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몬 데 카르도나
1. 개요
라몬 데 카르도나는 카탈루냐 출신의 귀족이자 군인으로, 소마 공작 작위를 받았으며, 아라곤 연합왕국에서 강력한 가문 중 하나인 카르도나 가문 출신이다. 그는 해군 제독으로 활동하며 이탈리아 전쟁에 참전했고, 1507년부터 1509년까지 시칠리아 부왕, 1509년부터 1522년 사망할 때까지 나폴리 부왕을 역임했다. 1511년에는 캉브레 동맹 전쟁에서 총지휘관을 맡아 라벤나 전투에서 패배했으나, 이후 롬바르디아 전역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알비토 백작 작위를 받았으며, 나폴리 왕국의 최고 제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522년 나폴리에서 사망했으며,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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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부왕 -
우고 데 몽카다
우고 데 몽카다는 몬카다의 영주이자 몰타 기사단 기사였으며, 프랑스와 아라곤 왕국, 신성 로마 제국 등에서 군사, 외교 활동을 했고, 나폴리 부왕으로 임명되었으나 나폴리 공방전에서 사망했다. -
나폴리 부왕 -
필리베르 드 샬롱
필리베르 드 샬롱은 16세기 인물로, 샬롱-아를레의 장 4세의 아들이자 이탈리아 사령관이었으며, 코냑 동맹 전쟁과 로마 약탈에 참여하고 피렌체 공방전에서 사망했으며, 고대 이브레아 가문의 마지막 적통 남성 후손이었다. -
나폴리 부왕 -
제3대 알바 공작 페르난도 알바레스 데 톨레도
페르난도 알바레스 데 톨레도는 16세기 스페인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스페인 국왕의 최고 재무관, 밀라노 총독, 네덜란드 총독 등을 역임하며 오스만 제국, 프랑스, 신성 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활약했고, 특히 네덜란드 총독 재임 시절에는 종교적 반군을 가혹하게 진압하여 "피의 공작"이라는 악명을 얻었다. -
1522년 사망 -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는 스페인의 인문주의 학자, 문법학자, 철자법 연구가, 사전 편찬가로서, 《카스티야어 문법》을 출판하여 스페인어 발전에 기여하고 라틴-스페인어 사전과 스페인어-라틴어 어휘집을 편찬했으며 성경 연구에도 몰두했다. -
1522년 사망 -
효혜황후 (명나라)
효혜황후는 명나라 성화제의 후궁으로, 서예와 문학 실력으로 총애를 받았으며, 가정제의 생부인 흥왕 주우원 등을 낳았고, 사후 효혜강숙온인의순협천우성황후로 추존되었다.
2. 초기 생애 및 가문
라몬 데 카르도나는 1467년 카탈루냐 벨푸치에서 카르도나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안토니 데 카르도나안젤솔라 이 켄테예스이며, 어머니는 카스테야나 데 레케센스이다. 그는 벨푸치 남작, 리뇰라 남작, 우치파파 남작 작위를 세습받았다. 카르도나 가문은 아라곤 연합왕국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 중 하나였다.
3. 초기 군사 경력
1502년 12월 12일 소마 공작 작위를 받았다. 1505년 해군 제독으로서 메르스엘케비르 점령전에 참여했다. 3차 이탈리아 전쟁에 참전하여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에 병력을 지원했고, 칼라브리아 해안에서 소규모 갤리선 함대로 프랑스 캐랙과 교전하여 스페인 통제 지역에서 몰아냈다.
4. 나폴리 및 시칠리아 부왕
아라곤의 왕 페란도 2세는 1509년에 라몬 데 카르도나를 나폴리 부왕으로 임명했다. 그는 1507년부터 1509년까지 시칠리아 부왕직을 맡았었고, 1522년 나폴리에서 사망할 때까지 부왕직을 유지했다. 1510년, 나폴리에 종교 재판을 도입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이는 민중 봉기를 야기했고, 결국 스페인 왕은 이 칙령을 취소해야 했다.
5.1. 라벤나 전투 (1512)
1512년 4월, 라몬 데 카르도나는 라벤나 전투에서 느무르 공작 가스통 드 푸아에게 패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유능한 지휘관이었던 드 푸아가 사망하면서, 이후 프랑스군의 상황은 악화되어 로마냐와 밀라노에서 퇴각하였다.
5.2. 피렌체 공화국 공격 (1512)
1512년 8월, 라몬 데 카르도나는 신성 동맹 간의 만토바 회의 결의에 따라 스페인 군을 이끌고 토스카나를 침공했다. 이 침공의 목적은 스페인이 지지하던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 통치권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카르도나의 군대는 피렌체에서 약 16km 떨어진 프라토를 함락시키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프라토 함락 소식에 피렌체 수상과 정부 관료들은 망명길에 올랐고, 메디치 가문은 1494년 추방 이후 18년 만에 피렌체 통치권을 되찾았다.
5.3. 롬바르디아 전역 (1513)
1513년, 라몬 데 카르도나는 군대를 이끌고 롬바르디아로 돌아와 라 모타 전투에서 바르톨로메오 달비아노가 이끄는 베네치아 공화국 군대를 격파했다. 그러나 마리냐노 전투에서 베네치아군이 프랑스군과 합류하는 것은 막지 못했다.
6. 후기 생애
1513년 2월, 교황 율리오 2세가 사망하고 프랑수아 1세가 이탈리아에 도착하자, 카르도나는 스페인으로 소환되었다. 1515년, 알비토 백작 작위를 받았다. 1519년, 카를 5세는 그를 나폴리 왕국의 최고 제독으로 임명하였다.
1522년 나폴리에서 사망했다. 조반니 다 놀라가 제작한 벨푸치에 있는 그의 무덤은 그 지역 르네상스 예술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7. 자녀
* 페르난도 폴크 데 카르도나 - 제2대 소마 공작, 제3대 올리베토 백작 및 다른 작위들과 시칠리아 부왕을 역임했으며, 1571년 9월 13일에 사망했다.
* 카테리나 데 카르도나 이 레케센스 (Caterina de Cardona y Requesens, 1577년 사망) - 나폴리의 페란테 1세와 디아나 구아르다토 (Diana Guardato)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 제1대 몬탈토 공작 페란테 다라고나와 혼인했다. 그들의 후손들은 스페인의 대귀족이자 파테르노의 시칠리아 공작 “몽카다 가문” (Moncada) 가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