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지 테타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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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디오니지 테타만치(Dionigi Tettamanzi)는 193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로마 가톨릭교회의 추기경이다. 그는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57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밀라노 대교구에서 사목 활동과 신학교 교수로 봉직했다. 1989년 안코나-오시모 대주교, 1995년 제노바 대교구장을 거쳐 1998년 추기경에 서임되었으며, 2002년 밀라노 대교구장을 역임했다. 테타만치는 생명 윤리, 이혼 후 재혼 신자 문제, 이민자 문제 등 사회적 현안에 대해 활발히 발언했으며, 2005년 교황 선출 과정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디오니지 테타만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직함추기경, 밀라노 대교구 명예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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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테타만치
로마자 표기Dionigi Tettamanzi
출생일1934년 3월 14일
출생지렌나테, 이탈리아 왕국
선종일2017년 8월 5일 (83세)
선종지트리우조, 이탈리아
국적이탈리아
종교로마 가톨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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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Gaudium et pax"
(기쁨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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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서품
서품일1957년 6월 28일
서품자조반니 바티스타 엔리코 안토니오 마리아 몬티니 (훗날의 교황 바오로 6세)
주교 서임
서임일1989년 9월 23일
서임자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 서임
서임일1998년 2월 21일
서임자요한 바오로 2세
직위추기경-사제
명의본당산티 암브로조 에 카를로
주요 보직
이전 보직비제바노 교구장 대리 (2012–2013)
제노바 대주교 (1995–2004)
안코나-오시모 대주교 (1989–1991)
임명일 (밀라노 대교구장)2004년 7월 11일
착좌일 (밀라노 대교구장)2004년 9월 14일
임기 종료 (밀라노 대교구장)2011년 6월 28일
이전 대교구장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이후 대교구장안젤로 스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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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젊은 시절

테타만치는 1934년 3월 14일 이탈리아 밀라노현 레나테에서 태어났다. 세베소의 소신학교와 베네고노인페리오레의 신학교를 다닌 그는 로마의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방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1957년 6월 28일 훗날 교황 바오로 6세가 되는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 대주교에 의해 사제 서품을 받았다. 밀라노 가톨릭 대교구에서 사목 활동과 마스나고와 세베소 신학교에서 교수직(1960 - 1966)을 수행했다. 1966년부터 1986년까지는 베네고노 신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했다.

3. 주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9년 7월 1일 테타만치를 안코나-오시모 대교구 대주교로 임명했다. 테타만치는 같은 해 9월 23일 밀라노 대성당에서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에게 주교 서품을 받았다. 1991년 4월 6일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이탈리아 주교회의 사무처장으로 5년간 봉직했다.

1995년 4월 20일, 요한 바오로 2세는 테타만치를 제노바 대교구 대교구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초안 작성에 도움을 주었다. 1998년 2월 21일 추기경회의에서 산 카를로 알 코르소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서임되었으며, 2002년 7월 11일, 마르티니 추기경의 뒤를 이어 밀라노 대교구 대교구장에 임명되었다.

3.1. 교황 선출 관련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후, 테타만치는 유력한 교황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었으나, 콘클라베에서 많은 표를 얻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탈리아어만 구사할 수 있었고, 이탈리아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테타만치는 2013년 교황 선거에서 추기경 선거인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4. 신학 및 사회적 견해

Dionigi Tettamanzi라틴어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존중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변화에 대해 교회가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혼 후 재혼한 신자 문제, 이민자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으며, 특히 정치와의 관계에서 교회가 중도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1. 이혼 후 재혼 신자 문제

디오니지 테타만치는 이혼 후 재혼한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와 멀어지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2008년, 그는 이혼 후 재혼한 신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교회는 여러분을 잊거나 거부하지 않았으며, 여러분을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회, 그리고 저에게, 주교로서, 여러분은 제가 사랑하는 형제자매입니다."라고 강조하며, 이들이 신앙생활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격려했다.

테타만치는 이들의 관계가 책임감과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성찬례 참여를 규제하는 규범이 이들을 신앙에서 배제하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14년에는 상처 입은 가족을 위한 자비의 복음을 출판하여,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이혼 후 재혼 신자들에게 성찬을 허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4.2. 이민자 문제

테타만치는 2008년 성 암브로시오 기념 연설에서 무슬림들이 가톨릭 국가에서 모스크를 지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성 암브로시오 기념 연설에서는 이탈리아로 이민 온 사람들을 범죄자로 분류하려는 시도에 맞서 그들을 옹호했다.

4.3. 정치와의 관계

2006년, 이탈리아 가톨릭교회 회의에서 테타만치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과 맺어온 동맹 관계에 대해 보다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이탈리아 주교 회의 의장이었던 카밀로 루이니 추기경이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지지했던 것과는 다른 입장이었다. 테타만치는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말하면서 그렇지 않은 것보다 낫다"라고 말했다. 즉, 특정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발언은 가톨릭 교회가 정치권과의 관계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하며, 보다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5. 말년

2011년 6월 28일, 테타만치는 사제 서품 54주년을 맞아 밀라노 대교구장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트리우지오에 있는 밀라노 대교구의 피정소인 Villa Sacro Cuore이탈리아어에서 생활했다. 2012년 7월, 비제바노 교구의 교황 대리로 임명되어 1년 동안 봉사했다.

2013년 교황 선거에서는 추기경 선거인단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2017년 8월 5일, 오랜 투병 끝에 83세를 일기로 선종하였다. 테타만치 추기경은 밀라노 대성당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