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 패틴
1. 개요
마티 패틴은 미국의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일리노이주 찰스턴 출신으로, 이스턴 일리노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지명되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시애틀 파일럿츠, 밀워키 브루어스를 거쳐 보스턴 레드삭스, 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 활약했으며, 1971년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1980년 자유 계약 선수 자격을 얻은 후 은퇴했으며, 캔자스 대학교 야구팀 감독을 역임했다. 2018년 10월 3일 찰스턴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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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명 | 마티 패틴 |
|---|---|
| 원어명 | Marty Pattin |
| 본명 | Martin William Pattin |
| 국적 | 미국 |
| 출생일 | 1943년 4월 6일 |
| 출생지 | 미국 일리노이주 찰스턴 |
| 사망일 | 2018년 10월 3일 |
| 사망지 | 미국 일리노이주 찰스턴 |
| 신장 | 180 |
| 체중 | 81 |
| 투구 | 우 |
| 타석 | 우 |
| 수비 위치 | 투수 |
| 출신 학교 | 이스턴 일리노이 대학교 |
| 프로 입단 연도 | 1965년 |
| 드래프트 순위 | 1965년 7라운드 전체 127순위 |
| 드래프트 지명팀 |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
| 첫 출장 | MLB / 1968년 5월 14일 화이트삭스 파크 CAL 대 CWS 전 |
| 마지막 경기 | MLB / 1980년 10월 1일 로열스 스타디움 KC 대 SEA 전 |
| 획득 타이틀 | 올스타 (1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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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팀 |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68) 시애틀 파일럿츠/밀워키 브루어스 (1969~1971) 보스턴 레드삭스 (1972~1973) 캔자스시티 로열스 (1974~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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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파일럿츠 선수 -
스티브 바버
스티브 바버는 1960년대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올스타에 두 차례 선정된 미국의 전직 프로 야구 선수로, 은퇴 후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장애 아동들을 위한 운전사로 일했다. -
시애틀 파일럿츠 선수 -
짐 보턴
짐 보턴은 1962년부터 1978년까지 MLB에서 활동한 미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작가, 방송인으로, 뉴욕 양키스 시절 강속구 투수로 활약하며 올스타에 선정되고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으며, 은퇴 후에는 야구계 뒷이야기를 담은 책 《볼 포》를 출간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 -
다코타 허드슨
다코타 허드슨은 미시시피 주립 대학교 출신의 미국 프로 야구 투수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콜로라도 로키스를 거쳐 현재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소속이며, 97마일의 싱커를 던지는 땅볼 유도형 투수이다.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 -
호세 카페얀
호세 카페얀은 미국과 한국 프로 야구에서 활동했으며, 메이저 리그와 KBO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15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
2018년 사망 -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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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사망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2. 선수 경력
패틴은 미국 일리노이주 찰스턴에서 태어나 이스턴 일리노이 대학교를 졸업한 후, 196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밀워키 브루어스, 보스턴 레드삭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 여러 팀을 거치며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투수로 활약했으며, 1980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했다. 선수 시절 주요 경력과 기록은 아래 하위 문단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2.1. 초기 경력
패틴은 미국 일리노이주 찰스턴에서 태어나 그곳의 찰스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스턴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 야구팀인 이스턴 일리노이 팬서스 베이스볼 소속 선수로 활동하며 한 경기에서 22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대학 시절 활약을 바탕으로, 패틴은 196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전체 127순위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지명을 받았다. 프로 입단 후에는 두 시즌 동안 에인절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인 시애틀 레이니어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경험을 쌓았고, 이후 메이저 리그로 승격되었다.
2.2. 메이저 리그 경력
패틴은 1965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7라운드 전체 127순위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지명을 받았다. 이후 두 시즌 동안 마이너 리그 팀인 시애틀 레이니어스에서 뛴 뒤 메이저 리그로 승격되었다. 1968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에인절스를 떠나 시애틀 파일럿츠에 합류했으며, 이 팀은 1970년에 밀워키 브루어스로 연고지와 팀명이 변경되었다. 밀워키 소속으로 1970년 시즌에 37경기(29선발)에 출전해 14승 12패, 3.3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1971년에는 36선발에 14승 14패, 평균자책점 3.13을 기록했으며 시즌 중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1971년 10월 10일에 10명의 선수가 오가는 초대형 트레이드가 단행되어 보스턴 레드삭스에 패틴을 비롯해 토미 하퍼, 루 크라우스, 마이너 리거 외야수 팻 스크러블이 이동했고, 반대 급부로 조지 스콧, 짐 론보그, 켄 브렛, 빌리 코니글리아로, 조 라후드, 돈 파블레티치가 밀워키로 이적했다. 패틴은 보스턴에서의 2시즌 동안 도합 32승을 올렸으며, 1972년 7월 11일에는 노히트 노런을 달성할 뻔했지만 상대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선수 레지 잭슨이 9회 1아웃에 단타를 허용하며 간발의 차이로 기록 달성을 놓치기도 했다. 동료 투수 빌 리에 따르면, 패틴은 레드삭스 시절 등판한 대부분의 경기에서 첫 이닝 이후에 구토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1973년 10월 24일 보스턴과 캔자스시티 로열스 사이에 패틴과 딕 드래고를 맞바꾸는 트레이드가 이루어졌으며, 패틴의 보직은 선발투수와 구원 투수를 각각 반반씩 오가게 되었는데, 1975년 시즌 《캔자스시티 스타》는 그를 6월에는 선발투수로, 9월에는 구원 투수로서 이달의 로열스 선수로 선정했다. 패틴은 1980년 시즌 이후 자유계약선수가 된 후 은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