칭 | 흥료국 폐하(興遼國 陛下) |
| 묘호 | 미상(未詳) |
| 시호 | 미상(未詳) |
| 존호 | 대연림 폐하(大延琳 陛下) |
| 묘소 | 미상(未詳) |
| 능묘 | 미상(未詳) |
| 거주지 | 흥료국(興遼國) |
| 국적 | 발해(渤海) 흥료국(興遼國) |
| 성별 | 남성(男性) |
| 가문 | 대씨(大氏) |
| 연호 | 천경(天慶) |
| 왕조 | 발해(渤海) 흥료국(興遼國) |
| 종교 | 미상(未詳) |
| 소속 | 흥료국(興遼國) |
| 목록 | 흥료국의 1대 황제 |
-
1030년 사망 -
올라프 2세 (노르웨이)
올라프 2세는 11세기 노르웨이 왕으로, 노르웨이 통일과 기독교 전파에 힘썼으며 스티클레스타드 전투에서 전사 후 성인으로 추앙받고 노르웨이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
1030년 사망 -
마흐무드 (가즈나 왕조)
마흐무드는 971년 가즈니에서 태어나 998년부터 1030년까지 가즈나 왕조를 통치한 술탄으로, 중앙아시아와 인도 아대륙을 정벌하며 왕조의 전성기를 이끌고 페르시아 문학을 장려하여 가즈니를 문화 중심지로 발전시켰으나, 말년에는 셀주크족의 부상으로 서부 영토를 상실했다. -
한국의 군주 -
궁예
궁예는 신라 왕족의 서자로 추정되며 후삼국시대에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태봉으로 국호를 변경한 인물이며, 말년에 폭정을 일삼다 신하들에게 축출되어 사망했다. -
한국의 군주 -
비류
비류는 백제 건국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온조와 함께 백제의 시조로 기록되었으나 미추홀 정착 실패 후 자결했고, 왕실 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백제 역사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발해 유민 -
대광현
대광현은 발해의 세자로, 발해 멸망 시기에 왕족과 유민을 이끌고 고려로 귀순하여 왕건으로부터 왕계라는 이름과 백주를 하사받고 고려 지배층에 편입되어 고구려 계승 국가 통합에 기여했으며, 그의 아들 대도수는 고려-거란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협계 및 영순 태씨, 밀양 대씨의 시조가 되었다. -
발해 유민 -
대도수
대도수는 고려 시대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의 안융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나, 제2차 고려-거란 전쟁 중 거란에 항복한 발해 유민 출신으로 추정되는 무신이다.
2. 생애
대연림은 발해 건국자 대조영의 7대 후손으로, 자세한 계보는 밝혀지지 않았다. 요나라 군대에 입대하여 동경 요양의 장군으로 임명되었다.
요나라 장군으로 복무하면서 발해 출신 사람들을 모아 1029년 흥료국을 세우고 스스로 천흥황제(天興皇帝)라 칭하며 연호를 "천경"(天慶)으로 선포했다.
1030년 요나라의 공격으로 흥료국이 멸망하면서 사로잡혔다. 이후 행방은 불분명하지만, 아들 대탁이 고려로 망명하여 밀양 대씨의 조상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2.1. 건국과 성장
대연림은 발해 왕족의 후예로, 요나라의 혼란한 시기인 1029년 8월 3일 요양성을 장악하고 흥료국을 건국하였다. 연호는 천경(天慶)이라 하였다. 이후 여진, 고려와 힘을 합쳐 요나라에 대항하려 했으며, 아우인 태사 대연정을 시켜 여진 군사를 이끌고 요나라를 공격하기도 했다.
1029년 9월, 흥료국은 송나라로 고길덕을 파견하였다고 송사에 기록되어 있다.
1030년, 흥료국은 거란군에게 포수에서 패배하여 요양부로 퇴각했고, 거란군은 요양부 외곽에 성채를 쌓고 포위하는 등 장기전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8월 25일, 부장 양상세가 거란군과 내통하여 요양부의 남문을 열었고, 대연림은 성 안으로 들어온 거란군에게 사로잡혔다.
2.1.1. 발해 왕족의 후예
고왕 대조영의 후손이라고 한다. 발해 고왕 대조영의 7대손(혹은 17대손)으로 여겨지지만, 그 계보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일설에는 아들 대탁이 고려로 망명하여 밀양 대씨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2.1.2. 흥료국 건국
1029년 8월 3일, 요나라의 부도(副都) 요양(遼陽) 유수(留守)의 비장(裨將)이었던 대연림은 혼란을 틈타 요양성을 장악하고 흥료국을 건국했다. 그는 스스로 천흥황제(天興皇帝)라 칭하고 연호를 천경(天慶)으로 선포했다.
흥료국 건국 당시 요동 지역은 호부사 한소훈 등의 가혹한 지배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대연림은 이러한 상황을 틈타 1029년9월 13일 발해 유민을 모아 거병하여 한소훈, 호부 부사인 왕가와 사첩군도지휘사 소파득을 살해하고, 동경유수 소효선과 그의 아내 (남양공주)를 사로잡아 동경 요양부 (현재의 요녕성요양시)를 점령했다.
2.1.3. 고려와의 관계
1029년 9월, 흥료국은 대연정을 고려에 보내 건국 사실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했다. 고려는 군사를 보내 요를 공격했지만 실패했다. 12월 대연정은 다시 고려를 방문하여 여진과 힘을 합쳐 요의 상경을 공격하려 했지만, 고려의 찬성을 얻지 못하고 요에 대한 조공을 중단시키는 데 그쳤다.
2.2. 패배와 멸망
1029년 9월 13일 대연림이 발해 유민을 모아 흥료국을 건국했지만, 1030년에 요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9월에 고길덕을 고려에 보내 건국 사실을 알리고, 10월에 소효목이 이끄는 거란군의 공격을 받았다. 12월에 대연정을 고려에 보내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지만, 고려는 이를 거절했다.
1030년 흥료국은 요양부로 퇴각하여 거란군에 포위되었고, 장기전의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9월 25일 부장 양상세가 요나라와 내통하여 요양부의 남문을 열면서, 대연림은 요나라 군에게 사로잡히고 흥료국은 멸망했다.
2.2.1. 요나라의 공격
1029년 10월, 요나라는 본격적으로 흥료국을 공격했다. 12월에 대연정을 다시 고려에 보내 지원병을 요청했지만, 고려는 원군 파병을 거절했다. 1030년 정월, 고길덕을 보내 또다시 고려에 원군 파병을 요청했지만, 고려는 이를 거절했다.
1030년 3월, 요나라는 대연림과의 장기전에 대비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비장 양상세가 몰래 요나라에 항복하면서 흥료국은 무너졌다. 양상세가 밤에 남문을 열어 요나라 군이 성을 점령함으로써, 흥료국은 건국 1년 만에 멸망했다.
2.2.2. 부하의 배신
1030년 9월 25일, 부하 장수였던 양상세(楊詳世)가 요와 내통하여 요양부의 남문을 열었다. 이로 인해 대연림은 성 안으로 들어온 요나라 군에게 사로잡혔다. 양상세는 밤에 몰래 남문을 열어 요나라 군이 성을 점령하게 하였고, 결국 흥료국은 건국 1년 만에 멸망했다.
2.2.3. 멸망 이후
흥료국이 1030년에 요나라에 의해 멸망한 이후, 대연림과 발해 유민들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다만, 대연림의 아들 대탁(大鐸)이 고려로 망명하여 밀양 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3. 평가
대연림은 발해의 건국자 대조영의 7대 직계 후손으로, 발해 왕족의 후손이었다. 그는 요나라 군대에 입대하여 동경 요양의 장군까지 올랐다. 1029년, 발해 출신 사람들을 모아 흥료국을 세우고 스스로 천흥황제(天興皇帝)라 칭하며 연호를 "천경"(天慶)으로 선포했다. 흥료국은 많은 발해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여진족, 고려와 동맹을 맺었으나, 1030년 요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3.1. 긍정적 평가
대조영의 7대 직계 후손인 대연림은 발해 왕족의 후손으로, 요나라 군대에서 동경 요양의 장군을 지냈다. 1029년, 발해 출신 사람들을 모아 흥료국을 세우고 스스로 천흥황제(天興皇帝)라 칭하며 연호를 "천경"(天慶)으로 선포했다. 흥료국은 많은 발해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여진족 및 고려와 동맹을 맺었지만, 1030년에 요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3.2. 부정적 평가
대조영의 7대 직계 후손으로 발해 왕족이었던 대연림은 요나라의 장군으로 복무하다 1029년 흥료국을 세우고 황제를 칭하며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흥료국은 건국 1년 만인 1030년에 요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이는 대연림의 건국이 가지는 한계와 흥료국 멸망의 원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근거가 된다.
3.3. 중립적 평가
대연림은 발해 건국자 대조영의 7대 직계 후손으로, 발해 왕족의 혈통을 이었다. 그는 요나라 군대에 입대하여 동경 요양의 장군까지 올랐다.
요나라 장군으로 복무하면서도 대연림은 발해 출신 사람들을 모아 1029년에 흥료국을 세웠다. 그는 스스로를 천흥황제(天興皇帝)라 칭하고 연호를 "천경"(天慶)으로 선포하며 발해 부흥의 의지를 드러냈다.
흥료국은 건국 초기 많은 발해인들의 지지를 받았고, 여진족 및 고려와 동맹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1030년 요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하면서, 흥료국과 그 동맹국들은 패배하게 되었다.
4. 기타
대연림은 대조영의 7대 직계 후손으로, 발해 왕족의 후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