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고인
1. 개요
멍고인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주 남서부에 있는 건조 호수인 멍고 호수에서 발견된 고대 인류 유해를 지칭한다. 멍고 호수는 윌랜드라 호수 지역의 일부로, 10만 년 이상 된 퇴적층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마지막 빙하기에 형성된 멍고 층에서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유물이 다수 발견되었다. 멍고인 1(LM1)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된 현생 인류 유골 중 하나이며, 멍고인 3(LM3)은 정교한 장례 문화를 보여주는 증거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장례 문화가 오래되었음을 시사한다. 멍고인 유골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게 반환되어 문화적 상징이 되었으며, 현재 멍고 국립 공원에 전시되어 있다.
| 발견 장소 | 문고 호수, 뉴사우스웨일스 서부 |
|---|---|
| 발견 시기 | 1969년 (호수 문고 유적) |
| 연대 측정 | 40,000년 전 (±1000년) 32,000년 전 (±500년) |
| 호모 사피엔스 | 호모 사피엔스 |
|---|---|
| 성별 | 남성 (문고인) |
| 사망 당시 나이 | 약 50세 (문고인) |
| 특징 | 장례식 흔적 발견 (문고인) 화장 흔적 발견 (문고 여성) 몸에 황토를 뿌린 채 매장 (문고인) 크로마뇽인과 유사한 형태 (문고인) |
| 문고 호수 유적 | 주거지 매장지 화장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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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 보도 |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를 바꾼 고고학적 발견 "망고 맨", 현지의 목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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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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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홀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뉴홀랜드는 1644년 아벨 타스만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서쪽과 북쪽 해안에 붙인 이름으로, 네덜란드 탐험가들이 탐험했으나 영구 정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후 영국에 의해 뉴사우스웨일스에 포함되지 않은 서부 지역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다가 오스트레일리아 명칭 공식 승인 후에도 한동안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생물 분류학 등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2. 지질학적 특징
멍고 호수는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뉴사우스웨일스주 남서부에 있는 마른 호수(dry lake)이다. 시드니에서 서쪽으로 약 760km, 밀두라에서 북동쪽으로 약 90km, 발라널드에서 북서쪽으로 약 110km 떨어져 있다. 이 호수는 멍고 국립공원의 중심부에 있으며,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윌랜드라 호수 지역의 17개 호수 중 하나이다.
멍고 호수의 퇴적물은 10만 년 이상 동안 쌓여 왔다. 호수 가장자리 주변의 벽에는 모래와 토양의 세 가지 뚜렷한 층이 형성되어 있다.
* 가장 오래된 것은 10만 년에서 12만 년 전에 형성된 적갈색 골골(Gol Gol) 층이다.
* 중간 회색 층은 5만 년에서 2만 5천 년 전에 퇴적된 멍고(Mungo) 층이다.
* 가장 최근의 층은 2만 5천 년에서 1만 5천 년 전 사이에 대부분 형성된 연한 갈색 잔치(Zanci) 층이다.
마지막 빙하기에 퇴적된 멍고 층은 고고학적으로 가장 풍부한 층이다. 이 층은 강우량이 적고 날씨가 서늘했던 시대에 해당하지만, 그 기간 동안 대분수령 서쪽에서 더 많은 빗물이 흘러내려 호수를 가득 채웠고, 물고기와 물새들이 풍부했다. 이는 상당한 규모의 인구를 지탱했고, 풍부한 자원과 다양한 오스트레일리아 메가포나(Australian megafauna)를 보유하고 있었다.
마지막 빙하기 동안 호수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염호(salt lake)가 되었다. 이로 인해 토양이 알칼리성이 되어 남아 있는 유적의 보존에 도움이 되었다.
3. 멍고인 1 (LM1)
1969년 멜버른 대학교의 짐 바울러(Jim Bowler)가 윌랜드라 호수 지역에서 멍고인 1(LM1)을 발견하였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 조사 결과 LM1은 약 24,700년에서 19,03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골은 숯으로 덮여 있었는데, 숯의 두께는 약 15 cm 정도였으며,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값은 26,250 ±1120년 이었다.
유골의 보존 상태는 좋지 않았으며, 1992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게 조건없이 반환되기 전까지는 매우 제한적인 정보만이 공개되었다.
3.1. 화장
1969년 윌랜드라 호수 지역에서 멜버른 대학교의 짐 바울러(Jim Bowler)가 발견한 멍고인 1(LM1)은 여성으로 추정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장 유골 가운데 하나이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대학교의 앨런 손(Alan Thorne) 교수가 유골을 결합하였으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 유골 가운데 하나이다.
화장된 흔적은 오스트레일리아 초기 인류 사회의 장례 문화를 보여준다. 멍고인 1의 뼈에서 발견된 불에 탄 자국을 통해, 사망 후 화장, 뼈를 부수는 과정, 황토색 안료인 오커를 덮고 다시 불을 놓는 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커는 멍고인 1이 화장된 곳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만 발견되는 광물이다. 이는 망자가 다시 일어나 생자를 잡으러 오는 일이 없도록 특별한 장례 의식이 치러졌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3.2. 연대 측정
멜버른 대학교의 짐 바울러가 1969년 윌란드라 호수 지역에서 발견한 LM1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 조사 결과, 약 24,700년에서 19,03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골 위 15 cm 지점에서 발견된 숯은 기원전 26,250년 ± 1120년으로 측정되었다.
3.3. 현황
1992년 멍고인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게 조건 없이 반환되었다. 현재 멍고인은 멍고 국립공원 전시 센터의 이중 잠금 금고에 보관되어 있으며, 금고 열쇠는 고고학회와 원주민 그룹이 각각 보관하고 있다. 2022년 5월 24일, 멍고인 1은 재매장되었다.
4. 멍고인 3 (LM3)
멍고인 3 (LM3)은 1974년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대학교의 짐 보울러가 발견했다. 멍고 호의 멍고인 1이 발견된 곳에서 동남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유골에는 붉은색 오커가 뿌려져 있었다. 이는 가장 오래된 장례 문화의 사례 중 하나이며, 오늘날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역시 유사한 장례 문화를 가지고 있어 원주민의 장례 문화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4.1. 발견
1974년 2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대학교의 짐 보울러는 멍고 호에서 멍고인 1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동남쪽으로 약 500 m 떨어진 모래 언덕에서 멍고인 3 (LM3)을 발견했다. 멍고인 3은 무릎을 굽히고 손가락을 깍지 낀 채 사타구니에 손을 얹은 자세로 매장되어 있었으며, 유골에는 붉은색 오커가 뿌려져 있었다. 시신 옆에는 불을 피운 흔적도 있었다. 이는 정교한 장례 문화의 가장 오래된 사례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의례적 매장 방식은 오늘날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특정 문화 전통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존재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멍고인 3 (LM3) 발견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약 2만 년 전에 아시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이후 멍고 호에서 이루어진 추가적인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이 지역의 인류 거주 시기가 4만 6천 년에서 5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밝혀졌다.
4.2. 형태
허리뼈에 골관절염을 앓은 흔적과 상아질화의 흔적이 있고, 치아의 치수가 노출된 흔적이 있어 사망 당시 약 50세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키는 팔 다리 뼈의 길이를 보았을때 196cm 정도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원주민의 평균 키보다 매우 큰 편이었다. 유골의 골격은 현대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 비해 호리호리한 편이다.
유골의 보존 상태는 좋지 않아서, 뼈의 상당수가 분실되거나 파손되어 있다. 머리뼈의 상당량이 없어졌고 골반뼈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성별 판별이 어렵다. 그러나, 남아있는 뼈를 가지고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마도 남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3. 생존 시기
1976년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대학교의 고고학팀은 멍고인 3 (LM3)이 대략 28,000년에서 32,0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처음 추정하였다. 이 추정은 인근에서 발견된 멍고인 1 (LM1)의 연대를 참조한 것이었다.
1987년 전자 스핀 공명 연대 측정 결과 약 31,000년 전(±7,000년)으로 추정되었다. 1999년에는 멍고인 3 (LM3) 매장지에 대한 열발광 연대 측정 실험 결과 매장 시점이 43,300년(±3,800년)에서 24,600년(±2,400년) 사이로 추정되었다. 같은 해 A. 스론은 우라늄-토륨 연대 측정, 전자 스핀 공명 연대 측정, 광학 연대 측정을 종합하여 멍고인 3 (LM3)의 생존 시기를 62,000년(±6,000년)으로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멍고인 3 (LM3)의 생존 연대 추정에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여러 연구 결과와 비교했을 때,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대학교의 연대 추정 결과는 다른 연구들의 최저 추정 연대인 43,000년보다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2003년, 여러 오스트레일리아 연구 그룹의 공동 연구에서 멍고인 3 (LM3)의 생존 연대는 약 40,000년 전으로 추정되었다. 이는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연대이며, 멍고인 3 (LM3)을 인도 동쪽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현생 인류 화석으로 만든다.
4.4. 미토콘드리아 DNA 기원
2001년 멍고인 3(LM3)의 골격에서 채취한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 결과가 발표되었다. LM3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현생 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 배열을 정리한 캠브리지 레퍼런스 시퀀스(CRS)와 비교했을 때 많은 차이를 보였다. LM3의 미토콘드리아 DNA에서 현생 인류까지 동일하게 전달된 부분은 11번 염색체이다.
LM3의 염기 배열을 보면 LM3는 현생인류의 가장 최근의 공통 선조 이전에 분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토콘드리아 DNA 비교 결과, 현재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멍고인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멍고인이 현생인류의 공통조상 이전에 멸종된 인류의 여러 아종 가운데 하나임을 시사하며, 현생인류의 다지역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과학계와 정치권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다. 유골의 염기 배열은 사후 변형과 열에 의한 파괴를 겪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을 검증하기 위한 추가 실험은 유골을 관리하는 세 원주민 그룹의 거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6년, 2001년 연구 결과를 재분석한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에서는 LM3의 염기서열이 현대 유럽인의 mtDNA로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2001년 연구에서 분석된 DNA 중 고대 DNA가 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4.5. 반환
ANU는 1974년 멍고인 3호를 발견하여 보관하고 있었다. 2014년, 윌랜드라 호수(Willandra Lakes)의 전통 소유자들은 유해 반환을 공식 요청했다. 2015년, 호주국립대학교는 공식 행사를 통해 원주민 원로(Aboriginal elder)들에게 유해를 인도하고, 유해 이전으로 인해 원주민 공동체에 "지속적인 슬픔"을 야기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이후 유골은 호주국립박물관의 인골 보관 시설에 안전하게 보관되었다. 2017년 11월, 멍고인 3호는 맘고 호수(Lake Mungo)로 반환되어 고대 붉은 고무나무(Red gum (Australia)) 관에 담겨 직접 땅에 매장되었다.
5. 추가 발견
1988년 멍고인과 동시대 인물로 추정되는 아동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세 원주민 그룹은 이 유골에 대한 추가 조사를 유골 강탈로 보고 거부하였다. 1989년에도 멍고인과 동시대 인물로 추정되는 어린이의 골격이 발견되었으나, 3TTG (Three Thousand Years of Traditional Governance)에 의해 유골 조사가 차단되었다. 이후 유골은 보호되었지만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2005년에는 침식으로 인해 성인의 골격이 노출되었지만, 2006년 말 바람과 비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원주민 수호자들은 침식되는 사구에서 골격, 화덕, 쓰레기 더미의 조사와 보존 개선을 위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로부터 735000USD의 보조금을 받았다. 원주민은 유골 발굴을 선조의 유골에 대한 강탈로 보고 있으며 더 이상의 조사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보존은 현장에서 이루어지며 어떠한 연구도 허용되지 않는다.
6. 사회문화적 의의
멜버른 대학교의 짐 바울러는 1969년 윌란드라 호수 지역에서 멍고인(LM1)을 발견하였고, 1974년 2월 26일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립 대학교의 짐 보울러가 멍고 호수에서 500m 정도 떨어진 모래 언덕에서 멍고인(LM3)을 발견하였다. 멍고인의 유골에는 붉은색 오커가 뿌려져 있었는데, 이는 가장 오래된 장례 문화의 사례로 꼽힌다. 오늘날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역시 이와 비슷한 장례 문화를 가지고 있어, 원주민의 장례 문화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멍고인(LM1)은 화장된 흔적이 있어 오스트레일리아 초기 인류 사회의 장례 문화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뼈에서 발견된 불에 탄 자국을 보면, 멍고인이 죽은 다음 화장 후 뼈를 부수고 황토색 안료인 오커를 덮고 다시 불을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커는 멍고인이 화장된 곳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만 발견되는 광물이다. 이 때문에 망자가 다시 일어나 생자를 잡으러 오는 일이 없도록 특별한 장례 의식이 치러졌다는 추측이 있다.
1992년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파아르칸트지(Paakantji), 마티 마티(Mathi Mathi), 응이얌파아(Ngiyampaa)로 이루어진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그룹인 ‘세 전통 부족’(the Three Traditional Tribal Groups, 3TTG)에게 멍고인(LM1)의 유골을 조건없이 반환하였다. 멍고인(LM1)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오랫동안 고유의 문화를 이어온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멍고인(LM1)은 멍고 국립 공원 전시 센터에 이중으로 잠긴 금고에 보관되어 있다. 두 개의 열쇠를 동시에 작동하여야 열리는 금고의 열쇠 가운데 하나는 고고학회가 보관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원주민 그룹이 보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