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노 다다아쓰
1. 개요
마키노 다다아쓰는 일본 제국의 자작이자 정치인으로, 나가오카 번의 마지막 번주였던 마키노 타다야스의 아들이자 게이오기주쿠 대학 졸업생이다. 그는 1878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문을 계승했으며, 1884년 화족령에 따라 자작 작위를 받았다. 1897년부터 귀족원 자작 의원을 지냈고, 1906년에는 나가오카시 초대 시장을 역임하며 교육, 유전 개발, 공업학교 설립에 기여했다. 시장 퇴임 후에는 제국농회 회장과 다이닛폰 잠사 회장을 역임하며 생사 업계를 이끌었으며,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가독 계승을 지원했다. 1935년 66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훈2등 서보장을 수여받았다.
| 인명 | 마키노 다다아쓰 |
|---|---|
| 원어 표기 | llang:ja 牧野忠篤 |
| 출생 | 1870년 11월 5일 |
| 출생지 | 일본 도쿄부(현 도쿄도) |
| 사망 | 1935년 4월 11일 |
| 출신 학교 | 게이오기주쿠 별과 졸업 (현 게이오기주쿠 대학) |
| 소속 정당 | 연구회 |
| 칭호 및 훈장 | 종2위 훈2등 서보장 정3위 종3위 정5위 |
| 배우자 | 마키노 마스코 |
| 친족 (정치인) | 의제: 마키노 사다야스(귀족원 의원) 종형: 마쓰다이라 노리쓰구(귀족원 의원) |
| 자녀 | 양자: 마키노 다다나가 |
| 직책 | 귀족원 의원 |
|---|---|
| 선거구 | 귀족원 자작 의원 |
| 당선 횟수 | 6회 |
| 임기 시작 | 1897년 7월 10일 |
| 임기 종료 | 1935년 4월 11일 |
| 직책 | |
| 임기 시작 | 1906년 8월 29일 |
| 임기 종료 | 1908년 5월 22일 |
| 직책 | (나가오카)마키노 자작가 당주 |
|---|---|
| 임기 | 1884년 ~ 1935년 |
| 대수 | 1 |
| 후임 | 마키노 다다나가 |
-
훈2등 서보장 수훈자 -
더럼 스티븐스
더럼 스티븐스는 미국의 외교관으로, 주일 미국 공사관 서기관으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하여 일본 외무성에서 일했으며, 대한제국 외부 고문으로 친일 행보를 보이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재미 한인에게 피격되어 사망, 한국 역사에서 비판받는 인물이다. -
훈2등 서보장 수훈자 -
메가타 다네타로
메가타 다네타로는 일본 제국의 관료이자 법률가, 교육자로, 귀족원 의원과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대학교 졸업 후 일본 법률 및 재정 제도 정비에 기여했고, 대한제국 재정 고문으로 화폐정리사업을 실시하여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일본 근대 교육 발전에도 공헌했으며 국제연맹 총회에 일본 대표로 참석했다. -
1870년 출생 -
이와야 사자나미
이와야 사자나미는 메이지 시대에 아동 문학을 보급하고 일본 최초의 아동 문학 총서 간행, 전승 설화 리텔링, '옛날이야기 하이쿠 그림' 창조 등을 통해 일본 근대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아동 문학가, 소설가, 시인, 수필가이자 문예 평론가이다. -
1870년 출생 -
마르뜨 멜롯
마르뜨 멜롯은 1925년부터 1947년까지 <마티아스 파스칼의 죽음>, <보바리 부인>, <레 미제라블>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하며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활동한 배우이다. -
니가타현 출신 -
혼마 마사하루
혼마 마사하루는 일본 제국 육군 군인으로, 필리핀 공략전을 지휘했으나 바탄 죽음의 행진에 대한 책임으로 전범으로 처형되었고, 그의 재판은 지휘자 책임 적용 및 맥아더의 복수심 작용 등의 논란이 있다. -
니가타현 출신 -
이상일 (영화 감독)
니가타현 출신 재일조선인 3세 영화 감독인 이상일은 일본영화학교에서 영화 제작을 공부하고 《69 sixty nine》으로 데뷔하여 《훌라 걸스》, 《악인》, 《분노》, 《유랑의 달》 등 사회 비판적 메시지와 인간 심리를 탐구하는 작품들을 통해 상업적 성공과 비평적 호평을 받으며 일본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마키노 다다아쓰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나가오카시 초대 시장을 역임하며 지역 발전에 기여했고, 일본 생사 산업을 이끄는 등 폭넓은 활동을 펼쳤다.
1935년 4월 11일에 사망하였다. 향년 66세.
2.1. 가문 배경 및 초기 생애
메이지 3년(1870년) 10월 12일, 구 에치고 나가오카 번의 전 11대 번주 마키노 타다야스의 다섯째 아들로 도쿄부에서 태어났다. 메이지 11년(1878년) 9월 1일,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이어받아, 실명인 타다아쓰를 칭했다. 메이지 17년(1884년) 화족령 시행에 따라 자작 작위를 받았다. 메이지 26년(1893년) 게이오기주쿠 별과(현재의 게이오기주쿠 대학)를 졸업했다.
2.2. 정치 경력
메이지 30년(1897년) 7월 10일부터 귀족원 자작 의원을 역임했다. 메이지 39년(1906년), 옛 나가오카 번 지역이 나가오카시로 승격되면서 시장 취임을 요청받았다. 처음에는 옛 번사들의 반대로 고사했지만, 나가오카 유지들의 열의에 밀려 1년 임기를 조건으로 1906년 4월 1일 나가오카시 초대 시장으로 취임했다. 이때 내무성 관료였던 카와시마 요시하루를 부시장으로 임명했다. 시장 재임 중에는 나가오카시의 미래 구상을 펼치며 교육에 힘썼고, 히가시야마 유전 개발과 나가오카 고등공업학교(현 니가타 대학 공학부) 설립에 힘썼다.
시장 퇴임 후에는 귀족원 의원으로 재임하면서 제국농회 회장, 다이닛폰 잠사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일본 생사 산업을 이끌었다. 또한 보신 전쟁에서 전사한 야마모토 요시미치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어 끊어질 위기에 처한 옛 번의 가로 야마모토 가문을, 당시 해군에서 근무하던 타카노 이소로쿠 소령에게 가독을 잇게 하여 재건하도록 힘썼다.
그 외에도 귀족원 내 연구회 간사를 오랫동안 역임했다.
2.3. 산업 분야 활동
메이지 39년(1906년)에 나가오카 마을이 시로 승격될 때, 지역 유지들의 요청으로 초대 시장을 맡았다. 처음에는 구 번사들의 반대가 있었으나, 1년 임기라는 조건으로 취임했다. 시장 재임 중 히가시야마 유전 개발과 나가오카 고등공업학교(현 니가타 대학 공학부) 설립에 기여했다.
시장 퇴임 후에는 제국농회 회장, 다이닛폰 잠사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일본 생사 업계를 이끌었다.
2.4. 야마모토 이소로쿠와의 관계
보신 전쟁에서 야마모토 요시미치(다이토)가 전사하여 후사가 없게 된 구 번의 가로 야마모토 가문을, 당시 해군에 근무했던 타카노 이소로쿠 소령이 가독을 계승하여 재흥하도록 힘썼다.
2.5. 사망
1935년 4월 11일에 사망하였다. 향년 66세.
4. 가족 및 친족
| 관계 | 이름 | 비고 |
|---|---|---|
| 아버지 | 마키노 다다야스 | 에치고 나가오카 번 제11대 번주, 마키노가 제11대, 제14대 당주 |
| 의형 | 마키노 다다노리 | 에치고 나가오카 번 제12대 번주 |
| 친형 | 마키노 다다타케 | 에치고 나가오카 번 제13대 번주 |
| 정실 | 마시코 | 이타쿠라 가쓰스케 자작의 차녀, 이혼 |
| 계실 | 시게코 | 나베시마 나오히로 후작의 삼녀 |
| 계실 | 도시코 | 도도 다카요시 백작의 삼녀 |
4.1. 부모 및 형제
아버지는 에치고 나가오카 번의 제11대 번주 마키노 타다야스이며, 마키노 가문 제11대, 제14대 당주이다. 마키노 타다노리는 의형이며, 친형으로는 나가오카 번 제13대 번주인 마키노 타다타케가 있다.
4.2. 배우자
정실은 이타쿠라 가쓰스케 자작의 차녀 마시코(이혼)이다. 계실은 나베시마 나오히로 후작의 삼녀 시게코, 도도 다카요시 백작의 삼녀 도시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