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텀
1. 개요
리텀은 1202년 리 고종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209년 꽉복의 난으로 옹립되어 잠시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나, 쩐리에 의해 난이 평정된 후 기록에서 사라졌다. 꽉복의 난 당시 고종과 황태자는 귀화강으로 도주했으며, 이후 쩐리의 도움으로 고종이 수도로 복귀했다.
| 휘 | 忱 (침) |
|---|---|
| 성씨 | 이 (李, Yi) |
| 묘호 | 헌종 (憲宗, Heonjong) |
| 시호 | 선무예성영명인효대왕 (宣武睿聖英明仁孝大王, Seonmu Yeseong Yeongmyeong Inhyo Daewang) |
| 성 | 명 (命, Myeong) |
| 재위 기간 | 847년 ~ 859년 |
| 출생 | 810년 |
| 사망 | 859년 |
| 부친 | 이의 |
| 모친 | 곽씨 (당)|곽씨 |
| 배우자 | 왕귀비 (王貴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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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년 출생 -
장세걸
몽골 장유의 가신에서 남송 장군으로 망명한 장세걸은 남송 멸망 후 망명 정권을 이끌며 원나라에 저항하다 참파로 망명 중 폭풍으로 사망하여 남송 멸망의 상징으로 기록되었다. -
1202년 출생 -
사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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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미상 -
미와 와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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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미상 -
이태준
이태준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로, 섬세한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로 현실을 그린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여 주목받았으며, 특히 1930년대 〈달밤〉, 〈까마귀〉, 〈복덕방〉 등의 작품으로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월북 후 숙청되어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2. 생애
리 왕조 제7대 황제 고종의 차남으로, 티엔뜨자투이 17년(1202년) 8월에 태어났다. 1208년 팜주의 반란 진압 과정에서 팜빈지가 죽임을 당하자, 1209년 팜빈지 가문의 장수 꽉복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쩐리가 반란을 평정하면서 고종이 복위되었고, 이후 리텀의 행적은 불분명하다.
2.1. 출생과 초기 생애
티엔뜨자투이 17년(1202년) 8월에 출생하였다. 리텀의 탄생을 계기로 연호가 티엔뜨자투이에서 찌빈롱응(治平龍應)으로 개정되었다.
2.2. 꽉복의 난과 옹립
찌빈롱응 4년(1208년), 팜주가 반란을 일으키자 고종은 팜빈지에게 토벌을 명했다. 1209년, 고종이 팜주의 참언을 믿고 팜빈지와 그 아들을 죽였다. 이에 팜빈지의 가문 장수 꽉복이 고종에게 불만을 품고 병사를 이끌고 궁중에 침입하여 리텀을 황제로 옹립하였다. 리텀은 담지몽과 응우옌찐(Nguyễn Chính) 등에게 관직을 수여하였다. 고종과 황태자 하오삼(Hạo Sảm, 훗날의 혜종)은 귀화강(歸化江)으로 도주하였다.
2.3. 반란 진압과 이후 행적
같은 해, 쩐리(진리)가 군대를 이끌고 수도를 공격해 꽉복의 난을 평정하였다. 고종은 쩐리의 도움으로 수도로 복귀하였다. 반란 진압 이후 리텀의 행적은 기록되지 않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