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나가 아키라 (1948년)
1. 개요
마쓰나가 아키라 (1948년)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와세다 대학교 축구부 감독이다. 그는 히타치 제작소 (현 가시와 레이솔)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72년과 1973년 일본 사커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1972년부터 1975년까지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4년 연속 선정되었다. 1976년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며 10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 이름 | 마쓰나가 아키라 |
|---|---|
| 원어 이름 | 松永 章 |
| 로마자 표기 | Matsunaga Akira |
| 출생일 | 1948년 8월 8일 |
| 출생지 | 시즈오카현 |
| 신장 | 168cm |
| 포지션 | 공격수 |
| 유소년 클럽 | 후지에다 히가시 고등학교 (1964–1966) 와세다 대학 (1967–1970) |
|---|---|
| 소속 클럽 | 히타치 (1971–1982) |
| 출전 횟수 | 176 |
| 득점 횟수 | 82 |
| 국가대표팀 | 일본 (1973–1976) |
|---|---|
| 출전 횟수 | 10 |
| 득점 횟수 | 2 |
| 팀 | 히타치 |
|---|---|
| 일본 사커 리그 | 우승: 1972 준우승: 1973, 1982 |
| JSL컵 | 우승: 1976 준우승: 1980 |
| 천황배 | 우승: 1972, 1975 준우승: 1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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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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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1948년 출생 -
시아오시 투포우 5세
시아오시 투포우 5세는 통가의 제23대 국왕으로, 외무장관을 역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다 2006년 즉위 후 민주주의 개혁을 추진하고 권력을 이양하는 등 통가의 정치 개혁에 힘썼으나 결혼하지 않아 왕위 계승권이 있는 자녀는 없었다. -
1948년 출생 -
김희옥
김희옥은 검사 출신 법조인으로서 법무부 차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하고 동국대학교 총장,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 KBL 프로농구연맹 총재, 한국프로스포츠협회 회장 등을 지낸 대한민국의 교육자, 스포츠인, 정치인이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2. 선수 경력
후지에다히가시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인 1967년, 주장으로서 팀을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 전국 고등학교 종합 체육 대회, 국민 체육 대회 3관왕으로 이끌었으며, 일본 유스 대표로도 선발되었다. (이때 공식전 기록은 72전 70승 2무였다.) 당초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나고야 상호 은행 취업이 내정되었으나, 주변의 반대로 와세다 대학교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1971년, 와세다대 코치였던 고교 영진의 도움으로 일본 사커 리그의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 입단했다. 히타치에서는 감독 다카하시 히데토라의 지도 아래 '달리는 히타치'로 불린 팀의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며 1972년 리그 첫 우승 등에 기여했다. 당시 최고의 공격수였던 가마모토 구니시게와 치열한 득점왕 경쟁을 벌였으며, 1974년에는 도요타 자동차 공업 축구부와의 경기에서 한 경기 6골을 기록하는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었다. 1973년에는 일본인 최초로 브라질의 SE 파우메이라스로 축구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1973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나, 같은 포지션에 가마모토 구니시게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고 중요한 시기에 골절 부상을 당하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A매치 출전은 10경기에 그쳤다.
1982년 선수 생활을 마감했으며, 일본 사커 리그 통산 82골은 가마모토 구니시게, 우스이 히로유키에 이어 역대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1. 클럽 경력
와세다 대학교 졸업 후 1971년 히타치에 입단했다. 1972년, 소속팀은 1972년 일본 사커 리그와 천황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1975년 천황배와 1976년 JSL 컵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마쓰나가는 1970년대 초반 많은 골을 넣으며 당시 최고 공격수 중 한 명이었던 가마모토 구니시게와 득점왕 경쟁을 벌였다. 그는 1972년과 1973년에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1972년부터 1975년까지 4년 연속으로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1982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했으며, 일본 사커 리그에서 통산 176경기에 출전하여 82골을 기록했다.
주요 성적
* 히타치
일본 사커 리그 디비전 1
* 우승 (1): 1972
* 준우승 (1): 1973
JSL컵
* 우승 (1): 1976
* 준우승 (1): 1980
천황배
* 우승 (2): 1972, 1975
*** 준우승 (1): 1973
시즌별 기록
2.2. 국가대표 경력
1973년 5월, 마쓰나가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어 1974년 월드컵 예선에 참가했다. 그는 이 예선 중 5월 22일에 열린 홍콩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1976년 하계 올림픽 예선에도 출전했으며, 이 예선 경기가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되었다. 마쓰나가는 1976년까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10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연도별 A매치 출장 기록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장 | 득점 |
| 1973 | 3 | 0 |
| 1974 | 0 | 0 |
| 1975 | 0 | 0 |
| 1976 | 7 | 2 |
| |10||2 |
국가대표팀 주요 경기 기록
| 날짜 | 개최지 | 상대 | 결과 | 대회 |
|---|---|---|---|---|
| 1973년 5월 22일 | 대한민국 서울 | 홍콩 | 0-1 패 | 1974년 월드컵 예선 |
| 1973년 5월 26일 | 대한민국 서울 | 이스라엘 | 0-1 패 (연장) | 1974년 월드컵 예선 |
| 1973년 6월 23일 | 대한민국 서울 | 대한민국 | 0-2 패 | 한일 정기전 |
| 1976년 1월 25일 | 일본 도쿄도 | 불가리아 | 1-3 패 | 아사히 국제 축구 대회 |
| 1976년 1월 28일 | 일본 오사카부 | 불가리아 | 1-1 무 | 아사히 국제 축구 대회 |
| 1976년 2월 1일 | 일본 도쿄도 | 불가리아 | 0-3 패 | 아사히 국제 축구 대회 |
| 1976년 3월 17일 | 일본 도쿄도 | 필리핀 | 3-0 승 | 1976년 올림픽 예선 |
| 1976년 3월 27일 | 대한민국 서울 | 대한민국 | 2-2 무 | 1976년 올림픽 예선 |
| 1976년 3월 31일 | 대한민국 서울 | 이스라엘 | 0-3 패 | 1976년 올림픽 예선 |
| 1976년 4월 11일 | 이스라엘 텔아비브 | 이스라엘 | 1-4 패 | 1976년 올림픽 예선 |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3. 지도자 경력
* 와세다 대학 축구부 감독
4. 수상 내역
해당 섹션의 내용은 하위 섹션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중복을 피하기 위해 별도의 내용을 작성하지 않는다.
4.1. 클럽
와세다 대학교 졸업 후 1971년 히타치에 입단했다. 1972년, 소속팀은 1972년 일본 사커 리그와 천황배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1975년 천황배와 1976년 JSL 컵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1970년대 초반에는 많은 골을 넣으며 가마모토 구니시게와 득점왕 경쟁을 벌였다.
마쓰나가는 1982년에 은퇴하기까지 리그에서 176경기에 출전하여 82골을 기록했다. 특히 1972년과 1973년에는 득점왕을 차지했고, 4년 연속(1972년~1975년)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히타치 소속으로 거둔 주요 성적은 다음과 같다.
* 일본 사커 리그 디비전 1 : 우승 (1972), 준우승 (1973)
* JSL컵 : 우승 (1976), 준우승 (1980)
* 천황배 : 우승 (1972, 1975), 준우승 (1973), 4강 (1971, 1979, 1980)
4.2. 개인
* 일본 사커 리그 디비전 1 득점왕: 1972, 1973
5. 기타
* 아버지의 직장 관계로 고등학교 졸업 후 나고야 상호 은행에 취업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주변의 반대로 와세다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재학 중 나고야 상호 은행 축구부는 약화되었고, 대학 졸업 시기에는 입단 제의를 받지 못했다. 이 팀은 이후 2부 리그로 강등된 뒤 해체되었다.
* 취업 시 본인은 팬이었던 토요 공업 축구부 입단을 희망했지만, 와세다 대학의 한국 원정 때 코치로 동행했던 다카하시 에이테츠의 도움을 받아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 입단하게 되었다.
* 1973년에는 일본인 최초로 브라질의 SE 파우메이라스로 축구 유학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 JSL 선발팀 소속으로 1974년에 1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 1987년 자서전 『마지막에 이기는 축구 하이에나로 불린 득점왕』(니치보 출판사)을 출간했다.
6.1. 클럽
마쓰나가는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1971년 일본 사커 리그(JSL)의 히타치 축구단에 입단했다. 1972년, 히타치는 JSL과 천황배에서 모두 우승하며 2관왕을 달성했다. 마쓰나가는 이 해 12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베스트 일레븐에도 처음 선정되었다.
1973년에도 11골로 2년 연속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1975년까지 4년 연속으로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다. 1970년대 초반에는 가마모토 구니시게와 치열한 득점 경쟁을 벌이며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활약했다. 소속팀 히타치는 1975년 천황배 우승과 1976년 JSL 컵 우승을 추가했다.
마쓰나가는 1982년 은퇴할 때까지 히타치에서만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일본 사커 리그 통산 176경기에 출전하여 82골을 기록하는 뛰어난 성과를 남겼다.
시즌별 리그 기록
6.2. 국가대표팀
1973년 5월, 마쓰나가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974년 월드컵 예선에 참가했다. 이 예선에서 그는 5월 22일 홍콩과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그는 또한 1976년 하계 올림픽 예선에도 출전했다. 이 예선 경기는 그의 일본 대표팀 마지막 경기였다. 그는 1976년까지 일본 대표팀에서 10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 연도 | 출장 | 득점 |
|---|---|---|
| 1973 | 3 | 0 |
| 1974 | 0 | 0 |
| 1975 | 0 | 0 |
| 1976 | 7 | 2 |
| |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