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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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202년은 남송, 금나라, 고려 등 여러 국가에서 연호를 사용한 해이다. 제4차 십자군이 시작되었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여 라틴 제국이 세워졌으며, 몽골 제국이 서하를 침공했다. 또한, 잉글랜드 왕 존은 프랑스 왕 필리프 2세로부터 영지를 몰수당하고, 룸 술탄국과 조지아 왕국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 해에는 겐닌지가 건립되었고, 덴마크는 핀란드로 십자군을 보냈으며, 지진으로 인해 레반트 지역에 피해가 발생했다. 명종(고려)이 사망하고, 호엔슈타우펜의 쿤이군데, 보니파시오 2세 등이 태어났으며, 크누드 6세, 미에슈코 3세 등이 사망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202년 - 제4차 십자군
제4차 십자군은 13세기 초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주도로 결성되었으나 예루살렘 대신 베네치아의 이익을 위해 자다르를 공격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여 동서 교회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동로마 제국을 쇠퇴시킨 사건이다. - 빈 문단이 포함된 문서 - 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에 설치되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하며, 제주와 전주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있다. - 빈 문단이 포함된 문서 - 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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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호
3. 사건
- 제4차 십자군이 시작되었다.
- 고려 명종이 개경의 창락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 몽골 제국이 서하를 침공했다.
- 1월 6일 - 스웨덴의 칼 1세가 왕위에 올랐다.
- 2월 -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고, 비잔틴 제국을 무너뜨린 뒤 라틴 제국을 세웠다.
- 6월 -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잉글랜드에 교황령을 선포했다.
- 7월 27일 - 바시안 전투: 룸 술탄국의 술레이만 2세가 이끄는 셀주크 군대(약 15만 명)가 조지아 국경으로 진격, 타마르 여왕의 남편 다비드 소슬란 왕이 이끄는 6만 5천 명의 군대와 바시안에서 격돌했다.[9] 조지아군은 적 진영을 공격, 치열한 전투 끝에 셀주크 군대를 격파했다.[9] 술레이만 자신이 부상당하고 술탄 깃발을 잃자 셀주크 군대는 공황에 빠졌다.[9] 이 승리로 조지아는 이 지역 패권을 확보했다.[9]
- 리보니아 검의 형제 기사단이 리가 주교 알베르트에 의해 설립되어 테라 마리아나(중세 리보니아) 주민 대상 리보니아 십자군을 지원했다.[10]
- 덴마크군은 룬드 교구 대주교 안데르스 수네센과 그의 형제가 이끄는 십자군을 핀란드로 보냈다.[11]
- 알모하드 함대가 바누 가니야를 발레아레스 제도에서 몰아냈다.[12]
- 5월 20일 - 지진이 레반트 지역을 강타, 중세 이집트에서 북부 이라크까지 영향을 미쳤고, 팔레스타인, 레바논, 서부 시리아에서 아크레, 야파, 티레 등 십자군 도시 요새를 포함해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13]
3. 1. 동아시아
3. 2. 서방 세계
- 4월~5월 - 제4차 십자군 주력 부대가 베네치아에 집결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적은 약 12,000명(기사 4,000~5,000명, 병사 8,000명)만이 모였다. 이는 당초 예상했던 33,500명에 크게 못 미치는 숫자였다.[1] 여러 분견대는 각자 다른 경로로 성지로 향하기로 결정했다.[1] 플랑드르에서 출항한 십자군 함대는 발두인 9세 백작과 그의 형제 플랑드르의 앙리에게 보급품을 운송하며 마르세유에서 겨울을 보냈지만, 악천후로 인해 지연되었다.[1] 이후 남부 프랑스의 다른 분견대와 함께 중동으로 항해했다.[1]
- 여름 - 베네치아 석호와 아드리아 해 사이의 산 니콜로 디 리도에 주둔한 십자군은 엔리코 단돌로 총독으로부터 1201년에 합의된 금액을 전액 지불하지 않으면 갇히게 될 것이라는 위협을 받았다.[2] 십자군이 리도에서 병력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베네치아가 제공하기로 한 식량도 소진되었다.[2] 단돌로는 원정을 준비하기 위해 1년 동안 베네치아의 상업을 중단하여 재정적 재앙에 직면했고, 십자군 영주들은 단돌로에게 51000마르크밖에 제공할 수 없었다.[2]
- 9월 8일 - 엔리코 단돌로는 십자군에 합류하여 베네치아 군대를 이끌기로 결정했다. 이는 십자군 열정을 불러일으켜 약 21,000명에 달하는 제4차 십자군 최대 규모의 분견대가 되었다.[3] 그는 십자군이 헝가리와 크로아티아의 왕 헝가리의 임레에게 충성을 맹세한 '반역적인' 달마티아 도시 자라(오늘날의 자다르)를 점령하면 부채를 탕감해 주겠다고 선언했다.[3] 자라 제안은 십자군 내에서 불안감을 야기했고, 자라를 공격하는 자들을 파문하겠다고 위협한 교황 인노첸시오 3세를 분노케 했다.[3]
- 9월 - 비잔틴 왕자 알렉시우스 앙겔로스는 베로나에서 베네치아에 있는 십자군 지도자들에게 대표를 보냈다.[4] 그는 그리스 정교회를 교황에게 복종시키고 십자군에게 200000마르크와 1년 치의 식량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4] 알렉시우스는 또한 원정에 기병 10,000명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4] 그 대가로 그는 십자군이 그의 삼촌이자 비잔틴 황제인 알렉시우스 3세 앙겔로스를 전복시키기를 원했다.[4]
- 11월 10일~24일 - 자다르 공방전: 몬페라토의 보니파스 휘하의 십자군은 달마티아의 자라를 포위하고 정복했다.[5]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이러한 행동을 금지하고 파문을 위협하는 서한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자라의 주요 시민들은 가톨릭 신앙을 표명하며 외벽에 십자가 깃발을 내걸었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군은 도시를 함락시키고 약탈하며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다.[5]
- 겨울 -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자라에서 겨울을 나는 베네치아인들과 함께 십자군 군대를 파문했다.[6] 일부 고위 인사들을 포함한 많은 십자군들은 제4차 십자군을 포기하거나 각자 성지로 향했다.[6] 그러나 다수는 자라에 남아 있었고, 군대는 환영할 만한 증원을 받았다.[6] 겨울 동안 알렉시우스 앙겔로스와의 협상이 계속되었다.[6]
- 봄 -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는 잉글랜드 국왕 존을 파리로 소환하여 루지냥에 대한 혐의에 대해 답변하도록 했다.[7] 4월 28일, 필리프의 법정에 출두하지 않자 존은 '반역자'로 선언되고, 아키텐, 푸아투, 앙주 지역을 몰수당했다.[7] 필리프는 존과 루지냥(반역죄로 기소됨) 사이의 정치적 문제를 중재하려 했지만 존은 이를 무시했다.[7] 이 땅은 브르타뉴의 아르튀르에게 주어졌다.[7] 필리프는 아르튀르의 잉글랜드 왕위 계승 주장을 지지하고, 그의 4살 된 딸 마리와 약혼시킨다.[7]
- 8월 1일 - 미르보 전투: 루지냥의 지원을 받은 브르타뉴의 아르튀르는 미르보 성을 포위하여 아키텐의 엘레오노르를 안에 가두었다.[8] 존은 어머니를 구출하기 위해 구출 작전을 시작하고, 용병 군대를 이끌고 브르통-루지냥 군대를 격파했다.[8] 아르튀르는 윌리엄 드 브라오즈에게 붙잡혀 존에게 넘겨져 노르망디의 팔레즈 성에 감금된다.[8] 다른 많은 중요한 기사들이 포획되어 잉글랜드로 보내졌고(존은 그들을 함부로 대하고 지하 감옥에 가두었다).[8]
- 봄 -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베르톨트 5세 폰 체링겐 공작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신성 로마 황제를 평가하고 즉위시킬 권리를 재확인한다.
- 루에다 수도원이 아라곤 왕국 (스페인)의 사스타고에서 시토회에 의해 설립되었다.
- 3월 - 잉글랜드 왕 존이 프랑스 왕 필리프 2세로부터 프랑스 왕국 내의 영지를 몰수하라는 선고를 받다.
4. 탄생
- 2월/3월 – 호엔슈타우펜의 쿤이군데, 보헤미아 여왕 (1248년 사망)
- 7월 – 보니파시오 2세 ("거인"), 테살로니카 왕 (1253년 사망)
- 11월 1일 – 엔니, 일본 불교 승려이자 스승 (1280년 사망)
- 몰리나의 알폰소, 레온 및 카스티야의 왕자 (1272년 사망)
- 콘스탄티노플의 마르가레테, 플랑드르 백작 (1280년 사망)
- 불로뉴의 마틸다 2세, 포르투갈 왕비 (1259년 사망)
- 모리 스에미츠, 일본 귀족이자 사무라이 (1247년 사망)
- 시톈쩌, 중국 장군이자 재상 (1275년 사망)
- 시마즈 타다토키, 가마쿠라 시대의 무장, 시마즈 씨의 제2대 당주 (1272년 사망)
- 소세이, 가마쿠라 시대의 도다이지 승려 (1278년 사망)
- 타케노고쇼, 가마쿠라 막부 제4대 쇼군 후지와라노 요리츠네의 정실 (1234년 사망)
- 마틸드 드 당마르탱, 불로뉴쉬르메르의 여백작, 포르투갈 국왕 아폰수 3세의 왕비 (1260년 사망)
- 대략적인 날짜 – 친 지샤오, 중국 수학자이자 작가 (1261년 사망)
5. 사망
- 명종 - 고려의 제19대 국왕 (* 1131년)
- 1월 9일 - 비르예르 브로사, 스웨덴 귀족이자 기사
- 1월 12일 - 후지와라노 타시, 일본 황후 (* 1140년)
- 1월 19일 - 후지와라 타시, 고노에 천황의 황후, 이후 니조 천황의 비 (* 1140년)
- 2월 8일 - 미나모토노 요시시게,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의 무장 (* 1114년)
- 3월 3일 - 이나니와 도키사다,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의 관인 (* 생년 미상)
- 3월 9일 - 스베레 시구르드손, 노르웨이의 국왕
- 3월 13일 - 미에슈코 3세, 폴란드 공작 (* 1126년)
- 3월 30일 - 피오레의 요아킴, 이탈리아 신학자 (* 1135년)
- 4월 5일 - 제프리 3세, 프랑스 귀족이자 기사
- 4월 13일 - 후지와라 나리쓰네,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의 공경 (* 1156년)
- 5월 7일 - 하멜린 드 와렌, 노르만 귀족 (* 1130년)
- 5월 10일 - 케다 술탄 무아잠 샤, 말레이시아 술탄
- 6월 16일 - 에이머, 앙굴렘 백작
- 7월 6일 - 오쓰키 히로후사,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의 관인 (* 생년 미상)
- 7월 7일 - 로저 드 보몽, 잉글랜드 재상 및 스코틀랜드 주교
- 8월 8일 - 시몬 1세, 독일 귀족이자 기사
- 8월 9일 - 자쿠렌,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의 가인, 승려 (* 1139년)
- 8월 10일 - 울리히 2세, 독일 귀족이자 기사
- 9월 7일 - 화이트 핸즈의 윌리엄, 프랑스 추기경 (* 1135년)
- 9월 13일 - 슈카쿠 법친왕,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의 황족, 법친왕 (* 1150년)
- 11월 7일 - 미나모토노 미치치카,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의 공경 (* 1149년)
- 11월 12일 - 크누드 6세, 덴마크 국왕 (* 1163년)
- 12월 3일 - 퀘르푸르트의 콘라트, 독일 주교
- 키아티나의 알베르토, 이탈리아 수석 사제이자 성인 (* 1135년)
- 앙드레 드 쇼비니, 프랑스 기사 (* 1150년)
- 페장사게의 베르나르, 프랑스 귀족 (* 1155년)
- 블롱델 드 넬, 프랑스 트루베르 (* 1155년)
- 팔레르모의 유게니우스, 이탈리아 제독이자 시인 (* 1130년)
- 조프루아 드 동종, 프랑스 대수도원장이자 기사
- 하마드 알-하라니, 아이유브 왕조의 학자, 시인, 여행가
- 자쿠렌, 일본 불교 승려이자 시인 (* 1139년)
- 고지주, 일본 귀족 부인이자 ''와카'' 시인 (* 1121년)
- 미나모토노 요시시게, 일본 사무라이 (* 1135년)
- 스베레 시구르드손, 노르웨이 왕 (* 1149년)
- 히키니의 삼녀, 미나모토노 요리이에의 유모 (* 생년 미상)
- 후지와라 나리요리,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시대의 공경 (* 1136년)
- 1202/03 – 릴의 알랭, 프랑스 신학자이자 작가 (* 1128년경)
참조
[1]
서적
The Fourth Crusade 1202–04. The betrayal of Byzantium
Osprey: Campaign - Nr. 237
[2]
서적
The Fourth Crusade 1202–04. The betrayal of Byzantium
Osprey: Campaign - Nr. 237
[3]
서적
The Fourth Crusade 1202–04. The betrayal of Byzantium
Osprey: Campaign - Nr. 237
[4]
서적
The Fourth Crusade 1202–04. The betrayal of Byzantium
Osprey: Campaign - Nr. 237
[5]
서적
The Fourth Crusade 1202–04. The betrayal of Byzantium
Osprey: Campaign - Nr. 237
[6]
서적
The Fourth Crusade 1202–04. The betrayal of Byzantium
Osprey: Campaign - Nr. 237
[7]
서적
The Capetians: Kings of France 987–1328
Hambledon Continuum
[8]
서적
King Joh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9]
서적
History of the Georgian Nation
Tbilisi: Georgia
[10]
서적
God's War: A New History of the Crusade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11]
서적
Muinaisuutemme jäljet
Gaudeamus
[12]
서적
La mer et les musulmans d'Occident VIIIe-XIIIe siècle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3]
서적
The Fourth Crusade 1202–04. The betrayal of Byzantium
Osprey: Campaign - Nr.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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