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왕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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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버트 왕길라는 케냐의 복싱 선수로,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아프리카 선수 최초로 복싱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1987년 올아프리카 게임 웰터급 금메달, 1987년 복싱 월드컵 동메달을 획득했다. 1989년 프로 복싱에 입문하여 22승 5패의 전적을 기록했으며, 1994년 데이비드 곤잘레스와의 경기 후 뇌출혈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이슬람교식 장례를 치렀다.

로버트 왕길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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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로버트 나푸니 왕길라
별칭왕길라 나푸니
국적케냐
출생일1967년 9월 3일
출생지케냐 나이로비
사망일1994년 7월 24일 (향년 26세)
사망 장소미국 라스베이거스
신장175cm
스타일오소독스
체급웰터급
선수 경력
총 경기 수27
승리22
KO승16
패배5
무승부null
무효 경기null
프로 데뷔1989년 2월 24일
올림픽 메달
종목남자 복싱
대회올림픽
메달금메달
연도 및 장소1988 서울
체급웰터급
아프리카 경기 대회 메달
종목남자 복싱
대회아프리카 경기 대회
메달금메달
연도 및 장소1987 나이로비
체급페더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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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마추어 경력

나이로비 출신으로, 1987년 케냐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되었다. 같은 해 8월, 고향 나이로비에서 열린 1987년 올아프리카 게임에 참가하여 웰터급에서 에티오피아의 사헬루 메쿠리아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어 10월에는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개최된 1987년 복싱 월드컵에 참가하여 웰터급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듬해인 1988년 9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1988년 하계 올림픽에 케냐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웰터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결승전에서는 프랑스의 로랑 부두아니를 KO로 꺾었다. 이 금메달은 아프리카 국가 선수가 올림픽 복싱에서 획득한 최초의 금메달이었으며, 2022년 기준으로도 케냐가 육상 이외의 종목에서 획득한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로 남아있다.

2.1. 1988년 서울 올림픽 결과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 1988년 하계 올림픽케냐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는 아프리카 국가 선수가 올림픽 복싱에서 획득한 최초의 금메달이며, 2022년 기준으로 케냐가 육상 이외의 종목에서 획득한 유일한 올림픽 금메달이다.

왕길라는 1라운드는 부전승으로 통과했고, 이후 경기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좌우로 밀어서 보기
라운드상대 선수소속 국가결과비고
1라운드부전승
2라운드조르제 페트로니예비치유고슬라비아RSC 2라운드
3라운드하이다빙 강톨가몽골TKO 2라운드
8강흐리스토 푸르니고프불가리아5-0 판정
준결승얀 디다크폴란드기권
결승로랑 부두아니프랑스KO 2라운드훗날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3. 프로 경력

1989년 프로 복싱 선수로 전향하며 개인 트레이너인 켄 애덤스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같은 해 2월 24일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린 시드니 우베다 고메스와의 경기를 통해 프로 선수로 데뷔했으며, 이 경기에서 승리했다. 프로 입문 후 1년 반 동안 12승을 달성했다.

그러나 1990년 7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에릭 에르난데스에게 패배하며 프로 경력 첫 패배를 기록했다. 이후 다시 7연승을 달성했으나, 1991년 12월 벅 스미스에게 패배했고, 이어 1992년 3월에는 윌리엄 허낸데즈에게 연달아 패배하면서 선수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선수 활동을 중단했던 시기인 같은 해 5월 16일 결혼했다.

1993년 2월 링에 복귀하여 지난번 패배를 안겼던 윌리엄 허낸데즈를 상대로 승리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프로 통산 전적은 27전 22승(16KO) 5패이다.

4. 사망

1994년 7월 22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데이비드 곤잘레스와의 경기에서 9라운드 TKO 패배를 당했다. 당시 심판이었던 조 코르테스는 왕길라가 경기 중 입은 부상이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경기를 중단시켰다. 왕길라는 즉시 판정에 강하게 항의했으나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약 30분 뒤, 왕길라는 탈의실에서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고, 즉시 남부 네바다 대학 의료 센터로 이송되었다. 병원에서 뇌출혈 진단을 받았으나, 결국 36시간 만에 사망했다.

왕길라는 미국으로 건너간 후, 1992년 이슬람교를 믿는 아내 퀸 노블과 결혼하면서 자신도 기독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그는 사망하기 전 자신의 장례를 이슬람교 방식으로 치러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아내는 유언에 따라 이슬람식 장례를 준비했으나, 케냐에 있는 왕길라의 어머니 등 일부 가족들이 이에 반대하며 법정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법원은 최종적으로 왕길라의 유언과 아내의 의사를 존중하여 이슬람교식 매장을 하도록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