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코니글리아로
1. 개요
빌리 코니글리아로는 1947년 매사추세츠주 리비어에서 태어난 미국의 야구 선수였다. 1965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드래프트된 후, 1969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1970년에는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하며, 1971년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1972년 은퇴 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복귀하여 1973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와 월드 시리즈에 출전했다. 메이저 리그 통산 347경기에서 타율 .256, 40홈런, 128타점을 기록했으며, 2021년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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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William Michael Conigliaro |
|---|---|
| 국적 | 미국 |
| 출생일 | 1947년 8월 15일 |
| 출생지 | 미국 매사추세츠주 리비어 |
| 사망일 | 2021년 2월 10일 |
| 사망지 | 미국 매사추세츠주 베벌리 |
| 신장 | 183 |
| 체중 | 81 |
| 투구 | 우 |
| 타석 | 우 |
| 수비 위치 | 외야수 |
| 출신 학교 | 스왐스컷 고등학교 |
| 프로 입단 연도 | 1965년 |
| 드래프트 순위 | 1965년 1라운드 전체 5순위 (보스턴 레드삭스) |
| 첫 출장 | MLB / 1969년 4월 11일 클리블랜드 스타디움 BOS 대 CLE 전 |
| 마지막 경기 | MLB / 1973년 9월 30일 오클랜드–알라메다 카운티 콜리시엄 OAK 대 CWS 전 |
| 경력 | 보스턴 레드삭스 (1969~1971) 밀워키 브루어스 (197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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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획득 타이틀 | 월드 시리즈 우승 (1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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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마 호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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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시절
코니글리아로는 1947년 8월 15일에 매사추세츠주 리비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살(Sal)은 공구 및 금형 제작자였으며 나중에 공장장으로 승진했다. 코니글리아로의 부모님은 그가 야구를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 코니글리아로는 스왐스컷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세 가지 스포츠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형 토니가 메이저 리그에 데뷔한 지 며칠 안 되었을 때인 1964년에 윈스럽 고등학교를 상대로 노히터를 기록했다. 이후 드래프트가 처음 시행된 해인 1965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전체 5순위)로 보스턴 레드삭스의 지명을 받았다.
3. 프로 경력
코니글리아로는 1965년부터 1968년까지 마이너 리그에서 뛰었다. 21세였던 1969년 4월 11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대주자로 출전하여 도루를 성공시켰고,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는 연장 승부 끝에 2–1로 승리했다. 닷새 뒤에는 메이저 리그 첫 선발 출전 경기에서 홈런 두 개를 기록했다. 그해 5월에 다시 마이너 리그로 내려갔지만, 9월 로스터 확대로 다시 메이저 리그로 콜업되었다. 메이저 리그 첫 시즌 성적은 32경기에 출전해 타율 .288, 4홈런, 7타점이었다.
1970년은 코니글리아로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다. 이 해에 개인 최다인 114경기에 출전하여 안타 (108), 득점 (59), 홈런 (18), 타점 (58)에서 모두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수비에서도 7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AL) 좌익수 중 5위에 올랐다. 보스턴 구단은 코니글리아로를 라인업에 넣기 위해 주전 외야수였던 칼 야스트렘스키를 1루로 기용하기도 했다. 시즌 막판 형 토니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되자 매우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1971년 시즌에는 타율 .262, 11홈런, 33타점을 기록했으며, 2루타 26개로 AL 8위를 차지했다.
1971년 10월 10일, 코니글리아로는 조지 스콧, 짐 론보그, 켄 브렛, 조 라후드, 돈 파블레티치와 함께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밀워키는 그 대가로 토미 하퍼, 마티 패틴, 루 크라우스 주니어, 그리고 마이너 리거 팻 스크러블을 보스턴으로 보냈다.
밀워키에서의 선수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던 코니글리아로는 1972년 시즌 도중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듬해 복귀 의사를 밝혔고, 밀워키 구단은 공개되지 않은 금액의 현금을 받고 그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트레이드했다. 코니글리아로는 1973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와 월드 시리즈에 출전했으나 7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이후 비시즌 기간에 무릎 수술을 받았고, 1974년 3월 오클랜드로부터 웨이버 공시되었다. 1977년에 다시 오클랜드 소속으로 복귀를 시도했지만, 마이너 리그 강등을 받아들이지 않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코니글리아로의 메이저 리그 통산 성적은 347경기 출전, 타율 .256, 40홈런, 128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