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준
1. 개요
도준은 진남대장군 겸 형주목을 지낸 인물이다. 279년 곽마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했으나, 서진의 오나라 침공 소식을 듣고 건업으로 돌아갔다. 손호에게 진나라 수군을 격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군사를 얻었지만, 병사들이 도망가면서 실패했고, 이 일로 손호는 항복하게 되었다. 오나라 멸망 후에는 진나라에서 산기상시로 임명되었으며, 두 아들은 진나라에서 관직에 올라 명성을 얻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손호에게 진군 격퇴를 진언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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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의 장군 -
사일
사일은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 초 교주 지역에서 활동하며 정궁을 보좌하여 두각을 나타냈고 합포 태수를 역임했으나, 손권에게 귀순 후 사휘의 반란에 연루되어 처형당하며 격변기의 사씨 가문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
동오의 장군 -
미방
미방은 유비 휘하에서 활약하다 관우와의 불화로 손권에게 투항하여 오나라 장수가 되었으며,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비에게 항복하려다 처형당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도준은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겸 형주목(荊州牧)을 지냈다. 아버지는 교주 자사였으며, 형은 교주 방면에서 활약하여 사지절, 도독교주제군사, 전장군, 교주 목이 되었다. 동생은 태자중서자였다.
279년 곽마의 난과 서진의 침공, 그리고 280년 오나라 멸망까지의 과정은 하위 섹션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오나라 멸망 이후, 도준은 진나라에서 설영 등과 마찬가지로 산기상시에 임명된 듯하다. 『도씨가전』에 따르면, 박학하고 문장과 응대가 뛰어나며, 용모도 아름다워 조정 회의에서 동료들을 이끌고 군자를 추천했다고 한다.
두 아들은 각각 진나라에서 관직에 올라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도준이 손호에게 진나라 군대를 격퇴할 것을 진언하고, 전장군 장상과 배를 향하다가 갑작스러운 강풍으로 깃발이 쓰러지고, 불길하게 여긴 병사들이 도망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역사적 사실이 각색되었다.
2.1. 초기 활동 및 곽마의 난 진압
279년 곽마가 반란을 일으키자, 당시 서릉독이었던 도준은 도황과 함께 곽마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무창(武昌)에 왔을 때, 오나라를 정벌하는 진군이 몰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건업(建業)으로 되돌아갔다.
손호(孫皓)가 도준에게 수군의 현황을 묻자, 진나라 수군의 배는 작기 때문에 군사를 내어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도준의 대답은 왕준이 큰 전함을 많이 만들어 공격해 오는 현실을 잘 모르고 한 말이었다. 손호는 군사 2만을 주고 싸우게 하였으나, 출진한 그날 밤 군사들이 모두 도망가는 바람에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같은 해 겨울, 진이 대군을 동원하여 오나라를 침공해왔다. 도준은 교주로의 원군으로 향하던 중, 무창에서 진의 침공 소식을 듣고 광주로 향하지 않았다.
2.2. 서진의 침공과 오나라 멸망
279년 곽마가 반란을 일으키자, 당시 서릉독이었던 도준은 도황과 함께 곽마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무창에 왔을 때, 오나라를 정벌하는 진나라 군대가 몰려왔다는 소식을 듣고 건업으로 되돌아갔다.
손호가 도준에게 수군의 현황을 묻자, 도준은 진나라 수군의 배는 작기 때문에 군사를 내어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 대답은 왕준이 큰 전함을 많이 만들어 공격해 오는 현실을 잘 모르고 한 말이었다. 손호는 군사 2만을 주고 싸우게 하였으나, 출진한 그날 밤 군사들이 모두 도망가는 바람에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280년, 오나라 군대가 각지에서 패배를 거듭하는 가운데, 도준은 무창에서 건업으로 귀환하여 손호를 알현했다. 도준은 "익주 방면에서 침공해온 진나라의 배는 작은 것뿐이며, 큰 배와 2만 명의 병사가 있다면 격퇴할 수 있습니다"라고 상주하여 허락을 받고 절과 월을 받았다. 그러나 패잔병을 모아 진나라 군대를 맞이하려 했으나, 하룻밤 사이에 병사들이 겁을 먹고 도망가 버렸다. 이 사건으로 손호는 완전히 싸울 의지를 상실하고 항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