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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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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집성은 고려 시대의 무신으로, 낭장, 차관장군, 대장군 등을 역임했다. 최충헌, 최우 정권에서 요직을 거쳤으며, 특히 최우의 사위가 되어 권세를 누렸다. 그의 딸이 최우와 결혼하면서 어사대부와 수사공에 올랐으나, 최우 사후 최항에 의해 그의 족당이 유배되는 등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강화도에서 사망했으며, 드라마 무신에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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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집성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대집성
원래 이름대집성
본명대집성(大集成)
다른 이름태집성(太集成)
대관식미상
별명미상
출생일생년 미상(生年 未詳)
출생지미상
사망일1236년
사망지미상
재위미상
매장지미상
배우자미상
자녀대정취(貞就), 대씨 부인(大琳 夫人)
아버지대수한(大壽翰)
어머니미상
묘호미상
시호미상
종교불교(佛敎)
가문백주/협계 태씨(백주/협계 太氏)

2. 생애

대집성은 1236년강도에서 사망했다.[1]

2. 1. 초기 생애

할아버지는 상장군 태겸(太謙)이고, 아버지는 대장군(大將軍) 판병부사 문하시랑(判兵部事門下侍郞)과 동북면병마도총사를 역임하고 남양군(南陽君)에 봉군된 태수한(太壽翰) 또는 대수한(大壽翰)이며, 어머니는 미상이다. 아들은 태, 대정취(貞就)이며 발해 왕족 대화균의 8대손이자 고려 현종 때의 장군 대도수의 6대손이 된다.[1] 1213년에 낭장을 지냈다.

1218년 최충헌에 의해 차장군으로 임명되었으나 승려와 노비를 병력으로 편입시키다가 관직을 박탈당했다. 1219년 최충헌이 죽고 최우가 집권하자 대장군 자리에 올랐다. 1232년 2월 과부였던 자신의 딸을 최우와 결혼시켜 최우의 장인이 되었으며 곧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올랐다. 같은 해 6월에는 수사공(守司空)으로 승진하였다. 이후 1236년강도에서 죽었다.

2. 2. 관직 생활과 최씨 정권과의 관계

1218년 최충헌무신정권의 안정책으로 무신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집성 등을 차관장군(산직의 장군)으로 승진시켰다. 그 후 대집성은 무신정권의 집권자 최우와의 관계를 통해 권세를 키웠고, 1232년에 대집성의 딸이 최우의 후처로 맞이해 외척의 지위에 올랐다.[1]

1218년 최충헌에 의해 차장군으로 임명되었으나 승려와 노비를 병력으로 편입시키다가 관직을 박탈당했다. 1219년 최충헌이 죽고 최우가 집권하자 대장군 자리에 올랐다. 1232년 2월 과부였던 자신의 딸을 최우와 결혼시켜 최우의 장인이 되었으며 곧 어사대부(御史大夫)에 올랐다. 같은 해 6월에는 수사공(守司空)으로 승진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 황해도 조에는 우봉현망성으로 최씨 및 대씨를 기록하고 있어, 최씨 및 대씨의 본래 출신지는 우봉현이며, 대집성의 영달은 최충헌과 동향이라는 배경이 있었고, 최우의 위세에 의탁했다.[1]

최우의 후계자인 최항은 정권 장악 과정에서 김미와의 대립에 직면하여, 계모 대씨(대집성의 딸)가 김미를 지원한 것을 원망하여 1250년1251년에 계모 대씨(대집성의 딸) 및 족당에게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여, 대집성의 족당을 전라도유배 보냈다.[1]

2. 3. 최후

大集成|대집성중국어1236년강도에서 죽었다.

3. 가계

대집성 가계
조부대겸 또는 태겸(太謙) (상장군)
부친대수한(大壽翰) 또는 태수한(太壽翰) (남양군)
대씨 부인(大琳 夫人, 1208? ~1251)[1]
사위오씨 (대몽항쟁 중 전사)
외손자오승적 (최항에 살해 당함)
사위최우(崔瑀, 1166~1249)
형제태웅성(太雄成) 또는 대웅성
조카태금취



어머니는 미상이다. 아들은 태, 대정취(貞就)이며 발해왕족 대화균의 8대손이자 고려 현종 때의 장군 대도수의 6대손이 된다.

4. 기타

1218년 최충헌무신정권 안정책으로 무신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집성 등을 차관장군(산직의 장군)으로 승진시켰다. 이후 대집성은 최우와의 관계를 통해 권세를 키웠고, 1232년 그의 딸이 최우의 후처가 되면서 외척 지위에 올랐다.[1] 세종실록 지리지 황해도 우봉현 조에는 최씨와 대씨가 망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들의 본래 출신지가 우봉현이며, 대집성의 영달이 최충헌과의 동향이라는 배경과 최우의 위세에 의탁했음을 보여준다.[1]

최항은 최우의 후계자로 정권 장악 과정에서 김미와 대립했다. 계모 대씨(대집성의 딸)가 김미를 지원하자, 최항은 1250년1251년에 계모와 그 족당을 대대적으로 탄압, 대집성의 족당을 전라도유배 보냈다.[1]

4. 1. 대집성이 등장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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