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야마 도쿠마
1. 개요
가타야마 도쿠마는 조슈 번 출신의 일본 건축가로,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에 걸쳐 활약했다. 1879년 공부대학교를 졸업하고 공부성에서 근무했으며, 아리스가와노미야 저택 건축을 위해 유럽을 시찰하기도 했다. 그는 궁내성 내장료에 소속되어 동궁어소(현재 영빈관)를 건설하는 등 궁내성에서 건축 관련 업무를 담당했으며, 그의 작품 중 다수는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신주쿠교엔 어휴소, 나라 국립박물관, 교토 국립박물관, 진풍각, 도쿄 국립박물관 표경관, 그리고 국보로 지정된 옛 동궁어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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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가타야마 도쿠마 |
|---|---|
| 원어 이름 | 片山東熊 |
| 출생일 | 1854년 1월 18일 (음력 가에이 6년 12월 20일) |
| 출생지 | 나가토국 하기 (현 야마구치현 하기시) |
| 사망일 | 1917년 10월 24일 |
| 묘지 | 아오야마 영원 |
| 국적 | 일본 |
| 출신 대학 | 공부대학교 |
|---|---|
| 소속 | 궁내성 |
| 직업 | 건축가 |
| 주요 디자인 | 역사주의 건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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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 건축물 | 아카사카 별궁 (영빈관) 도쿄국립박물관 표경관 교토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박물관 |
|---|---|
| 중요 프로젝트 | 해당사항 없음 |
| 수상 | 훈1등 욱일대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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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번 기병대원 -
야마가타 아리토모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조슈번 출신의 사무라이 아들로, 일본 육군의 창설과 근대화에 기여하고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지휘했으며, 군국주의적 가치 강조와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을 추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
조슈번 기병대원 -
다카스기 신사쿠
다카스기 신사쿠는 일본 장주 번의 무사이자 메이지 유신의 주요 인물로서, 존왕양이 운동에 참여하고 기병대를 창설하여 막부 타도에 기여했으며 일본 근대화에 영향을 미쳤다. -
보신 전쟁 관련자 -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메이지 시대부터 다이쇼 시대까지 활동한 일본의 군인이자 정치가로서 육군대신, 한국통감,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한국 병합을 주도하고 무단통치를 실시했으며, 시베리아 출병 등 외교 정책을 펼친 일본 제국주의 핵심 인물이다. -
보신 전쟁 관련자 -
소네 아라스케
소네 아라스케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대한제국 통감으로서 한국 병합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한국의 국권 침탈이라는 비판적 평가를 받는다. -
훈6등 서보장 수훈자 -
사이토 마코토
사이토 마코토는 일본 제국의 해군 군인이자 정치가로, 해군대신,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 등을 역임하며 해군력 확장, 문화 통치 추진, 만주국 승인, 국제연맹 탈퇴 등의 행적을 남겼으나 2·26 사건으로 암살당했다. -
훈6등 서보장 수훈자 -
가노 지고로
가노 지고로는 일본의 교육자이자 문부관료이며 유도의 창시자로서, 유도를 세계적으로 보급하고 국제 스포츠계 및 일본 교육계에 큰 공헌을 했다.
2. 약력
* 1854년(안세이 원년) 하기의 조슈 번사(藩士) 가문에서 태어났다.
* 1865년(게이오 원년) 기병대에 입대하여 보신 전쟁(戊辰戦争)에 참전하였다.
* 1879년(메이지 12년) 공부대학교를 졸업하고(동기생으로 다쓰노 긴고(辰野金吾), 소네 다쓰조(曽禰達蔵)가 있었다), 공부성(工部省)에서 근무하였다.
* 1882년(메이지 15년) 아리스가와 저택을 건축하기 위해서 아리스가와노미야 다루히토 친왕(有栖川宮熾仁親王)과 함께 유럽을 시찰하였다.
* 1886년(메이지 19년) 황거어조영국(皇居御造営局)에서 메이지 궁전 건설과 관련하여 다음 해까지 독일로 출장을 갔다.
* 1889년(메이지 22년) 건축을 담당하는 궁내성의 내장료(内匠寮)에 소속되었다.
* 1897년(메이지 30년) 동궁어소 건설을 위해 다음 해까지 유럽과 미국을 시찰하였다.
* 1899년(메이지 32년) 동궁어소를 착공하였다.
* 1909년(메이지 42년) 동궁어소를 준공하였다.
* 1912년(다이쇼 원년) 메이지 천황의 장제장(葬祭場) 건설에 참여하였다.
* 1916년(다이쇼 5년) 훈일등 욱일대수장(勲一等旭日大綬章)에 서훈되었다.
* 1917년(다이쇼 6년) 10월 23일, 병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65세.
3. 주요 작품 및 건축적 특징
가타야마 도쿠마의 현존하는 작품 대부분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옛 동궁어소(현재 영빈관)는 메이지 시대의 서양식 건축의 도달점으로 평가되어 메이지 이후 건축물로는 처음으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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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대표적인 건축물
현존하는 가타야마의 작품 대부분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옛 동궁어소(현재 영빈관)는 메이지 시대의 서양식 건축의 도달점으로 평가되어 메이지 이후의 건축으로서는 첫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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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조선 말기 대원군의 사저 운현궁 내에 있는 양관(1907년)도 가타야마 도쿠마의 설계라고 하지만, 확증은 없다고도 한다。
4. 일화
* 메이지 천황에게 동궁어소가 너무 사치스럽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병치레를 했다고 한다.
*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고지마치구 5번가에 자택을 신축할 때, 가타야마가 재적하던 공학대학교 조가학과 제1기생 4명(다쓰노 긴고, 가타야마 도쿠마, 소네 다쓰조, 사다테 시치지로)이 학생 콩쿠르를 실시하여 가타야마의 안이 채택되었고, 가타야마의 처녀작으로 목조 가옥이 건설되었다. 야마가타의 후원으로 가타야마는 담당 교수인 조지아 콘도르에게 의지하지 않고 궁내성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 '천황의 요리사'로 유명한 아키야마 도쿠조는 궁내성(전후에는 궁내청) 대선료에 채용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무렵, 가타야마를 호통친 적이 있다. 어느 날 부엌 뒷문으로 훌륭한 풍채의 남성과 수행원 등 4, 5명이 신발을 신은 채 들어왔고, 아키야마는 격노하여 '바보 녀석', '멍청이 녀석'이라고 호통쳤다. 나중에 호통친 상대가 가타야마임을 알게 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후 정식 입구에서 백의를 입고 실내화 슬리퍼를 신은 가타야마 일행이 들어왔고, 아키야마는 상사인 후쿠바 이츠토에게 불려가 주의를 들었다.
5.1. 위계
* 1887년 (메이지 20년) 1월 8일 - 정7위
* 1903년 (메이지 36년) 9월 30일 - 종4위
* 1908년 (메이지 41년) 10월 10일 - 정4위
* 1917년 (다이쇼 6년) 10월 23일 - 정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