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립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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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연립 구상은 2007년 일본에서 자유민주당과 민주당 간에 논의된 연립 정권 구성을 의미한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자위대 인도양 파견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해 민주당 대표 오자와 이치로와 회담을 제안했고, 두 차례의 당수 회담이 열렸다. 회담 과정에서 대연정 제안과 민주당 내 반발, 오자와 대표의 사임 해프닝, 언론 보도와 논란 등이 발생했다. 요미우리 신문 그룹의 관여, 소비세 증세 논의, 후쿠다와 모리의 증언 등도 이와 관련된 주요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대연립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2007년 오사카 시장 선거, 민주당 내 변화, 중선거구제 부활 논의 등 다양한 정치적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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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립 구상 | |
---|---|
대연립 구상 (2007년) | |
![]() | |
정당 | 자유민주당 민주당 |
주도 인물 | 아베 신조 오자와 이치로 |
시기 | 2007년 |
발의 시점 |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직전 |
결과 | 결렬 |
배경 | |
정국 상황 | 꼬인 국회 |
자유민주당 상황 | 아베 신조 내각 지지율 하락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패배 위기 |
민주당 상황 | 오자와 이치로 대표 체제 강화 |
경위 | |
아베 신조의 제안 | 연립정권 구상 오자와 이치로에게 연정 참여 제안 |
오자와 이치로의 반응 | 긍정적 검토 |
회담 | 아베 신조와 오자와 이치로 간의 비공개 회담 개최 |
연정 조건 | 오자와 이치로가 정책 협정을 조건으로 제시 |
결렬 원인 | 자민당 내부의 반발 고무라 마사히코의 반대 나카가와 히데나오의 반대 아소 다로의 반대 이부키 분메이의 반대 간 나오토의 반대 |
영향 | |
정국 | 후쿠다 야스오 내각 출범 |
민주당 | 오자와 이치로 대표 사임 |
2. 당수 회담
2007년 10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자유민주당과 민주당 간의 당수 회담이 열렸다. 자민당에서는 후쿠다 야스오 총리, 이부키 분메이 간사장, 오시마 다다모리 국회대책위원장이, 민주당에서는 오자와 이치로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 간사장, 야마오카 겐지 국회대책위원장이 참석했다. 처음 10분은 6명이 회담했고, 이후 45분 동안은 후쿠다와 오자와만 단독 회담을 했다. 마지막으로 이부키와 하토야마가 회담에 참여하여 회담이 종료되었다. 이 회담에서 다음 날(31일) 예정되었던 국회 당수 토론을 연기하고, 다시 당수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나가타초에서는 "45분이나 밀실에 있으면서 세상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다"라며 중의원 해산·총선거 및 대연립을 둘러싼 억측이 오가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10월 31일, 국회에서 자민·민주 양당 국대위원장(오시마·야마오카) 회담을 통해 11월 2일 오후 3시부터 2차 당수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11월 2일, 후쿠다는 오자와와 당수 회담을 갖고 연립 정권에 대해 논의했다. 안전 보장에 관한 오자와 주장에 대해 후쿠다가 대폭 양보하면서 오자와는 연립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자와는 민주당 임시 간부회에 이 내용을 보고하며, 연립의 장점으로 "참의원 선거에서 호소한 정책이 실현될 수 있다"는 점, 단점으로 "우리들만의 힘으로 정권을 잡는다는, 진정한 의미의 정권 교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간부회에서는 "(대연립 정권을 구성하면) 대정익찬회가 된다"는 반대에 부딪혀 오자와를 제외한 전원이 대연립에 반대했다. 결국 오자와는 회담 종료 2시간 후 후쿠다에게 연립 협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화로 전했다.[1]
2. 1. 회담 배경
2007년 당시 자유민주당의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신 테러대책특별조치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민주당의 협력이 절실했다. 당시 민주당은 참의원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법안 통과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자민당은 테러 대책 해상 저지 활동에 대한 보급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민주당은 이에 반대하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18]2007년 10월 29일 오후, 후쿠다 총리는 자유민주당 간사장 이부키 분메이를 통해 민주당에 10월 30일 오자와 이치로 대표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는 민주당이 해당 법률안을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8] 이후 자민당과 민주당의 국회대책위원장 회담을 통해 30일 당수 회담이 합의되었다.
10월 30일 오전, 국회에서 양당 당수 회담이 열렸다. 자민당에서는 후쿠다 총리, 이부키 간사장, 오시마 다다모리 국회대책위원장이, 민주당에서는 오자와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 간사장, 야마오카 겐지 국회대책위원장이 참석했다. 처음 10분은 6명이 회담을 진행했고, 이후 45분 동안은 후쿠다 총리와 오자와 대표 단둘이 회담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이부키 간사장과 하토야마 간사장이 회담에 참여하여 당수 회담이 종료되었다.[18] 이 회담 결과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던 국회 당수 토론을 연기하고 당수 회담을 한 번 더 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양당 대표가 45분씩이나 밀실에서 독대한 것에 대해 중의원 해산 후 조기 총선을 치른다거나, 대연정을 구성한다는 등 온갖 억측이 쏟아지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18]
10월 31일, 국회에서 양당 국대위원장 회담이 진행되어 11월 2일 오후 3시에 당수 회담을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한편, 대연정을 위해 막후에서 암약하는 세력이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보도에 따르면 요미우리신문 그룹본사 대표이사 와타나베 쓰네오, 닛폰 TV 방송망 이사회 의장 우지이에 세이이치로, 전 총리대신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관여하고 있었으며, 와타나베는 중개역을 맡았고 전 총리대신 모리 요시로도 후쿠다의 대리인을 자처해 오자와와 교섭했다고 한다.[19] 11월 16일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자와도 대연정을 구상한 장본인은 와타나베라고 언급했다.[19] 다만 오자와가 먼저 후쿠다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다는 보도도 나왔지만, 오자와는 이를 두고 "일부 매스컴의 민주당에 대한 이유 없는 비방·중상 보도"라며 강하게 비판했고, “나는 대연정 제안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이 논란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20][21]
2. 2. 회담 과정
2007년 10월 30일 국회에서 첫 회담이 열렸다. 자유민주당에서는 후쿠다 야스오 총재, 이부키 분메이 간사장, 오시마 다다모리 국회대책위원장이, 민주당에서는 오자와 이치로 대표, 하토야마 유키오 간사장, 야마오카 겐지 국회대책위원장이 참석했다. 처음 10분 동안은 6명이 회담했고, 이후 45분간 후쿠다 총재와 오자와 대표만의 단독 회담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이부키 간사장과 하토야마 간사장이 참여하여 회담이 종료되었다.[1]이 회담에서 후쿠다 총리는 오자와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다.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오자와 대표의 주장을 후쿠다 총리가 상당 부분 수용하자, 오자와 대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두 대표는 다음날로 예정되었던 국회 당수 토론을 연기하고, 재차 당수 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45분간의 밀실 단독 회담은 중의원 해산 및 조기 총선, 대연정 구성 등 여러 추측을 낳으며 각 방면에서 비판받았다.[1]
10월 31일, 양당 국회대책위원장 회담을 통해 11월 2일 15시에 2차 당수 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1] 11월 2일, 두 번째 회담에서 대연정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1]
2. 3. 대연정 제안과 민주당 내 반발
2007년 11월 2일,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와의 당수 회담에서 대연정을 제안했다.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오자와의 주장을 후쿠다가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오자와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자와는 대연정의 장점으로 참의원 선거에서 제시했던 정책 실현 가능성을, 단점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정권 교체가 아니라는 점을 들었다.[18]그러나 민주당 내에서는 "대정익찬회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과 함께 대연정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했다. 오자와 대표를 제외한 민주당 지도부 전원이 대연정에 반대했다.[18]
3. 오자와의 사임 해프닝
민주당 내 대연정 반대는 오자와 대표에 대한 불신임으로 해석되었다.[22][23] 2007년 11월 4일, 오자와는 대표직 사임을 표명했으나, 당내 반발과 설득으로 11월 6일 사임 의사를 철회하고, 11월 7일 공식적으로 대표직 유지를 발표했다.
11월 20일 기자회견에서 오자와는 자민당과의 대연정을 통해 호별 소득 보상 제도나 육아 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등 자민당 정권에서는 불가능했던 정책을 실현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내 반대로 대연정 추진을 중단하고 자민당과의 대결 노선을 걷게 되었다고 밝혔다.
3. 1. 사임 표명
2007년 11월 4일,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는 자민당과의 대연정에 대한 당내 반발을 자신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정치적 혼란에 대한 책임을 지며 대표직 사임을 표명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이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고 언급했다.[22][23] 같은 날 《요미우리 신문》은 오자와가 먼저 대연정을 제안했다고 보도했지만,[24] 오자와는 이를 부인하며 "정치적 말살과 민주당 이미지 훼손 의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친정부 언론의 허위 보도라며 아사히 신문과 니혼케이자이 신문을 제외한 언론 매체들을 비판했다.[20][21]3. 2. 사임 철회
小沢一郎|오자와 이치로일본어 대표는 2007년 11월 4일 대표직 사임을 표명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오자와 대표의 사임을 만류하며 설득했다.[25][8] 민주당은 '오자와 대표의 사임은 당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며 대표직 유임을 요구했다.11월 6일, 오자와 대표는 사임 의사를 철회하고 대표직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8] 11월 7일, 오자와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임 철회를 발표하고, "정권 담당 능력이 있는가 하는 국민적 의문이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권을 직접 담당해서 실증해 보겠다)"라며 민주당의 정권 담당 능력에 대한 국민적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20][21][3][4]
4. 요미우리 신문그룹의 관여
2007년 대연정 논의 과정에서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 대표이사 와타나베 쓰네오, 닛폰 TV 방송망 이사회 의장 우지이에 세이이치로, 전 총리대신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19] 와타나베 쓰네오는 중개 역할을 맡았고, 전 총리대신 모리 요시로는 후쿠다 야스오의 대리인으로 오자와 이치로와 교섭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오자와 이치로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연정 구상의 장본인이 와타나베라고 언급하기도 했다.[2]
오자와 이치로가 먼저 후쿠다 야스오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오자와는 이를 "일부 매스컴의 민주당에 대한 이유 없는 비방·중상 보도"라며 강하게 비판했고, “나는 대연정 제안을 한 적이 없다”라고 부인했다.[20][21]
4. 1. 언론 보도와 논란
요미우리 신문은 대연정이 오자와 대표의 제안이었다고 보도했으나,[24] 오자와 대표는 이를 부인하며 "나를 정치적으로 말살하고 민주당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명백하다"라고 요미우리 신문을 비판했다.[20][21] 아사히 신문 등은 요미우리 신문이 막후 중재자를 감싸고 있다며 보도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26]요미우리 신문은 오자와에게 진실을 밝히고 발언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지만,[9] 오자와는 "많은 관계자의 증언을 들었다면서 당사자인 나에게는 왜 취재 한 번 오지 않았나. 정부와 여당의 관계자 증언만 들은 것인가"라며 반발했다.[3][4]
4. 2. 와타나베 쓰네오의 역할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 대표이사 와타나베 쓰네오가 대연정 중재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9]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와타나베를 "대연정 구상의 장본인"이라고 언급했다.[2]저널리스트 우오즈미 아키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와타나베가 과거에도 정치 공작을 벌였다고 폭로했는데,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와타나베뿐만 아니라 미디어 전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와타나베는 원래 정치계 사람이었다. 미디어에 있는 편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이 되지 않았을 뿐"이라며, "정계에 들어가 세상을 움직이는 데서 기쁨을 발견하는 보도인은 그뿐만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5. 영향
2007년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신테러특조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일본 정치권에 큰 파장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요미우리 신문 그룹본사 대표이사 와타나베 쓰네오, 닛폰 TV 방송망 이사회 의장 우지이에 세이이치로, 전 총리대신 나카소네 야스히로 등이 막후에서 암약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와타나베는 중개 역할을, 전 총리대신 모리 요시로는 후쿠다의 대리인을 자처해 오자와와 교섭했다는 것이다. 오자와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연정을 구상한 장본인이 와타나베라고 언급하기도 했다.[19]
하지만 오자와가 먼저 후쿠다에게 대연정을 제안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오자와는 이를 "민주당에 대한 이유 없는 비방"이라며 강하게 부인하며, 자신은 대연정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20][21]
이후, 대연정 논의는 오사카 시장 선거, 민주당 내부 변화, 소비세 증세 논의 등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후쿠다와 모리의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5. 1. 2007년 오사카 시장 선거
2007년 오사카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이 공천한 히라마쓰 구니오가 자민당 공천을 받은 현직 시장 세키 준이치에게 승리하는 데 영향을 줬다는 평가가 있다.[27]5. 2. 민주당 내 변화
전 민주당 대표 오카다 가쓰야는 일련의 소동에 대해 "얼마 전까지의 민주당이라면 생각하기 힘들었다. 정권 교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자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어떤 의미로는 민주당이 강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정권 교체를 위한 큰 성과였다"라고 평가했다.[27]5. 3. 소비세 증세 논의
종합정보지 《FACTA》는 이번 대연정의 목적이 소비세율을 높이는 데 있었으며, 《요미우리 신문》이 이 문제에 관여한 것은 증세 대상에서 신문을 제외해 줄 것을 희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28][12]5. 4. 후쿠다와 모리의 증언
2008년 3월 30일 일본방송협회(NHK)에 출연한 후쿠다 전 총리는 "대연정은 오자와의 제안이었다"고 주장했다.[30] 같은 해 4월 9일 당수 토론 때도 '(오자와) 대표는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그 회담을 성사시켰다'고 주장했다.[30] 모리 요시로 전 총리도 정계에서 은퇴한 뒤인 2012년 《니혼케이자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자와가 와타나베 쓰네오에게 중재를 의뢰했다며 대연정은 오자와의 제안이라고 증언했다.[31]6. 중선거구제 부활 논의
2007년 자유민주당(자민당)과 민주당의 대연정 논의 과정에서 소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7]. 당시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이같은 내용을 시사하며 독일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중선거구제 부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는데, 이는 중의원과 참의원의 권한 차이, 그리고 양당제와 다당제 등 정당 간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하게 다뤄졌기 때문이다. (하위 섹션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포함)
6. 1. 독일식 연립정부와의 비교
2005년 언론 등에서 독일의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CDU/CSU)과 사회민주당(SPD)의 연합(69.4%의 의석)이 대연립의 대표적인 예로 자주 거론되었다[17]。 하지만 이는 독일 연방의회에서 어느 정당도 단독 과반수를 얻지 못하고, 다른 소수 정당과 연립을 구성해도 과반수에 미치지 못해 일어난 정치 현상이었다. 일본처럼 중의원과 참의원의 엇갈림 현상에 의한 것은 아니다.독일 연방의회는 비례대표를 중시하는 선거 제도(소선거구 비례대표 병용제)를 채택하여 연립 정권이 불가피한 다당제를 지향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중의원은 독일에 비해 소선거구를 중시하는 제도(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를 채택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양당제가 생기기 쉽다. 다만, 중의원과 거의 동등한 권한을 가진 참의원의 존재가 엇갈림 현상을 낳게 되고, 그 배경에 대연립론이 나오는 배경이 있다.
6. 2. 선거 제도 개편 논의
후쿠다는 오자와와의 회담에서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선거구제로 재검토한다"고 시사했다[17]。 일본의 중의원은 소선거구를 중시하는 제도(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를 채택하고 있어 양당제가 생기기 쉽다. 다만, 중의원과 거의 동등한 권한을 가진 참의원의 존재가 엇갈림 현상을 낳게 되어, 그 배경에 대연립론이 나오는 배경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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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A
2007-12
[29]
뉴스
だれが連立持ちかけ…「あうんの呼吸」と首相
http://www.yomiuri.c[...]
YOMIURI ONLINE
2007-11-05
[30]
뉴스
首相、青筋立て小沢氏なじる「人事権の乱用だ」
http://www.asahi.com[...]
朝日新聞
2008-04-10
[31]
서적
私の履歴書 森喜朗回顧録
日本経済新聞出版社
[32]
뉴스
平成の日本政治とは?(4完)新自由主義の席巻と民主党政権のトラウマ(THE PAGE) - Yahoo!ニュース
https://news.yaho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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