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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야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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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말라야 연합은 1946년 4월 1일, 영국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말레이반도에 수립하려 했던 행정 구역이다. 이 구상은 각 주 술탄의 권한을 축소하고 민족에 관계없이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말레이인들의 반발로 인해 1948년 말라야 연방으로 대체되었다. 말라야 연합은 영국령 말라야, 5개의 비연방 말레이 주, 해협 식민지를 통합하여 쿠알라룸푸르를 수도로 삼을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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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야 연합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말레이 연합의 기
말레이 연합의 문장
문장
말레이 연합의 위치 (짙은 파란색)
말레이 연합의 위치 (짙은 파란색)
공식 명칭말라얀 유니언 (Malayan Union)
현지 명칭Kesatuan Malaya
수도쿠알라룸푸르
공용어말레이어, 영어
종교수니 이슬람 (공식)
불교
로마 가톨릭교
힌두교
개신교
말레이시아 민속 종교
애니미즘
통화말라야 달러
지위식민지
소속 국가영국
존속 기간1946년 4월 1일 ~ 1948년 1월 31일
현재 국가말레이시아
시대탈식민지화
상징말레이시아의 국장
정치
정치 체제군주제 (영국 국왕)
국왕조지 6세 (1946년–1948년)
총독에드워드 젠트 (1946년–1948년)
역사
이전 국가영국 군정
이후 국가말라야 연방
시작일1946년 4월 1일
종료일1948년 1월 31일
인구 통계
1947년 인구4,908,086명
면적
면적132,364 제곱킬로미터

2. 역사적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3년, 영국은 화교 중심의 싱가포르말레이인 지역에서 분리하고 각 주 술탄의 권한을 제한하며, 민족에 차이를 두지 않고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말라야 연합 구상을 작성했다. 그러나 1945년 10월 이 구상이 제시되자, 장래에 증가할 화교에게 유리하고 말레이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말레이인들의 반발을 샀다.[1]

1946년 4월 1일 말라야 연합이 발족되었고,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에 두었다. 말라야 연합의 시민권은 민족 구별 없이 평등하게 부여되었으며, 출생지주의 원칙이 채택되었다. 술탄의 권한은 축소되었고, 영국의 통제는 강화되었다. 그러나 말레이인들의 강한 반발로 인해 1948년 술탄의 권한이 회복되고 말라야 연방으로 이행해야만 했다. 말라야 연방에서는 화교의 시민권 획득이 어려워졌다.

2. 1. 말라야 연합 이전의 영국령 말라야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영국령 말라야는 보호령인 말레이 연방, 5개의 보호 비연방 말레이 주, 직할 식민지인 해협 식민지의 세 가지 정치 체제로 구성되어 있었다.[1]

2. 2. 말라야 연합 구상

1943년, 영국은 전시 내각에서 말라야 연합 구상을 작성했다.[1] 이 구상에서는 화교 중심의 싱가포르말레이인 지역에서 분리하여 영국의 해군 거점으로 삼는 전략이 제시되었다. 또한, 각 주 술탄의 권한을 제한하고, 민족의 차이 없이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1]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1945년 10월, 영국은 영국 군정을 통해 이 구상을 제시했는데,[1] 이는 민족 차별 없이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이 장래에 증가할 화교에게 유리하며, 말레이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말레이인들의 반발을 샀다.[1]

3. 말라야 연합의 성립과 구조

1946년 4월 1일, 에드워드 젠트 경을 초대 총독으로 하여 말라야 연합이 공식 출범했으며, 쿠알라룸푸르가 수도가 되었다.[1] 말라야 연합은 페낭과 말라카의 연방 말레이 주, 비연방 말레이 주, 그리고 해협 식민지를 하나의 행정부로 통합했다. 싱가포르 식민지는 별도의 직할 식민지로 관리되었다.

말라야 연합 구상은 1945년 10월 영국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으며, 영국 군정에 의해 추진되었다.[1] 해럴드 맥마이클 경은 말레이 주 통치자들의 승인을 얻는 임무를 맡았고, 짧은 기간 안에 모든 통치자들의 승인을 얻었다. 통치자들이 정치적 권력 상실에도 불구하고 동의한 주된 이유는 일본 점령 기간 동안 협력 혐의로 폐위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2]

말라야 연합은 시민권을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다음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에게는 자동으로 시민권이 부여되었다.


  • 영국령 말라야 또는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1942년 2월 15일 이전에 거주한 사람
  • 말라야 연합 시민의 자녀
  • 18세 이상이며 1942년 2월 15일 이전에 영국령 말라야 또는 싱가포르에서 "15년 중 10년"을 거주한 사람


시민권 신청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신청 전 8년 중 5년 동안" 싱가포르 또는 영국령 말라야에 거주해야 했고, 품성이 훌륭해야 했으며, 영어 또는 말레이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어야 했으며, "말라야 연합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해야 했다." 그러나 시민권 제안은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고, 반대로 인해 연기 및 수정되어 많은 중국 및 인도 거주자들이 시민권을 얻기 어려워졌다.[3]

말레이 주의 전통적인 통치자인 술탄들은 종교 문제를 제외한 모든 권한을 영국 왕실에 양도했다. 말라야 연합은 영국 총독의 관할 하에 놓이게 되어, 말레이반도에서 영국 식민 통치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주 의회는 제한적인 자치권을 상실하고 쿠알라룸푸르 연방 정부의 연장선이 되었다. 영국 거주자가 주 의회의 수장이 되어 술탄의 정치적 지위가 크게 축소되었다.[4]

1946년, 해럴드 커웬 윌런을 대법원장으로 하는 대법원이 설립되었다.[5]

4. 말라야 연합에 대한 반대와 해체

말레이인들은 연합 창설에 반대했다. 온 자파르가 1946년 5월 10일에 결성한 UMNO(말레이 민족통일기구)는 말라야 연합에 대한 반대를 주도했다. 말레이인들은 술탄들의 정치적 권리 상실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머리에 흰색 띠를 착용했다.[1]

말레이인들의 말라야 연합 반대 시위


UMNO의 지휘 아래 말레이인들은 말라야 연합에 계속 반대했다. 그들은 영국 총독의 취임식에 참석을 거부하는 등 시민 불복종 시위를 벌였다. 또한 자문 위원회 회의에도 참여하지 않아, 말레이인의 정부 관료 및 정치 과정 참여는 완전히 중단되었다. 영국은 이 문제를 인식하고 헌법 개정을 하기 전에 말라야의 주요 인종의 의견을 고려하는 조치를 취했다. 결국 말라야 연합은 해체되었고 1948년 2월 1일에 말라야 연방으로 대체되었다.[1]

5. 말라야 연합의 구성국

6. 말레이시아로의 진화

말레이시아의 진화


말라야 연합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3년에 영국이 구상하였다. 이 구상에는 화교 중심의 싱가포르를 말레이인(말레이인) 지역에서 분리하여 영국의 해군 거점으로 삼는 전략이 담겨 있었다. 또한 각 주의 술탄의 권한을 제한하고, 민족의 차이 없이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1945년 10월에 이 구상이 제시되자, 말레이인들은 강하게 반발하였다. 민족의 차이 없이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은 장래에 증가할 화교에게 유리하며, 말레이인의 권리 침해로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46년 4월 1일, 말라야 연합이 발족되었고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에 두었다. 말라야 연합의 시민권은 민족 구별 없이 평등하게 부여되었으며, 시민권 부여 조건으로는 출생지주의 원칙이 채택되었다. 술탄의 권한은 축소되었고, 영국에 의한 통제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말레이인들의 강한 반발로 인해 1948년에 술탄의 권한을 회복시키고 말라야 연방으로 이행해야만 했다. 말라야 연방에서는 화교의 시민권 획득이 어려워졌다.

참조

[1] 간행물 Policy in Regard to Malaya and Borneo CAB 66/50
[2] 서적 Bangsa Melayu: Malay Concepts of Democracy and Community, 1945–1950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3] 논문 Malayan Citizenship Legislation 1952
[4] 웹사이트 Road to Independence (1): Birth of Umno and Malayan Union http://english.cpias[...] CPI 2017-03-30
[5] 서적 Generations: The Story of Batu Gaj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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