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다스 2세
1. 개요
레오니다스 2세는 클레오메네스 2세의 손자이자 클레오뉘모스의 아들로, 어린 아레우스 2세의 후견인을 거쳐 스파르타의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셀레우코스 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며 동방의 문화를 접했고, 부유층을 옹호하며 빈곤층을 위한 개혁에 반대했다. 레오니다스는 이국적인 생활 방식과 외국인 아내, 반 스파르타적인 자녀들로 인해 감독관 뤼산드로스에게 탄핵당하여 망명했고, 사위 클레옴브로토스 2세가 왕위를 이었다. 이후 귀국한 레오니다스는 아기스 4세를 처형하고 왕위에 복귀했으며, 아기스의 아내 아기아티스를 아들 클레오메네스 3세와 강제로 결혼시켰다. 레오니다스 2세 사후 클레오메네스 3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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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35년 사망 -
여불위
여불위는 전국 시대 말기 위나라 출신 상인이자 진나라의 정치가로서, 자초를 왕위에 옹립하고 승상이 되었으며 《여씨춘추》 편찬과 '일자천금' 고사로 명성을 얻었으나, 몰락하여 자살했고 진시황의 친부 논란 등 복잡한 면모로 대중문화 작품에서 재해석된다. -
아기아다이 왕조 -
레오니다스 1세
레오니다스 1세는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300명의 스파르타 병사들을 이끌고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으며, 그의 용감한 죽음은 그리스의 승리에 기여했다. -
아기아다이 왕조 -
클레옴브로토스 1세
기원전 4세기 스파르타의 왕인 클레옴브로토스 1세는 아게시폴리스 1세의 동생으로 왕위에 올라 테바이 원정을 이끌었지만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전사하며 스파르타의 그리스 패권 상실에 영향을 미쳤다. -
기원전 4세기 출생 -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
마르쿠스 아틸리우스 레굴루스는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활약하다 카르타고에 포로로 잡힌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군인으로, 강화 조약 협상 임무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해 로마의 애국심과 용기의 상징으로 칭송받았으나, 현대에는 그의 행동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
기원전 4세기 출생 -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는 기원전 3세기 사모스 출신 천문학자로, 지구 중심설에 기반한 천체 계산법을 제시한 저서와 더불어 태양 중심설을 주장하여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2. 생애
레오니다스 2세는 클레오니무스의 아들이자 스파르타의 두 왕가 중 하나인 아기아드 왕조의 왕 클레오메네스 2세의 손자였다. 그는 셀레우코스 왕조 궁정에서 성장했으며, 페르시아인 여성과 결혼했다. 이 여성은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가 페르시아인 아내 아파마에게서 얻은 딸일 가능성이 있어, 완전히 페르시아인은 아니고 반은 마케도니아인, 반은 페르시아인이었다. 그의 페르시아 풍의 생활 방식과 스파르타인이 아닌 아내, 그리고 그의 반(反) 스파르타적인 자녀들은 에포로이(선출된 장관) 리산드로스, 공동 왕 아기스 4세, 그리고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문제가 되었다.
레오니다스 2세는 공동 왕 아기스 4세의 개혁 시도에 반대했다. 에포로이 리산드로스는 레오니다스에 반대하는 신의 징조를 보았다고 주장했고, 레오니다스는 재판을 피하기 위해 도망쳤다. 레오니다스가 없는 동안 왕위에서 폐위되었고 그의 사위인 클레옴브로투스 2세가 왕위를 대신했다.
이후 레오니다스 2세는 아기스 4세가 아이톨리아 원정을 떠났을 때 스파르타로 돌아와 클레옴브로투스 2세를 폐위시키고 추방한 후 왕위를 되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기스 4세를 그의 어머니 아게시스트라타, 할머니 아르키다미아와 함께 폐위시키고 처형했다.
2.1. 초기 생애와 배경
레오니다스 2세는 아기아드 왕조 출신으로, 클레오메네스 2세의 손자이자 왕이 되지 못한 클레오뉘모스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린 아레우스 2세의 후견인을 맡았고, 아레우스 2세 사후 노령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이었다.
레오니다스 2세는 오랫동안 셀레우코스 왕조의 셀레우코스 2세를 섬기며 오리엔트식 습속을 익혔다. 플루타르코스의 아기스 4세의 생애에 따르면, 그는 페르시아인 여성과 결혼했는데, 다른 자료에 따르면 그녀는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와 페르시아인 아내 아파마 사이의 딸로, 반은 마케도니아인, 반은 페르시아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리쿠르고스 제도의 취지와는 달리 시민들의 일탈을 묵인하고 부유한 자들의 편을 들었다. 또한, 공동 통치자였던 에우리폰 왕조의 왕 아기스 4세가 추진했던 빈곤한 시민을 위한 개혁에 반대했다.
이러한 레오니다스 2세의 행보는 에포로스(민선 장관)였던 리산드로스의 반발을 샀다. 리산드로스는 “헤라클레스의 후손인 스파르타 시민은 외국 여자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지 말 것이며, 또한 스파르타에서 이국으로 이주한 자는 살해 할지어다”라는 오래된 법률과 레오니다스가 아버지에게 스파르타를 파멸시키겠다고 맹세한 것을 근거로 그를 탄핵했다. 레오니다스는 아테나 신전으로 도망쳤지만 유죄 판결을 받고 왕위에서 쫓겨나 기원전 240년 아카디아로 망명했으며, 그의 사위인 클레옴브로토스 2세가 왕위에 올랐다.
2.2. 아기스 4세와의 갈등과 폐위
레오니다스 2세는 클레오메네스 2세의 손자이자 왕이 되지 못했던 클레오뉘모스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린 아레우스 2세의 후견인을 맡았고, 아레우스 2세 사후 노령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이었다.
레오니다스 2세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오랫동안 셀레우코스 왕조의 셀레우코스 2세를 섬기면서 오리엔트 식 습속을 익혔다. 그는 리쿠르고스 제도의 취지와는 달리 스파르타 시민들의 일탈을 묵인하고 부유한 자들의 편을 들었다. 또한 그는 공동 통치자였던 에우리폰 왕조의 왕 아기스 4세가 추진했던 빈곤한 시민을 위한 개혁에 반대했다.
이에 아기스 파의 에포로스(민선 장관)였던 리산드로스는 외국에서 자라고 외국 여자와 결혼한 레오니다스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헤라클레스의 후손인 스파르타 시민은 외국 여자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지 말 것이며, 또한 스파르타에서 이국으로 이주한 자는 살해할지어다”라는 오래된 법률과 레오니다스가 아버지 앞에서 스파르타를 파멸시키겠다고 맹세한 것을 들어 그를 탄핵했다.
레오니다스는 아테나 신전으로 도망쳤지만, 유죄 판결을 받고 왕위에서 쫓겨나 기원전 240년에 아카디아로 망명했다. 왕위에는 레오니다스의 사위 클레옴브로토스 2세가 올랐다. 그러나 이때 아기스는 레오니다스의 목숨을 빼앗으려 하지 않았고, 이는 훗날 아기스의 파멸을 불러왔다.
2.3. 복위와 아기스 4세 처형
아게실라오스의 도움으로 귀국한 레오니다스 2세는 아기스 4세와 클레옴브로토스 2세에게 복수를 시작했다. 장녀의 간청으로 클레옴브로토스 2세의 목숨은 살려주었지만, 그를 추방했다. 그리고 아기스 4세를 붙잡아 그의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처형하고 스스로 왕위에 복귀했다. 또한 아기스 4세의 아내 아기아티스는 많은 재산과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레오니다스 2세는 자신의 아들 클레오메네스 3세와 강제로 결혼시켰다. 이후 아들인 클레오메네스 3세가 그의 왕위를 이었다.
3. 가족 관계
레오니다스 2세는 셀레우코스 왕조 출신의 아내 크라테시클레이아와의 사이에서 세 자녀를 두었다.
| 자녀 | 배우자 | 비고 |
|---|---|---|
| 클레오메네스 3세 | 아기아티스 | 레오니다스 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아기아티스와의 사이에서 최소 한 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이집트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망했다. |
| 킬로니스 | 클레옴브로토스 2세 | 아버지 레오니다스 2세를 대신해 왕이 된 클레옴브로토스 2세와 결혼했다. 망명 생활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갔고, 아버지가 권력을 되찾은 후에는 남편을 따라 망명 생활을 하는 등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헌신으로 유명했다. |
4. 평가
레오니다스 2세는 검소하고 강건함을 중시하는 리쿠르고스 제도에서 시민들의 일탈을 묵인하며 부유층의 편이었고, 공동 통치자인 아기스 4세의 개혁에 반대했다. 이로 인해 뤼산드로스에게 탄핵받고 아르카디아로 망명했다. 이후 아게실라오스의 도움으로 귀국하여 아기스와 클레옴브로토스에게 복수하고 왕위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