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리코
1. 개요
푸에르토리코는 스페인어로 '부유한 항구'를 의미하며, 카리브해 북동부에 위치한 미국의 자치령이다. 타이노족이 '보리켄'으로 불렀고, 스페인 통치 시기에는 산후안 바우티스타로 명명되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포르토리코'로 변경되었다가 1932년 '푸에르토리코'로 다시 변경되었다. 기원전 430년경 오르토이로이드족의 정착 이후 타이노족이 거주했으며,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하면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후 미국 통치를 거치며, 미국 시민권을 얻었지만, 미국의 주로 편입될지, 독립할지를 두고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대통령이 국가원수이고, 행정관이 행정부 수반이며, 양원제 입법부와 독립된 사법부를 갖춘 공화제 정부 형태를 띤다. 경제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중심이며, 관광 산업도 발달했지만, 2006년부터 경기 침체를 겪으며 부채 문제에 직면해 있다. 문화는 스페인, 아프리카, 북미 문화가 혼합되었으며, 스페인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야구, 권투, 농구 등 스포츠도 인기가 많으며, 몬폰고, 아로스 콘 간둘레스와 같은 독특한 음식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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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칭 | 매혹의 섬 |
|---|---|
| 표어 | 요한은 그의 이름이다 |
| 국가 | 보링켄의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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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 명칭 | 푸에르토리코 자치 연방구 |
| 현지 명칭 | 에스타도 리브레 아소시아도 데 푸에르토리코 (스페인어) 코먼웰스 오브 푸에르토리코 (영어) |
| 공용어 | 스페인어 영어 |
| 일반 언어 | 스페인어 94.3% 영어 5.5% 기타 0.2% |
| 주민 | 푸에르토리코인 보리쿠아 보린케뇨 보린카노 푸에르토로 |
| 수도 | 산후안 |
| 최대 도시 | 산후안-카과스-과이나보 광역 도시권 |
| 인종 구성 | 혼혈 49.8% 백인 17.1% 흑인 7.0% 아메리카 원주민 0.5% 아시아인 0.1% 기타 25.5% |
| 민족 구성 | 히스패닉 또는 라틴계 98.9% 비히스패닉 또는 라틴계 1.1% |
| 정부 형태 | 권한 위임 대통령제 헌법 속령 |
|---|---|
| 대통령 | 조 바이든 |
| 지사 | 페드로 피에르루이시 |
| 국가 대표 | 미국 의회 |
| 상주 대표 | 제니퍼 곤살레스 |
| 입법부 | 푸에르토리코 입법 의회 |
| 상원 | 푸에르토리코 상원 |
| 하원 | 푸에르토리코 하원 |
| 국무장관 | 오마르 마레로 디아스 |
| 법무장관 | 도밍고 에마누엘리 에르난데스 |
| 사법부 | 푸에르토리코 대법원 |
| 이전 명칭 | 푸에르토리코 총독령 |
|---|---|
| 스페인으로부터의 양도 | 1898년 12월 10일 |
| 현재 헌법 | 1952년 7월 25일 |
| 면적 | 13,792 제곱킬로미터 |
|---|---|
| 육지 면적 | 8,868 제곱킬로미터 |
| 수역 면적 | 4,924 제곱킬로미터 |
| 해수면 비율 | 35.6% |
| 최고 고도 | 1,338 미터 |
| 최대 길이 | 177 킬로미터 |
| 최대 폭 | 65 킬로미터 |
| 인구 조사 | 3,285,874 명 (2020년) |
|---|---|
| 인구 추정 | 3,205,691 명 (2023년) |
| 인구 밀도 | 361.4 명/제곱킬로미터 |
| GDP (PPP) | 1,580억 1,900만 달러 (2024년) |
|---|---|
| 1인당 GDP (PPP) | 49,590 달러 (2024년) |
| GDP (명목) | 1,209억 7,000만 달러 (2024년) |
| 1인당 GDP (명목) | 37,930 달러 (2024년) |
| 지니 계수 | 58 (2024년) |
| 인간 개발 지수 | 0.845 (2015년) |
| 통화 | 미국 달러 |
| 통화 코드 | USD |
| 시간대 | AST |
|---|---|
| UTC 오프셋 | -04:00 |
| 날짜 형식 | dd/mm/yyyy mm/dd/yyyy |
| 자동차 주행 방향 | 오른쪽 |
| 전화 코드 | +1 (787), +1 (939) |
| 우편 코드 유형 | 미국 우편 약어 |
| 우편 코드 | PR |
| ISO 코드 | PR US-PR |
|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 | .p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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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토리코 -
푸에르토리코의 국가
푸에르토리코의 국가는 섬의 원주민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독립 혁명 가사로 시작하여 미국의 통치 이후 가사가 수정되어 채택, 이후 공식 국가로 지정되었고 축약 버전과 스페인어 및 한국어 번역본이 존재한다. -
푸에르토리코 -
푸에르토리코의 기
푸에르토리코의 기는 1895년에 채택되어 1952년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으며, 세 개의 빨간색 줄과 두 개의 흰색 줄이 가로로 배치된 직사각형에 흰색 별이 있는 파란색 정삼각형이 깃대 쪽에 있는 디자인으로, 독립, 쿠바와의 연대, 푸에르토리코의 자부심을 상징한다. -
누에바에스파냐 -
스페인 식민지 레알
스페인 식민지 레알은 1642년 스페인 식민지에서 처음 발행된 화폐 단위로, 8레알 은화는 스페인 달러로 국제 무역의 기준 화폐 역할을 했으며, 1737년 화폐 개혁 이후 19세기 초까지 기준 통화로 사용되었으나, 스페인 식민지 독립 후 새로운 통화로 대체되었다. -
누에바에스파냐 -
마닐라 갈레온
마닐라 갈레온은 1565년부터 1815년까지 스페인 제국이 마닐라와 아카풀코를 연결한 무역선과 무역을 지칭하며, 아시아 물품과 아메리카 은을 교환하며 세계 경제와 문화 교류에 기여했지만 필리핀 민중의 희생을 동반했다. -
기후 정보 -
뉴델리
뉴델리는 인도의 수도이자 델리 수도권에 위치한 도시로, 영국령 인도 제국 시대에 건설되어 인도 독립 후에도 수도 기능을 유지하며 주요 정부 기관과 외교 공관이 위치해 있지만, 대기 오염 및 교통 혼잡, 재개발 관련 사회적 논쟁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
기후 정보 -
북마리아나 제도
북마리아나 제도는 서태평양에 위치한 미국의 자치령으로, 16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관광업과 섬유 산업에 경제를 의존하며, 차모로족과 캐롤라인족이 다수를 이루고 영어, 차모로어, 캐롤라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2. 어원
'푸에르토리코'는 스페인어로 '부유한 항구'를 뜻한다. 원주민 타이노족은 섬을 '보리켄(Borikén)'이라 불렀으며, 이는 '용맹한 지도자의 땅'이라는 뜻이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본섬을 '보링켄(Borinqué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본섬을 스페인어로 '황홀한 땅(la isla del encanto)'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크리스토발 콜론은 세례자 요한을 기려 본섬을 산후안 바우티스타(San Juan Bautista)라고 명명했고, 수도는 '시우다드데푸에르토리코(Ciudad de Puerto Rico)'라고 불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섬 전체가 푸에르토리코로 불리게 되었고, 산후안은 수도의 이름이 되었다.
미국은 1898년 파리 조약 이후 섬 이름을 '포르토리코(Porto Rico)'로 바꾸었다. 1932년 미국 의회는 공식적으로 포르토리코의 철자를 스페인어식인 푸에르토리코로 다시 변경했다.
3. 역사
푸에르토리코의 역사는 기원전 430년 이전 오르토이로이드족의 정착으로 시작되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3년 신세계에 도착했을 당시, 우세한 원주민 문화는 타이노족이었다. 타이노족의 수는 16세기 후반 유럽인들이 가져온 새로운 전염병, 스페인 정착민들의 착취,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위험할 정도로 감소하였다.
카리브해 북동부에 위치한 푸에르토리코는 신세계의 탐험, 정복 및 식민화 초기부터 스페인 제국의 핵심 지역이었다. 이 섬은 16세기, 17세기, 18세기에 스페인과 다른 유럽 열강 간의 지역 지배권을 놓고 벌어진 많은 전쟁에서 주요 군사 기지 역할을 하였다.
1593년 필립 2세의 명령에 따라 리스본에서 파견된 포르투갈 군인들이 푸에르토리코의 산펠리페 델 모로 요새의 최초 주둔군을 구성했다. 일부는 아내를 데려왔고, 다른 일부는 푸에르토리코 여성과 결혼하여 오늘날 포르투갈계 성을 가진 많은 푸에르토리코 가족들이 있다. 가장 작은 대앤틸리스 제도인 푸에르토리코는 유럽에서 쿠바,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북부 지역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19세기 대부분 동안 스페인-미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푸에르토리코와 쿠바는 신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두 개의 스페인 식민지였으며,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으려는 스페인의 최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였다. 스페인 왕실은 남은 두 개의 카리브해 영토를 잃을 위험에 처하자 1815년 은총의 왕실령을 부활시켰다. 이 법령은 새로운 정착민의 유입으로 독립 운동의 인기와 세력이 약해지기를 바라며 유럽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스페인어, 영어, 프랑스어로 인쇄되었다. 스페인 왕관에 대한 충성과 가톨릭 교회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조건으로 섬에 정착하려는 사람들에게 무료 토지가 제공되었다.
3.1. 콜럼버스 이전 시대
푸에르토리코의 고대사는 드문 고고학 조사 결과들과 스페인 사람들이 섬을 발견하고 초창기에 남긴 기록으로만 알 수 있다. 최초로 알려진 정착민들은 남아메리카 본토에서 온 수렵 민족인 오르토이로인들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들이 약 4천년 전에 정착했다고 주장하며, 1990년에 비에케스섬에서 나온 사람의 유골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원전 20세기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30년과 기원전 250년 사이에는 살라드인들이 남아메리카에서 푸에르토리코로 이동해 오르토이로인들을 몰아냈다.
120년과 400년 사이에는 오리노코강 유역에서 이그네리인들이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했다. 7세기와 11세기 사이에 타이노 문화가 형성됐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도착할 당시 약 3만 명에서 6만 명의 타이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의 지도자는 아귀에이바나 1세였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지도자가 이끄는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고, 주로 남자들은 수렵을 하고 여자들은 카사바와 과일들을 채집했다. 이는 콜럼버스가 1493년에 도착할 때까지 이루어졌다. 유럽인이 도착하기 이전 푸에르토리코는 남아메리카 기아나 지방(Guiana)에서 카리브해 주변의 섬들로 건너온 아라와크족(Arawak) 계열의 타이노족(Taíno)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섬은 보린켄(Boriquén)이라고 불렸다.
3.2. 스페인 통치 시대
1493년 11월 19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제2차 항해에서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했을 때, 섬에는 타이노족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1508년 8월 8일, 후안 폰세 데 레온은 오늘날의 과이나보 부근에 첫 정착촌을 건설하고 푸에르토리코의 첫 번째 총독이 되었다.
16세기 초, 스페인 제국은 푸에르토리코를 식민화하기 시작했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엔코미엔다 제도 하에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고, 유럽에서 유입된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수가 사망했다. 1520년 카를 5세는 타이노 원주민들을 해방시키는 칙령을 반포했지만, 이미 타이노 원주민들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스페인은 줄어든 원주민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들여왔다.
1625년, 네덜란드의 제독 바우더베인 헨드릭스는 함대를 이끌고 산후안을 공격했으나, 스페인군은 이를 격퇴했다.
18세기 말, 중상주의 정책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상선들이 푸에르토리코에 드나들면서 노예 무역이 증가했다. 이는 늘어나는 설탕과 커피 플랜테이션에 더 많은 노예를 공급하기 위함이었다. 1797년 4월 17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랄프 애버크롬비가 이끄는 함대가 푸에르토리코를 침공했으나, 큰 손실을 입고 4월 30일 퇴각했다.
19세기 초,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시몬 볼리바르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안토니오 발레로 데베르나베와 마리아 데라스메르세데스 바르부도 등이 독립운동을 주도했지만, 당시 총독이었던 미겔 데라토레는 이들을 탄압했다.
3.3. 미국 통치 시대
1890년에 미국 해군 제독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은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에서 해양력을 강조했으며 훗날 보급 기지나 해군 기지로 쓸 수 있는 카리브해의 식민지들을 점령할 것을 주장했다. 1894년부터 미국 해군참모대학교는 스페인 제국과의 전쟁에 대비해 비상 계획을 짜고 있었다. 1896년에 이르러 미국 해군정보실은 푸에르토리코 해역에서 군사 작전을 펼치는 계획을 만들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 일어나자 미군 병력은 7월 25일에 푸에르토리코에 상륙했다.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난 뒤 스페인 제국은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 괌을 미국에게 양도했다.
미국과 푸에르토리코는 오랫동안 이어지는 메트로폴리스-식민지 관계를 맺었다. 20세기 초에 미국은 푸에르토리코에서 군정을 펼쳤고 미국의 대통령이 행정관을 포함한 관리들을 임명했다. 1900년에 만들어진 포에이커 법에 따라 푸에르토리코에 민간 정부가 들어섰다. 행정관과 상원 의원은 미국의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하원 의원은 선거로 뽑았다. 1914년에 푸에르토리코 하원은 만장일치로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의결했으나 미국 의회는 이 결의가 포에이커 법과 헌법에 어긋난다며 거부했다.
1917년 미국 의회는 존스-샤프로스 법을 통과시켜 1898년 4월 25일 또는 그 이후에 태어난 푸에르토리코인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했다. 푸에르토리코 하원 의원들을 포함한 반대파들은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 파견할 군대에 푸에르토리코인들을 징집하려고 시민권을 부여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푸에르토리코를 지배하고 난 뒤 몇 년 동안 지진과 지진해일, 허리케인 등 잇따른 자연재해와 대공황으로 푸에르토리코는 빈곤 상태에 머물렀다. 푸에르토리코 국민당의 총재 페드로 알비수 캄포스와 같은 일부 정치인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바꿀 것을 요구했다. 1937년 폰세에서 푸에르토리코 국민당 주도로 시위가 있었는데, 경찰이 무장하지 않은 시위대와 행인에 발포해 19명이 죽고 200명이 넘게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은 폰세 학살로 알려지게 됐다.
1947년에 처음으로 행정관을 선거로 뽑았고, 1948년에 루이스 무뇨스 마린이 처음으로 민선 행정관으로 올랐다. 1950년 미국 의회는 푸에르토리코에서 헌법 초안을 결정할 민주적 국민투표를 허가했다. 1952년 2월 6일 제헌 협의회는 푸에르토리코의 헌법을 승인했고, 3월에 국민투표에서 82%의 찬성을 받았으며, 7월 3일 미국의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의 승인을 받아 7월 25일에 헌법이 공포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빠른 산업화가 일어났다. 뉴딜의 연장선이었던 산업화 정책은 일자리를 더 늘리고자 농업 중심의 경제를 제조업 중심의 경제로 탈바꿈시키는 데 주안점이 있었다.
1967년 7월 23일에 푸에르토리코의 지위에 관한 첫 번째 국민투표가 열렸다. 이후, 1993년과 1998년, 2012년 11월 6일, 2017년 6월 11일, 그리고 2020년 11월 3일에 주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미국의 주로 편입되거나 독립하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푸에르토리코 정부에 대한 통제 위원회를 설립하는 H.R. 5278: PROMESA 법안에 서명했다.
2017년, 푸에르토리코는 5등급 허리케인 어마(2017년 9월 7일)와 4등급 허리케인 마리아(2017년 9월 20일)의 연이은 강력한 허리케인 피해를 입었다. 푸에르토리코 허리케인 마리아의 영향도 참조하십시오.
4. 지리
푸에르토리코는 본섬인 푸에르토리코섬과 비에케스섬, 쿨레브라섬, 모나섬, 데세체오섬, 카하데무에르토스 등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다섯 섬 가운데 쿨레브라섬과 비에케스섬에만 연중 사람들이 살고 있다. 모나섬은 푸에르토리코 자연환경자원부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모니토섬이나 카브라스섬, 산후안섬처럼 더 작은 섬들도 있는데, 산후안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으며 본섬과 다리로 이어져 있다.
푸에르토리코의 면적은 9,104 km2로 미국 본토의 델라웨어주나 로드아일랜드주보다 크다. 대앤틸리스 제도 가운데 땅 면적이 가장 작은데, 자메이카의 80% 정도이자 대앤틸리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쿠바의 8% 정도다. 대부분 산악 지형이며 남부와 북부에는 긴 연안 지형이 펼쳐져 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가장 높은 곳은 세로데푼타로 해발 약 1,340 m다. 푸에르토리코에서는 호수가 17곳이 있는데 모두 인공 호수고, 강은 50개가 있다.
푸에르토리코의 지질은 백악기부터 에오세에 걸쳐 형성된 심성암과 화산암부터 올리고세의 암석, 그 이후의 탄산염과 다른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부에는 동굴과 카르스트 지형이 나타난다. 서남부의 시에라베르메하에는 쥐라기인 1억 9천만 년 전에 만들어진 암석이 있다.
대서양에서 가장 깊고 넓은 해구인 푸에르토리코 해구가 푸에르토리코 북쪽 약 114 km 지점에 있다. 길이는 약 280 km, 깊이는 가장 깊은 곳인 밀워키 해연을 기준으로 약 8,400 m다.
푸에르토리코에는 모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17개의 호수와 50개가 넘는 강이 있으며, 대부분 코르딜례라 중앙 산맥에서 시작된다. 섬 북부 지역의 강은 남부 지역보다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남부 지역보다 길고 유량이 높다.
푸에르토리코는 카리브 해판과 북아메리카판의 경계에 위치하며, 두 판의 상호 작용으로 인한 구조적 스트레스로 변형되고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지진과 쓰나미를 일으킬 수 있다. 1918년 10월 11일 발생한 1918년 산 페르민 지진은 리히터 규모로 추정되는 규모는 7.5였다. 북부 해안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아구아딜라 해안에서 발생했으며, 쓰나미를 동반했다. 약 116명의 사망자와 400만 달러의 재산 피해를 초래했다. 2020년 1월 7일, 푸에르토리코는 1918년 이후 최대 규모의 지진을 경험했으며, 규모는 6.4로 추정된다.
5. 기후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의 기후는 열대 우림 기후이다. 온도는 1년 내내 저지대 기준으로 29 °C, 고지대 기준으로 21 °C, 평균 28 °C로 온난하다. 평균 최저 온도는 19 °C, 평균 최고 온도는 30 °C다.
푸에르토리코는 카리브해와 북대서양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서양 허리케인 시즌의 영향을 받는다. 2017년 북대서양 허리케인 시기에 허리케인 어마가 푸에르토리코 북쪽 97 km 지점을 통과했다. 이어 발생한 허리케인 마리아로 산사태가 일어나 큰 피해를 입혔다. 이로 인해 전력 공급 체계가 큰 손상을 입었고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정전이 일어났다.
6. 정치
푸에르토리코의 국가원수는 미국 대통령이며 행정부의 수장은 행정관이다. 입법부는 양원제를 실시하며 상원과 하원으로 나뉜다. 행정관과 의원들은 4년에 한 번씩 선거로 뽑는다. 사법부의 장은 대법원장이고 법관들은 행정관이 상원의 조언과 동의에 따라서 임명한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하원에 상주대표를 파견한다. 푸에르토리코 주민은 푸에르토리코 지역에 거주하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없고, 미국의 주에 거주하면 투표할 수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모델을 기반으로 한 공화정 형태의 정부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관할권과 주권에 종속되는 권력분립을 따른다. 모든 정부 권력은 미국 의회에 의해 위임되며, 국가 원수는 미국 대통령이다. 무편입 영토로서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헌법의 완전한 보호를 받지 못한다.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세 개의 권력으로 구성된다. 행정부는 현재 페드로 피에를루이시 우르티아가 맡고 있는 주지사가 이끌고 있다. 입법부는 상원을 상원으로, 하원을 하원으로 하는 이원제 입법 의회로 구성된다; 상원은 현재 호세 루이스 달마우가 이끄는 상원 의장이, 하원은 현재 타티토 에르난데스가 이끄는 하원 의장이 이끌고 있다. 주지사와 입법 의원들은 4년마다 인민 투표로 선출되며, 마지막 선거는 2020년 11월에 실시되었습니다. 사법부는 현재 마이테 오로노즈 로드리게스가 이끄는 대법원장이 이끌고 있다. 사법부 구성원들은 주지사가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의회에 하원의 비투표 대표인 거주 위원(현재 제니퍼 곤잘레스)을 통해 대표된다. 현재 의회 규정은 위원의 전체 위원회 투표권을 제거했지만, 위원은 위원회에서 투표할 수 있다.
푸에르토리코 선거는 연방 선거 위원회와 푸에르토리코 주 선거 위원회에 의해 관리된다. 푸에르토리코 거주자(다른 미국 시민 포함)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할 수 없지만, 예비 선거에는 투표할 수 있다. 푸에르토리코 거주자가 미국 주 또는 워싱턴 D.C.의 거주자가 되면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다.
푸에르토리코에는 8개의 상원 선거구, 40개의 하원 선거구 및 78개의 지방 자치 단체가 있다. 미국 정부가 정의한 1차 행정 구역은 없다. 지방 자치 단체는 구역 또는 바리오로, 그리고 구역은 구역으로 세분됩니다. 각 지방 자치 단체에는 4년 임기로 선출된 시장과 지방 자치 단체 의회가 있다. 산후안 지방 자치 단체는 1521년에 설립된 가장 오래된 곳이다. 그 다음으로 오래된 정착지는 1570년 산헤르만, 1579년 코아모, 1614년 아레시보, 1692년 아구아다, 1692년 폰세이다. 18세기에 정착이 증가하면서 30개의 새로운 지역 사회가 설립되었고, 19세기에는 34개가 설립되었습니다. 20세기에는 6개가 설립되었으며, 가장 최근에 설립된 곳은 1971년 플로리다이다.
6.1. 정당
1952년 이래로 푸에르토리코 대중민주당(PPD)과 푸에르토리코 신진보당(PNP), 푸에르토리코 독립당(PIP)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대중민주당(PPD)은 자유 연합주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추구하는 반면, 신진보당(PNP)은 미국의 주가 되는 것을 추구하고, 독립당(PIP)은 미국으로부터 벗어나 독립하는 것을 추구한다.
1967년 주 승격파에 의해 푸에르토리코 신진보당(Partido Nuevo Progresista)이 결성되었고, 1968년 선거에서 신진보당이 승리하여 자치 확대파인 인민민주당과의 양당제가 탄생했다. 1970년대에 복지 제도 확대가 진행되면서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은 연방의 사회복지를 생계의 밑거름으로 삼게 되었다.
그 밖의 정당으로는 푸에르토리코 국민당과 노동자사회주의운동, 오스토스주의민족독립운동 등이 있다. 2007년 이후 푸에르토리코인을 위한 푸에르토리코당이 등록되었으나, 2008년 총선에서 필요한 득표수를 얻지 못해 등록 정당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했다. 2012년 선거에서는 Movimiento Unión Soberanista(주권 연합 운동)와 Partido del Pueblo Trabajador(노동자당)이 등장했지만, 1% 이상의 득표율을 얻지 못했다.
1998년에 미국의 51번째 주 승격을 둘러싼 주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부결되었다. 이후에도 주 승격 관련 주민 투표가 계속되었는데, 2012년 11월에는 주 승격 찬성표가 다수를 차지했으나, 미국 의회의 심의가 필요하다. 2017년 6월 11일 실시된 주민투표에서는 주 승격 찬성이 97%를 획득했지만, 승격 반대파 야당의 투표 보이콧 호소로 투표율은 23%에 그쳤다.
6.2. 지위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헌법 제4조에 따라 미국 의회의 전권 아래에 있다. 연방 수준에서 제정한 법률들은 푸에르토리코에도 적용된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하원에 표결권이 없는 상주대표 1명을 파견한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1917년 존스-샤프로스 법에 따라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푸에르토리코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들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없지만, 미국 공화당과 미국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선거를 푸에르토리코에서 실시한다.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은 미국의 헌법에서 규정한 기본권만 적용받는다.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은 푸에르토리코 정부와 연방 정부에 세금을 납부한다. 사회보장세를 납부하며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만, 메디케이드 혜택은 미국의 주에 비해 적게 받고 있다. 미국 재무부에 2009년 기준으로 를 납부했다.
2007년부터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푸에르토리코 출생자, 푸에르토리코 출신 부모를 둔 사람, 푸에르토리코에서 1년 이상 거주한 미국 시민에게 푸에르토리코 시민권 확인증을 부여한다.
푸에르토리코와 미국의 정치적 관계는 푸에르토리코, 미국 의회 및 유엔에서 지속적으로 논쟁의 대상이다.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주로 편입될지, 아니면 독립 국가가 될지에 대한 문제가 주요 쟁점이다. 1992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연방 정부와 푸에르토리코 연방 간의 현재 행정 관계를 확립하는 행정 각서를 발행하여, 모든 연방 부서, 기관 및 공무원이 푸에르토리코를 주와 같이 행정적으로 처리하도록 지시하였다.
미 연방수사국, 미 연방재난관리청, 미국 교통안전청, 미국 사회보장국 등 많은 연방 행정부 기관이 푸에르토리코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주와 유사한 자체 연방 사법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푸에르토리코에는 미국 연방 지방 법원도 있다. 푸에르토리코계 뉴요커인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미국 대법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6.3. 군사
푸에르토리코의 방위는 파리 조약에 따라 미국이 담당하며, 미국 대통령이 최고 사령관이다. 푸에르토리코는 독자적인 주방위군과 주방위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 두 지역 부대의 최고 사령관은 푸에르토리코 주지사이며, 주지사는 자신의 권한을 푸에르토리코 부관장에게 위임한다. 현 부관장은 소장 호세 J. 레이예스이다.
1999년까지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미군 기지들은 미국 대서양 사령부에 속해 있었으나, 이후 미국 합동전력사령부로 재편성되면서 현재는 미국 북부사령부의 책임 아래 있다. 루즈벨트로즈 해군 기지가 폐쇄된 후, 미 해군은 푸에르토리코에 주둔하지 않는다. 현재 섬에 남아있는 주요 군사 시설은 미 육군의 포트 부캐넌, 푸에르토리코 육군과 공군 주방위군, 미국 해안 경비대이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미국 독립 전쟁을 비롯하여 미국이 참전한 많은 군사 분쟁에 참여했다. 특히, "보링켄 부대(The Borinqueneers)"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 육군 제65보병연대는 푸에르토리코인들로 구성되어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테러와의 전쟁 등에 참전했다. 2014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전쟁에서 보여준 이들의 용기를 기려 의회 명예 훈장을 수여했다.
7. 경제
세계은행은 푸에르토리코를 고소득 경제로 분류하며, 2018년 기준으로 푸에르토리코의 1인당 명목 국민 총소득은 21,100 달러이다. 경제는 제조업 중심이며 금융업과 보험업, 부동산업, 관광업 등 제3차 산업도 발달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경제로 여겨지며, 인간개발지수에서도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주요 산업은 제조업(주로 제약, 섬유, 석유화학 및 전자 제품)과 서비스업(주로 금융, 보험, 부동산 및 관광)이며, 농업은 GNP의 1% 미만을 차지한다.
그러나 푸에르토리코는 2006년부터 경기 침체를 겪었으며, 2017년 초 기준 약 700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다. 인구의 45%는 빈곤 상태에 있으며 실업률은 미국 본토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국가 채무는 국내총생산의 51.6% 수준이다. 2017년 5월 3일, 미국 연방 지방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으며, 법원의 관리하에 부채 정리를 진행하게 된다.
푸에르토리코의 높은 생활비는 존스법의 영향이 크다. 이 법으로 인해 외국 선박의 운송이 제한되어 생활비가 높다. 푸에르토리코 정부는 미국 의회에 푸에르토리코를 존스법에서 제외해 줄 것을 여러 차례 요구했으나 실패했다. 2013년 미국 회계감사원은 존스법 개정 또는 폐지가 푸에르토리코의 수송 비용을 줄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 효과는 몹시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2016년 기준으로 푸에르토리코의 주요 수입 국가는 미국, 아일랜드, 싱가포르, 스위스, 대한민국이며 주요 수출 국가는 미국,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이다. 교통과 전력 생산을 위해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보이며 원자재와 식료품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후와 세계 경제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사회 기반 시설, 특히 전력 공급은 질이 부족하여 자주 정전이 발생한다. 2021년 푸에르토리코 전력 공사에서 LUNA 에너지로 전력 공급 업무가 이관되었지만, 변전소 화재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2024년에도 지하 송전선망 노후화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8. 사회
빈부격차가 심하고, 섬 주민 대부분은 정부가 제공하는 저소득층 주택에 거주한다. 그러나 미국령으로서 유일하게 보편적 건강보험 제도를 가지고 있어 섬 주민들은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와 과들루프와 마찬가지로 복지 식민지라고도 불린다.
==== 주민 ====
푸에르토리코의 인구는 초기 아메리카 원주민 정착,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화, 노예 제도, 경제적 이주, 그리고 미국령 미편입 지역으로서의 지위 등의 영향을 받아왔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높은 수준의 민족적 및 문화적 다양성과 여러 인구 통계 집단 간의 오랜 혼인 및 동화의 역사를 특징으로 한다.
2019년 7월 1일 기준 인구는 약 319만 명으로, 2010년 조사 결과보다 14.28% 감소한 수치다. 2000년과 2010년 사이 푸에르토리코 인구는 역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자연재해로 인한 이민과 낮은 출산율은 21세기에도 인구 감소를 지속시키고 있다.
2009년에 푸에르토리코에서 이루어진 집단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52.6%에서 84% 사이가 모계로부터 어느 정도의 아메리카 원주민 미토콘드리아 DNA를 갖고 있으며, 대개 관체인과 같은 다른 계통과 섞여 있다. 2019년 미국 인구조사국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약 98.9%가 스스로를 히스패닉이라고 답했다. 2018년 기준 평균 수명은 81세이다.
202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는 3,285,874명의 거주자를 기록했으며, 이는 2010년 이후 11.8% 감소한 수치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수도인 산후안이며, 바야몬, 카롤리나, 폰세, 카구아스 등이 주요 도시이다.
19세기 동안 수백 가구가 주로 카나리아 제도와 안달루시아에서, 그리고 카탈루냐, 아스투리아스, 갈리시아 및 발레아레스 제도와 같은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서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했다. 코르시카, 프랑스, 레바논,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독일 및 이탈리아을 포함한 스페인 이외의 국가에서 온 정착민들도 소수 있었다.
최근 이민자들의 대다수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이며, 절반 이상이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이다. 특히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쿠바 출신의 일부 불법 이민자들은 미국 본토로 가기 위한 임시 중간 기착지로 푸에르토리코를 이용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빈곤, 저렴한 항공료, 섬 정부의 장려로 인해 많은 푸에르토리코인들이 미국 본토, 특히 미국 북동부와 플로리다로 이주하였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일부 이민자들이 섬으로 돌아오는 "순환 이주" 패턴을 계속 따르고 있다. 2020년 미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 외부 미국에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코인의 수는 푸에르토리코에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코인의 수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 언어 ====
푸에르토리코 행정부의 공용어는 스페인어와 영어로, 스페인어가 더 널리 쓰인다. 1902년에 영어와 스페인어의 지위를 같게 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재판 사무에서는 스페인어만이 유일한 공식 언어다. 다만 푸에르토리코의 미국 연방지방법원 사무에서는 영어를 쓴다. 2017년 미국 인구조사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구의 약 94.2%가 집에서 스페인어를 쓰고, 76.2%가 영어를 '매우 잘 함' 수준 미만으로 구사하며, 5.7%가 영어만 구사한다.
푸에르토리코에서 공교육은 대부분 스페인어로만 이루어진다. 영어는 외국어로 가르치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필수 과목으로 지정돼 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미국 수화를 쓰며 이를 변형한 형태인 푸에르토리코 수화 역시 쓴다.
푸에르토리코 스페인어는 어휘와 문법 부문에서 다른 지방에서 쓰는 스페인어와는 다른 특징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푸에르토리코 스페인어에는 타이노어와 영어에서 차용한 낱말들이 많이 있다. 타이노에서 차용한 낱말들은 대부분 초목이나 자연 현상, 고유의 악기들을 일컬을 때 쓴다.
==== 종교 ====
로마 가톨릭교는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 시기에 전래되었으며, 점차 푸에르토리코에서 가장 우세한 종교가 되었다. 교황 율리오 2세는 1511년 푸에르토리코와 히스파니올라섬에 아메리카 최초의 교구를 세웠고, 1759년에는 모든 교회에 사제가 있었다. 1984년 10월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했다. 푸에르토리코의 모든 자치시에는 최소한 하나의 가톨릭 교회가 있으며, 대부분은 마을 중심부 또는 광장에 위치해 있다.
개신교는 스페인 제국 식민지 시절에는 억압을 받았지만, 미국령이 된 뒤로는 다시 교세를 확장했다. 오늘날 푸에르토리코는 로마 가톨릭교가 여전히 우세하면서도 이전 시기보다 여러 종파가 공존하게 되었다. 1872년 세워진 성공회 교회당은 푸에르토리코 최초의 개신교 교회당이자, 스페인 제국령 아메리카였던 곳에 세워진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 이외의 교회당이다.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이 다양한 전통 신앙들을 유지한 결과 요루바족의 영향을 받은 산테리아 등이 나타났고, 몇몇 요소들은 기독교와 혼합되기도 했다.
2014년 퓨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인의 56%가 가톨릭 신자였고, 33%는 프로테스탄트, 8%는 무종교였다. CIA 월드 팩트북에서도 비슷한 수치를 제시하며, 프로테스탄트는 "대부분 오순절파"이고, 다른 종교는 2%, 무신론자는 1%라고 덧붙였다.
동방 정교회 공동체는 소규모이며, 시리아 정교회도 아과다에 소규모로 존재한다. 2017년에는 푸에르토리코에 최초의 동방 가톨릭교회가 설립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산후안에 성전을 봉헌했고, 약 2만 3천 명의 회원이 있다고 보고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2015년 기준 2만 5832명의 신도와 324개의 회중을 가지고 있었다.
푸에르토리코는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유대교 공동체를 보유하고 있으며, 섬의 최초 회당인 Sha'are Zedeck은 1952년 미국 유대인에 의해 설립되었다.
2007년 푸에르토리코에는 약 5,000명의 무슬림이 있었으며, 섬 전역에 8개의 모스크가 있다. 바하이 공동체도 존재한다.
푸에르토리코의 불교는 니치렌, 선,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며, 여러 무신론자 활동가 및 교육 단체와 푸에르토리코 파스타파리아니즘 교회라는 무신론적 패러디 종교도 존재한다. ISKCON 사원은 크리슈나를 숭배하며, 산후안 대도시권에 두 개의 포교 센터가 있다.
타이노의 종교 의식은 소수의 옹호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재발견되고 재창조되었다. 아프리카 종교 전통의 일부 측면은 지속되었는데, 특히 요루바 신앙인 산테리아 또는 이파, 그리고 콩고에서 유래한 팔로 마욤베가 있다. 일부 토착 및 아프리카 관습과 신앙은 혼합되어 기독교와 결합되었다. 1940년 후아니타 가르시아 페라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최초의 종교인 미타 공동체를 설립했다.
==== 교육 ====
푸에르토리코에 세워진 첫 번째 학교는 1513년에 로마 가톨릭교 사제 알론소 만소가 세운 문법학교(Escuela de Gramática)다. 학생들은 무상으로 학교를 다녔고 라틴어와 문학, 역사, 과학, 예술, 철학, 신학 등을 배웠다.
푸에르토리코에서의 교육은 초등교육(초등학교 1~6학년)과 중등교육(중학교 및 고등학교 7~12학년), 고등교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5살부터 18살까지 의무 교육 대상이다. 2015년 기준으로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93.3%가 읽고 쓸 수 있었다. 2000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구의 60%가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았고, 18.3%가 학사 학위 이상을 받았다.
공립 대학인 푸에르토리코 대학교는 푸에르토리코에서 가장 크고 오래 된 대학이다. 가장 큰 사립 대학은 아나 G. 멘데스 대학교다.
==== 과학 ====
아레시보에 위치한 아레시보 천문대에 있는 직경 305 m의 구면 전파망원경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
8.1. 주민
푸에르토리코의 인구는 초기 아메리카 원주민 정착,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화, 노예 제도, 경제적 이주, 그리고 미국령 미편입 지역으로서의 지위 등의 영향을 받아왔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높은 수준의 민족적 및 문화적 다양성과 여러 인구 통계 집단 간의 오랜 혼인 및 동화의 역사를 특징으로 한다.
2019년 7월 1일 기준 인구는 약 319만 명으로, 2010년 조사 결과보다 14.28% 감소한 수치다. 2000년과 2010년 사이 푸에르토리코 인구는 역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자연재해로 인한 이민과 낮은 출산율은 21세기에도 인구 감소를 지속시키고 있다.
2009년에 푸에르토리코에서 이루어진 집단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52.6%에서 84% 사이가 모계로부터 어느 정도의 아메리카 원주민 미토콘드리아 DNA를 갖고 있으며, 대개 관체인과 같은 다른 계통과 섞여 있다. 2019년 미국 인구조사국 조사에 따르면 인구의 약 98.9%가 스스로를 히스패닉이라고 답했다. 2018년 기준 평균 수명은 81세이다.
202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는 3,285,874명의 거주자를 기록했으며, 이는 2010년 이후 11.8% 감소한 수치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수도인 산후안이며, 바야몬, 카롤리나, 폰세, 카구아스 등이 주요 도시이다.
19세기 동안 수백 가구가 주로 카나리아 제도와 안달루시아에서, 그리고 카탈루냐, 아스투리아스, 갈리시아 및 발레아레스 제도와 같은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서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했다. 코르시카, 프랑스, 레바논,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독일 및 이탈리아을 포함한 스페인 이외의 국가에서 온 정착민들도 소수 있었다.
최근 이민자들의 대다수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이며, 절반 이상이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이다. 특히 아이티, 도미니카 공화국, 쿠바 출신의 일부 불법 이민자들은 미국 본토로 가기 위한 임시 중간 기착지로 푸에르토리코를 이용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부터 빈곤, 저렴한 항공료, 섬 정부의 장려로 인해 많은 푸에르토리코인들이 미국 본토, 특히 미국 북동부와 플로리다로 이주하였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일부 이민자들이 섬으로 돌아오는 "순환 이주" 패턴을 계속 따르고 있다. 2020년 미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 외부 미국에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코인의 수는 푸에르토리코에 거주하는 푸에르토리코인의 수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8.2. 언어
푸에르토리코 행정부의 공용어는 스페인어와 영어로, 스페인어가 더 널리 쓰인다. 1902년에 영어와 스페인어의 지위를 같게 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재판 사무에서는 스페인어만이 유일한 공식 언어다. 다만 푸에르토리코의 미국 연방지방법원 사무에서는 영어를 쓴다. 2017년 미국 인구조사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구의 약 94.2%가 집에서 스페인어를 쓰고, 76.2%가 영어를 '매우 잘 함' 수준 미만으로 구사하며, 5.7%가 영어만 구사한다.
푸에르토리코에서 공교육은 대부분 스페인어로만 이루어진다. 영어는 외국어로 가르치며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필수 과목으로 지정돼 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미국 수화를 쓰며 이를 변형한 형태인 푸에르토리코 수화 역시 쓴다.
푸에르토리코 스페인어는 어휘와 문법 부문에서 다른 지방에서 쓰는 스페인어와는 다른 특징을 갖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푸에르토리코 스페인어에는 타이노어와 영어에서 차용한 낱말들이 많이 있다. 타이노에서 차용한 낱말들은 대부분 초목이나 자연 현상, 고유의 악기들을 일컬을 때 쓴다.
8.3. 종교
로마 가톨릭교는 스페인 제국의 식민지 시기에 전래되었으며, 점차 푸에르토리코에서 가장 우세한 종교가 되었다. 교황 율리오 2세는 1511년 푸에르토리코와 히스파니올라섬에 아메리카 최초의 교구를 세웠고, 1759년에는 모든 교회에 사제가 있었다. 1984년 10월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했다. 푸에르토리코의 모든 자치시에는 최소한 하나의 가톨릭 교회가 있으며, 대부분은 마을 중심부 또는 광장에 위치해 있다.
개신교는 스페인 제국 식민지 시절에는 억압을 받았지만, 미국령이 된 뒤로는 다시 교세를 확장했다. 오늘날 푸에르토리코는 로마 가톨릭교가 여전히 우세하면서도 이전 시기보다 여러 종파가 공존하게 되었다. 1872년 세워진 성공회 교회당은 푸에르토리코 최초의 개신교 교회당이자, 스페인 제국령 아메리카였던 곳에 세워진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 이외의 교회당이다.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이 다양한 전통 신앙들을 유지한 결과 요루바족의 영향을 받은 산테리아 등이 나타났고, 몇몇 요소들은 기독교와 혼합되기도 했다.
2014년 퓨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푸에르토리코인의 56%가 가톨릭 신자였고, 33%는 프로테스탄트, 8%는 무종교였다. CIA 월드 팩트북에서도 비슷한 수치를 제시하며, 프로테스탄트는 "대부분 오순절파"이고, 다른 종교는 2%, 무신론자는 1%라고 덧붙였다.
동방 정교회 공동체는 소규모이며, 시리아 정교회도 아과다에 소규모로 존재한다. 2017년에는 푸에르토리코에 최초의 동방 가톨릭교회가 설립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산후안에 성전을 봉헌했고, 약 2만 3천 명의 회원이 있다고 보고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2015년 기준 2만 5832명의 신도와 324개의 회중을 가지고 있었다.
푸에르토리코는 카리브해에서 가장 큰 유대교 공동체를 보유하고 있으며, 섬의 최초 회당인 Sha'are Zedeck은 1952년 미국 유대인에 의해 설립되었다.
2007년 푸에르토리코에는 약 5,000명의 무슬림이 있었으며, 섬 전역에 8개의 모스크가 있다. 바하이 공동체도 존재한다.
푸에르토리코의 불교는 니치렌, 선,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며, 여러 무신론자 활동가 및 교육 단체와 푸에르토리코 파스타파리아니즘 교회라는 무신론적 패러디 종교도 존재한다. ISKCON 사원은 크리슈나를 숭배하며, 산후안 대도시권에 두 개의 포교 센터가 있다.
타이노의 종교 의식은 소수의 옹호자들에 의해 어느 정도 재발견되고 재창조되었다. 아프리카 종교 전통의 일부 측면은 지속되었는데, 특히 요루바 신앙인 산테리아 또는 이파, 그리고 콩고에서 유래한 팔로 마욤베가 있다. 일부 토착 및 아프리카 관습과 신앙은 혼합되어 기독교와 결합되었다. 1940년 후아니타 가르시아 페라자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최초의 종교인 미타 공동체를 설립했다.
8.4. 교육
푸에르토리코에 세워진 첫 번째 학교는 1513년에 로마 가톨릭교 사제 알론소 만소가 세운 문법학교(Escuela de Gramática)다. 학생들은 무상으로 학교를 다녔고 라틴어와 문학, 역사, 과학, 예술, 철학, 신학 등을 배웠다.
푸에르토리코에서의 교육은 초등교육(초등학교 1~6학년)과 중등교육(중학교 및 고등학교 7~12학년), 고등교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5살부터 18살까지 의무 교육 대상이다. 2015년 기준으로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93.3%가 읽고 쓸 수 있었다. 2000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구의 60%가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았고, 18.3%가 학사 학위 이상을 받았다.
공립 대학인 푸에르토리코 대학교는 푸에르토리코에서 가장 크고 오래 된 대학이다. 가장 큰 사립 대학은 아나 G. 멘데스 대학교다.
9. 문화
현대 푸에르토리코 문화는 유럽(주로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아프리카, 그리고 최근에는 북미와 많은 남미 문화가 독특하게 혼합된 것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쿠바인과 도미니카인이 이 섬으로 이주했다.
푸에르토리코는 스페인으로부터 스페인어, 가톨릭 종교, 그리고 그들의 문화적, 도덕적 가치와 전통의 대부분을 받았다. 미국은 영어의 영향, 대학 시스템, 그리고 일부 공휴일과 관습을 추가했다. 1903년 3월 12일, 푸에르토리코 대학교가 3년 전 파하르도에 설립된 더 작은 기관인 "Escuela Normal Industrial"에서 분리되어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푸에르토리코 문화의 상당 부분은 음악의 영향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다른 문화가 지역 및 전통 리듬과 결합하여 형성되었다. 푸에르토리코 음악의 초기 역사에서 스페인과 아프리카 전통의 영향이 가장 두드러졌다. 카리브해와 북미 전역의 문화적 움직임은 푸에르토리코에 도달한 최근 음악적 영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푸에르토리코에는 많은 상징이 있지만, 마가 꽃만이 푸에르토리코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지정되었다. 푸에르토리코의 다른 대중적, 전통적 또는 비공식적 상징으로는 푸에르토리코 휘파람새, 카폭 나무, 코키 개구리, 지바로, 타이노 인디언, 그리고 세로 라스 테타스와 그 지바로 문화 기념비가 있다.
콩스툼브리스모에서 태어난 시인 마누엘 아론소의 『엘 히바로』는 푸에르토리코 크리오요 문학의 고전으로 여겨진다. 그 이후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1976년의 『마초 카마차의 구아라차』 등으로 알려진 루이스 라파엘 산체스가 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19세기 후반에 세잔의 영향을 받은 프란시스코 오헤르와 그의 대표작 「통야」가 있으며, 20세기에는 라파엘 투피뇨가 있다.
쿠바, 중앙아메리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도미니카 공화국, 에콰도르, 페루 등의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살사는 뉴욕으로 이주한 푸에르토리코 사람 테고 칼데론이 쿠바 음악의 전통을 이어받아 1970년대 후반 뉴욕에서 완성한 음악이다. 1980년대 파나마에서 탄생한 스패니시 레게가 1990년대 힙합과 봄바 등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레게톤 또한 푸에르토리코의 음악이다.
푸에르토리코에는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문화유산이 1곳 있다(자세한 내용은 라 포르탈레사와 산후안(푸에르토리코) 역사지구 항목 참조).
| |한국어 표기||스페인어 표기||비고 | |||
|---|---|---|---|
| 1월 1일 | 신정 | Día de Año Nuevo | |
| 1월 6일 | 주현절 | Día de Reyes | |
| 1월 11일 | 우제니오 마리아 데 오스토스 탄생일 | Natalicio de Eugenio María de Hostos | |
| 2월 셋째 일요일 | 대통령의 날 | Día de los Presidentes Natalicio de Washington | ※ |
| 3월 22일 | 노예 해방의 날 | Día de la Abolición de Esclavitud | |
| 부활절 전날 | 성금요일 | Viernes Santo | |
| 4월 16일 | 호세 디에고 탄생일 | Natalicio de José de Diego | |
| 5월 마지막 월요일 | 현충일 | Recordación de los Muertos de la Guerra | ※ |
| 7월 4일 | 미국 독립 기념일 | Día de la Independencia de los Estados Unidos Día de la Independencia | ※ |
| 7월 15일 | 루이스 무뇨스 리베라 탄생일 | Natalicio de Don Luis Muñoz Rivera | |
| 7월 25일 | 헌법 기념일 | Constitución del Estado Libre Asociado de Puerto Rico | |
| 7월 27일 | 호세 셀소 발보사 탄생일 | Natalicio de Dr. José Celso Barbosa | |
| 9월 첫째 월요일 | 노동절 | Día del Trabajo | ※ |
| 10월 둘째 월요일 | 콜럼버스의 날 | Día de la Raza Descubrimiento de América | ※ |
| 11월 11일 | 재향군인의 날 | Día del Veterano Día del Armisticio | ※ |
| 11월 19일 | 푸에르토리코 발견일 | Día del Descubrimiento de Puerto Rico | |
| 11월 넷째 목요일 | 추수감사절 | Acción de Gracias Día de Acción de Gracias | ※ |
| 12월 24일 | 크리스마스 이브 | Día de Noche Buena | |
| 12월 25일 | 크리스마스 | Día de Navidad Navidad Nacimiento del niñito Jesús Día del niño Jesús | |
| 12월 31일 | 섣달 그믐 | Año Viejo |
9.1. 스포츠
야구는 푸에르토리코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최초의 스포츠 가운데 하나이다. 푸에르토리코 베이스볼 리그는 푸에르토리코의 유일한 프로 야구 리그이다. 푸에르토리코를 연고로 하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구단은 없지만 2003년과 2004년에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푸에르토리코에서 경기를 펼친 적이 있다. 푸에르토리코인 야구 선수 가운데 로베르토 클레멘테(1973년), 오를란도 세페다(1999년), 로베르토 알로마(2011년)는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권투와 농구, 배구 역시 인기가 많다. 윌프레도 고메스와 맥윌리엄스 아로요는 AIBA 세계 권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푸에르토리코 농구 국가대표팀은 FIBA 아메리카 선수권 대회에서 세 차례, 굿윌 게임에서 한 차례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2004년 하계 올림픽 농구 남자부 예선 경기에서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을 92:73으로 이기면서 전미 농구 협회 소속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한 뒤로 처음으로 미국을 이긴 나라가 됐다.
권투 선수 후안 에반헬리스타 베네가스는 1948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해 동메달을 따면서 푸에르토리코 역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테니스 선수 모니카 푸이그는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모니카 푸이그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여자 단식 금메달을 획득하며 푸에르토리코에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주었다.
9.2. 음식
푸에르토리코 요리는 유럽(스페인), 아프리카, 그리고 원주민인 타이노족의 요리 전통과 관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기본 재료로는 곡물과 콩류, 허브와 향신료, 전분이 많은 열대 덩이줄기, 채소, 육류와 가금류, 해산물과 조개류, 그리고 과일이 있다. 주요 요리로는 몬폰고, 아로스 콘 간둘레스, 파스텔레스, 그리고 돼지고기구이 (또는 레촌)이 있다. 음료로는 마비와 피냐 콜라다가 있다. 디저트로는 플랜, 아로스 콘 둘체(달콤한 밥푸딩), 피라구아, 브라소 히타노, 템블레케, 폴보론, 그리고 둘체 데 레체가 있다. 1848년에 최초의 식당인 라 마요르키나가 산후안 구시가지에 문을 열었고, 이듬해에는 최초의 요리책이 나왔다. 19세기 후반에는 미국의 식재료와 요리법이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