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 새한국당 후보 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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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 새한국당 후보 선출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한국당이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민주자유당에서 탈당한 이종찬, 장경우, 박철언 등이 신당 창당을 추진하여 새한국당이 창당되었고, 통일국민당과의 통합을 시도했으나 무산되었다. 새한국당은 박태준, 강영훈, 김우중 등 외부 인사를 영입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이종찬을 후보로 추대했으나, 지지 부진으로 사퇴하고 정주영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후 새한국당은 민주당에 흡수 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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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중 대통령 후보로 백기완을 추대하기 위해 결성된 선거대책본부는 민중회의준비위원회,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등의 참여로 구성되어 백기완을 공식 후보로 발표하고, 기존 정당 정치의 한계를 넘어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민주주의 가치 실현과 민중의 삶 개선을 목표로 선거에 참여했다.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 새한국당 후보 선출 | |
---|---|
선거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득표 | 추대 |
색상 | 청색 |
선거명 |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 새한국당 후보 선출 |
선거일 | 1992년 11월 17일 |
이전 선거 | 노태우 |
이후 선거 | 이종찬 (1936년)이종찬 |
유형 | 대통령 |
이전 선거 |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 민주정의당 후보 선출 |
이전 선거 연도 | 1987년 |
차기 선거 |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 새정치국민회의 후보 경선 |
차기 선거 연도 | 1997년 |
직책 | 대통령 후보 |
후보 | 이종찬 (1936년)이종찬 |
선거전 정당 | 민주정의당 |
선거후 정당 | 새한국당 |
정당 | 새한국당 |
2. 창당 과정
1992년 5월,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로 김영삼 의원이 확정되자, 통일민주당 출신 이종찬, 장경우, 박철언 등은 이에 반발하여 민자당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결의하였다. 민주당을 탈당한 한영수 의원 등이 신당 창당에 합류하였고, 9월 3일에는 새한국당의 사전 조직인 '새정치국민연합'이 발족되었다.[1]
2. 1. 민자당계 탈당파의 신당 창당 추진
1992년 5월, 통일민주당 출신의 김영삼 의원이 민주자유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이에 반발한 이종찬, 장경우, 박철언 등은 민자당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결의했다. 여기에 민주당을 탈당한 한영수 의원 등이 가담하며 신당 창당은 본격화되었으며, 9월 3일에는 새한국당의 사전 조직인 '새정치국민연합'이 발족되었다.[1]2. 2. 통일국민당과의 통합 시도 및 결렬
마땅한 대권 주자가 없던 새한국당은 독자적으로 대선 후보를 내세우는 안과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를 지지하고 합당을 추진하는 안을 두고 고심했다. 국민당은 이를 환영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통합 논의에 나섰으나, 몇 번의 시도 결과 국민당과의 연대는 무산되어 독자 후보를 추대하게 되었다.[1]2. 3. '국민 후보' 추대 시도와 실패
새한국당은 외부 인사를 영입해 '국민 후보'로 내세우겠다고 밝히고 박태준 전 민주정의당 대표, 강영훈 전 국무총리,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에게 의사를 타진했다.[1] 이 중 박 전 대표와 강 전 총리는 신당 참여 및 후보직 수락을 거부했으나, 김 회장은 후보직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 김 회장의 추대가 유력해졌다.[1]김우중 회장은 당의 핵심 리더인 이종찬 의원과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었고 당의 자금도 일정 부분 대고 있었다. 그런 김 회장이 대통령 후보를 맡을 경우 자금 문제는 물론이고 지지율 답보도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고 본 당내 상당수는 김 회장 영입론을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오히려 이종찬 의원 등이 국민당처럼 재벌 총수를 후보로 내세울 순 없다며 결사 반대해 끝내 무산되었다.[2] 김우중 회장 추대가 무산되자 새한국당은 심각하게 분열,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2]
3. 대선 후보 추대 및 사퇴
채문식 창당준비위원장의 통일국민당과의 통합 선언에도 불구하고, 통합 반대파는 다음 날인 1992년 11월 17일 새한국당 창당대회를 개최하고 이종찬 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3] 그러나 이종찬 후보는 낮은 지지율을 확인하고, 12월 12일, 통일국민당과 대선 후 합당을 합의하고 사퇴 및 정주영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4]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는 3위로 낙선했고, 양당 간의 합당은 정치적 이해 관계 상의 이유로 취소되었으며, 새한국당은 1995년 민주당에 흡수 합병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5]
3. 1. 통일국민당과의 통합 선언과 번복
후보 영입 불발 이후, 새한국당은 통일국민당 합류파와 당 사수파로 분열되었다. 채문식 창당준비위원장은 1992년 11월 16일 정주영 후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통일국민당과의 통합을 선언하였다.[3]3. 2. 이종찬의 후보 추대와 사퇴
통합 반대파는 1992년 11월 17일 새한국당 창당대회를 개최하고 이종찬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였다.[3] 그러나 이종찬 후보는 미약한 지지율을 확인하고, 1992년 12월 12일 통일국민당과 대선 후 합당을 합의, 사퇴 및 정주영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4]4. 해산과 민주당으로의 통합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는 3위로 낙선했다.[5] 대선 이후 새한국당과 통일국민당 간의 합당은 정치적 이해 관계상의 이유로 취소되었으며, 새한국당은 1995년 민주당에 흡수 합병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5] 이는 새한국당이 독자적인 정치 세력으로 생존하기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참조
[1]
웹인용
새한국당 후보추대 진전 분위기 - 매일경제
https://web.archive.[...]
2019-05-14
[2]
웹인용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
2019-05-14
[3]
웹인용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
2019-05-14
[4]
웹인용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
2019-05-14
[5]
웹인용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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