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 앨런
1. 개요
레스터 앨런은 1891년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의 배우, 코미디언, 댄서이다. 9세에 서커스 곡예사로 연예계에 입문하여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에서 활동했으며, 이후 민스트럴 쇼, 벌레스크, 보드빌 등 다양한 무대에서 공연했다. 1907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데뷔하여, 1910년대와 1920년대 초에는 댄서와 곡예사로 성공을 거두었다. 1929년 영화에 데뷔한 후, 1941년부터 1950년까지 15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1949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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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남자 연극 배우 -
존 허드
존 허드는 연극 배우로 시작하여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아버지 역으로 유명해졌고, 《소프라노스》로 에미상 후보에 오른 미국의 배우이다. -
미국의 남자 연극 배우 -
에드 윈
에드 윈은 독특한 코미디 스타일로 브로드웨이,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에서 활약하며 큰 인기를 얻은 미국의 배우, 코미디언, 작가, 연출가, 제작가이다. -
미국의 영화 감독 -
웨스 크레이븐
웨스 크레이븐은 미국의 영화 감독, 각본가, 제작자로, 슬래셔 영화 장르에 메타 요소를 도입하여 혁신적인 작품들을 선보였으며, 꿈과 현실의 경계 모호성, 블랙 코미디, 사회 비판적 풍자, 기능 부전 가족과 가족 트라우마라는 어두운 주제를 다루는 특징을 가진다. -
미국의 영화 감독 -
스탠리 큐브릭
스탠리 큐브릭은 1928년 뉴욕에서 태어나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연출하고 뛰어난 시각적 연출과 음악 사용으로 영화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
미국의 남자 영화 배우 -
달머스 라수라라
달머스 라수라라는 흑인 착취 영화와 TV 미니시리즈 《뿌리》에서 활약한 미국의 배우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도 출연했으나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미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존 허드
존 허드는 연극 배우로 시작하여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아버지 역으로 유명해졌고, 《소프라노스》로 에미상 후보에 오른 미국의 배우이다.
2. 생애와 경력
레스터 앨런은 뉴욕주 유티카 출신의 미국인 배우, 코미디언, 댄서, 가수이다. 어린 시절 서커스 곡예사로 연예계에 입문하여 민스트럴 쇼, 벌레스크, 보드빌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했다. 1907년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후, 1910년대와 1920년대에는 주로 댄서와 곡예사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후 코미디 연기로 활동 영역을 넓혀 다수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코미디와 보드빌 무대에 섰다. 1929년부터는 영화계로 진출하여 1930년대 이후 영화 배우로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1949년 노스할리우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1. 어린 시절과 초기 경력
레스터 앨런은 1891년 11월 17일 뉴욕주 유티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러시아 이민자인 라파엘 앨런(1855년 ~ 1923년 10월 21일)과 이다 보빈(1858년 ~ 1948년 2월)이었으며, 가족은 유대인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연예계에 발을 들였는데, 9살 때 집을 나와 서커스 곡예사가 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유명한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에서 활동했다. 서커스를 그만둔 후에는 댄서, 가수, 코미디언, 배우로 활동 영역을 넓혔으며, 처음에는 민스트럴 쇼 무대에 섰고 이후 벌레스크와 보드빌에서 공연했다.
앨런은 1907년 리릭 극장에서 공연된 뮤지컬 미스 포카혼타스에서 신랑 역을 맡으며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이듬해인 1908년에는 보드빌 그룹 로렌스 & 힐리와 함께 순회공연을 하며 뮤지컬 스케치 "Stage Struck Kid"에서 '제이크, 유대인 아이' 역할을 연기했다. 1909년에는 로이 맥카델의 연극 더 게이 라이프에서 올리버 하트퍼드 역으로 달리 극장 무대에 서며 브로드웨이에 복귀했다. 같은 해, 해리 W. 필즈가 이끄는 보드빌 스케치 시리즈 "Napanese"에 참여하여 순회공연을 다녔다. 1911년에는 다양한 유명 인사를 흉내 내는 성대모사 공연으로 순회공연을 했다. 1913년에는 조 오펜하이머의 페이 포스터 컴퍼니 소속으로 보드빌 서킷을 돌며 벌레타 "일본의 양키"와 "에이브"에 출연했다. 1915년에는 벌레스크 단체인 밀리언 달러 돌스와 함께 투어했다.
1910년대와 1920년대 초, 앨런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리뷰에서 뛰어난 댄서이자 곡예사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여러 차례 조지 화이트의 스캔들과 지그펠드 폴리즈 공연에 참여했다. 그의 코미디 재능은 춤과 곡예 실력과 잘 어우러졌는데, 특히 1922년 조지 화이트의 스캔들에서 선보인 아파치 댄스의 코믹한 해석은 큰 호평을 받았다.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는 1919년의 스캔들 리뷰에서 앨런에 대해 "그는 훌륭한 곡예사이고, 예술가처럼 그의 표정을 연기하며, 관객에게서 즉각적인 웃음을 끌어낼 수 있다. 그는 독특하다."라고 평했다. 그는 또한 조지 화이트의 스캔들에서 다른 배우들과 함께 조지 거슈윈의 1막 재즈 오페라 블루 먼데이(1922)의 초연 무대에 섰는데, 이때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고 카페 직원 겸 관리인 샘 역할을 연기했다. 1924년의 스캔들에서는 배우 위니 라이트너와 함께 당시 인기 코미디였던 에비의 아이리시 로즈를 패러디한 듀엣곡을 불렀다.
나이가 들면서 앨런의 브로드웨이 경력은 춤과 곡예 중심에서 코미디 연기 중심으로 변화했다. 그는 여러 뮤지컬 코미디에 출연했는데, 대표작으로는 플로리다 걸(1925)의 샌디 역, 루퍼스 르메어의 일들(1927)의 세뇨르 토스타도와 미스터 브라운 역, 삼총사(1928)의 플랑셰 역, 톱 스피드(1929)의 엘머 피터스 역, 그리고 셰이디 레이디(1933)의 알 다시 역이 있다. 톱 스피드에서는 이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진저 로저스와 함께 히트곡 "Keep Your Undershirt On"을 불렀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보드빌 무대에서는 넬리 브린과 콤비를 이루어 활동했으며, 뉴욕의 유명한 팰리스 극장에서 사회자를 맡기도 했다. 1926년에는 소피 터커와 함께 뮤지컬 리뷰 헬로 파리 순회공연을 했다.
앨런은 1929년 단편 영화 더 푸셔 인 더 페이스에서 주연을 맡으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1930년에는 프랭크 캄브리아가 감독하고 앨런을 위해 제목을 붙인 영화 레스터에게 맡겨라에 출연했다. 이 영화에는 1935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브로드웨이 토치 싱어 에블린 호이가 함께 출연했다. 1930년대 들어 보드빌이 쇠퇴하면서 앨런은 점차 영화 배우로 활동 무대를 옮기기 시작했다.
2.2. 브로드웨이 활동 (1907-1933)
앨런은 1907년 뉴욕주 리릭 극장에서 열린 뮤지컬 미스 포카혼타스에서 신랑 역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이듬해인 1908년에는 보드빌 공연팀 로렌스 & 힐리와 함께 투어하며 뮤지컬 스케치 "Stage Struck Kid"에서 '제이크, 유대인 아이' 역할을 연기했다. 1909년에는 로이 맥카델의 연극 더 게이 라이프에서 올리버 하트퍼드 역을 맡아 달리 극장을 통해 브로드웨이 무대로 돌아왔다. 같은 해, 해리 W. 필즈가 이끄는 보드빌 스케치 시리즈 "Napanese"에 참여하여 순회 공연을 했다. 1911년에는 다양한 유명 인사를 성대모사하는 보드빌 공연으로 투어를 진행했으며, 1913년에는 조 오펜하이머의 페이 포스터 컴퍼니 소속으로 보드빌 서킷을 돌며 벌레타 "일본의 양키"와 "에이브"에 출연했다. 1915년에는 벌레스크 단체인 밀리언 달러 돌스와 함께 투어했다.
1910년대와 1920년대 초, 앨런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리뷰에서 댄서와 곡예사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여러 시즌에 걸쳐 조지 화이트의 스캔들과 지그펠드 폴리즈에 출연하며 명성을 얻었다. 그의 코미디 재능은 춤과 곡예 실력과 잘 어우러졌는데, 1922년 조지 화이트의 스캔들에서는 아파치 댄스를 코믹하게 재해석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는 1919년 스캔들 공연 리뷰에서 앨런에 대해 "그는 훌륭한 곡예사이자 예술가처럼 표정을 연기하며, 관객에게서 즉각적인 웃음을 끌어내는 독특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조지 화이트의 스캔들의 다른 배우들과 함께 조지 거슈윈의 1막 재즈 오페라 블루 먼데이(1922) 초연에 캐스팅되어,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고 카페 직원 겸 관리인 샘 역할을 연기하기도 했다. 1924년 스캔들에서는 배우 위니 라이트너와 함께 당시 인기 있던 코미디 연극 에비의 아이리시 로즈를 패러디한 듀엣곡을 불렀다.
나이가 들면서 앨런의 브로드웨이 경력은 춤과 곡예 중심에서 코미디 연기 중심으로 변화했다. 그는 여러 브로드웨이 뮤지컬 코미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주요 작품으로는 플로리다 걸(1925)의 샌디 역, 루퍼스 르메어의 일들(1927)의 세뇨르 토스타도와 미스터 브라운 역, 삼총사(1928)의 플랑셰 역, 톱 스피드(1929)의 엘머 피터스 역, 그리고 셰이디 레이디(1933)의 알 다시 역 등이 있다. 특히 톱 스피드에서는 이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진저 로저스와 함께 히트곡 "Keep Your Undershirt On"을 불렀다.
브로드웨이 활동과 병행하여 1920년대와 1930년대 보드빌 무대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넬리 브린과 짝을 이루어 더블 액트로 공연했으며, 뉴욕의 유명한 팰리스 극장에서 사회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소피 터커와 함께 뮤지컬 리뷰 헬로 파리 투어 공연을 했다.
2.3. 보드빌 및 영화 활동 (1920년대-1950년)
앨런은 1910년대와 1920년대 초 뮤지컬 리뷰에서 댄서 겸 곡예사로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며, 여러 차례 조지 화이트의 스캔들과 지그펠드 폴리즈 공연에 참여했다. 그의 코미디 재능은 춤과 곡예 능력과 결합되었는데, 특히 1922년 조지 화이트의 스캔들에서 선보인 아파치 댄스의 코믹한 해석은 호평을 받았다.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는 1919년의 스캔들 리뷰에서 앨런에 대해 "그는 훌륭한 곡예사이고, 예술가처럼 그의 표정을 연기하며, 관객에게서 즉각적인 웃음을 끌어낼 수 있다. 그는 독특하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조지 화이트의 스캔들의 다른 배우들과 함께 조지 거슈윈의 1막 재즈 오페라 블루 먼데이(1922) 원년 공연에 캐스팅되어 블랙페이스 분장을 하고 카페 직원 겸 관리인 샘 역할을 연기했다. 1924년의 스캔들에서는 배우 위니 라이트너와 함께 코미디 에비의 아이리시 로즈를 패러디한 듀엣을 공연했다.
나이가 들면서 앨런의 브로드웨이 경력은 춤과 곡예 중심에서 코미디 연기로 점차 옮겨갔다. 그는 여러 브로드웨이 뮤지컬 코미디에 출연했는데, 대표적으로 플로리다 걸(1925)의 샌디, 루퍼스 르메어의 일들(1927)의 세뇨르 토스타도와 미스터 브라운, 삼총사(1928)의 플랑셰, 톱 스피드(1929)의 엘머 피터스, 그리고 셰이디 레이디(1933)의 알 다시 역 등이 있다. 특히 톱 스피드에서는 이 작품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진저 로저스와 함께 히트곡 "Keep Your Undershirt On"을 불렀다. 1920년대와 1930년대 보드빌 무대에서는 넬리 브린과 콤비를 이루어 활동했으며, 팰리스 극장에서 사회자를 맡기도 했다. 1926년에는 소피 터커와 함께 뮤지컬 리뷰 헬로 파리 순회공연을 했다.
1929년 앨런은 단편 영화 더 푸셔 인 더 페이스에서 주연을 맡으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1930년에는 프랭크 캄브리아가 연출하고 그의 이름을 딴 영화 레스터에게 맡겨라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에는 1935년 비극적으로 살해된 브로드웨이 토치 싱어 에블린 호이가 함께 출연했다. 1930년대 보드빌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앨런은 본격적으로 영화 배우로 활동 영역을 옮겼다. 그는 1941년부터 1950년까지 15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의 주목할 만한 영화 역할 중 하나는 마 앤 파 케틀 시리즈에서 조개(Geoduck) 역을 반복적으로 맡은 것으로, 배우 치프 요울라치(크로우바 역)와 함께 아메리카 원주민 코미디 듀오를 연기했다. 또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의 1948년 영화 해적에서는 주디 갈랜드가 연기한 캐릭터의 삼촌 역을 맡았다. 갈랜드는 이 영화의 한 장면에서 앨런이 과거 브로드웨이 뮤지컬 루퍼스 르메어의 일들 공연을 위해 제작했던 광대 의상을 입기도 했다.
앨런은 1949년 11월 6일 노스할리우드에서 차량 사고로 사망했다.
2.4. 죽음
앨런은 1949년 11월 6일 노스할리우드에서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3. 출연 작품
(내용 없음)
3.1. 영화
|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
| 1930 | 리브 잇 투 레스터(Leave It to Lester) | 레스터 알로이시우스 세바스찬 브라운 | |
| 1941 | 악마의 명령(The Devil Commands) | 반 덴 박사 | 크레딧 없음 |
| 1941 |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 | 헤르 크란츠 | 크레딧 없음 |
| 1943 | 히트스 온(The Heat's On) | 마우스 벨러 | |
| 1943 | 클론다이크 케이트(Klondike Kate) | 더스터 댄 | |
| 1944 | 아이리쉬 아이즈 아 스마일링(Irish Eyes Are Smiling) | 헤밍 | 크레딧 없음 |
| 1945 | 더 그레이트 플래마리온(The Great Flamarion) | 토니 | |
| 1945 | 돌리 시스터스(The Dolly Sisters) | 모리 케노 | 크레딧 없음 |
| 1946 | 다크 미러(The Dark Mirror) | 조지 벤슨 | |
| 1947 | 펀 온 어 위크엔드(Fun on a Weekend) | 핫도그 판매원 | |
| 1948 | 해적(The Pirate) | 캡쵸 삼촌 | |
| 1948 | 댓 레이디 인 에르민(That Lady in Ermine) | 광대 | 크레딧 없음 |
| 1948 | 크라임 온 데어 핸즈(Crime on Their Hands) | 런티 | 단편 |
| 1949 | 엄마와 아빠 솥(Ma and Pa Kettle) | 지오덕 | |
| 1950 | 엄마와 아빠 솥 고 투 타운(Ma and Pa Kettle Go to Town) | 지오덕 | 크레딧 없음 |
| 1950 | 조니 원-아이(Johnny One-Eye) | 디자이너-안무가 | |
| 1950 | 러브 댓 브루트(Love That Brute) | 알 앨런, 연극 제작자 | 크레딧 없음 (마지막 영화 배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