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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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궁어소는 황태자의 거처를 의미하며, 일본에서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장소에 위치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왕태자 또는 왕세자의 거처를 동궁이라 불렀고, 일본 헤이안 시대에는 다이리의 동쪽에 위치한 소양사가 동궁어소로 사용되었다. 아사히토 친왕 시대에는 교토 센토御所 부지에 별도의 동궁어소가 지어졌으며, 이후 교토 고쇼의 오하나고텐이 동궁으로 사용되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다이쇼 천황을 위한 동궁어소가 건설되었으며, 현재는 아카사카 궁전이 동궁어소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에는 아키히토 천황의 거처로 사용되다가 나루히토 천황 즉위 후 아카사카 궁전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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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궁어소 | |
---|---|
기본 정보 | |
![]() | |
명칭 | 선토 어소 |
이전 명칭 | 도구 어소 아카사카 어소 |
용도 | 상황·상황후의 주거 |
이전 용도 | 황태자·황태자비 및 자녀의 주거 천황·황후 및 자녀의 주거 |
설계자 | 다니구치 요시로 |
연면적 | 6117 |
연면적 참고 | 증축 부분 572m2 포함 |
층수 | 지상 2층, 지하 1층 |
엘리베이터 수 | 1 |
착공 | 1959년 (쇼와 34년) 1월 9일 |
준공 | 1960년 (쇼와 35년) 4월 27일 |
우편 번호 | 107-0051 |
위치 | 도쿄도미나토구모토아카사카 2초메 1-8 |
2. 용어
동궁(東宮)은 황궁에서 보아 동쪽에 위치한 궁으로, 동쪽은 오행설에서 봄에 해당하기 때문에 '''춘궁'''(春宮)이라고도 표기하며, 주역에서는 장자를 의미하는 진괘에 해당하므로 황태자의 거처로 여겨졌다. 또한 황태자의 가정기관으로서 율령에서 춘궁방(春宮坊)이 정해져 있었다. 『직원초술해(職原抄述解)』에 따르면 동궁은 어좌소를, 춘궁은 관사를 칭한 것으로, 당나라에 황태자 소속의 좌춘방(左春坊), 우춘방(右春坊)이라는 관청이 있었기에 이를 본떠 춘궁방이라 불렀으나, 후에 혼용되어 황태자 자신을 동궁이라고도 춘궁이라고도 부르게 되었고[5], 거처로서의 동궁은 동궁어소(東宮御所)라고 불리게 되었다.
3. 역사
동궁(東宮)은 황궁에서 보아 동쪽에 위치한 궁이다. 동쪽은 오행설에서 봄에 해당하기 때문에 '춘궁'(春宮)이라고도 표기하며, 주역에서는 장자를 의미하는 진괘에 해당하므로 황태자의 거처로 여겨졌다. 황태자의 가정기관으로서 율령에서 춘궁방(春宮坊)이 정해져 있었다. 거처로서의 동궁은 동궁어소(東宮御所)라고 불렸다.[5]
헤이안 궁에서 동궁 어소는 내리(內裏)인 다이리의 동쪽에 위치했다. 10세기 초에는 다이리 내에 위치한 소양사가 일반적으로 동궁 어소로 사용되었다.[1] 헤이안쿄에서는 원래 내리의 동쪽에 있는 가인(동가원·서가원)이 동궁어소로 사용되었으나, 10세기 초부터 내리 내에 거주하게 되었다.[2] 특히 소양사가 동궁어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2]
아사히토 친왕(후의 히가시야마 천황)은 1683년에 황태자가 되었고, 1686년부터는 교토 교엔 내 교토 센토 어소 부지에 황태자 궁인 동궁어소를 황궁과는 별도로 설치하여 사용했다.[1] 이후에는 교토 고쇼 내의 오하나고텐(御花御殿)이 동궁어전으로 사용되었다. 안세이 연간에 조성된 교토 고쇼에는 황태자 어전으로 오하나고텐과 오신켄이 현존하며, 메이지 천황이 황태자 시절에 즉위하기까지 일상생활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6]
메이지 시대에는 다이쇼 천황의 동궁어소로 구 기슈 도쿠가와가 부지에 아카사카 이궁(현 영빈관)이 건설되었다. 1899년(메이지 32년)에 착공하여 1909년(메이지 42년)에 완공되었으며, 가타야마 도쿠마가 설계한 일본 최초의 궁전 건축이자 유일한 네오 바로크 건축 양식이다. 2009년(헤이세이 21년) 12월 8일, '''구 도궁 어소(영빈관 아카사카 이궁)'''로서 메이지 시대 이후 문화재 중 최초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쇼와 천황은 다카나와 영빈관을 동궁어소로 사용하다가 결혼 후 아카사카 이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키히토는 메이지 궁전 황자 어전, 고가네이시 동궁 어가우소, 시부야구의 도키와마쓰 어용저(구 히가시후시미노미야 저택) 등을 동궁 가어소로 사용했다.
3. 1. 한국
한국사에서 동궁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 왕세자의 거처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3. 2. 일본
동궁(東宮)은 황궁에서 보아 동쪽에 위치한 궁으로, 동쪽은 오행설에서 봄에 해당하기 때문에 '춘궁'(春宮)이라고도 표기하며, 주역에서는 장자를 의미하는 진괘에 해당하므로 황태자의 거처로 여겨졌다. 또한 황태자의 가정기관으로서 율령에서 춘궁방(春宮坊)이 정해져 있었다. 『직원초술해(職原抄述解)』에 따르면 동궁은 어좌소를, 춘궁은 관사를 칭한 것으로, 당나라에 황태자 소속의 좌춘방(左春坊), 우춘방(右春坊)이라는 관청이 있었기에 이를 본떠 춘궁방이라 불렀으나, 후에 혼용되어 황태자 자신을 동궁이라고도 춘궁이라고도 부르게 되었고[5], 거처로서의 동궁은 동궁어소(東宮御所)라고 불리게 되었다.
동궁어소는 옛날에는 내리 안의 소양사(이호)(昭陽舍(梨壺))를 사용했으나, 가마쿠라 시대 이후에는 소어소에서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도쿄 천도 후에는 천황의 어소와는 다른 장소에 동궁어소가 사용되게 되었다. 원래는 어료지 등과 함께 황실 재산이었던 동궁어소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과 일본국 헌법의 시행 후에는 일본국 정부의 소유로 넘어가, "국유 재산인 황실용 재산"으로서 황실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2019년 5월 1일 천황 즉위 전 당시 황태자 나루히토가 거주했던 궁전은 동궁어소[1]라고 불렸으나, 나루히토가 천황이 되면서 아카사카 궁전|아카사카 어소일본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천황은 2021년 9월 황거의 후키아게 궁전으로 옮겨갈 때까지 이 궁전을 주 거처로 사용했다.[2] 아키히토 역시 히로히토가 사망했을 때 이 궁전에서 거주했으며, 1989년 즉위부터 1993년 12월 후키아게 궁전으로 옮겨갈 때까지 아카사카 궁전이라고 불렸다. 아카사카 궁전은 모토아카사카의 아카사카 영지에 위치해 있으며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3. 2. 1. 헤이안 시대
헤이안 궁에서 동궁 어소는 내리(內裏)인 다이리의 동쪽에 위치했다. 10세기 초에는 다이리 내에 위치한 소양사가 일반적으로 동궁 어소로 사용되게 되었다.[1] 헤이안쿄에서는 원래 내리의 동쪽에 있는 가인(동가원·서가원)이 동궁어소로 사용되었으나, 10세기 초부터 내리 내에 거주하게 되었다.[2] 특히 소양사가 동궁어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2]
3. 2. 2. 아사히토 친왕 동궁어소
아사히토 친왕(후의 히가시야마 천황)은 1683년에 황태자가 되었고, 1686년부터는 교토 교엔 내 교토 센토 어소 부지에 황태자 궁인 동궁어소를 황궁과는 별도로 설치하여 사용했다.[1]
3. 2. 3. 교토 고쇼 오하나고텐
이후에는 교토 고쇼 내의 오하나고텐(御花御殿)이 동궁어전으로 사용되었다. 안세이 연간에 조성된 교토 고쇼에는 황태자 어전으로 오하나고텐과 오신켄이 현존하며, 메이지 천황이 황태자 시절에 즉위하기까지 일상생활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6] 동궁의 의식은 코고쇼 등에서 행해졌으며, 소요샤 대라고 불렸다.
3. 2. 4. 메이지 시대 이후
메이지 시대에는 다이쇼 천황의 동궁어소로 구 기슈 도쿠가와가 부지에 아카사카 이궁(현 영빈관)이 건설되었다. 1899년(메이지 32년)에 착공하여 1909년(메이지 42년)에 완공되었으며, 가타야마 도쿠마가 설계한 일본 최초의 궁전 건축이자 유일한 네오 바로크 건축 양식이다. 2009년(헤이세이 21년) 12월 8일, '''구 도궁 어소(영빈관 아카사카 이궁)'''로서 메이지 시대 이후 문화재 중 최초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쇼와 천황은 다카나와 영빈관을 동궁어소로 사용하다가 결혼 후 아카사카 이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아키히토는 메이지 궁전 황자 어전, 고가네이시 동궁 어가우소, 시부야구의 도키와마쓰 어용저(구 히가시후시미노미야 저택) 등을 동궁 가어소로 사용했다.
4. 현대의 동궁어소
1960년 데이메이 황후의 오미야고쇼 부지에 아카사카 동궁어소가 건설되어 황태자 아키히토 친왕과 미치코 비의 거처로 사용되었다.[1] 총 공사비는 2.23억엔이었다. 타니구치 요시로가 설계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1978년에 1차 증축 공사가 진행되었다.
1989년 쇼와 천황이 사망하고 아키히토가 즉위하면서 "고쇼"(''아카사카 고쇼'')로 개칭되었다.[2] 1993년 후키아게 정원 내에 신축된 고쇼로 아키히토 천황 부부와 노리노미야 사야코 내친왕이 이주한 후에는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이 거주하면서 다시 동궁어소가 되었다.
1994년에는 마사코 황후의 입주를 위해 일본식 정원이 조성되었다. 1997년에는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 배리어 프리 디자인, 내진 보강 등 추가적인 개축 공사가 이루어졌다. 2001년에는 마사코 황후의 임신에 맞춰 어린이 놀이 공간 공사가 진행되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1년 동안 대규모 개축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황태자는 부지 내에 있는 아카사카 동궁(赤坂東邸)으로 임시 거처를 옮겼다. 건물 옥상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었고, LED 조명이 도입되었다.
이 궁궐은 72개의 방(접견실 12개, 사무실 38개, 거실 22개)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상 2층과 지하 1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어좌소동과 사무동으로 나뉜다. 어좌소는 닛게츠노마(일월의 방)・히노키노마(히노키 방)・츠루토메(학 연못)・모미지노마(단풍 방)・쿠로가키노마(흑단 방)・쿠로바야시노마(흑림의 방)・시오지노마(소금지 방) 등이 있다.
황실전범특례법에 의거하여, 2019년 아키히토가 퇴위하고 나루히토가 즉위하면서 황태자가 공석이 되었다. 이에 따라 '동궁어소'는 황사가 된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이 즉위할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실질적인 동궁어소의 기능은 황사가 된 후미히토 친왕, 황사비 키코 비, 차녀 카코 내친왕, 장남 히사히토 친왕의 저택인 아키시노미야 저택(증개축 공사 중)과 아카사카 동저택을 일체화하여 담당하게 한다.
2019년 나루히토가 천황으로 즉위하면서 아카사카 궁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2021년 나루히토 천황 가족이 황거로 이주함에 따라, 상황 아키히토와 상황후 미치코의 선동어소로 사용하기 위한 공사가 이루어졌다. 사적 공간에는 엘리베이터 1대와 손잡이, 슬로프가 신설되었으며, 상황 아키히토의 어류 연구를 위한 방도 마련되었다. 총 공사비는 6.4억엔이다. 2022년 상황 부부는 개수 공사를 마친 선동어소로 옮겨갔다.
5. 아카사카 궁전 (현 아카사카 어소)
1960년에 완공된 아카사카 궁전은 도쿄도 미나토구 모토아카사카의 아카사카 영지에 있으며, 일반인의 접근은 제한된다.[1] 타니구치 요시로가 설계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로, 여러 차례 개축 및 증축 공사가 이루어졌다.[2]
공사 연도 | 내용 |
---|---|
1978년 9월 | 황자녀의 성장에 따라 2.2억엔을 들여 증축. 사적동 동쪽에 평집 일부 2층 건물을 건설하여 황자실, 진강실, 화실, 직원실, 창고 등을 새로 설치. |
1993년 5월 ~ 1994년 7월 | 황태자 나루히토 친왕과 마사코 황후의 결혼에 따라 3.08억엔을 들여 일본 정원 건설 및 서양식 내부 장식 공사 실시. |
1997년 | 5.8억엔을 들여 배리어 프리화, 공실동 개수(내진 보강 공사, 휠체어용 리프트 설치 등)를 위한 개축 공사 진행. |
2001년 8월 | 마사코 황후의 임신에 맞춰 약 3000만엔을 들여 어린이 방 관련 개수 공사 진행. 노리노미야 사야코 내친왕(현: 구로다 사야코)의 전 거실을 내열성 코르크 타일로 바꾸고, 벽에는 리놀륨을 사용했으며, 천장과 벽 모두 크림색으로 칠함. 방을 나누어 간호사 대기실을 새로 설치하고 공조도 교체. |
2008년 ~ 2009년 | 1년간 10억엔을 들여 대규모 개축 공사 진행. 황태자 일가는 부지 내 아카사카 동궁으로 임시 거처를 옮김.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용 솔러 패널을 설치하고, 변소에는 LED 조명을 설치하는 등 생태주의를 고려한 개축도 이루어짐. |
궁궐은 72개의 방(접견실 12개, 사무실 38개, 거실 22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상 2층과 지하 1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5년 자료에 따르면, 어좌소동과 사무동으로 나뉘며, 어좌소는 닛게츠노마(일월의 방), 히노키노마(히노키 방), 츠루토메(학 연못), 모미지노마(단풍 방), 쿠로가키노마(흑단 방), 쿠로바야시노마(흑림의 방), 시오지노마(소금지 방) 등을 포함한다. 또한 표공실(대소 접견실, 진강실, 리셉션용 대식당, 사무실, 서고 등)과 안채(담화실, 거실, 식당, 비용 주방, 예비실, 응접실, 침실, 탈의실, 화장실, 지하 주방)로 나뉜다. 사무동은 1층에 호위실, 전지실, 응접실, 사무 주관실, 사무 숙직실, 사무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시의실, 토구 다이후실, 시종장실, 시종 침실, 시종실, 응접실, 여관실, 여관장실, 여관 침실 등이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Crown Prince's Residence – The Imperial Household Agency
http://www.kunaicho.[...]
[2]
웹사이트
新たな皇室のお住まいは
https://www3.nhk.or.[...]
[3]
위키소스
平成六年宮内庁告示第八号を廃止する件
[4]
간행물
天皇皇后両陛下の御在所が定められた件
내각
2019-05-01
[5]
서적
官職要解
1902
[6]
웹사이트
京都御所 栞 御花御殿
https://www.kunaicho[...]
宮内庁
2024-01-18
[7]
웹사이트
동궁어소 등
http://www.kunaicho.[...]
2012-12-16
[8]
문서
다이쇼 천황이 쓰던 동궁은 천황 즉위 후 별궁이 되었다가, 지금은 황실 영빈관으로 쓰이고 있다.
[9]
문서
다카나와 동궁어소의 정문은 우에노에 있는 도쿄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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