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카와 다쿠미
1. 개요
모리카와 다쿠미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시즈오카 가쿠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6년 가시와 레이솔에 입단하며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가와사키 프론탈레, 콘사돌레 삿포로, 베갈타 센다이 등을 거쳐 로아소 구마모토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 후에는 로아소 구마모토의 구단 스태프, 코치, 규슈 산업대학 코치를 역임했으며, 2016년에는 콘사돌레 삿포로 U-15 감독을 맡았다.
| 이름 | 다쿠미 모리카와 |
|---|---|
| 출생일 | 1977년 7월 11일 |
| 출생지 |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 |
| 신장 | 1.71m |
| 포지션 | 수비수 |
| 유소년 클럽 | 시즈오카 가쿠엔 고등학교 (1993–1995) |
|---|---|
| 프로 클럽 | 가시와 레이솔 (1996–2002) 주벤투지 (1997, 임대) 가와사키 프론탈레 (1999–2000, 임대) 콘사돌레 삿포로 (2001, 임대) 베갈타 센다이 (2003–2005) 로소 구마모토 (2006–2007) |
| 출전 및 득점 (총합) | 192경기 (3골) |
| 가시와 레이솔 | 출전: 28 득점: 0 |
| 가와사키 프론탈레 | 출전: 43 득점: 3 |
| 콘사돌레 삿포로 | 출전: 15 득점: 0 |
| 베갈타 센다이 | 출전: 71 득점: 0 |
| 로소 구마모토 | 출전: 35 득점: 0 |
| 가시와 레이솔 | J리그컵 우승 (1999) |
|---|---|
| 가와사키 프론탈레 | J리그컵 준우승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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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수비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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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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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카마다 이와오
하카마다 이와오는 1966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재심을 통해 석방되었고, 2024년 무죄 판결을 받아 무죄가 확정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형수로 수감된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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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시타 케이스케
키노시타 케이스케는 쇼치쿠 촬영소에서 조감독을 거쳐 1943년 감독 데뷔 후, 멜로드라마와 코미디를 넘나드는 독창적인 연출과 사회적 공감으로 일본 영화계에 큰 영향을 미친 영화 감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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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마 노부유키
고지마 노부유키는 쇼난 벨마레, 아비스파 후쿠오카 등에서 활약한 일본의 은퇴한 축구 골키퍼 선수로, 쇼난 벨마레 시절 천황배와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은퇴 후에는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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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다카유키
야마구치 다카유키는 1973년 도쿄도 출생으로, 여러 팀에서 활약하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예선에 참가한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시즈오카 가쿠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6년 J1리그 클럽인 가시와 레이솔에 입단했다. 1998년에는 3백 수비의 왼쪽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1999년에는 경기에 전혀 출전하지 못했다. 1999년 4월, J2리그로 승격된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다. 3백 수비의 왼쪽 수비수로 주전 선수가 되었다. 나카니시 테츠오와 사하라 히데키 등과 함께 3백 수비진을 구성하여 팀의 J2 우승과 J1 승격에 공헌하였다. 특히 1999년 8월 23일 몬테디오 야마가타전에서는 J리그 첫 골을 기록하였고, 1999년 10월 23일 콘사돌레 삿포로전에서는 연장전에서 V골을 기록하는 등 공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2000년에는 가와사키로의 임대 이적이 연장되었다. 시즌 도중 감독 교체가 두 번이나 일어나는 혼란 속에서, 모리카와는 1st 스테이지 막바지인 5월부터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11월이 되어서야 다시 1군 출전 기회를 얻었고, 세레소 오사카전에서는 J1 리그에서의 유일한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팀은 J.리그컵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결국 1년 만에 J2로 강등되었다. 시즌 종료 후, 모리카와는 원 소속팀 가시와 레이솔의 복귀 요청으로 가와사키를 떠나게 되었다. 2001년, 모리카와는 2년 전 계약 기회를 놓쳤던 콘사돌레 삿포로로 임대 이적했다. 당시 콘사돌레 삿포로는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교체되어 J1리그로 승격한 상태였다. 오카다 다케시 감독의 의향으로 가시와 레이솔에 재차 요청이 있었고, 모리카와는 다시 한번 임대 이적을 하게 되었다. 삿포로에서 모리 히데아키나 오모리 켄사쿠 등 수비진의 후보 선수로 머무는 경우도 많았지만, 삿포로는 J1 잔류에 성공했다. 2002년에는 가시와 레이솔로 복귀했다. 그러나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2003년 베갈타 센다이로 이적했다. 이적 후 경기 출전 수가 다시 증가하였고, J2로 강등된 후인 2004년부터는 주전으로 기용되었다. 하지만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으로 4위에 그쳐 J1 복귀에 실패했다. 센다이는 팀 편성을 대폭 변경하였고, 결국 모리카와는 2005년 시즌을 끝으로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2006년 일본 풋볼 리그 클럽인 로쏘 구마모토로 이적했다. 2006년에는 주전 선수로 뛰었지만, 가시와 레이솔 재적 당시 코치였던 이케가야 토모요시 감독 아래에서 J리그 승격을 목표로 하였다. 구마모토는 일본 풋볼 리그에서 5위에 머물러 J리그 승격에 실패했다. 2007년에는 부상 등으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대기 선수로 남는 경우가 많아졌다. 팀은 2위를 기록하며 J리그 승격을 달성했지만, 모리카와는 2007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유소년 시절 (1993-1995)
모리카와 다쿠미는 시즈오카 학원 고등학교 시절부터 수비수로 축구를 계속했으며, 1995년 제74회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이시이 토시야, 미나미 유타와 함께 활약했다. 준결승에서 히가시후쿠오카 고등학교를 승부차기로 이기고, 결승에서 가고시마 실업과 비겨 양교 우승을 차지했다.
2.2. 가시와 레이솔 (1996-2002)
모리카와는 1977년 7월 11일 하마마츠에서 태어났다. 시즈오카 가쿠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6년 J1리그 클럽인 가시와 레이솔에 입단했다. 1998년에는 3백 수비의 왼쪽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1999년에는 경기에 전혀 출전하지 못했다.
2.2.1. 가와사키 프론탈레 임대 (1999-2000)
모리카와는 1999년 4월, J2리그로 승격된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다. 3백 수비의 왼쪽 수비수로 주전 선수가 되었다. 나카니시 테츠오와 사하라 히데키 등과 함께 3백 수비진을 구성하여 팀의 J2 우승과 J1 승격에 공헌하였다. 특히 1999년 8월 23일 몬테디오 야마가타전에서는 J리그 첫 골을 기록하였고, 1999년 10월 23일 콘사돌레 삿포로전에서는 연장전에서 V골을 기록하는 등 공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2000년에는 가와사키로의 임대 이적이 연장되었다. 시즌 도중 감독 교체가 두 번이나 일어나는 혼란 속에서, 모리카와는 1st 스테이지 막바지인 5월부터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11월이 되어서야 다시 1군 출전 기회를 얻었고, 세레소 오사카전에서는 J1 리그에서의 유일한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팀은 J.리그컵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결국 1년 만에 J2로 강등되었다. 시즌 종료 후, 모리카와는 원 소속팀 가시와 레이솔의 복귀 요청으로 가와사키를 떠나게 되었다.
2.2.2. 콘사도레 삿포로 임대 (2001)
2001년, 모리카와 다쿠미는 2년 전 계약 기회를 놓쳤던 콘사돌레 삿포로로 임대 이적했다. 당시 콘사돌레 삿포로는 가와사키 프론탈레와 교체되어 J1리그로 승격한 상태였다. 오카다 다케시 감독의 의향으로 가시와 레이솔에 재차 요청이 있었고, 모리카와는 다시 한번 임대 이적을 하게 되었다. 삿포로에서 모리 히데아키나 오모리 켄사쿠 등 수비진의 후보 선수로 머무는 경우도 많았지만, 삿포로는 J1 잔류에 성공했다.
2.3. 베갈타 센다이 (2003-2005)
모리카와 다쿠미는 2003년 J1리그의 베갈타 센다이로 이적했다. 이적 후 경기 출전 수가 다시 증가하였고, J2로 강등된 후인 2004년부터는 주전으로 기용되었다. 하지만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으로 4위에 그쳐 J1 복귀에 실패했다. 센다이는 팀 편성을 대폭 변경하였고, 결국 모리카와는 2005년 시즌을 끝으로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2.4. 로아소 구마모토 (2006-2007)
모리카와 다쿠미는 2006년 일본 풋볼 리그 클럽인 로쏘 구마모토로 이적했다. 2006년에는 주전 선수로 뛰었지만, 가시와 레이솔 재적 당시 코치였던 이케가야 토모요시 감독 아래에서 J리그 승격을 목표로 하였다. 구마모토는 일본 풋볼 리그에서 5위에 머물러 J리그 승격에 실패했다. 2007년에는 부상 등으로 인해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고, 대기 선수로 남는 경우가 많아졌다. 팀은 2위를 기록하며 J리그 승격을 달성했지만, 모리카와는 2007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3. 은퇴 후 경력
2008년, 모리카와는 J리그 승격으로 인해 명칭을 "로아소 구마모토"로 변경한 구단과 다시 계약을 맺고, 강화 담당 스태프로 취임했다. 2010년 시즌에는 구마모토의 1군팀 코치로 취임했다.
2013년 1월 29일에는 로아소 구마모토에서 규슈 산업대학으로 코치로 파견되는 것이 결정되었다.
2016년 1월 22일, 콘사돌레 삿포로 U-15 감독 취임이 발표되었다.
4. 개인 기록
모리카와 다쿠미는 선수 시절 여러 클럽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1996년 8월 28일, J리그 제16절 가시와 레이솔 대 감바 오사카 (히타치 가시와) 경기에 출전하며 J리그에 첫 발을 내딛었다. 1999년 8월 23일 J2리그 제23절 가와사키 프론탈레 대 몬테디오 야마가타 (등고로) 경기에서 J리그 첫 득점을 기록했다. J1리그 첫 득점은 2000년 11월 11일 J1리그 2nd 제12절 가와사키 프론탈레 대 세레소 오사카 (등고로) 경기에서 나왔다.
| 클럽 기록 | 리그 | 컵 | 리그 컵 | 합계 | ||||||
|---|---|---|---|---|---|---|---|---|---|---|
| 시즌 | 클럽 | 리그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일본 | 리그 |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 | 리그 컵 | 합계 | ||||||
| 1996 | 가시와 레이솔 | J1리그 | 2 | 0 | 0 | 0 | 3 | 0 | 5 | 0 |
| 1997 | 0 | 0 | 0 | 0 | 0 | 0 | 0 | 0 | ||
| 1998 | 20 | 0 | 0 | 0 | 4 | 0 | 24 | 0 | ||
| 1999 | 0 | 0 | 0 | 0 | 0 | 0 | 0 | 0 | ||
| 1999 | 가와사키 프론탈레 | J2리그 | 26 | 2 | 3 | 0 | 0 | 0 | 29 | 2 |
| 2000 | J1리그 | 17 | 1 | 1 | 0 | 4 | 0 | 22 | 1 | |
| 2001 | 콘사돌레 삿포로 | J1리그 | 15 | 0 | 1 | 0 | 2 | 0 | 18 | 0 |
| 2002 | 가시와 레이솔 | J1리그 | 6 | 0 | 0 | 0 | 4 | 0 | 10 | 0 |
| 2003 | 베갈타 센다이 | J1리그 | 13 | 0 | 0 | 0 | 5 | 0 | 18 | 0 |
| 2004 | J2리그 | 33 | 0 | 1 | 0 | - | 34 | 0 | ||
| 2005 | 25 | 0 | 1 | 0 | - | 26 | 0 | |||
| 2006 | 로아소 구마모토 | 일본 풋볼 리그 | 26 | 0 | 3 | 1 | - | 29 | 1 | |
| 2007 | 9 | 0 | 0 | 0 | - | 9 | 0 | |||
| 통산 | |3||10||1||22||0||224||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