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리톤 만사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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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멜리톤 만사나스는 1938년 경찰에 입문하여 나치 독일과 협력하고 게슈타포가 점령된 프랑스에서 유대인들을 체포하는 것을 도운 인물이다. 그는 프랑코 시대의 정치 경찰 부서인 브리가다 폴리티코-소시알의 사령관을 역임했으며, 바스크 민족주의와 ETA에 반대했다. 1968년 ETA에 의해 암살되었으며, 사후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정부로부터 시민 공로 훈장을 받았지만, 그의 과거 행적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멜리톤 만사나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멜리톤 만사나스 곤살레스
원어 이름Melitón Manzanas González (에스파냐어)
직업경찰관
고문 기술자
알려진 이유나치 독일 협력
프랑코 정권 반체제 인사 고문
ETA의 희생자
출생1909년 6월 9일, 도노스티아-산 세바스티안, 에스파냐
사망1968년 8월 2일 (향년 59세), 도노스티아-산 세바스티안, 에스파냐
사망 원인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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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경

멜리톤 만사나스는 1938년 경찰에 입문하여 이룬에서 악명 높은 심문 센터 중 하나를 설립하고 나치 독일과 협력했다. 그는 게슈타포가 점령된 프랑스에서 탈출하려는 유대인들을 체포하는 것을 도왔다. 1941년 도노스티아-산 세바스티안으로 배정되어, 결국 프랑코 정권의 정치 경찰 부서인 산 세바스티안의 브리가다 폴리티코-소시알(BPS)의 사령관이 되었다. 바스크 출신인 그는 1960년대에 부활한 바스크 민족주의에 강력히 반대했으며, 특히 당시 신생 조직인 ETA에 반대했다.

2.1. 경찰 경력 초기

멜리톤 만사나스는 1938년 경찰에 입문하여 이룬에서 악명 높은 심문 센터 중 하나를 설립하고 나치 독일과 협력했다. 그는 게슈타포가 점령된 프랑스에서 탈출하려는 유대인들을 체포하는 것을 도왔다. 1941년 도노스티아-산 세바스티안으로 배정되어, 결국 프랑코 시대의 정치 경찰 부서인 산 세바스티안의 브리가다 폴리티코-소시알(BPS)의 사령관이 되었다. 바스크 출신인 그는 1960년대에 부활한 바스크 민족주의에 강력히 반대했으며, 특히 당시 신생 조직인 ETA에 반대했다.

2.2. 산 세바스티안에서의 활동

만사나스는 1938년 경찰에 입문하여 이룬에서 악명 높은 심문 센터 중 하나를 설립하고 나치 독일과 협력했다. 그는 게슈타포가 점령된 프랑스에서 탈출하려는 유대인들을 체포하는 것을 도왔다. 1941년 도노스티아-산 세바스티안으로 배정되어, 결국 프랑코 시대의 정치 경찰 부서인 산 세바스티안의 브리가다 폴리티코-소시알(BPS)의 사령관이 되었다. 바스크 출신인 그는 1960년대에 부활한 바스크 민족주의에 강력히 반대했으며, 특히 당시 신생 조직인 ETA에 반대했다.

3. 사망과 그 이후

1968년 8월 2일, 멜리톤 만사나스는 차비 에체바리에타 살해에 대한 대응으로 ETA가 계획한 첫 번째 암살 사건의 대상이었다. 범인들은 그의 거처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일곱 발의 총격을 가해 살해했다.

그가 사망한 지 30년 후,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정부는 만사나스에게 테러 희생자에게 헌정되는 시민 공로 훈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프랑코 정권 하에서 만사나스가 경찰 고문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스페인 정부에 의해 포상받은 첫 번째 고문자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이 상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3.1. ETA의 암살

1968년 8월 2일, 멜리톤 만사나스는 차비 에체바리에타의 살해에 대한 대응으로 ETA가 계획한 첫 번째 암살 사건의 희생자가 되었다. 암살범들은 만사나스의 거처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일곱 발의 총격을 가해 살해했다.

만사나스가 사망한 지 30년 후,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는 테러 희생자에게 헌정되는 시민 공로 훈장을 수여했다. 그러나 프랑코 정권 하에서 만사나스가 복무했고, 경찰 고문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사실과 더불어 그가 스페인 정부에 의해 포상받은 첫 번째 고문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이 상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3.2. 시민 공로 훈장 추서 논란

멜리톤 만사나스는 1968년 8월 2일 차비 에체바리에타 살해에 대한 대응으로 ETA가 계획한 첫 번째 살해 사건의 대상이었다. 범인들은 그의 거처에서 그를 기다리다가 일곱 발의 총격을 가해 살해했다.

그가 사망한 지 30년 후,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정부는 만사나스에게 테러 희생자에게 헌정되는 시민 공로 훈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프랑코 정권 하에서 만사나스가 경찰 고문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스페인 정부에 의해 포상받은 첫 번째 고문자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이 상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