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희
1. 개요
도진희는 성주 도씨 출신으로, 대한민국 육군 이등상사, 국방부 서기관, 제3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49년 고희두 고문치사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1956년 김창룡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 여러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1995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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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초등학교 (경북) 동문 -
서석준
서석준은 대한민국의 경제 관료로, 경제기획원 장관과 부총리를 역임하며 물가정책에 기여하고 상공부 장관 시절에는 중화학공업 투자 조정과 수출 증대에 기여했으나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으로 순국하였다. -
성주초등학교 (경북) 동문 -
황규봉
황규봉은 KBO 리그 원년 삼성 라이온즈의 멤버로 최우수 구원투수상을 수상한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경북고등학교와 한국화장품을 거쳐 프로에 데뷔하여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으며, 은퇴 후 코치 활동과 투병 생활을 하다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
성주 도씨 -
도정일
도정일은 영문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 경희대학교 교수, 도서관장,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문화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으나, 2016년 학력 위조 논란 이후 이를 인정했고, 저서로는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등이 있다. -
성주 도씨 -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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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당의 당원 -
김시현 (1883년)
김시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 및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
한국독립당의 당원 -
김정례
김정례는 대한민국 제1세대 여성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여성단체 창립 및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 정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며 여성계와 정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여성 정치 진출에 기여했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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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희는 성주 도씨로, 호는 두남(斗南)·산남(山南)이다. 경찰관, 국방부 특무대 서기관, 동신여객자동차회사 부사장, 자유당 경북도 당정무부차장, 민중당 경북도당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95년 5월 31일 서울특별시 내 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78세.
2.1. 초기 생애 및 학력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성주군 출신으로, 성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수도경찰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독학으로 법학을 전공하였다.
2.2. 정치 경력
한국 전쟁에 참전했으며,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을 탈당하였으며, 1956년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후 1957년 9월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1963년 제6대 총선거에서는 국민의 당 소속으로, 1967년 제7대 총선거에서는 신민당 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2.3. 군 복무 및 논란
도진희는 육군 이등상사로 근무하던 1949년 9월 29일, 남조선노동당 관계자로 알려진 동대문구 민보단 단장 겸 동대문경찰서 후원회장 고희두를 고문 끝에 사망하게 한 혐의로, 같은 해 10월 23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불명예 제대, 전 급료 몰수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56년 김창룡 중장이 강문봉 중장의 위탁을 받은 허태영한국어 등에 의해 살해된 사건과 관련, 김창룡 살해 후 도진희가 범행에 사용된 지프 차량을 구입하여 도색을 변경했다. 이 때문에 1957년 9월 18일 범인의 도주 방조 및 증거인멸 등의 죄로 다시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며, 1958년 1월 대법원 상고 기각 판결로 형이 확정되었다. 1960년 1월 30일 만기 출소했으며, 1962년 3월 복권되었다.
1957년 9월 의원 자격 상실 이후, 도진희는 한국 헌정사상 국회의원에 대한 자격 심사를 통해 실격된 유일한 국회의원이다.
3. 학력
* 성주초등학교 졸업 (이후 독학)
5.1. 고희두 고문치사 사건
육군 이등상사로 근무하던 1949년 9월 29일, 남조선노동당 관계자로 알려진 동대문구 민보단 단장이자 동대문경찰서 후원회장이었던 고희두를 고문 끝에 사망하게 한 혐의로, 같은 해 10월 23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불명예 제대와 전 급료 몰수,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5.2.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 연루
1956년 김창룡 장군 암살 사건에 연루된 민간인 중 한 명이다. 김창룡 살해 후 범행에 사용된 지프 차량을 구입하여 도색을 변경하였다. 이 때문에 1957년 9월 18일 범인 도주 방조 및 증거인멸 등의 죄로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며, 1958년 1월 대법원 상고 기각 판결로 형이 확정되었다。 1960년 1월 30일 만기 출소했으며, 1962년 3월 복권되었다。
5.3. 국회의원 자격 상실
육군 이등상사로 근무 중이던 1949년 9월 29일, 남조선노동당 관계자로 알려진 동대문구 민보단 단장, 동대문경찰서 후원회장 고희두를 고문 끝에 사망하게 한 혐의로, 같은 해 10월 23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불명예 제대, 전 급료 몰수와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56년 김창룡 중장이 강문봉 중장의 위탁을 받은 허태영한국어 등에 의해 살해된 사건과 관련, 김창룡의 살해 후 도진희가 범행에 사용된 지프 차량을 구입하여 도색을 변경했다. 이 때문에 1957년 9월 18일 범인의 도주 방조 및 증거인멸 등의 죄로 다시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며, 1958년 1월 대법원 상고 기각 판결로 형이 확정되었다. 1960년 1월 30일 만기 출소했으며, 1962년 3월 복권되었다.
1957년 9월 의원 자격 상실 이후, 한국 헌정사상 국회의원에 대한 자격 심사를 통해 실격된 유일한 국회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