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관왕묘
1. 개요
동관왕묘는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의 지원을 받아 1601년(선조 34년) 동대문 밖에 완공된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다. 서울에 여러 관왕묘가 건립되었으나, 현재는 동관왕묘만 남아 있으며, 1963년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중국풍 건축 양식을 보이며, 동관왕묘 소장유물 일괄, 백자 동묘치성병 명병 등의 관련 문화재가 있다. 인근에 동묘앞역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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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설립 -
광주 포충사
광주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고경명, 고종후, 고인후 삼부자와 유팽로, 안영을 모신 사당으로,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에도 헐리지 않았으며, 소장 문적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1601년 설립 -
다하라번
다하라 번은 에도 시대 미카와국 아쓰미군(현재 아이치현 다하라시)에 있던 번으로, 도다 씨족이 다스리다 미야케 씨족으로 교체되었으며, 폐번치현 이후 아이치현에 편입되었고, 번 학원 성장관과 와타나베 가잔과 같은 학자들을 배출하며 학문으로도 알려졌다. -
조선의 도관 -
소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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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도관 -
남묘
남묘는 1598년에 건설되었으나 한국 전쟁으로 파괴된 후 1979년에 재건되어 지역 사회의 종교적, 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하며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지역 사회와 교류하는 종교 시설이다. -
관왕묘 -
관제묘
관제묘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을 의미하며, 한국에는 동관왕묘와 남관왕묘가 있고, 동관왕묘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널리 분포되어 있다. -
관왕묘 -
행천궁
행천궁은 타이베이에 위치한 사당으로, 관우 등 오은주를 모시며, 여산파 정일교 도교를 기반으로 불교, 유교 등과 융합되어 대만 민족 종교로 발전했으며, 2014년 향 연소를 금지했다.
2. 역사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싸운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 신령을 보는 체험을 하고 곳곳에 관왕묘를 세웠다. 명나라는 이 보고를 받고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관왕묘를 지으라는 요청을 하였다. 이에 1599년 공사를 시작하여 1601년(선조 34년) 동대문 밖에 동관왕묘를 완공하였다. 명나라 신종은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 자금을 지원하였다.
동관왕묘의 벽은 돌과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고 면적은 9315m2이다. 중심 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붙어 있는 형태인데, 이는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지붕은 높은 '정(丁)' 자 모양과 '일(一)'자 모양이 합쳐진 '공(工)'자 모양이다. 실내는 앞뒤로 나뉘어 있는데,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 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이다.
남대문 밖에 동묘보다 먼저 생긴 남관왕묘가 있었으며, 고종 때에는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를 지었다. 1908년(융희 2년) 향사이정령 등으로 제사를 폐지하고 동관왕묘는 지방 관청으로 이관했다. 남관왕묘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는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인근에 수도권 전철 1호선·6호선 동묘앞역이 있다. 2011년 10월 동묘의 금동 관우상 뒤편 일월오악도 뒤에서 운룡도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운룡도는 조사를 받고 원래대로 일월오악도로 가려졌다.
2.1. 건립 배경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싸운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의 신령을 보는 체험을 하고 곳곳에 관왕묘를 세웠다. 이 보고를 받은 명나라는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관왕묘를 지으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에 동대문 밖에 1599년 공사를 시작하여 1601년(선조 34년) 동관왕묘를 완공하였다. 명나라 신종은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 자금을 지원하였다.
2.2. 조선 시대의 관왕묘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싸운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의 신령을 보는 체험을 하고 곳곳에 관왕묘를 세웠다. 이 보고를 받은 명나라는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관왕묘를 지으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에 동대문 밖에 1599년 공사를 시작하여 1601년(선조 34년) 동관왕묘를 완공하였다. 명나라 신종이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 자금을 지원하였다.
벽은 돌과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고 면적은 9315m2이다. 동관왕묘의 중심 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붙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지붕은 높은 '정(丁)' 자 모양과 '일(一)'자 모양이 합쳐진 '공(工)'자 모양이다. 실내 공간도 앞뒤로 나뉘어 있는데,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 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이다. 전실과 본실을 감싼 벽돌의 바깥에는 다시 기둥을 두어 처마를 받치고 있다. 관왕묘는 서울의 동서남북에 모두 지어졌는데 그 중 동관왕묘가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넓은 벽돌벽과 독특한 지붕 모양, 조각상, 실내의 구성과 장식 등에서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는 17세기 제사 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남대문 밖에는 동묘보다 먼저 생긴 남관왕묘가 있었으며, 고종 때에는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를 지었다. 남관왕묘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는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 1908년(융희 2년) 향사이정령 등으로 제사를 폐지하고 동관왕묘는 지방 관청으로 이관했다.
2.3. 일제강점기와 현대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1년(선조 34년)에 명나라의 지원을 받아 동관왕묘가 완공되었다. 과거 남묘, 북묘, 서묘, 중묘도 존재했지만, 남묘는 한국 전쟁 때 파괴된 후 동작구로 이전되었고, 나머지 3개는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에 파괴되어 현재는 동묘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1963년 1월 21일, 동관왕묘는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최근에는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3. 건축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싸운 명나라 군인들은 관우의 신령을 보는 체험을 하고 곳곳에 관왕묘를 세웠다. 명나라는 이 보고를 받고,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관왕묘를 지으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1599년 동대문 밖에 공사를 시작하여 1601년 동관왕묘를 완공하였다. 신종은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 자금을 지원하였다.
3.1. 구조
동관왕묘의 벽은 돌과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9315m2이다. 중심 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붙어 있는 구조인데, 이는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지붕은 높은 '정(丁)' 자 모양과 '일(一)'자 모양이 합쳐진 '공(工)'자 모양이다. 실내 공간도 앞뒤로 나뉘어 있는데,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 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이다. 전실과 본실을 감싼 벽돌 바깥에는 다시 기둥을 두어 처마를 받치고 있다. 서울의 동서남북에는 모두 관왕묘가 지어졌는데, 그 중 동관왕묘가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넓은 벽돌벽과 독특한 지붕 모양, 조각상, 실내 구성 및 장식 등에서 중국풍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17세기 제사 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3.2.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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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조선 땅에서 싸운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의 신령을 보는 체험을 하고 곳곳에 관왕묘를 세웠다.
명나라의 보고를 받은 신종은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관왕묘를 지으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에 동대문 밖에 1599년 공사를 시작하여 1601년(선조 34년) 동관왕묘를 완공하였다. 신종은 친필 현판과 함께 건축자금을 지원하였다.
동관왕묘의 벽은 돌과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고 9315m2이다. 중심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붙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지붕은 높은 '정(丁)' 자 모양과 '일(一)'자 모양이 합쳐진 '공(工)'자 모양이다. 실내 공간도 앞뒤로 나뉘어 있는데,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이다. 전실과 본실을 감싼 벽돌의 바깥에는 다시 기둥을 두어 처마를 받치고 있다. 서울의 동서남북에 지어진 관왕묘 중 동관왕묘가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넓은 벽돌벽과 독특한 지붕모양, 조각상, 실내의 구성과 장식 등에서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는 17세기 제사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남대문 밖에는 동묘보다 먼저 생긴 남관왕묘가 있었으며, 고종 때에는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를 지었다. 남관왕묘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북관왕묘와 서관왕묘는 조선총독부가 철거했다. 조정에서 관리하던 남관왕묘는 왕실에서도 제사를 지냈으나 1908년(융희 2년) 향사이정령 등으로 제사를 폐지하고 동관왕묘는 지방 관청으로 이관했다.
인근에 수도권 전철 1호선·6호선 동묘앞역이 있다. 2011년 10월 동묘의 금동 관우상 뒤편 일월오악도 뒤에서 운룡도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운룡도는 조사를 받고 원래대로 일월오악도로 가려졌다.
3.3. 특징
동관왕묘의 벽은 돌과 진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9315m2이다. 중심 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앞뒤로 붙어 있는 형태로, 이는 중국의 절이나 사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지붕은 높은 '정(丁)' 자 모양과 '일(一)'자 모양이 합쳐진 '공(工)'자 모양을 하고 있다. 실내 공간은 앞뒤로 나뉘어 있는데, 앞은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는 관우와 부하 장군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이다. 전실과 본실을 감싼 벽돌 바깥에는 기둥을 두어 처마를 받치고 있다. 넓은 벽돌벽과 독특한 지붕 모양, 조각상, 실내 구성 및 장식 등에서 중국풍 건축의 모습을 보여주는 17세기 제사 시설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4. 관련 문화재
* 동관왕묘 소장유물 일괄
* 백자 동묘치성병 명병은 동묘에서 정성을 드릴 때 사용하던 백자 병이다. 2010년 10월 7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312호로 지정되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6.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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