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네 긴츠부르그
1. 개요
레오네 긴츠부르그는 오데사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작가, 편집자, 반파시스트 운동가이다. 토리노 대학교에서 슬라브어와 러시아 문학을 가르쳤으며, 줄리오 에이나우디와 함께 에이나우디 출판사를 공동 설립했다. 파시스트 정권의 충성 서약을 거부하여 교직에서 해고되었고, 반파시스트 활동으로 체포 및 내부 추방을 당했다. 1942년 행동당을 공동 설립하고, 신문 《자유 이탈리아》를 편집했다. 1943년 독일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 사망했다. 주요 저서로는 《러시아 작가들》과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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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나폴리타노
조르조 나폴리타노는 이탈리아 공산당 출신의 정치인으로, 이탈리아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이탈리아 최초의 공산당 출신 대통령이자 재선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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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모 레비
이탈리아 유대계 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경험을 기록한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 자전적 이야기 《주기율표》 등을 저술했으며,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후 귀환하여 1987년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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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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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
1909년 출생 -
이병철
대한민국 기업인인 이병철은 삼성그룹의 창업주로, 무역업을 시작으로 제조업, 전자산업, 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여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
1909년 출생 -
딘 러스크
딘 러스크는 미국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으로, 케네디 및 존슨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쿠바 미사일 위기 외교적 해결 지지, 베트남 전쟁 미국 군사 개입 확대 옹호 등의 활동을 했다.
2. 초기 생애 및 경력
긴츠부르그는 오데사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그의 가족은 이탈리아 비아레조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당시 15세와 18세였던 형과 누나는 어머니와 함께 러시아로 돌아갔지만, 레오네는 보모와 함께 전쟁 기간 동안 이탈리아에 남게 되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난 후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이 이탈리아로 피신하면서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토리노에 있는 마시모 다제글리오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이 학교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 싸우고, 이후 민주주의 이탈리아를 세우는 데 기여한 여러 지식인과 정치 운동가를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긴츠부르그의 동급생 중에는 노르베르토 보비오, 피에로 고베티, 체사레 파베세, 줄리오 에이나우디, 마시모 밀라, 비토리오 포아, 잔카를로 파예타, 펠리체 발보와 같은 이탈리아의 저명한 지식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토리노에 머무는 동안, 그는 1924년 피에로 고베티가 창간한 문학 잡지 일 바레티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1930년대 초반, 긴츠부르그는 토리노 대학교에서 슬라브어와 러시아 문학을 가르쳤다. 그는 여러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이탈리아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33년에는 줄리오 에이나우디와 함께 출판사 에이나우디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34년, 파시스트 정권이 강요한 충성 서약을 거부하면서 교직을 잃게 되었다.
3. 파시즘 박해와 내부 추방
레오네 긴츠부르그는 반파시스트 활동으로 인해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으로부터 지속적인 박해를 받았다. 1934년에는 스위스 국경 너머로 반파시스트 문서를 운반하려던 "폰테 트레사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이듬해인 1935년에는 반파시스트 조직인 정의와 자유(Giustizia e Libertà)의 이탈리아 지부 지도자로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카를로 레비와 함께 다시 체포되었다.
1938년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와 결혼했지만, 같은 해 파시스트 정권이 반유대주의에 기반한 인종 법을 도입하면서 이탈리아 시민권을 박탈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1940년에는 파시스트 정권의 탄압 조치인 '콘피노'(confino이탈리아어), 즉 내부 추방형을 선고받아 아내와 함께 아브루치 주의 외딴 마을인 피촐리로 보내져 1943년까지 거주해야 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긴츠부르그는 에이나우디 출판사의 대표직을 유지하며 활동을 이어갔고, 1942년에는 민주적 저항 정당인 행동당(Partito d'Azione)을 공동 창립하고 당의 기관지인 자유 이탈리아(L'Italia Libera)를 편집하는 등 반파시스트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3.1. 반파시스트 활동
긴츠부르그는 젊은 시절부터 반파시스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34년, 그는 시온 세그레 아마르를 포함한 14명의 다른 젊은 토리노 유대인들과 함께 소위 "폰테 트레사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이들은 스위스 국경 너머로 반파시스트 문서를 운반하려다 적발되었으나, 긴츠부르그는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 그러나 이듬해인 1935년, 그는 카를로 레비와 함께 정의와 자유(Giustizia e Libertà) 이탈리아 지부의 지도자로서 활동한 혐의로 다시 체포되었다. '정의와 자유'는 1929년 파리에서 카를로 로셀리가 설립한 반파시스트 조직이었다.
1938년, 긴츠부르그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결혼 전 성씨는 레비)와 결혼했다. 하지만 같은 해,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이 반유대주의에 기반한 인종 법을 시행하면서 그는 이탈리아 시민권을 박탈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1940년에는 파시스트 정권의 탄압 조치인 '콘피노'(confino), 즉 내부 추방형을 받아 아내와 함께 아브루치 주의 외딴 마을 피촐리로 보내졌다. 부부는 1943년까지 이곳에서 지내야 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긴츠부르그는 에이나우디 출판사의 대표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1942년에는 민주적 저항 정당인 행동당(Partito d'Azione)을 공동으로 창립했으며, 당의 기관지인 자유 이탈리아(L'Italia Libera)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4. 체포와 죽음
1943년,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과 무솔리니의 몰락 이후 레오네는 가족을 아브루초에 남겨두고 로마로 갔다. 나치 독일이 9월에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부인 나탈리아와 세 자녀는 피촐리를 떠나 로마로 와서 레오네와 합류하여 숨어 지냈다.
1943년 11월 20일, 레오네는 '레오니다 지안투르코'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비밀리에 신문 자유 이탈리아(L'Italia Libera)를 제작하던 중, 해당 인쇄소에서 이탈리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로마의 레지나 코엘리 감옥 내 독일군 구역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다. 1944년 2월 5일, 레오네는 고문으로 입은 부상으로 인해 향년 3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