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 더제이우
1. 개요
데미 더제이우는 네덜란드 국적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다. 그는 고 어헤드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AZ 알크마르, AFC 아약스,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RSC 안데를레흐트, NAC 브레다 등 여러 클럽에서 활약했다. 특히 AZ 알크마르에서 에레디비시 우승을 경험했고, AFC 아약스에서도 에레디비시와 KNVB컵 우승을 달성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으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27경기에 출전했으며,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은퇴 후에는 패션 브랜드 BALR.를 설립하여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본명 | 데미 파트릭 르네 더 제이우 (Demy Patrick René de Zeeuw) |
|---|---|
| 출생일 | 1983년 5월 26일 |
| 출생지 | 아펠도른 |
| 신장 | 1.74m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1989-1995: WSV 1995-2001: AGOVV |
|---|---|
| 프로 클럽 | 2001-2005: 고 어헤드 이글스 (65경기 7골) 2005-2009: AZ (119경기 15골) 2009-2011: 아약스 (59경기 8골) 2011-2014: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2경기 2골) 2013-2014: → 안데를레흐트 (임대) (18경기 1골) 2015: NAC 브레다 (12경기 2골) |
| 총 클럽 경기 | 295경기 35골 |
| 청소년 국가대표 | 2005-2006: 네덜란드 U-21 (10경기 1골) |
|---|---|
| 성인 국가대표 | 2007-2010: 네덜란드 (27경기 0골) |
| 메달 | 2010년 FIFA 월드컵: 준우승 2006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
|---|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는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불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94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1983년 출생 -
김석우
-
1983년 출생 -
이세돌
-
201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마크 슈워처
마크 슈워처는 독일계 호주인 골키퍼로,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109경기에 출전했고, 미들즈브러에서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으며, 첼시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레스터 시티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
201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밀레 예디나크
밀레 예디나크는 은퇴한 호주 축구 선수이자 토트넘 홋스퍼 FC의 수석 코치이며, 호주 국가대표팀에서 79경기 출전 20골을 기록하고 2015년 AFC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다.
2. 클럽 경력
데미 더제이우는 네덜란드의 고 어헤드 이글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AZ 알크마르, AFC 아약스 등 자국 리그의 주요 클럽에서 활약하며 리그 우승과 컵 대회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러시아의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 벨기에의 RSC 안데를레흐트(임대)를 거쳐 선수 생활 말년에는 다시 네덜란드의 NAC 브레다에서 활동했다.
2.1. 고 어헤드 이글스
데미 더제이우는 고향 아펠도른의 WSV 아펠도른에서 5살 때 축구를 시작했으며, 축구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12세까지 WSV 아펠도른에서 활동하다가 고 어헤드 이글스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이후 고 어헤드 이글스의 유소년 시스템을 거쳐 18세에 프로 계약을 체결했다.
더제이우는 데벤터를 연고지로 하는 고 어헤드 이글스에서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2001-02 시즌에는 3번의 리그 경기에 출전했고, 이후 점차 팀 내 입지를 다져나갔다. 고 어헤드 이글스 소속으로 총 5시즌 동안 활동하며 65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했다. 특히 2004-05 시즌에는 팀의 핵심 선수로 인정받았다. 그의 뛰어난 활약은 FC 흐로닝언을 포함한 에레디비시 구단들의 주목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2. AZ 알크마르
더 제이우는 2005년 여름 친선 경기에서 AZ를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쳐 에레디비시 클럽 AZ 알크마르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AZ의 감독이었던 루이 판 할은 그의 플레이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적료 100에 4년 계약을 체결하며 그를 영입했다.
그는 스파르타 로테르담과의 시즌 개막전에서 AZ 알크마르 데뷔전을 치렀고,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3-0 승리에 기여했다. 입단 후 수비수와 미드필더 포지션을 오가며 빠르게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UEFA컵 1라운드에서는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와의 두 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합계 6-6 동점 상황에서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AZ 알크마르가 조별 예선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2005년 10월 16일, PSV 에인트호번과의 경기(3-0 패)에서 근육 부상을 당해 35분 만에 교체되었고, 약 두 달간 결장하게 되었다. 2005년 12월 10일 FC 트벤터와의 경기(3-1 승)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며 복귀했고, 다음 RKC 발베이크전에서는 AZ 소속 첫 골을 기록하며 3-0 승리를 도왔다. 2005-06 시즌 동안 모든 대회를 합쳐 33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했으며, 시즌 종료 후인 2006년 5월에는 2010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2006-07 시즌 개막전 NAC 브레다와의 경기(8-1 승)에서는 요리스 마테이선의 골을 도우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다음 비테세전(3-1 승)에서는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이 시즌부터 미드필더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KNVB컵 2라운드 VV 베네콤전(10-0 승)에서 시즌 두 번째 골을 넣었다. 2006년 10월 말에는 PSV 에인트호번과 Willem II를 상대로 연달아 득점했으며, 11월 2일 그라스호퍼와의 UEFA컵 경기(5-2 승)에서는 유럽 대항전 첫 골을 기록했다. 이후 11월 8일부터 18일까지 세 경기 연속 골(SV 메어센, 헤라클레스 알멜로, 페예노르트 상대)을 기록하는 등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다. 2007년 2월 14일 페네르바흐체와의 UEFA컵 32강 1차전(3-3 무)에서 시즌 9호 골을 기록했다. 2월 25일 아약스와의 경기(1-1 무)에서는 골키퍼 마르턴 스테켈렌뷔르흐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팀 동료 마르턴 마르턴스의 동점골이 나왔는데, 이 상황에 대해 네덜란드 언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팀이 KNVB컵 결승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으나, 아약스와의 결승전에서는 연장전까지 뛰었지만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시즌 후 유럽 대항전 진출 플레이오프에서도 아약스에 합계 4-2로 패했다. 시즌 총 53경기에 출전하여 9골을 기록했고, 계약을 2011년까지 다시 연장했다.
2007-08 시즌에는 8월 31일 엑셀시오르전(3-0 승)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했고, 이후 아약스, FC 흐로닝언, NEC 네이메헌, 1. FC 뉘른베르크, FC 위트레흐트 등을 상대로 득점했다. 2008년 1월 13일 아약스와의 경기(6-1 패)에서는 핸드볼 반칙으로 퇴장당했으나, 이후 KNVB는 골라인 밖에서의 핸들링이었다는 클럽의 주장을 받아들여 징계를 철회했다. 판 할 감독은 더 제이우가 팀에서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지만, 팀 내 불화가 발생한 후 더 제이우는 인터뷰에서 감독을 비판하기도 했다. AZ는 우승 후보로 꼽혔던 시즌 전 기대와 달리 리그 11위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었고, 더 제이우는 이 시즌을 "거대한 실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시즌 총 37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기록했다.
UEFA 유로 2008 이후, 어린 시절 응원했던 AFC 아약스로의 이적설이 돌았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이적을 요청하면서 2008-09 시즌 초반에는 선발 명단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이적 시장 마감일에 함부르크 SV 이적이 임박했으나, 서류 등록 시간 문제로 무산되었다. 이후 9월 20일 PSV 에인트호번과의 경기(1-0 승)에서 시즌 첫 선발 출전을 했고, 다음 Willem II전(5-3 승)에서는 시즌 첫 골을 기록했다. 곧바로 주전 자리를 되찾아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스파르타 로테르담전 멀티 어시스트를 포함해 도움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8년 11월 23일 아약스와의 경기(2-0 승)에서는 AZ 소속 100번째 출전을 자축하는 시즌 2호 골을 넣었다. 경고 누적으로 한 경기를 결장한 뒤 복귀했고, FC 위트레흐트전(2-0 승)에서 시즌 3호 골을 기록했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는 발렌시아와 함부르크의 관심을 받았지만 AZ는 이적을 불허했다. AZ는 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고, 2009년 4월 18일 경쟁팀 아약스가 PSV에 패하면서 1981년 이후 28년 만의 에레디비시 우승을 확정지었다. 더 제이우는 시즌 총 34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했고, Voetbal International 선정 시즌 베스트 팀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 봄, AZ는 다시 계약 연장을 제안했지만 더 제이우는 이를 거절했다. 이러한 성공은 다시 한번 함부르크를 포함한 국제적인 클럽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009년 7월, 아약스는 공식적으로 더 제이우 영입에 관심이 있다고 발표했고, 더 제이우 역시 마르틴 욜 감독이 부임한 아약스로의 이적에 관심을 표명했다. AZ는 처음에는 라이벌 클럽으로의 이적에 난색을 표했지만, 결국 이적에 협력하기로 결정했다. 2009년 7월 24일, 약 6의 이적료로 아약스 이적이 확정되었으며, 더 제이우는 2013년까지 4년 계약을 체결했다. AZ 알크마르 소속으로 4시즌 동안 총 119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했다.
2.3. AFC 아약스
2009년 7월, AZ 알크마르에서 이적료 약 6에 아약스로 이적했다. 그는 암스테르담 토너먼트에서 아약스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경기에 앞서 팬들에게 소개되었고, 등번호 40번 유니폼을 받았다. 데 제이우는 어린 시절부터 응원했던 클럽 합류 이유로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 기회와 마틴 욜 감독의 존재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2009-10 시즌
시즌 개막전 FC 흐로닝언과의 경기(2-0 승)에서 선발 출전하며 아약스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 후 욜 감독은 그의 활약을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빠르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발 부상에도 불구하고 UEFA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슬로반 브라티슬라바를 상대로 선발 출전하여 1차전 5-0 승리에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본선 진출(합산 7-1 승)에 기여했다. 이후 리그에서도 헤라클레스 알멜로전 1개, NAC 브레다전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09년 9월 27일, 암스테르담 아레나에서 열린 ADO 덴 하흐와의 경기(3-0 승)에서 리그 데뷔골을 기록했다. 2009년 10월 2일 안더레흐트와의 유로파 리그 경기(1-1 무)에서는 상대 선수 옐레 반 담메에게 태클 후 그를 밀치는 행동으로 논란이 있었으나 퇴장은 면했다. 오히려 반 담메가 2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다. 2009년 10월 25일 친정팀 AZ 알크마르와의 경기를 앞두고는 욜 감독이 반 할 감독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하며 "팀을 스스로 만들고 전술적으로 잘 배치하며 선수 개개인을 발전시킨다"고 말했다. AZ 알크마르와의 경기 당일에는 선발 출전하여 그레고리 판 데르 빌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4-2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일부 AZ 팬들로부터 "암 덩어리 유대인"이라는 인종차별적 구호를 들어 심판 바스 나이하위스가 경기를 잠시 중단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AZ 구단은 데 제이우에게 사과했지만, KNVB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009년 11월 1일, 라이벌 페예노르트와의 클라시커 더비에서 2골을 넣으며 5-1 대승을 이끌었다. 이어진 디나모 자그레브와의 유로파 리그 경기(2-0 승)에서는 유럽 대항전 첫 골을 기록했다. 2009년 11월 22일 SC 헤렌벤전(5-1 승)에서도 2골을 추가하며 시즌 초반 좋은 득점력을 보였다. 2009년 12월 23일 KNVB컵 16강 WHC 베제프전(14-1 승)에서는 시즌 7호 골과 함께 해트트릭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경고 누적으로 한 경기를 결장한 후 복귀한 2010년 1월 27일 NEC 네이메헌전(3-1 승)에서는 1골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0년 2월 7일 FC 트벤테전(3-0 승)과 3월 25일 고 어헤드 이글스와의 KNVB컵 준결승(6-0 승)에서도 골을 넣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NEC 네이메헌전(4-1 승)에서도 골을 추가하며 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2010 KNVB컵 결승에서는 페예노르트를 상대로 1, 2차전 모두 출전했고, 2차전에서 시엠 더 용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우승(합산 6-1 승)을 도왔다. 시즌 동안 작은 부상으로 몇 차례 결장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으며 모든 대회를 통틀어 47경기에 출전하여 11골을 기록했다.
2010-11 시즌
2010-11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20번으로 변경했다. 시즌 초반 PAOK 살로니카와 디나모 키예프를 꺾고 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본선 진출에 기여했다. 리그 개막 후 4경기에서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0년 9월 15일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68분 만에 교체된 것에 불만을 표출했고, 이로 인해 다음 페예노르트와의 리그 경기에서는 벤치를 지켰다. 2010년 10월 19일 오세르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2-1 승)에서 자신의 첫 챔피언스 리그 골을 기록했다. 마틴 욜 감독 체제에서는 꾸준히 출전했지만, 욜 감독이 경질되고 프랑크 데 부어 감독이 부임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데 부어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2010년 12월 8일 밀란과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2-0 승)에서 두 번째 챔피언스 리그 골을 넣으며 팀의 UEFA 유로파 리그 진출(조별 리그 3위)을 도왔다. 데 부어 감독은 팀의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주었고, 데 제이우의 역할도 이에 따라 바뀌었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는 터키의 페네르바흐체 이적이 거론되었으나 아약스가 제안을 거절하며 무산되었다. 이후 KNVB컵 준결승 RKC 발베이크전(5-1 승)에서 시즌 3호 골을 기록했고, 2011년 3월 6일 친정팀 AZ 알크마르를 상대로 시즌 4호 골을 넣으며 4-0 승리를 이끌고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2011 KNVB컵 결승에서는 FC 트벤테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팀은 2-3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인 2011년 5월 15일, 리그 최종전에서 다시 만난 트벤테를 3-1로 꺾고 에레디비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시즌 동안 작은 부상이 있었지만 주전 경쟁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2010-11 시즌에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47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기록했다.
이적
2010-11 시즌 종료 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이적설이 제기되었다. 데 부어 감독 또한 적절한 제안이 온다면 그를 판매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2011년 6월 29일, 네덜란드 언론 데 텔레흐라프는 아약스가 데 제이우의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이적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7월 6일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는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데 제이우 영입을 발표했다.
2.4.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11년 7월 6일,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의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로 이적하는 것이 공식 확인되었다. 이적료는 약 7로 추정되며, 다른 보도에서는 6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 이적으로 그의 첫 클럽인 고 어헤드 이글스는 이적료의 5%를 받게 되었다. 당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감독이었던 발레리 카르핀은 그가 아약스 시절과 같은 포지션에서 뛰어주기를 기대했으며, 등번호는 16번을 받았다.
시즌 초반 두 경기에 결장한 후, 2011년 8월 7일 FC 테레크 그로즈니와의 경기(4-2 승)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2011년 9월 18일, FC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를 상대로 3-0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소속 첫 골을 기록했다. 이어진 9월 25일 FC 크라스노다르와의 경기(4-2 승)에서도 골을 넣었지만, 부상으로 교체되었는데, 경기 후 카르핀 감독은 그가 뇌진탕 증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다행히 빠르게 회복하여 2011년 10월 2일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경기(2-2 무)에 출전하여 팀의 골을 돕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 23일 FC 톰 톰스크와의 경기(4-0 승)에서 무릎 부상을 당해 62분 만에 교체되었고, 이 부상으로 인해 겨울 휴식기 전까지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12년 3월 19일, 부상에서 복귀하여 PFC CSKA 모스크바와의 경기(1-2 패)에 선발 출전했으나, 또다시 부상을 당해 2011-12 시즌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첫 시즌 성적은 모든 대회를 통틀어 16경기 출전 2골이었다. 잦은 부상으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자 팬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더제이우는 부상 때문에 1군 경기에 꾸준히 나서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2012-13 시즌 초반에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몇 차례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다. 2012–13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 페네르바체와의 경기에서는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기도 했다. 2012년 9월 26일, FC 살류트 벨고로드와의 러시아 컵 경기(2-1 승)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했으며, 10월 2일 셀틱과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경기(2-3 패)에서는 엠마누엘 에메니케의 골을 도왔다. 하지만 발레리 카르핀 감독 및 이후 부임한 우나이 에메리 감독 체제 하에서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벤치에 앉는 시간이 늘어났고, 1월 이적 시장에서 팀을 떠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결국 2013년 1월 말, 벨기에의 RSC 안데를레흐트로 임대 이적했다. 임대되기 전까지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뛴 2012-13 시즌 기록은 모든 대회를 합쳐 17경기 출전 1골이었다.
더제이우가 안데를레흐트로 임대된 후, 그를 영입했던 카르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더제이우 영입은 근래 최악의 영입이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제이우 본인도 네덜란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나라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러시아에서는 정착하지 못했다. 문화나 축구 스타일, 잦은 항공 이동 등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러시아를 떠날 수 있게 되어 안심된다"고 말하며 러시아 생활 적응에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2012-13 시즌 종료 후 스파르타크 측에서 그의 복귀를 고려하기도 했으나, 더제이우는 팀으로 돌아갈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결국 2013-14 시즌이 끝난 후 계약 만료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방출되었다.
2.5. RSC 안데를레흐트 (임대)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발레리 카르핀이나 우나이 에메리 감독 아래에서 기회를 받았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카르핀 감독으로부터 "근년의 이적 중 최악이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더제이우 자신도 러시아 생활 적응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새로운 나라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러시아에서는 정착할 수 없었다. 문화나 축구나 항공편의 많음.... 러시아를 떠날 수 있게 되어 안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2013년 1월 22일, 벨기에 프로 리그의 강호 안데레흐트로 2012-13 시즌 잔여 기간 동안 임대 이적했다. 그는 등번호 6번을 배정받았다.
2013년 2월 15일, 샤를루아와의 경기에서 후반 30분 교체 투입되어 안데레흐트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2–0으로 승리했다. 다음 클뤼프 브뤼허와의 경기에서는 사무엘 아르멘테로스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며 2–2 무승부에 기여했다. 이후 더제이우는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1군 경기에 여러 차례 출전했다. 2013년 5월 19일, 로케렌과의 경기에서 클럽에서의 첫 골을 터뜨려 4–2 승리를 이끌었다. (이전에 헹크와의 경기에서 넣은 골은 결국 칼림 하일랜드의 자책골로 기록되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안데레흐트는 쥘터 바레험과의 1–1 무승부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12–13 시즌 종료 후, 더제이우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12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완전 이적 옵션이 없어 그는 원 소속팀으로 복귀했다.
안데레흐트에 한 시즌 더 남고 싶어 했던 그는, 2013년 7월 5일 클럽으로부터 두 번째로 임대되어 2013–14 시즌 종료까지 함께하게 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두 번째 임대 계약 후 안데레흐트 소속으로 첫 경기는 2013년 7월 21일 헹크와의 벨기에 슈퍼컵 경기였고, 그는 풀타임을 소화하며 1–0 승리에 기여했다. 클럽 데뷔 이후, 그는 1군과 2군을 오가며 출전했다. 더제이우는 2013년 9월 1일 쥘터 바레험과의 경기에서 두 번째 임대 기간 동안 안데레흐트 소속으로 첫 골을 넣었지만, 팀은 4–3으로 패했다. 3주 후인 2013년 9월 25일, 그는 벨기에 컵 6라운드에서 오이펜을 상대로 7–0 승리를 거두며 안데레흐트 소속으로 두 번째 골을 기록했다. 2013년 11월 5일, 그는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파리 생제르맹을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시즌 세 번째 골을 넣었다. 경기 후, 더제이우는 PSG를 상대로 골을 넣은 것이 그의 날이었다고 말하며 기뻐했다.
2013년 11월 30일, 더제이우는 이후 존 판 덴 브롬 감독으로부터 좋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둘은 2013년 9월 17일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벤피카에게 2–0으로 패한 후 판 덴 브롬의 전술에 대해 비판하면서 갈등을 빚었었다. 하지만 둘은 서로 만나 화해했다. 더제이우가 1월 이적 시장에서 팀을 떠날 수 있다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2013–14 시즌 나머지 기간 동안 안데레흐트에 남았다. 이후 더제이우는 훈련 중 뇌진탕을 겪었고, 클럽에서 다시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여는 안데레흐트가 다시 한번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2013–14 시즌 종료 후,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18경기에 출전하여 3골을 기록했다. 이후 더제이우는 안데레흐트를 떠나 원 소속팀으로 복귀했다.
2.6. NAC 브레다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를 떠난 후, 데미 더제이우는 뉴욕 코스모스와 전 소속팀인 고 어헤드 이글스, 그리고 NAC 브레다를 포함한 여러 네덜란드 클럽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6개월간 소속팀 없이 지내던 그는 링크드인에 직접 글을 올려 자신을 홍보하기도 했다.
2015년 2월 7일, 더제이우는 시즌 종료까지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NAC 브레다와 아마추어 계약을 맺었다. 네덜란드 축구 규정에 따라, 이 아마추어 계약은 2015년 2월 10일에 프로 계약으로 전환되었다.
그는 2015년 2월 14일 ADO 덴 하흐와의 경기에서 NAC 브레다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지만 팀은 3-2로 패배했다. 이어진 SC 캄뷔르와의 경기에서는 아드난 티가두이니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NAC 브레다 합류 후, 그는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뛰며 빠르게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그러나 승강 플레이오프에서는 4경기에 모두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다 JC 케르크라데에게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패배하며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2014-15 시즌 동안 더제이우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16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그는 NAC 브레다에서 방출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
더제이우는 2005년 5월 처음으로 네덜란드 U-21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그는 2005년 6월 3일 루마니아 U-21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선수로 출전하여 2-0 승리에 기여하며 U-21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더제이우는 포르투갈에서 열린 2006년 UEFA U-21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네덜란드 U-21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다. 2006년 5월 17일에는 독일 U-21 대표팀과의 2-2 무승부 경기에서 U-21 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그는 조별 예선 우크라이나 U-21 대표팀과의 2-1 패배 경기를 제외하고 대회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 네덜란드 U-21 대표팀은 이 대회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 U-21 대표팀을 3-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종료 후 포페 더 한 감독은 더제이우와 이스마일 아이사티의 활약을 칭찬했다. 그는 네덜란드 U-21 대표팀에서 총 10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기록했다.
AZ 알크마르에서의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더제이우는 2006년 8월 당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마르코 판 바스턴에 의해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하지만 이후 7개월 동안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를 지켰다. 2007년 3월 28일, 슬로베니아와의 UEFA 유로 2008 예선 경기에서 74분 교체 투입되어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1-0으로 승리했다.
더제이우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으며, 대표팀에서는 마르크 판 보멀, 오를란도 엥헬라르, 나이젤 더 용과 같은 선수들과 주전 경쟁을 벌였다. 그는 2007년 6월 2일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58분간 활약했다. 2007년 9월 8일 불가리아와의 UEFA 유로 2008 예선 경기에서는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다. 더제이우는 남은 예선 경기에도 꾸준히 출전하며 네덜란드의 UEFA 유로 2008 본선 진출을 도왔다. 2008년 상반기 동안 대표팀에서 꾸준히 활약한 그는 UEFA 유로 2008 최종 23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본선에서는 루마니아와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만 출전했다.
UEFA 유로 2008 이후에도 더제이우는 대표팀에 꾸준히 소집되었다. 2008년 8월 20일 러시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84분 교체 투입되어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두 달 만에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다. 더제이우는 그해 말까지 세 차례 더 선발 출전했다. 2009년 9월 5일에는 일본과의 친선 경기에서 64분 교체 투입되어 3-0 승리를 거두는 과정에서 베슬리 스네이더르의 두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10개월 만에 네덜란드 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다. 네덜란드가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자, 더제이우는 대표팀 합류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2010년 5월, 더제이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2010년 FIFA 월드컵 예비 명단에 포함되었고, 2010년 5월 27일 베르트 판 마르바이크 감독은 더제이우가 최종 23인 명단에 포함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대회 직전 헝가리와의 6-1 승리 경기에서 79분 교체 출전하여 A매치 25번째 경기를 치렀다. 더제이우는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 첫 경기인 덴마크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2-0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그는 네덜란드가 4강에 진출하는 동안 다음 네 경기에 벤치에서 대기했다. 더제이우는 우루과이와의 준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히오바니 판 브롱크호르스트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3-2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전반전 도중 상대 선수 마르틴 카세레스에게 얼굴을 가격당해 부상을 입었고, 라파엘 판 데르 파르트와 교체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신경심리학적 검사 결과 더제이우는 여러 증상을 겪었을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의사로부터 이상 없다는 소견을 받았으며 6주 동안 깁스를 착용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제이우는 2010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으며, 네덜란드는 1-0으로 패배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월드컵 이후, 더제이우는 산마리노와의 경기를 위해 네덜란드 대표팀에 소집되었지만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국가대표팀에 다시 소집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의 출전 기회 부족과 부상을 이유로 국제 축구계에서 조용히 은퇴했다. 그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총 27경기에 출전했다.
5. 개인사
데미 더제이우는 5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아펠도른으로 이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어머니는 저를 낳았을 때 겨우 16살이었고, 아버지는 몇 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이 논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가끔 봤는데, 그 다음엔 딱 한 번 봤습니다. 제가 15살이었죠. 그 이후로 어머니를 본 적도, 말한 적도 없습니다."라고 설명했다. 2014년 4월, 여자친구가 딸 로키를 낳아 처음 아버지가 되었고, 2018년 4월에는 아들이 태어나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2011년 1월에는 자택에 도둑이 들어 보석, 노트북, 피아트 500 차량을 도난당했으며, 2014년 7월 휴가 중에는 여자친구의 차가 도난당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 합류한 후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네덜란드어와 영어도 구사한다. 에스콰이어는 더제이우를 가장 패셔너블한 축구 선수로 선정했으며, 그는 인터뷰에서 여행을 가장 큰 열정으로 꼽았다. 어릴 적 우상은 로베르토 바조였다고 한다.
더제이우는 엘제로 엘리아, 그레고리 판 데르 빌 등 동료 네덜란드 축구 선수들과 함께 패션 브랜드 발르를 설립했다. 또한 @balr, @433, @hotels, @wannahaves 등 여러 유명 인스타그램 계정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의 계모가 사업가가 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6. 수상 경력
*FIFA 월드컵 준우승: 2010
6.1. 클럽
AZ
*에레디비시: 2008-09
AFC 아약스
*에레디비시: 2010-11
*KNVB컵: 2009-10
RSC 안데레흐트
*벨기에 프로 리그: 2012-13, 2013-14
*벨기에 슈퍼컵: 2013
6.2. 국가대표
* UEFA U-21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