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지아교
1. 개요
말레이지아교는 파주시 봉일천에서 금촌, 광탄을 잇는 교통로로, 공릉저수지에서 발원한 고산천이 공릉천으로 흘러드는 곳에 위치했던 다리이다. 1960년 대한민국과 말레이시아의 수교 이후 말레이시아 원조 자금과 지방비를 통해 건설되었으며, 국도 제1호선의 일부로 사용되었다. 1988년 고산교가 건설되면서 역할을 대체했으나 2022년까지 교통 제한 없이 사용되었고 현재는 폐쇄된 상태이다. 1960년대 건축 기술을 보여주는 철근콘크리트 교량으로, 난간까지 콘크리트로 만들어졌으며, 길이는 60m, 폭은 7.4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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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 시설 | 구 국도 제1호선 |
|---|---|
| 횡단 위치 | 경기도 파주시 공릉천 |
|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등원리 |
| 관리 주체 | 파주시장 |
| 구조 형식 | 슬래브교 |
| 길이 | 60m |
| 너비 | 7.4m |
| 완공일 | 1966년 11월 19일 |
| 이름 | 파주 말레이지아교 |
|---|---|
| 국가 | 경기도 |
| 유형 | 시도등록문화재 |
| 번호 | 9 |
| 지정일 | 2021년 10월 27일 |
| 주소 |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등원리 378-2 일원 |
| 시대 | 1966년 |
| 소유자 | 파주시 |
| 수량 | 1 |
| 웹사이트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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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래브교 -
동작대교
동작대교는 1984년 개통한 대한민국 최초의 랭거아치 형식 다리이며, 서울 지하철 4호선 통과를 고려하여 건설되었으나, 초기 민간 투자 방식의 자금난과 용산 미군기지 이전 계획 무산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
슬래브교 -
반포대교
반포대교는 서초구 반포동과 용산구 이촌동을 잇는 한강 다리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2층 다리로, 교통량 해소와 함께 달빛 무지개 분수와 한강 공원 접근성으로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관광 명소 역할을 한다. -
대한민국-말레이시아 관계 -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은 대한민국 서울에 위치하며, 대한민국과 말레이시아 간의 외교 관계를 위해 설립되어 외교 교섭, 경제 및 통상 교섭, 문화 교류, 자국민 보호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
대한민국-말레이시아 관계 -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은 1960년 한국과 말레이시아 외교 관계 수립 후 양국 간 교류 증진을 위해 1962년 쿠알라룸푸르에 설립되었으며, 현재 말레이시아 전역을 관할하며 정치, 경제, 문화, 재외동포 지원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한국 기업의 말레이시아 진출 지원 및 무역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
1966년 완공된 교량 -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
프린스 에드워드 고가교는 캐나다 토론토 돈 계곡 위에 건설된 콘크리트-강철 아치교로, 블루어 거리 연장 및 지하철 노선으로 활용되다 자살 방지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대중 문화에도 등장했다. -
1966년 완공된 교량 -
태화교
2. 건설 배경
말레이지아교는 공릉저수지에서 흘러나온 지천인 고산천이 공릉천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한국전쟁으로 기반 시설이 크게 파괴된 파주시는 전후 복구 과정에서 주요 교통로 정비가 시급한 과제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말레이지아교는 파주시 봉일천과 금촌, 광탄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1960년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수교한 이후, 말레이시아의 원조를 포함한 재원으로 다리 건설이 추진되어 1966년 준공되었다. 건설 당시 이 다리는 국도 제1호선의 일부였으며, 이 도로는 조선시대부터 한양과 개성을 잇는 역사적인 주요 도로이자 남북을 연결하는 간선도로로서의 기능이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이후 1988년 도로 확장 공사로 인근에 고산교가 건설되면서 말레이지아교의 교통량 분담 역할은 줄어들었으나, 문화재 등록 이후인 2022년까지 계속 사용되다가 현재는 폐쇄된 상태이다. 한편, 국도 제1호선 통일로는 1996년 금촌 우회 구간이 개통되면서 말레이지아교가 속했던 기존 노선은 지방도인 파주 중앙로로 지정 변경되었다.
2.1. 명칭의 유래
1960년 2월 한국은 말레이시아와 정식으로 수교하였다. 이후 말레이시아 정부는 대외 원조 자금으로 5000USD를 지원하였고, 여기에 경기도 보조금 3백만 원과 파주군의 군비 2백만 원을 더해 다리를 건설하게 되었다. 다리 이름에 말레이시아의 국명을 붙인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당시 원조금 5000USD는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145만 원에서 165만 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이는 전체 공사비에 비하면 큰 액수는 아니어서 원조금이 없었더라도 공사 자체는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냉전 체제 하에서 남북 간 외교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였기에, 우방국의 원조를 받고 그 나라의 이름을 다리에 붙인 것은 외교적인 의미가 큰 결정으로 해석된다.
2.2. 건설 과정
한국전쟁으로 대부분의 기반 시설이 파괴된 파주시는 1970년대 초반까지도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0년 2월 한국은 말레이시아와 정식 수교를 맺었고, 이후 말레이시아 정부의 대외 원조 자금 5와 경기도 보조금 3, 파주군비 2 등을 재원으로 하여 말레이지아교를 건설하게 되었다.
준공 당시 말레이지아교는 국도 제1호선의 일부로서 건설되었다. 이 구간은 조선시대부터 한양과 개성을 잇는 주요 도로였으며, 건설 당시에도 민간 교통뿐만 아니라 북으로 연결되는 간선도로로서의 중요성이 고려되었다.
말레이지아교 공사비 중 말레이시아의 원조금 5는 당시 원화로 환산하면 약 1.45에서 1.65 정도였다. 이는 전체 공사비에 비하면 큰 비중은 아니었지만, 냉전 시기 남북 간 외교 경쟁이 치열했던 상황에서 우방국의 원조를 받아 다리를 건설하고 그 나라의 이름을 붙인 것은 중요한 외교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다리는 1966년에 준공되었으며, 개통식에는 인근 주민을 포함하여 수백 명이 참석하여 완공을 축하했다.
3. 교량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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