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라후드
1. 개요
조 라후드는 미국 코네티컷주 댄버리 출신의 전 야구 선수이다. 뉴헤이븐 대학교에서 대학 야구 선수로 활동했으며,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보스턴 레드삭스, 밀워키 브루어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텍사스 레인저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메이저 리그 통산 79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23, 65홈런, 218타점, 429안타, 239득점, 장타율 .372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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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Joseph Michael Lahoud (조지프 마이클 라후드) |
|---|---|
| 국적 | 미국 |
| 출생일 | 1947년 4월 14일 |
| 출생지 | 미국 코네티컷주 댄버리 |
| 사망일 | 해당 없음 |
| 사망지 | 해당 없음 |
| 신장 | 185cm |
| 체중 | 89kg |
| 투구 | 좌투 |
| 타석 | 좌타 |
| 수비 위치 | 외야수 |
| 출신 학교 | 뉴헤이븐 대학교 |
| 첫 출장 (MLB) | 1968년 4월 10일타이거 스타디움 BOS 대 DET 전 |
|---|---|
| 마지막 경기 (MLB) | 1978년 5월 24일킹돔 KC 대 SEA 전 |
| 소속 구단 | 보스턴 레드삭스 (1968~1971) 밀워키 브루어스 (1972~1973)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74~1976) 텍사스 레인저스 (1976) 캔자스시티 로열스 (1977~19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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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선수 -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는 1981년 신인왕과 사이 영 상을 동시 수상하고 "페르난도매니아"를 일으킨 멕시코 출신 전 메이저 리그 야구 투수로, 스크루볼을 주무기로 173승을 기록하고 실버 슬러거 상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은퇴 후에는 코치 및 해설가로 활동하다 2024년 사망, 그의 업적을 기려 다저스는 등번호 34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선수 -
호이트 윌헬름
호이트 윌헬름은 너클볼을 던지던 미국의 전 야구 선수로, 21시즌 동안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며 1070경기 출전, 143승 122패, 124세이브, 월드 시리즈 우승, 노히트 노런, 5회 올스타 선정, 2회 최우수 방어율 기록,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밥 펠러 용기상 수상 등의 업적을 남겼다. -
살아있는 사람 -
릴 테르셀리우스
릴 테르셀리우스는 위키백과 문서에서 관련 문서와 추가 자료를 제시하는 데 사용되는 구성 요소이다. -
살아있는 사람 -
마그달레나 툴
폴란드의 가수 마그달레나 툴은 2007년 데뷔 앨범 발매 후 201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폴란드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후에도 앨범 발매와 유로비전 관련 활동, 방송 출연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
1947년 출생 -
나빈 람굴람
나빈 람굴람은 모리셔스의 정치인으로, 1995년, 2005년, 2010년, 2024년에 총리직을 역임했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노동당 당수가 되었고, 다양한 논란에 연루되기도 했다. -
1947년 출생 -
지우마 호세프
지우마 호세프는 브라질의 정치인으로, 학생 운동과 무장 투쟁에 참여한 후 대통령을 역임했으나 탄핵되었고, 현재 신개발은행 총재로 활동하고 있다.
3. 선수 경력
라후드는 뉴헤이븐 대학교에서 대학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1966년과 1967년에는 클래스 A 캐롤라이나 리그의 윈스턴세일럼 레드삭스에서 뛰었다. 1968년 스프링 트레이닝 중 마이너 리그로 내려갈 예정이었으나, 토니 코니글리아로의 눈 부상 회복이 늦어지면서 시즌 초반 클래스 AAA 인터내셔널 리그의 루이빌 커늘스에 머물렀다.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로 콜업되었지만, 곧 다시 루이빌로 돌아갔다. 1969년 6월 11일에는 한 경기에서 3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1970년에도 스프링 트레이닝 후 마이너 리그로 가게 되었다.
1971년 10월 10일, 보스턴은 라후드를 포함한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밀워키 브루어스로 이적시켰다. 2년 후인 1973년 10월 23일, 밀워키는 다시 라후드를 포함한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이적시켰다. 1976년 6월 14일, 텍사스 레인저스는 에인절스에 웨이버 가격보다 약간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라후드를 영입했다.
라후드는 메이저 리그에서 통산 791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23, 65홈런, 218타점, 429안타, 239득점, 장타율 .372를 기록했다.
3.1. 아마추어 선수 시절
라후드는 헨리 애벗 기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뉴헤이븐 대학교를 다니면서 학내 야구팀에서 대학 야구 선수로 뛰었다.
3.2. 프로 선수 시절
라후드는 헨리 애벗 기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뉴헤이븐 대학교를 다니면서 학내 야구팀에서 대학 야구 선수로 뛰었다.
1966년과 1967년에는 클래스 A 캐롤라이나 리그의 윈스턴세일럼 레드삭스 소속으로 경기를 뛰었다. 1968년 스프링 트레이닝 중에 마이너 리그에 내려가기로 결정되었지만, 토니 코니글리아로의 눈 부상 회복이 더뎌지면서 시즌 초반에 클래스 AAA 인터내셔널 리그의 루이빌 커늘스에 머무르고 있다가 보스턴 레드삭스로 콜업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되어 다시 루이빌로 강등되었다. 1969년 6월 11일, 라후드는 한 경기에서 3홈런을 터뜨렸다. 1970년에도 스프링 트레이닝 마무리와 함께 마이너 리그행을 지시받았다.
1971년 10월 10일, 보스턴의 라후드, 조지 스콧, 짐 론보그, 켄 브렛, 빌리 코니글리아로, 돈 파블레티치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토미 하퍼, 마티 패틴, 루 크라우스 주니어, 마이너 리거 팻 스크러블을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가 진행되었다. 2년 뒤인 1973년 10월 23일에는 밀워키의 라후드, 엘리 로드리게스, 올리 브라운, 스킵 록우드, 그레이 라이어슨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스티브 바버, 클라이드 라이트, 켄 베리, 아트 쿠스니어, 현금을 맞바꾸는 초대형 트레이드가 다시 성사되었다. 1976년 6월 14일, 텍사스 레인저스는 에인절스에 웨이버 가격보다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해 라후드를 영입했다.
라후드의 메이저 리그 통산 성적은 791경기에 출전해 타율 .223, 65홈런, 218타점, 429안타, 239득점, 장타율 .37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