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사다나가 (1791년)
1. 개요
마쓰다이라 사다나가는 1791년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812년 아버지의 은거로 시라카와 번의 가독을 상속받았으며, 1823년 구와나 번으로 이봉되었다. 구와나 번 재정의 어려움 속에서 가신의 지행 삭감을 실시했으나, 에도 상저택 화재와 테츠다이 부신으로 재정난을 겪었다. 1838년 에도에서 48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장남 마쓰다이라 사다카즈가 가독을 이었다.
| 씨명 | 히사마쓰 마쓰다이라 가문사다카쓰 계통 |
|---|---|
| 이름 | 마쓰다이라 사다나가 |
| 이명 | 타로마루 (유명) 사다나가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 생몰 | 출생: 간세이 3년 9월 13일 (1791년10월 10일) 사망: 덴포 9년 10월 18일 (1838년12월 4일) |
| 묘소 | 도쿄도고토구시라카와의 료간지 미에현구와나시 동방의 쇼겐지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관위 | 에치젠노카미 종4위하 좌근위권소장 시키부다유 |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나리 도쿠가와 이에요시 |
| 번 | 무쓰시라카와번 번주 이세구와나번 번주 |
| 씨족 | 히사마쓰 마쓰다이라 가문사다카쓰 계통 |
|---|---|
| 부모 | 아버지: 마쓰다이라 사다노부 어머니: 가토 야스타케의 딸, 하야부사히메 |
| 형제자매 | 사다나가 사나다 유키쓰라 후쿠히메 세이쇼인 호주인 스히메 신 마쓰다이라 데루타케 정실 |
| 배우자 | 정실: 하치스카 하루아키의 딸, 쓰나히메 측실: 즈이신인 |
| 자녀 | 사다카즈 이타쿠라 가쓰키요 도키 요리유키 지카노부 이시카와 무네토시 정실 |
| 특기 사항 | 증조부는 도쿠가와 요시무네 |
| 시라카와번 | 전임: 마쓰다이라 사다노부 후임: 아베 마사노리 대수: 4대 임기: 1812년 ~ 1823년 |
|---|---|
| 구와나번 | 전임: 마쓰다이라 다다타카 후임: 마쓰다이라 사다카즈 대수: 1대 임기: 1823년 ~ 1838년 (재봉) |
-
구와나번주 -
혼다 다다카쓰
혼다 다다카쓰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긴 도쿠가와 사천왕 중 한 명이며, 뛰어난 무용과 용맹함으로 불패의 무장으로 이름을 떨치며 이에야스의 천하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
구와나번주 -
혼다 다다마사 (1575년)
혼다 다다마사(1575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신 혼다 타다카츠의 아들로, 오다와라 정벌과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하고 구와나번 번주와 히메지성 성주를 역임했으며, 1631년 히메지에서 사망했다. -
1838년 사망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는 프랑스 출신의 시인이자 식물학자이며, 프로이센 군 복무와 세계 일주 탐험을 거쳐 소설 《페터 슐레미흘의 기이한 이야기》를 대표작으로 남겼고, 식물학 연구와 시 창작으로 명성을 얻었다. -
1838년 사망 -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는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시대, 왕정 복고 시기를 거치며 활약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뛰어난 외교 능력으로 프랑스의 국익을 지키고 19세기와 20세기 외교의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했다. -
시라카와번주 -
혼다 다다히라
혼다 다다히라는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혼다 타다요시의 장남으로 태어나 우쓰노미야 번과 고리야마 번의 번주를 역임하며 연공 감면, 백성 구휼, 성하 마을 신설, 번찰 발행 등 번정 개혁을 시도했다. -
시라카와번주 -
아베 마사키요 (1850년)
2. 생애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의 아들로 태어나 1812년 아버지의 은거로 시라카와번주가 되었다. 1823년 구와나번으로 옮겨갔으며, 재정난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번을 다스리다가 1838년 에도에서 사망했다.
2.1. 출생과 가독 상속
시라카와번주 마쓰다이라 사다노부와 정실 하야히메의 아들로, 에도성니시노마루 저택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적 이름은 타로마루였다. 11일 전에 형(후의 사나다 유키츠라)이 태어났지만, 측실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지로마루로 불리며 차남으로 취급되었고, 정실의 아들인 타로마루(사다나가)가 장남이자 적자로 여겨졌다.
분카 9년(1812년) 아버지의 은거에 따라 가독을 상속했다.
2.2. 삼봉 교체와 구와나 번 시대
분세이 6년(1823년) 3월 24일, 사다나가는 구와나로, 구와나의 마쓰다이라 타다타카를 무사시국오시로, 오시의 아베 테츠마루를 시라카와로 옮기는 삼봉 교체가 명령되었다. 이는 은거 후에도 생존해 있던 아버지 사다노부가 선조의 땅으로 국을 바꾸고 싶어 했던 희망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분세이 4년(1821년), 시라카와 번에 명령되었던 에도만 경비의 부담을 견딜 수 없게 된 사다나가는, 에도만과 가깝고 거의 같은 규모의 시모사국사쿠라번으로의 전봉을 신청하여 사쿠라 번주 홋타 마사치카와 분쟁이 있었다. 그 결과, 징벌로서 사다나가를 구와나로 옮기는 대신 시라카와 번의 후임으로 사쿠라 번에 에도만 경비를 맡게 했다는 설도 있다.
구와나로 옮겨진 사다나가는 시라카와 시대의 1만 4000 냥에 더해 전봉으로 인해 새롭게 9만 냥의 빚을 지게 되었다. 총 10만 4000 냥의 빚으로 고통받는 번 재정을 재건하기 위해, 분세이 7년(1824년)부터 10년간 가신의 지행 삭감을 실시했다. 그러나 에도 상저택의 화재 및 도움 공사로 인해 번 재정은 호전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사카 상인으로부터의 차입 및 고요킨 등으로 급한 고비를 넘기고 있다.
덴포 8년(1837년)에는 번의 토비치가 있던 에치고국가시와자키의 진야가 이쿠타 만의 난에 휘말려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다난한 번정 속에서 덴포 9년(1838년) 10월에 에도에서 사망했다. 향년 48세. 가독은 장남 사다카즈가 이었다.
3. 혈통
마쓰다이라 사다쓰나의 직계는 아니지만, 생모인 하야히메가 사다쓰나의 형 마쓰다이라 사다유키나 백부 마쓰다이라 야스모토의 혈통을 잇는다.
4. 가계
* 부모: 마쓰다이라 사다노부, 하야히메 - 가토 야스다케의 딸
* 정실: 츠나히메 - 하치스카 하루아키의 딸
* 측실: 즈이신인
4.1.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마쓰다이라 사다카즈 | 차남, 생모 츠나히메 (정실) | ||
| 이타쿠라 가쓰키요 | 8남, 생모 즈이신인 (측실) | ||
| 도키 요리유키 | 10남 | ||
| 마쓰다이라 지카사토 | 11남 | ||
| 이시카와 소로쿠 | 정실, 후에 구키 타카토의 계계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