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알베르토 라스티리
1. 개요
라울 알베르토 라스티리는 아르헨티나의 정치인이다. 그는 1973년 10월 12일 후안 페론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었으며, 호세 로페스 레가와의 연관으로 정치 경력이 몰락했다. 1976년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가택 연금되었고, 1978년에 사망했다. 라스티리는 1973년 스페인 이사벨라 더 카톨릭 훈장 대십자장, 1974년 체코슬로바키아 백사자 훈장 2등급을 받았다.
| 이름 | 라울 알베르토 라스티리 |
|---|---|
| 원어 이름 | Raúl Alberto Lastiri |
| 국적 | 아르헨티나 |
| 출생 | 1915년 9월 11일 |
| 출생지 | 파르케 파트리시오스,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
| 사망 | 1978년 12월 11일 (향년 63세) |
| 사망지 |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
| 배우자 | 아멜리아 콘셉시온 마르티노(1943년 결혼, 1971년 이혼) 노르마 베아트리스 로페스 레가(1972년 결혼) |
| 정당 | 정의당 |
| 직책 | 아르헨티나 대통령 |
|---|---|
| 대통령 순서 | 39대 |
| 대통령 임기 | 임시 |
| 임기 시작 | 1973년 7월 13일 |
| 임기 종료 | 1973년 10월 11일 |
| 이전 대통령 | 엑토르 호세 캄포라 |
| 다음 대통령 | 후안 도밍고 페론 |
| 직책2 | 하원 의장 |
| 임기 시작2 | 1973년 5월 3일 |
| 임기 종료2 | 1975년 7월 7일 |
| 이전 의장 | 아르투로 모르 로이그 |
| 다음 의장 | 니카시오 산체스 토란소 |
| 직책3 | 국가 하원 의원 |
| 임기 시작3 | 1973년 5월 25일 |
| 임기 종료3 | 1976년 3월 24일 |
| 지역구3 | 부에노스 아이레스 |
| 직업 | 알 수 없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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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정치인 -
에바 페론
아르헨티나의 배우이자 후안 페론 대통령의 부인인 에바 페론은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대중적 인기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 사업과 여성의 정치적 권리 신장에 기여했으며, 그녀의 삶은 뮤지컬과 영화로 제작되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고 평가가 엇갈리는 논쟁적인 인물이다. -
아르헨티나의 정치인 -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의 정치인 카를로스 메넴은 라 리오하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을 역임하며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나, 사회적 불평등 심화, 부정부패 논란, 테러 사건 미흡 대처 등으로 비판받았고, 그의 재임 기간은 논쟁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
후안 도밍고 페론
후안 도밍고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1946년과 1973년 두 차례 대통령을 역임하며 사회 정의와 자립 경제를 추구했으나, 언론 탄압과 쿠데타로 실각하기도 했으며, 그의 사후에도 페론주의는 아르헨티나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의 정치인 카를로스 메넴은 라 리오하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을 역임하며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나, 사회적 불평등 심화, 부정부패 논란, 테러 사건 미흡 대처 등으로 비판받았고, 그의 재임 기간은 논쟁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
1915년 출생 -
안수산
안수산은 안창호와 이혜련의 장녀이자 미국 해군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장교 및 여성 포술 장교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해군에서 복무하고 종전 후 해군 정보국, 미국 의회도서관, 국가안보국 등에서 근무하며 인종 및 성차별을 극복하고 활약한 인물이다. -
1915년 출생 -
장준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정치인인 장준하는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 후 탈출하여 광복군에서 활동, 해방 후 김구의 비서를 지냈고, 《사상계》를 창간하여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으며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나 의문사했고 그의 삶과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2. 생애
라울 알베르토 라스티리는 9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다. 그의 짧은 대통령 권한 대행 기간은 페론주의 내에서 우익 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장인 호세 로페스 레가는 '트리플 A'를 창설했고, 사회 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외교 정책은 제3세계 지향성을 유지했으며, 쿠바에 차관을 제공하기도 했다. 호세 베르 젤바르드는 경제부 장관으로 재임하며, 국유화 정책을 이어갔다.
그의 대통령 임기 말, 반정부 좌익 폭력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몬토네로스는 CGT 전국노동조합 사무총장 호세 이그나시오 루치를 살해했고, 인민혁명군(ERP)은 부에노스아이레스 파르케 파트리시오스의 육군 의료 부대를 공격했다.
라스티리는 1973년 10월 12일 후안 페론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었다. 호세 로페스 레가와의 연관으로 정치 경력이 몰락했으며, 1976년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가택 연금되었고, 1978년 사망했다. 1980년 발견된 리지오 젤리의 비밀 조직 P2 회원 명단에 라스티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2.1. 가족
라스티리의 아버지 호세 마리아 라스티리는 스페인 북부 나바라 알만도스 출신이며, 어머니 마리아 페라리는 이탈리아 중부 라치오 로마 출신이다. 그는 9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다.
2.2. 권력 장악과 몰락
라스티리의 짧은 대통령 권한 대행 기간은 페론주의 내에서 우익 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그의 장인인 호세 로페스 레가는 '트리플 A'를 창설했고, 사회 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외교 정책은 제3세계 지향성을 유지했으며, 쿠바에 차관을 제공하기도 했다. 호세 베르 젤바르드는 경제부 장관으로 재임하며, 국유화 정책을 이어갔다.
반정부 좌익 폭력은 그의 대통령 임기 말에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몬토네로스는 CGT 전국노동조합 사무총장 호세 이그나시오 루치를 살해했고, 인민혁명군(ERP)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파르케 파트리시오스에 위치한 육군 의료 부대를 공격했다.
라스티리는 1973년 10월 12일 후안 페론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었다. 그는 호세 로페스 레가와의 연관으로 정치 경력이 몰락했다. 1976년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가택 연금되었고, 1978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