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디 (니제르)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마라디는 니제르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하우사족의 카치나의 일부였다가 19세기에 독립했다. 19세기 초 소코토 칼리프 국가의 부상으로 인해 여러 하우사 전통 국가들이 형성되었으며, 프랑스 식민 통치 하에서 지역 행정 중심지이자 땅콩 집산지로 성장했다. 1960년 니제르 독립 당시 하우사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2012년 인구 조사에서 267,249명으로 니제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주요 민족은 하우사족이며,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가 주를 이루지만 기독교 교회와 사찰도 존재한다. 마라디는 니제르 남중부의 주요 운송, 무역, 농업 중심지이며, 대학교와 기술 대학교, 자유 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니제르의 도시 - 타우아
타우아는 니제르 북부 사하라 사막의 면화, 땅콩 집산지이자 투아레그족, 하우사족 교역 중심지로, 17세기 두 마을에서 시작되어 여러 민족의 이주와 신앙 피난으로 성장했지만, 낮은 인간개발지수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두 개의 도시 자치구로 나뉘어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성되고, 광물 자원과 교통망을 갖추고 '츄쿠' 치즈 생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 니제르의 도시 - 아가데즈
아가데즈는 니제르 사하라 사막에 위치한 도시로, 사하라 종단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2013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우라늄 수송의 중심지이다.
| 마라디 (니제르) - [지명]에 관한 문서 | |
|---|---|
| 지도 | |
| 기본 정보 | |
| 공식 명칭 | 마라디 |
| 다른 이름 | (없음) |
![]() | |
| 상위 행정 구역 | 마라디 주 마라디 현 마라디 도시 코뮌 |
| 위치 | 북위 13° 29′ 30″ 동경 7° 5′ 47″ |
| 해발 고도 | 385m |
| 면적 (육지) | 74km² |
| 인구 (2012년) | 267,249명 |
| 정치 | |
| 정부 형태 | 현 및 주 의회 소재지, 도시 코뮌 |
| 역사 | |
| 설립 | (정보 없음) |
2. 역사
마라디는 원래 하우사족의 카치나에 속한 도시였으나, 19세기에 독립했다.[1] 19세기 초, 소코토 칼리프 국가가 부상하면서 통치자와 귀족들이 마라디로 피난 와 하우사 전통 럼프 국가를 형성했다.[2] 카치나 통치 계급은 이 지역을 "사르킨 카치나 마라디"가 통치하는 망명 카치나 국가로 여겼다. 마라디는 서쪽의 고비르, 동쪽의 진데르를 기반으로 한 다마가람 술탄국, 남쪽의 소코토의 제약을 받았다.
1899년 프랑스군이 도착하여 불레-샤노인 원정대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이후 회복되어 1950년대까지 지역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20세기 전반기 도시 확장은 1911년과 1950년 사이 인구가 거의 두 배로 증가하는 등 미미했다.[3] 1945년 우기 말 굴비 N'마라디강이 범람하여 침수 피해를 입자, 프랑스 식민 행정부는 도시를 격자 시스템으로 재정비했다.[3] 프랑스는 땅콩 등 현금 작물 농업을 육성하여 마라디를 지역 상업 중심지로 만들었다. 1950년대 이후 경제 성장에 힘입어 1950년 8,661명이던 인구가 1983년에는 80,000명으로 증가했다.[3]
1960년 니제르 독립 당시 마라디는 동쪽의 진데르와 경쟁하며 하우사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2000년에는 니아메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국제 패션 페스티벌(FIMA) 개최에 반대하는 무슬림 단체의 폭동으로 비이슬람 건물들이 파괴되었다.[2][4]
2. 1. 19세기 이전
마라디는 원래 하우사족의 카치나의 일부였지만, 19세기에 독립했다.[1] 19세기 초부터 마라디는 소코토 칼리프 국가의 부상으로 인해 도망친 통치자와 귀족들이 형성한 여러 하우사 전통 럼프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2] 카치나 통치 계급의 구성원들은 이 지역을 "사르킨 카치나 마라디"가 통치하는 망명 카치나 국가의 본거지로 계속 주장했다. 마라디는 서쪽의 더 강력한 망명 국가인 고비르, 동쪽의 진데르를 기반으로 한 다마가람 술탄국, 남쪽의 소코토에 의해 제약을 받았다. 1809년에 카치나가 우스만 단 포디오의 지하드에 패배하여 수도 카치나가 소코토 제국에 점령되자, 카치나 왕가는 카치나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진 마라디로 북천하여 재건했다. 카치나는 마라디 서쪽에 본거지를 둔 하우사 제국의 하나인 고비르, 동쪽에 있던 다마가람(잔데르)과 공동 전선을 펼치며 남쪽의 소코토 제국과 100년 가까이 소규모 충돌을 반복했다.[17]2. 2. 19세기: 독립과 소코토 칼리프 국가와의 갈등
마라디는 원래 하우사족의 카치나의 일부였지만, 19세기에 독립했다.[1] 19세기 초부터 마라디는 소코토 칼리프 국가의 부상으로 인해 도망친 통치자와 귀족들이 형성한 여러 하우사 전통 럼프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2] 카치나 통치 계급의 구성원들은 이 지역을 "사르킨 카치나 마라디"가 통치하는 망명 카치나 국가의 본거지로 계속 주장했다. 마라디는 서쪽의 더 강력한 망명 국가인 고비르, 동쪽의 진데르를 기반으로 한 다마가람 술탄국, 남쪽의 소코토에 의해 제약을 받았다. 1809년에 카치나가 우스만 단 포디오의 지하드에 패배하여 수도 카치나가 소코토 제국에 점령되자, 카치나 왕가는 카치나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진 마라디로 북천하여 여기서 재건했다. 카치나는 이와 마찬가지로 북천하여 마라디 서쪽에 본거지를 둔 하우사 제국의 하나인 고비르, 그리고 동쪽에 있던 다마가람(잔데르)과 공동 전선을 펼치며 남쪽의 소코토 제국과 100년 가까이 소규모 충돌을 반복했다.[17]2. 3. 1899년 ~ 1960년: 프랑스 식민 통치
1899년 프랑스가 도착하면서 불레-샤노인 원정대에 의해 도시가 파괴되었지만, 이후 회복되어 1950년대까지 중요한 지역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1]20세기 전반기 도시의 확장은 1911년과 1950년 사이에 인구가 거의 두 배로 증가하는 등 미미했다.[3] 1945년까지 고대 도시 마라디는 나이지리아에서 발원하는 계절성 수로인 굴비 N'마라디에 접해 있는 계곡에 위치해 있었다. 대략 원형의 도시 지역은 네 개의 문이 있는 진흙 벽으로 보호되었고; 이 고대 도시는 1945년 우기 말에 이 강에 의해 침수되었다. 프랑스 식민 행정부는 향후 침수를 피하기 위해 도시 레이아웃을 조정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도시는 전통적인 불규칙한 레이아웃을 버리고 격자 시스템을 선택했다.[3] 프랑스는 주로 땅콩과 같은 현금 작물 농업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이는 점점 더 도시를 중요한 지역 상업 중심지로 만들었다. 1950년대 이후 경제 성장에 힘입어 마라디는 인구가 증가하여 1950년 8,661명에서 1983년에는 80,000명으로 증가했다.[3] 1960년 니제르의 독립 당시 마라디는 동쪽에 있는 더 큰 전통 하우사 중심지인 진데르와 경쟁하며 하우사 문화의 중심지였다.
2. 4. 1960년 이후: 독립과 발전
마라디는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발전했는데, 1911년과 1950년 사이에 인구가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3] 1945년까지 마라디는 나이지리아에서 발원하는 계절성 수로인 굴비 N'마라디에 접해 있는 계곡에 위치해 있었으며, 대략 원형의 도시 지역은 네 개의 문이 있는 진흙 벽으로 보호되었다. 그러나 1945년 우기 말에 이 강이 범람하여 도시가 침수되자, 프랑스 식민 행정부는 향후 침수를 막기 위해 도시 레이아웃을 조정하면서 전통적인 불규칙한 레이아웃 대신 격자 시스템을 선택했다.[3] 프랑스는 땅콩과 같은 현금 작물 농업을 육성하여 마라디를 중요한 지역 상업 중심지로 만들었다. 1950년대 이후 경제 성장에 힘입어 마라디의 인구는 1950년 8,661명에서 1983년에는 80,00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3]1960년 니제르 독립 당시 마라디는 동쪽에 있는 더 큰 전통 하우사 중심지인 잔데르와 경쟁하며 하우사 문화의 중심지였다. 식민지 시대에는 지역 행정의 중심지이자 땅콩 집산지였고, 독립 이후 북부 나이지리아와의 교역으로 인구 증가가 가속화되었다.[17]
2000년에는 니아메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국제 패션 페스티벌(FIMA) 개최에 반대하는 무슬림 단체에 의해 도시에서 폭동이 발생하여 매춘 업소와 술집과 같은 비이슬람 건물들이 파괴되었다.[2][4]
2. 5. 2000년대: 종교 갈등
2000년, 니아메에서 열린 아프리카 국제 패션 페스티벌(FIMA) 개최에 반대하는 무슬림 단체들이 마라디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이들은 매춘 업소와 술집 등 비이슬람적인 건물들을 파괴했다.[2][4]3. 지리
마라디는 마라디 I, 마라디 II, 마라디 III의 세 도시 자치구로 나뉜다. 마라디는 니제르 남중부 전역에서 오는 도매, 소매, 농산물과 나이지리아와의 국경 간 무역이 이루어지는 대규모 일일 시장인 "그랑마르셰(Grand-marché)"를 중심으로 한다.[5] 도시의 일부 지역으로는 북쪽의 자리아(Zaria)와 사본 가리(Sabon Gari), 서쪽의 모코야(Mokoya), 단 굴레(Dan Gouleye), 바갈람(Bagalam), 얀다카(Yandaka), 마라다와(Maradawa), 하사오(Hassao), 리만치(Limantchi) 등이 있다.[2]
4. 기후
마라디는 연중 기온이 약 14.4°C에서 약 40.0°C 사이이며, 약 11.7°C 이하 또는 약 41.7°C 이상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덥고, 대부분 흐린 우기와 바람이 불고, 부분적으로 구름이 많은 건기를 겪습니다.[6][7][8][9][10]
NOAA에서 제공한 마라디 공항의 1961년부터 1990년까지의 기후 데이터는 다음과 같습니다.[11]
| 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연평균 |
|---|---|---|---|---|---|---|---|---|---|---|---|---|---|
| 평균 최고 기온 (℃) | 35°C | 38.3°C | 41.3°C | 42.9°C | 42.4°C | 40.8°C | 36.9°C | 34.9°C | 37.3°C | 38.6°C | 37.3°C | 35.6°C | - |
| 평균 기온 (℃) | 30.2°C | 33.6°C | 37°C | 40°C | 39.7°C | 37°C | 33.2°C | 31.7°C | 33.8°C | 36.3°C | 33.9°C | 31.1°C | 34.8°C |
| 일 평균 기온 (℃) | 21.6°C | 24.6°C | 28.4°C | 32°C | 32.7°C | 31°C | 28.2°C | 27°C | 28.2°C | 28.4°C | 25.2°C | 22.3°C | 27.4°C |
| 평균 최저 기온 (℃) | 13°C | 15.6°C | 19.8°C | 24°C | 25.7°C | 25°C | 23.2°C | 22.2°C | 22.5°C | 20.5°C | 16.5°C | 13.5°C | 20.1°C |
| 평균 강수량 (mm) | 0mm | 0mm | 0.3mm | 4.1mm | 18.9mm | 63.5mm | 149mm | 175.1mm | 74.9mm | 6.6mm | 0mm | 0mm | 491.3mm |
| 평균 일조 시간 | 282.1 | 263.2 | 269.7 | 261.0 | 291.4 | 279.0 | 257.3 | 235.6 | 255.0 | 285.2 | 282.0 | 279.0 | 3248.5 |
5. 인구
(인구 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