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1. 개요
에마뉘엘 마크롱은 1977년 프랑스 아미앵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정치인이다. 그는 파리 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하고 재정감찰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로스차일드 & 시에 은행에서 투자 은행가로 일했으며,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밑에서 대통령 부총무장관을 거쳐 경제산업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6년 중도 정당 앙 마르슈!를 창당하고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했다. 2022년 재선에 성공했으며, 2024년 유럽 의회 선거 결과에 따라 국민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마크롱은 중도 성향의 정치인으로, 경제적으로는 자유 시장 경제를 옹호하고, 외교적으로는 유럽 연합의 통합을 강화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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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에마뉘엘 장미셸 프레데리크 마크롱 |
|---|---|
| 출생일 | 1977년 12월 21일 |
| 출생지 | 프랑스 솜주 아미앵 |
| 거주지 | 엘리제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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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 파리 X 나테르 (고등연구 석사) 시앙스 포 (행정학 석사) 국립행정학교(프랑스 국립 행정 학교) |
|---|
| 소속 정당 | 르네상스 (2016년–현재) |
|---|---|
| 기타 소속 정당 | 사회당 (2006년–2009년) 무소속 (2009년–2016년) |
| 직위 | 프랑스 대통령 |
|---|---|
| 대수 | 제25대 |
| 임기 시작 | 2017년 5월 14일 |
| 임기 종료 | 현직 |
| 이전 대통령 | 프랑수아 올랑드 |
| 총리 | 에두아르 필리프 장 카스텍스 엘리자베트 보른 가브리엘 아탈 미셸 바르니에 프랑수아 바유 |
| 직위 | 안도라 공동 공 |
|---|---|
| 재위 시작 | 2017년 5월 14일 |
| 재위 종료 | 현재 |
| 공동 공 | 주앙 엔리크 비베스 시실리아 |
| 안도라 총리 | 안토니 마르티 하비에르 에스포트 사모라 |
| 대표 | 파트리크 스트르조다 |
| 이전 공동 공 | 프랑수아 올랑드 |
| 직위 | 경제·산업·디지털 장관 |
|---|---|
| 임기 시작 | 2014년 8월 26일 |
| 임기 종료 | 2016년 8월 30일 |
| 총리 | 마뉘엘 발스 |
| 이전 장관 | 아르노 몽트부르 |
| 다음 장관 | 미셸 사팽 |
| 직위 | 대통령실 부비서실장 |
|---|---|
| 임기 시작 | 2012년 5월 15일 |
| 임기 종료 | 2014년 7월 15일 |
| 대통령 | 프랑수아 올랑드 |
| 이전 차장 | 장 카스텍스 |
| 다음 차장 | 로렌스 분 |
| 배우자 | 브리지트 트로뉴 (2007년 10월 20일 결혼) |
|---|---|
| 아버지 | 장미셸 마크롱 |
| 친척 | 로렌스 오지에르-주르당 (의붓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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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유주의 -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는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사상가로, 법학 연구에 기여하고 《법의 정신》을 통해 삼권 분립 사상을 제시했으며, 사회학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
프랑스의 자유주의 -
볼테르
볼테르는 이성, 자유, 관용을 옹호하며 종교적 불관용과 전제 정치를 비판하고 프랑스 사회 개혁을 촉구한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작가, 역사가이다. -
에마뉘엘 마크롱 -
브리지트 마크롱
브리지트 마크롱은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배우자이며, 교사 출신으로 남편의 선거 운동에 참여하고 영부인 역할을 수행하며 패션 스타일 논란 및 여러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
에마뉘엘 마크롱 -
프랑스의 코로나19 범유행
프랑스의 코로나19 범유행은 2020년 초 중국발 여행객을 통해 유럽 최초 감염 사례가 보고된 후 집단 감염을 거쳐 확산, 정부 대응 미흡과 봉쇄 조치,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혼란과 지속적인 방역 조치를 야기했다. -
G7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은 독일의 정치인으로, 2019년부터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임하며, 독일 연방의회 의원과 독일 정부의 여러 장관을 역임했고, 유럽 그린 딜, 코로나19 대응 등 주요 정책을 추진했다. -
G7 -
조르자 멜로니
1977년 로마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조르자 멜로니는 신파시스트 정당 청년 조직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이탈리아의 형제들을 창당, 당 대표를 역임하고 2008년 청소년부 장관을 지냈으며, 극우 또는 주류 보수주의자로 분류되며 보수적인 정책들을 추진하고 과거 행적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2. 생애
에마뉘엘 장미셸 프레데리크 마크롱(Emmanuel Jean-Michel Frédéric Macron프랑스어)은 1977년 12월 21일 프랑스 북부 아미앵에서 신경학 교수인 아버지 장-미셸 마크롱과 의사인 어머니 프랑수아즈 마크롱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교사였던 외할머니 제르맹 누게의 영향을 받아 독서를 즐기고 좌파적 가치관을 접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아미앵의 예수회 학교와 파리의 명문 앙리 4세 고등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파리 서부 낭테르 대학교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파리 정치대학에서 공공 행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프랑스 엘리트 공무원 양성 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를 2004년에 졸업했다.
ENA 졸업 후 재무부 산하 재정총감사국(Inspection générale des finances, IGF)에서 재정감사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2008년에는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 은행으로 이직하여 투자 자문 업무를 맡았다. 이 시기 사회당 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2006-2009년), 이후 특정 정당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당선되자 엘리제궁 부비서실장(경제 보좌관 격)으로 발탁되어 활동했고, 2014년 8월에는 마뉘엘 발스 내각의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관 시절 그는 사회당 정부 내에서 상대적으로 친기업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하며 주목받았다.
2016년 4월, 기존의 좌우 이념 구도를 넘어서는 중도주의 정치 운동을 표방하며 앙 마르슈!(En Marche!프랑스어, 전진!)를 창설했다. 같은 해 8월,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화하며 장관직에서 사임했다. 그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변화의 열망을 바탕으로 지지세를 넓혀나갔다. 2017년 5월 7일 치러진 대선 결선 투표에서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를 66.1%의 득표율로 꺾고 승리했으며, 39세의 나이로 프랑스 공화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2.1. 유년기
1977년 12월 21일 프랑스 솜주 아미앵에서 신경학 교수인 아버지 장-미셸 마크롱과 의사인 어머니 프랑수아즈 마크롱(옛 성씨 누게)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부는 2010년 이혼했으며, 마크롱에게는 1979년생 남동생 로랑과 1982년생 여동생 에스텔이 있다. 마크롱 가문의 뿌리는 피카르디 지방 솜주 오티 마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외할아버지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이며, 외조부모는 피레네 산맥의 바뉴레드비고르 출신이다. 마크롱은 어린 시절 바뉴레드비고르에 사는 할머니 제르맹 누게를 자주 방문했는데, 교사 출신으로 교장을 지낸 할머니를 "마네트(Manette)"라는 애칭으로 불렀으며, 독서의 즐거움과 좌익 성향을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여긴다.
종교가 없는 가정에서 자랐으나, 12세 때 스스로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현재는 불가지론자로 알려져 있다.
주로 아미앵에 있는 예수회 계열 학교인 라 프로비당스 고등학교(Lycée la Providence)에서 교육을 받았다. 동시에 아미앵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공부하여 졸업장을 받았고, 프랑스 문학 분야의 전국 고교 경시대회인 콩쿠르 제네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은 파리의 명문 앙리 4세 고등학교(Lycée Henri-IV)에서 마쳤는데, 이는 당시 유부녀였던 교사 브리지트 오지에르(훗날 마크롱의 아내)와의 관계를 반대한 부모가 그를 파리로 보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이과 계열 바칼로레아를 우수한 성적(Mention Très bien)으로 통과했다.
파리에서 에콜 노르말 슈페리외르 입학에 두 차례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대신 파리 서부 낭테르 대학교(파리 10대학교)에 진학하여 철학을 공부했고,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에 관한 논문으로 DEA 학위(석사 과정 학위)를 받았다. 1998년에는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에도 입학하여 2001년 공공 행정 석사 학위로 졸업했다. 대학 시절인 1999년경에는 프랑스의 저명한 개신교 철학자 폴 리쾨르의 편집 조수로 일하며 그의 저서 《기억, 역사, 망각》(La Mémoire, l'Histoire, l'Oubli)의 주석 및 참고 문헌 작업을 도왔다. 또한 진보 성향의 잡지 에스프리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마크롱은 대학원 과정을 이수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1977년 12월생인 그는 프랑스에서 병역이 의무였던 마지막 세대에 해당한다.
이후 프랑스 엘리트 공무원 양성 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에 진학하여 고위 공무원 과정을 밟았다. 재학 중 나이지리아 주재 프랑스 대사관과 오아즈 현청에서 실무 수습을 거쳤으며, 2004년 ENA를 졸업했다.
2.2. 공직 경력
2004년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하고 프랑스 경제재정부 산하 재정총감사국(Inspection générale des finances, IGF)에서 재정감사관으로 공직 경력을 시작했다. 당시 IGF 국장이었던 장-피에르 주예의 지도를 받았으며, 재임 중 사립 그랑제콜 준비반(CPGE)인 IPESUP에서 ENA 입학 준비생을 위한 여름 강좌를 진행하기도 했다.
1998년부터 2년간 시민운동에서 활동했으나 정식 당원은 아니었고, 24세에 사회당에 입당했지만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당적을 갱신하지 않았다. 2007년에는 사회당 소속으로 총선 출마를 시도했으나 후보로 선정되지 못했다.
2007년 자크 아탈리가 주도한 '프랑스 성장 해방 위원회'의 부보고관으로 임명되었고, 2010년에는 위원으로 다시 활동했다. 2008년에는 공직을 떠나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 & 시에 은행에 합류했다. 이곳에서 네슬레의 화이자 유아 영양 사업부 인수(약 9 규모)와 같은 거래를 성사시키며 금융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았고 상당한 수입을 얻었다. 2012년 은행을 떠나 공직에 복귀했다.
2012년 5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취임과 함께 엘리제궁 부비서실장으로 임명되어 올랑드 대통령의 주요 경제 참모로 활동했다. 재임 기간 동안 올랑드의 대선 공약이었던 고소득층 증세안 철회를 설득하고, 기업 고용 증진을 위한 40 규모의 세금 감면 정책인 '책임 협약' 추진을 주도하는 등 친기업적 성향을 보였다. 또한 주 35시간 근무제를 37시간으로 연장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4년 6월, 제1차 발스 내각 구성 시 장관직을 얻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 등으로 부비서실장직에서 사임했다.
2014년 8월, 36세의 나이로 제2차 발스 내각의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사회당 정부 내에서 이례적으로 친기업적인 경제 개혁을 추진했다. 2015년에는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파리 등 주요 관광지의 상점 일요일 및 심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소위 '마크롱 법'을 발표했다. 이 법안은 노동조합과 사회당 내부로부터 노동자의 휴식권을 침해한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으며, 의회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헌법 제49조 3항을 발동하여 표결 없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강수를 두었다. 또한 사회당의 핵심 노동 정책인 주 35시간 근무제 개정을 시도하며 "과거 좌파는 기업에 맞서거나 기업 없이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장관 재직 시절 차량 공유 서비스 기업 우버의 프랑스 내 사업 확장을 위한 로비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이 훗날 드러나기도 했다.
2016년 4월, 중도 성향의 정치 운동인 앙 마르슈!를 창설했고, 같은 해 8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장관직에서 사임했다.
2.3. 정치 활동과 대통령 선거
1998년부터 2년간 시민운동(Mouvement des citoyens)에서 활동했으나 정식 회원은 아니었다. 파리 11구 시장 조르주 사르(Georges Sarre) 보좌관으로 일하며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에서 공부했다. 24세에 사회당에 입당했지만,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당적을 갱신하지 않았다.
2006년 장-피에르 주예(Jean-Pierre Jouyet)를 통해 프랑수아 올랑드를 만났고, 2010년 그의 참모진에 합류했다. 2007년 사회당 소속으로 피카르디에서 2007년 프랑스 총선에 출마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2010년 프랑수아 피용 총리의 차장 비서실장직 제안은 거절했다.
2012년 5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궁 부사무총장(Secrétaire Général Adjoint)으로 임명되었다. 부실장 재직 당시 그는 '상위 1%에게 75%의 고세율을 부과하겠다'는 올랑드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철회시키고,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게 40의 세금을 감면해 주는 '책임 협약'을 이끄는 업적을 이루었다.
2014년 8월, 36세의 나이에 제2차 마뉘엘 발스 내각에서 경제·산업·디지털 장관에 임명되어 2년여간 재직하며, 본래의 친기업 성향대로 사회당 정부 내에서 우파 정책들을 이끌어왔다.
2015년에는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같은 관광 지구 내 상점가의 일요일 및 심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경제개혁법을 발표했다. 당시 정권 주요지지층인 프랑스 노동조합과 사회당 내부에서도 노동자의 휴식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의회 표결로 관련 법안 통과가 어렵게 되자 헌법 예외조항을 이용해 표결 대신 정부 발표로 대신하는 방법을 동원해 정책을 관철했다. 또 사회당의 대표 노동정책인 35시간 근무제 개정도 주도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는 "기존에 좌파는 기업에 대항하거나 기업 없이도 정치를 할 수 있었고,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16년 4월, 중도 성향의 정당인 앙 마르슈!(En Marche!프랑스어)를 창당하고, 대선 출마를 위해 2016년 8월부로 경제산업부 장관직을 사임했다. 좌우파를 가르는 중도 정당 정치에 대해 마크롱은 "나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라면서 "기존 정치에 맞서 민주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주장하며, 기성 정치를 비판하고 중도 표심을 이끄는 전략을 펼쳤다. 이 때문에 선거 중반까지 좌우 체제를 뛰어넘겠다는 마크롱의 선언을 두고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선출직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상대 후보로부터 '경륜 부족'으로 공격을 받아왔다. 구체적인 공약으로는 강한 유럽 연합 건설, 법인세 인하, 공공부분 일자리 12만명 감축, 재정지출 축소, 친환경·직업훈련 예산 확대 등을 내세웠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1월까지는 여론조사에서 중도우파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에 이어 3위에 머물렀으나, 피용 후보가 가족이 연루된 공금 횡령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1월 말부터 2위에 올랐다.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지지율 약진을 거듭하여 3월 10일에는 Ifop와 피뒤시알이 조사한 1차 투표 여론조사 결과에서 25.5%를 기록해 마린 르펜 후보보다 불과 0.5%가 뒤지고, 전날 해리스 인터랙티브와 프랑스 텔레비전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1차 투표 지지율이 26%로 르펜 후보를 처음으로 앞서기도 했다.
2017년 3월 14일 프랑스 경제부 산하 공영 기관인 비즈니스 프랑스가 2016년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의 참가 행사와 관련해 경쟁 입찰 없이 특정 업체에게 수의계약으로 준 의혹에 대해 파리 검찰청이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마크롱 후보가 경제장관으로서 해당 사업의 총괄 책임자였고 CES 행사의 주요 연설자였기 때문에 검찰조사를 받게 되었다. 마크롱 후보 측은 업체 선정에 있어 개인적인 법적 책임은 없다고 부인했다.
2017년 5월 7일 열린 제25대 대통령 선거 2차 결선 투표에서 66.1%의 득표율로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현지시각 오후 6시 출구조사 결과가 60%에 달하는 마크롱의 압도적인 승리로 예측되자, 마크롱은 AFP에 "오늘 밤, 우리의 오랜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린다. 나는 오늘의 결과가 희망과 새로운 신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마크롱의 당선으로 기존까지의 거대 양당이었던 사회당이나 공화당 소속이 아닌 비주류 정권으로서,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6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 되었다. 39세의 나이로 역사상 가장 젊은 프랑스 대통령이 되었으며, 에두아르 필리프를 프랑스 총리로 임명했다.
2017년 6월 총선에서 마크롱의 정당은 '공화당 전진!'(La République En Marche!프랑스어, LREM)으로 개칭되었고, 민주운동(MoDem)과 연합하여 의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반체제, 반 마크롱 정권을 표방하며 장기간 지속된 노란 조끼 운동 완화 조치의 일환으로, 2019년 4월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엘리트 양성 학교인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의 폐교를 선언했다.
2022년 4월 24일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득표율 58.55%로 전과 같이 마린 르펜을 누르고 재선되었다.
2024년 6월 9일에 치러진 유럽 의회 의원 선거에서 여당 연합이 국민연합에 득표율에서 두 배 이상의 차이로 참패한 것을 계기로, 1997년 자크 시라크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이 의회 해산과 총선을 선언했다.
3. 정책
에마뉘엘 마크롱의 정치 성향은 '제3지대'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불평등 해소와 기회 균등 같은 좌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친기업적인 우파 정책을 제시하는 등 전반적으로 중도주의를 표방한다. 스스로를 마오주의자라고 칭하며 선거 유세 중 마오쩌둥의 실용주의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노동법 완화, 소외 지역 교육 강화, 자영업자 보호책 마련 등을 공약했으며, 정치·사회적으로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 연합 체제를 유지하며 개혁을 주도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세계화의 폐단을 수정하면서도 유럽 통합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행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 부실장을 지낸 후, 2014년 8월에는 마뉘엘 발스 내각의 경제·산업·디지털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1962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이후 최연소 장관 임명 기록이었다. 전임자와 달리 친EU 성향을 보였으며, 언론으로부터 '반-몽부르'로 불리며 기업 친화적인 시각에서 개혁을 추진했다. 장관 재직 시절 추진한 구체적인 경제 및 노동 정책, 그리고 이에 대한 평가는 하위 섹션에서 상세히 다룬다.
2015년 8월, 마크롱은 더 이상 사회당 소속이 아니며 독립적인 정치 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3.1. 국내 정책
에마뉘엘 마크롱은 좌파와 우파의 이분법을 넘어선 '제3지대'를 표방하며 정계에 등장했다. 그는 2016년 4월 중도 성향의 정당 앙 마르슈!를 창당하고, "기존 정치에 맞서 민주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하며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과 함께 중도 표심을 공략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불평등 해소와 기회 균등 같은 좌파적 가치를 내세우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친기업적인 우파 정책을 제시하는 등 중도주의 노선을 걸었다. 대선 공약으로는 강한 유럽연합 건설, 법인세 인하, 공공부문 일자리 12만 명 감축, 재정지출 축소 등을 내걸었다.
대통령 취임 이후 마크롱 정부는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공직 사회 투명성 제고, 노동 시장 유연화, 세제 개편, 테러 대응 및 안보 강화, 이민 정책 등 구체적인 내용은 하위 섹션에서 상세히 다룬다.
한편, 마크롱 정부는 예기치 못한 사회적 저항과 위기 상황에도 직면했다. 2018년 말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며 시작된 노란 조끼 운동은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확산되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유류세 인상 철회를 발표하고, 저소득층 및 중산층을 위한 소득세 감면과 연금 인상, 엘리트주의의 상징으로 비판받던 국립행정학교(ENA) 폐지 등을 약속하며 민심 수습에 나섰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는 방역 조치와 함께 경제 회복 정책을 추진했으며, 백신 미접종자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국방 분야에서는 2001년 폐지된 징병제 대신, 16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국민 봉사(Service national universel, SNU) 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하여 국가적 결속과 시민의식 함양을 도모하고자 했다. 초기에는 군 복무를 포함한 의무 복무 형태였으나, 비판 여론을 수렴하여 시민 봉사 활동 중심으로 변경되었다.
환경 문제에 있어서는 2040년까지 가솔린 및 디젤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지구 온난화 대책을 헌법에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마크롱의 국내 정책은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인 개혁을 목표로 했지만, 이 과정에서 노란 조끼 운동이나 연금 개혁 반대 시위와 같은 큰 사회적 갈등을 겪기도 했다. 2022년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을 잃은 후에는 소수 정부로서 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겪으며 헌법 49조 3항을 동원하는 등 불안정한 국정 운영을 보이기도 했다.
3.1.1. 반 부패 정책
2017년 3월, 마크롱이 경제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프랑스 경제부 산하 공영 기관인 비즈니스 프랑스가 2016년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관련 행사를 특정 업체와 경쟁 입찰 없이 수의계약으로 진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파리 검찰청이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마크롱은 당시 사업의 총괄 책임자였으며 CES 행사의 주요 연설자였기에 조사를 받게 되었다. 마크롱 후보 측은 업체 선정 과정에서 개인적인 법적 책임은 없다고 부인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경쟁자였던 프랑수아 피용 후보의 페넬로페게이트(공금 횡령 의혹)가 불거진 가운데, 마크롱은 정치 개혁을 강조했다. 당선 이후, 마크롱이 발의한 프랑스 정치권의 집단 비리 방지법의 일부가 2017년 7월까지 국회를 통과하여 국회의원 등이 자신의 가족을 보좌진 등으로 채용하는 것을 금지하게 되었다. 또한 선거 자금 폐지 관련 논의도 진행되었으나, 상원의 반대로 투표가 예정되었다.
한편, 마크롱은 자신의 부인 브리지트에게 정부 내에서 공식적인 역할을 부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는 비민주적이며 족벌주의에 해당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온라인 청원 사이트 change.org에서 반대 서명이 29만 명에 달하자 마크롱은 결국 이 계획을 포기했다.
2017년 8월 9일, 프랑스 국회는 선거 자금 폐지 관련 논의를 거쳐 마크롱 선거 운동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공직자 윤리 법안을 최종 채택했다.
3.1.2. 노동 정책 및 노조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실 부실장(2012-2014) 시절부터 친기업적 성향을 보였다. 올랑드 대통령의 '상위 1%에게 75%의 고세율을 부과하겠다'는 공약 철회를 주도했으며,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게 40의 세금을 감면해 주는 '책임 협약'을 이끌었다. 또한 2012년 여름에는 주당 35시간 근무제를 37시간으로 늘리자고 제안했으나 당시 올랑드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4년 사회당 정부의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으로 임명된 후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친기업, 우파적인 노동 정책을 추진했다. 2015년에는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파리 샹젤리제 거리와 같은 관광 지구 내 상점가의 일요일 및 심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경제개혁법, 소위 '마크롱 법'을 발표했다. 이 법안은 당시 정부의 주요 지지층이었던 프랑스 노동조합과 사회당 내부에서조차 노동자의 휴식권을 침해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의회 표결을 통한 법안 통과가 어려워지자, 마크롱은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의 예외 조항인 49.3 조항을 동원하여 의회 표결을 생략하고 정부 발표만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정책을 강행 처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또한 사회당의 상징적인 노동 정책이었던 35시간 근무제 개정을 주도하며 "기존에 좌파는 기업에 대항하거나 기업 없이도 정치를 할 수 있었고,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동법 완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집권 이후에도 고용과 임금 결정에 있어 시장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했다. 2018년 초까지 시행된 정책으로는 해고 보상금 상한액 인하, 다국적 기업의 해고 요건 완화, 부당 해고에 대한 소송 제기 가능 기간 단축(2년에서 1년으로) 등이 있다.
2023년에는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기존 62세에서 64세로 높이는 연금 개혁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의회 과반수 확보가 불투명해지자 2023년 3월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는 또다시 헌법 49조 3항을 발동하여 의회 표결 없이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이 결정은 프랑스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으며, 파리 콩코르드 광장 등지에서 벌어진 격렬한 항의 시위 과정에서 약 120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3.1.3. 이주 위기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이민 및 난민 정책은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2018년 4월에는 새로운 이민법이 통과되었는데, 이 법안은 난민 신청 기한을 단축하고, 불법 체류자의 구금 가능 기간을 기존의 두 배로 늘렸으며, 불법 입국 시 1년의 금고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사실상 이민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어서 인권 옹호 단체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3.1.4. 경제 정책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밑에서 일하던 시기부터 마크롱의 경제 정책 방향성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2012년 대통령실 부실장으로 임명된 그는 올랑드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었던 '상위 1%에 대한 75% 고세율 부과'를 철회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 대신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게 40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책임 협약'을 주도하며 친기업적 성향을 보였다. 엘리제궁 부총무장관으로 재직할 당시에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37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을 제안하고,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인상 계획을 저지하려 했으며, 최고경영자(CEO) 연봉 규제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2014년, 36세의 나이로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에 임명된 마크롱은 사회당 정부 내에서 우파에 가까운 경제 정책들을 이끌었다.
한편, 마크롱이 경제산업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미국 차량 공유 업체 우버의 프랑스 내 사업 확장을 위한 로비 활동을 비밀리에 지원했다는 의혹이 2022년 '우버 파일' 폭로를 통해 제기되었다. 이 폭로는 야당 의원들의 의회 조사 요구로 이어졌으나, 마크롱은 "자신의 임무를 다했을 뿐"이며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내일과 모레도 다시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반박하며 논란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마크롱은 경제 분야에서 여러 공약을 내걸었다. 주요 내용으로는 강력한 유럽연합 건설 지원, 법인세 현행 33%에서 25%로 인하, 공공부문 일자리 12만 명 감축, 재정지출 축소 등이 포함되어 친기업 및 재정 건전화 기조를 명확히 했다. 또한 세계화를 지지하며, 유럽 연합 내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EU 기관들이 물품 구매 시 유럽산을 우선 고려하도록 하는 이른바 '바이 유럽법(Buy European Act)' 도입을 공약했으나, 이는 EU 집행위원회와 독일 등으로부터 보호무역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과 함께 난색 표명을 받았다. 당선 이후에는 공약에 따라 노동법 완화, 소외 지역 교육 강화, 자영업자 보호책 마련 등을 추진하는 한편, 브렉시트 이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유럽 연합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통령 취임 이후 마크롱 정부는 여러 경제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우선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인다는 목표 아래 해고 보상금 상한선을 설정하고, 기업의 해고 요건을 완화하며, 부당 해고에 대한 소송 제기 가능 기간을 기존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노동법 개혁을 임기 초반에 실시했다.
재정 및 세제 분야에서는 재정적자 감축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사회보장 재원 확보를 위해 일반사회기여금(CSG)을 인상했다. 반면, 기업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법인세를 단계적으로 인하(33%→25% 목표)하고, 부유세로 비판받던 자산세(ISF)의 과세 대상을 부동산으로 한정하여 사실상 축소했으며, 자본이득에 대해서는 30%의 단일세율을 도입했다. 또한 가계 부담 완화를 명목으로 2022년까지 전체 가구의 80%를 대상으로 지방주민세를 폐지하는 계획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정책은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2018년 말, 경유 및 휘발유 가격 인상과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며 시작된 노란 조끼 운동은 마크롱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이 표출되면서 1968년 5월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사회 운동으로 번졌다. 격렬한 시위와 폭력 사태가 이어지자 마크롱 정부는 결국 2019년 초 유류세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또한 마크롱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위한 5 규모의 소득세 감면과 연금 인상을 약속하고, 프랑스 엘리트주의의 상징으로 비판받아 온 자신의 모교 국립행정학교(ENA) 폐지를 공언하며 국정 운영 방식 변화를 시사했다.
마크롱 정부의 가장 큰 논란을 낳은 경제 정책은 연금 개혁이었다. 2023년, 연금 수령 시작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64세로 단계적으로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 개혁안은 노동계와 야당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고, 의회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마크롱 정부는 또다시 헌법 49조 3항을 발동하여 의회 표결 없이 법안 통과를 강행했다. 이 조치는 프랑스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촉발하고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으며, 당시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이끌던 내각은 불신임 투표에서 단 9표 차이로 간신히 살아남는 등 정치적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22년 총선에서 여당 연합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마크롱은 소수 정부를 이끌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정책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특히 2023년 정부 예산안과 사회보장 예산안 등을 통과시키기 위해 헌법 49조 3항을 10차례나 사용하는 등 불안정한 국정 운영을 이어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는 생활비 위기 완화 법안, 코로나19 관련 비상 조치 종료 법안, 프랑스 원자력 발전 부흥 법안 등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2024년에는 예상보다 부진한 경제 성장률과 재정 적자 확대 우려 속에서 10 규모의 긴급 지출 삭감 계획을 발표해야 했다. 한편, 국제 정세 변화 등을 이유로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총 413 규모의 군사비 증액을 결정하는 법안에도 서명했다.
이민 정책과 관련해서는 집권 초기 마린 르 펜 등 극우 진영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한 입장을 보였으나, 점차 강경한 방향으로 정책 기조가 변화했다. 2023년에는 "현재 상황이 지속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법 이민부터 시작하여 이민을 상당히 줄여야 한다"고 직접 언급하며, 추방 요건 완화와 난민 신청 절차 신속화 등을 포함한 이민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이 법안은 의회 통과 과정에서 우파 공화당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면서 더욱 강화되었고, 결국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의 지지까지 얻어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 내에서도 법안 내용에 대한 반발이 터져 나와 오렐리앵 루소 보건부 장관이 항의의 표시로 사임하는 등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3.1.5. 유럽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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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연합(EU)의 통합 강화를 기본적인 입장으로 삼고 있다.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으로 브렉시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되 유럽 연합의 틀을 지키면서 체제를 개혁하는 임무를 주도하겠다고 밝혔으며, "유럽 연합을 통한 유럽의 통합과 세계화의 폐단은 고치되, 앞으로 나가자"고 주장하였다. 2017년 대선 당시 유럽 집행위원회 위원장 장-클로드 융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등 많은 외국 정치인들이 극우 포퓰리즘 후보인 마린 르펜과의 대결에서 마크롱을 지지하며 유럽 통합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NATO에 대해 위협적인 발언을 반복하자, 유럽의 안보를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게 하고 EU에 의한 안보 강화를 호소했다. 2018년 8월 27일에는 "유럽은 더 이상 자국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 유럽의 안보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며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했다. 같은 해 11월 5일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정한 유럽군" 창설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도 자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중요한 군축 조약에서 탈퇴를 발표한 것을 예로 들며,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 희생자는 유럽과 그 안보가 될 것이므로 "진정한 유럽군을 갖겠다고 결의하지 않는 한, 우리는 유럽 시민을 보호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마크롱의 "유럽군" 구상에 대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모욕적인 말"이라며 유럽이 먼저 NATO에 공정한 분담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반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유럽이 안보의 독립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세계 다극화를 위해 좋다"고 발언하여 미국과 유럽 사이의 이견을 부각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18년 11월 13일 유럽 의회 연설에서 "우리는 진정한 유럽군을 언젠가 창설하기 위해 비전을 논의해야 한다"며 마크롱의 구상에 찬성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군이 "유럽 각국 사이에서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될 것"이며, "NATO에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보완이 될 것"이라고 덧붙여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를 일축했다.
브렉시트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 샤를 드 골 대통령이 영국의 EU 가입에 강경했던 것처럼, EU 통합 유지를 위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스페인의 『엘 파이스』지는 마크롱이 독일 메르켈 총리의 "착한 경찰" 역할과 대비되는 "나쁜 경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마크롱이 다른 EU 지도자들과 달리 외교적 수사보다는 조건을 명확히 제시하고 빠른 해결을 요구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메이 총리와 EU 간의 협상에 대해서도 "솔직히 현실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3.1.6. 테러리즘
2017년 7월, 상원은 마크롱의 공약이었던 더욱 엄격한 테러방지법을 담은 논란의 법안 1차 심의를 통과시켰다. 국회는 10월 3일 찬성 415표, 반대 127표, 기권 19표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내무장관 제라르 콜롱은 투표에 앞서 프랑스가 여전히 "전시 상태"에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이틀 전 발생한 마르세유 칼부림 사건(10월 1일) 때문이었다. 상원은 10월 18일 찬성 244표, 반대 22표로 2차 심의를 통과시켰다. 같은 날 마크롱은 2017년 초 이후 13건의 테러 음모가 저지되었다고 밝혔다. 이 법은 프랑스의 비상사태를 대체하고 일부 조항을 상시 조항으로 만들었다.
이 법안은 인권 옹호 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르 피가로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이 법안을 찬성했지만, 62%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법은 당국에 주택 수색, 이동 제한, 예배 장소 폐쇄, 기차역과 국제 항구 및 공항 주변 지역 수색 등의 권한을 확대했다. 시민적 자유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수정을 거친 후 통과되었다. 가장 처벌적인 조치는 매년 검토되며 2020년 말까지 종료될 예정이었다. 이 법안은 2017년 10월 30일 마크롱에 의해 서명되어 법률로 제정되었다. 그는 11월 1일부터 비상사태가 종식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3.1.7. 시민권
마크롱은 자신의 정치 성향을 좌파도 우파도 아닌 '제3지대'로 규정하며, 정치사회적으로는 불평등 해소와 모든 시민을 위한 기회 확대를 추구하는 정책을 내세웠다. 그는 기존 정치에 맞서 "민주 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주장하며 중도적 입장을 표방했다.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으로는 소외 지역에 대한 교육 강화와 자영업자 보호책 강구 등을 제시하여 시민 생활 개선 의지를 보였다. 또한 페넬로페게이트 이후 정치권의 비리 방지를 위해 가족 채용을 금지하는 법안 통과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 장관 시절 이제르주 에코플라 공장 폐쇄를 막지 못해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대통령 취임 후 부인에게 정부 내 공식적 역할을 부여하려던 계획은 족벌주의라는 비판과 함께 시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마크롱은 온라인 청원 사이트 change.org에 약 29만 명이 서명하는 등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결국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국회는 2017년 8월 9일, 마크롱 선거 운동의 핵심 주제였던 공직자 윤리 법안을 채택했다.
3.2. 외교 및 국방 정책
마크롱은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으로 강한 유럽 연합 건설을 내세웠으며, 브렉시트 이후 유럽 연합의 틀을 지키면서 체제를 개혁하는 임무를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 연합을 통한 유럽의 통합과 세계화의 폐단은 고치되, 앞으로 나가자"고 주장하며 다자주의를 중시하는 입장을 보였다. Le Journal du Dimanche프랑스어를 위한 IFOP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크롱은 62%의 지지율로 5년 임기를 시작했다. 이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초임(61%)보다는 높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65%)보다는 낮은 수치다.
마크롱은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2017년 5월 25일 브뤼셀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처음 만났다. 이 만남은 두 사람의 힘겨루기처럼 보인 악수로 주목받았다. 같은 해 5월 29일에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IS와의 공조를 촉구하는 한편, 러시아 언론사인 러시아 투데이와 스푸트니크를 "선전 기관"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시리아 내전과 관련하여 "화학무기가 사용되면 시리아에 무력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실제로 2018년 시리아 두마에서 발생한 화학무기 공격에 대응해 프랑스군의 공습을 지휘했다.
2017년 8월 첫 주요 외교정책 연설에서는 국내외 이슬람 테러 퇴치를 프랑스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국제사회의 강경한 대응을 촉구했다. 또한 이란 핵 협정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고 베네수엘라 정부를 "독재 정권"으로 비판했다.
=== 유럽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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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은 유럽 연합(EU)의 통합 강화를 기본 입장으로 삼고 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자, 유럽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EU 자체의 안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년 8월에는 "유럽은 더 이상 자국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고 선언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진정한 유럽군" 창설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도 자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유럽군' 구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비판했지만,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진정한 유럽군을 언젠가 창설하기 위해 비전을 논의해야 한다"며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역시 유럽의 독자적인 안보 추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미국과 유럽 간의 이견을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2020년 2월 제56차 뮌헨 안보회의에서는 EU 강화를 위한 10개년 비전을 제시하며 예산 증액, 통합 자본 시장 구축, 효과적인 국방 정책 및 신속한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NATO, 특히 미국과 영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유럽에 바람직하지 않으며, 러시아와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2023년 4월 중국 방문 이후에는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개념을 더욱 강조했다. 그는 유럽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특히 타이완 문제와 같은 특정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야 하며, "세 번째 초강대국"이 될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유럽 자체 방위 산업 강화와 미국 달러 의존도 감소를 제안했다. 헤이그 연설에서도 이러한 비전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유럽외교위원회(ECFR)의 보고서에 따르면 다수 유럽인들이 마크롱의 견해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5월 브라티슬라바 GLOBSEC 포럼에서도 유럽 주권 강화를 재차 역설했다.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브렉시트) 문제에 대해서는 EU 통합 유지를 중시하며 영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영국이 조건을 명확히 하고 조속히 탈퇴 절차를 마무리하기를 원했으며, 협상 과정에서 영국 측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2019년 2월에는 이탈리아의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가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 지도자들과 만난 것에 대해 "도발"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여 주이탈리아 프랑스 대사를 소환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양국 관계가 가장 악화되기도 했다. 2022년 10월에는 새로 취임한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와 가장 먼저 정상회담을 가졌다.
2020년 7월에는 튀르키예가 그리스와 키프로스의 해상 주권을 침해하고 리비아 내전에 개입한 것을 강하게 비난하며 EU 차원의 제재를 촉구했다.
=== 미국과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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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며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8년 4월 미국 방문 시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국의 파리협정 및 이란 핵 합의 탈퇴 등 일방주의적 행보를 비판하며, 미국이 다자주의를 만들어냈으니 이를 유지하고 재건하는 역할 또한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10월 미국이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 탈퇴를 선언하자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유럽 안보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고를 촉구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2018년 11월)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국주의를 겨냥하여 "'우리의 이익이 최우선이고 다른 것은 상관없다'는 민족주의적 태도는 국가가 지닌 가장 중요한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2019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 75주년 기념식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면전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 정책을 지적하며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근간인 "노르망디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2022년 9월과 10월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노르웨이 등 우방 천연가스 공급국들이 유럽에 자국 산업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가스를 판매하는 것을 비판하며 "이것이 우정의 의미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러시아와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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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유지를 지지해왔다. 2017년 대선 당시에는 러시아가 선거 운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자신의 선거 캠프 웹사이트와 이메일 서버에 사이버 공격을 감행했다고 비난하며 러시아에 대선 개입 중단을 경고했다.
하지만 동시에 러시아와의 대화 채널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 참관을 계기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2019년 12월에는 파리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러시아 푸틴 대통령 간의 노르망디 형식 회담을 중재하여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 관련 포로 상호 교환과 휴전 이행을 확인하는 공동 성명 발표에 기여했다. 2019년 G7 비아리츠 정상회의를 앞두고 푸틴 대통령을 초청하여 러시아가 유럽의 일원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로는 푸틴 대통령과 수차례 전화 통화를 하며 침공 저지나 조기 철군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했으며, 2022년 6월에는 독일, 이탈리아 정상과 함께 키이우를 방문하여 "우크라이나는 승리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의 단결"을 표명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립을 지킨 국가들이 역사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신제국주의에 가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3년 6월에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돕기 위해 더 많은 군수품 지원을 약속했고, 7월 NATO 빌뉴스 정상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스칼프 장거리 순항 미사일 제공을 발표했다. 2023년 11월에는 러시아의 행동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 규정하면서도, 2023년 5월에는 푸틴과의 협상이 (젤렌스키 등이 요구하는) 전쟁범죄 재판보다 우선되어야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2024년 2월에는 우크라이나에 지상군 파병 가능성을 제기하여 논란을 일으켰고, 5월에는 우크라이나가 프랑스가 제공한 스칼프 미사일을 사용하여 러시아 영토 내 미사일 발사 기지를 공격하는 것을 허용했다.
=== 중국과의 관계 ===
경제장관 시절 마크롱은 툴루즈 블라냐크 공항 지분 일부의 중국 기업 매각을 지지하고,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어록을 인용하며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중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2018년에는 중국 기업이 프랑스 내에서 투기적으로 농지를 매수하는 것에 대해 규제책을 강구하겠다고 천명했고, 2019년 3월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는 "중국에 대한 온정적인 생각을 가질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무역 불균형 시정 등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같은 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프랑스 방문 시에는 독일 메르켈 총리와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을 초청하여 4자 회담을 열고, 중국과의 경쟁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다자주의를 추진하고 싶다"며 협력과 대화 의지를 밝혔다. 이 회담에서 프랑스와 중국은 항공·에너지·조선 분야 등 약 40 규모의 경제 협력에 합의했다.
2020년 4월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중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일이 일어난다"며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2023년 4월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과 회담한 후, 귀국길에 "대만의 위기는 우리의 위기가 아니다"라고 발언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유럽이 미중 갈등, 특히 대만 문제에서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을 반영한 것이었으나, 이 발언은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억제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 아시아 태평양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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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은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특히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 하에 안보 및 경제 협력을 심화시키고 있다. 2018년 일본과 물자역무상호제공협정(ACSA)을 체결하고 해양 안보 대화를 본격화했으며,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2018년 10월, 2019년 4월)을 통해 양국 협력 강화, 중국의 해양 진출 공동 견제, 자유무역 증진, 북한 비핵화(CVID) 원칙 확인 등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2019년 회담 후에는 일본어 트윗을 통해 다자주의 재건을 위한 양국의 협력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3.3. 지지율
2017년 6월 24일 실시된 IFOP 여론조사에서는 프랑스 국민의 64%가 마크롱의 직무 수행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17년 7월 23일 실시된 IFOP 여론조사에서는 마크롱의 지지율이 10%포인트 하락한 54%를 기록했는데, 이는 1995년 자크 시라크 이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큰 하락 폭이었다. 취임 3개월 만에 총 24%포인트가 하락한 셈이다. 이러한 지지율 하락의 주요 요인으로는 피에르 드 빌리에 전 국방참모총장과의 갈등, 파산한 STX조선 소유의 샹티에 드 아틀란티크 조선소 국유화, 주거 혜택 감소 등이 꼽혔다. 2017년 8월 IFOP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40%까지 떨어졌고, 반대는 57%에 달했다.
2017년 9월 말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7명이 마크롱이 공약을 지킨다고 평가했지만, 대다수는 정부 정책이 "불공정하다"고 답했다.
마크롱의 지지율은 2018년에 급격히 하락하여 11월 말에는 25%까지 떨어졌다. 이는 노란 조끼 운동 시위로 표출된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관련이 깊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에는 지지율이 다시 상승하여 최고 50%에 도달하기도 했다.
4. 정치 성향
1998년부터 2년 동안 시민운동(Mouvement des citoyens)에서 활동했으나 정식 회원은 아니었다. 파리 11구 시장 보좌관으로 일하며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에서 공부했다. 24세에 사회당(PS)에 입당했지만,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당적을 갱신하지 않았다. 2006년 장-피에르 주예를 통해 프랑수아 올랑드를 만났고, 2010년 그의 참모진에 합류했다. 2007년 사회당 소속으로 국민의회 의원 선거 출마를 시도했으나 거절당했다.
2016년 4월,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경제산업부 장관이었던 마크롱은 중도 성향의 정당인 앙 마르슈!(En Marche!)를 창당했다. 같은 해 8월, 대선 출마를 위해 장관직을 사임했다. 그는 "나는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라고 선언하며 "기존 정치에 맞서 민주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주장, 기성 정치를 비판하며 중도 표심을 공략했다. 이러한 노선은 선거 중반까지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와 선출직 경험 부재는 '경륜 부족'이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주요 공약으로는 강한 유럽연합(EU) 건설, 법인세 인하, 공공부문 일자리 감축, 재정지출 축소, 친환경·직업훈련 예산 확대 등을 내세웠다.
초기 여론조사에서는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후보에게 뒤처졌으나, 피용 후보가 가족 관련 공금 횡령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마크롱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2017년 3월에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 펜 후보를 앞서기도 했다. 선거 과정에서 마크롱 역시 경제장관 시절 비즈니스 프랑스의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관련 행사에서 특정 업체에 수의계약을 주었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으나, 마크롱 측은 개인적인 법적 책임은 없다고 부인했다.
2017년 5월 7일, 대통령 선거 2차 결선 투표에서 마린 르 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마크롱은 당선 소감으로 "오늘 밤, 우리의 오랜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린다. 나는 오늘의 결과가 희망과 새로운 신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의 당선은 사회당이나 공화당 소속이 아닌 후보가 대통령이 된 첫 사례로,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60여년 만의 일이었다.
마크롱의 정치 성향은 '제3지대'로 요약된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불평등 해소와 기회 균등 같은 좌파적 가치를, 경제적으로는 친기업적인 우파 정책을 추구하며 전반적으로 중도를 표방한다. 그는 선거 유세 중 자신을 마오주의자라고 칭하며 마오쩌둥의 실용주의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대선 공약으로는 노동법 완화, 소외 지역 교육 강화, 자영업자 보호책 강구 등을 내놓았으며, 브렉시트 이후 유럽 연합 체제 개혁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전반적으로 마크롱은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으며, 일부는 그를 사회 자유주의자로 분류한다. 그의 정치적 입장은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 게르하르트 슈뢰더 등이 주창한 제3의 길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칭했으나, 2015년부터는 중도 진보주의자라고 밝혔으며, 경제적으로 "초자유주의자"라는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2016년에는 자신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며 좌파 정부에서 일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저서 혁명(Révolution)에서는 자신을 "좌파의 남자"이자 "자유주의적"이라고 묘사했으며, 이후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이고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마크롱은 당파를 초월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중도정당 전진!을 만들었고, 프랑스 내 보수와 진보 사이에 실질적인 격차가 존재한다고 창당 이유를 설명했다. 2017년 대선 강령에는 좌우 양측의 입장이 혼재되어 있어 르 피가로는 그를 급진 중도주의자로 평가했다. 마크롱 자신은 중도 성향으로 당선된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과 비교되기도 했으나, 스스로는 거리를 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주의 정책, 재무 검사관 출신 배경, 정치적 야심 등에서 데스탱 전 대통령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있으며, 데스탱 본인도 2016년 "마크롱과 약간 닮았다"고 언급했다. 다만 마크롱은 선출직 경험 없이 대선에 도전한 반면, 데스탱은 장관 경력 등을 통해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는 차이가 지적된다.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특히 칼레 정글을 언급하며 2018년 1월 파리에 또 다른 난민 캠프 형성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망명 신청 및 추방 절차 가속화, 난민 주거 환경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 6월에는 유럽의 이주 위기가 2015년 수준은 아니며 현재는 정치적 위기라고 진단했다. 2019년 11월에는 프랑스로 유입되는 난민 수를 제한하기 위한 새로운 이민 규칙을 도입하며 이민 정책의 "주도권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2022년 프랑스에 새로 유입된 외국인 수는 32만 명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 중 절반 가량이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4.1. 경제
2004년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마크롱은 프랑스 경제재정부 산하 재정감사원(IGF)의 재정감사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재정감사원장이었던 장-피에르 주예의 지도를 받았다. 2007년에는 자크 아탈리가 이끄는 "프랑스 성장 해방 위원회"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08년, 마크롱은 정부와의 계약을 50를 지불하고 해지한 뒤 로스차일드 & 시에 은행(Rothschild & Cie Banque)에 투자 은행가로 합류했다. 이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당선 이후 정부 관련 직책에서 물러나기 위함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은행에서 네슬레가 화이자의 유아용 음료 부문 자회사를 인수하는 거래(총액 9)를 성공적으로 자문하며 상당한 수수료를 벌어 억만장자가 되었다. 공식 문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 사이 마크롱의 수입은 약 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크롱 본인은 2010년 12월부터 2012년 5월 사이에 2를 벌었다고 밝혔다.
2012년, 마크롱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당선과 함께 대통령실 부실장으로 임명되어 정계에 복귀했다. 그는 올랑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상위 1%에 75% 고세율 부과'를 철회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고, 대신 고용을 늘리는 기업에게 40의 세금을 감면해 주는 '책임 협약'을 주도했다.
2014년 8월, 마크롱은 36세의 나이로 제2차 마뉘엘 발스 내각의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이는 1962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이후 최연소 장관 임명이었다. 전임자 아르노 몽부르와 달리 친유럽연합(EU) 성향이었던 마크롱은 언론으로부터 "반(反) 몽부르"로 불리며, 사회당 정부 내에서 자신의 친기업 성향에 기반한 우파적 경제 정책들을 추진했다. 그는 장관으로서 기업가의 시각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데 앞장섰다.
2015년에는 경제 활성화를 명목으로 파리 샹젤리제 거리 등 관광 지구 내 상점가의 일요일 및 심야 영업 제한을 완화하는 경제개혁법을 발표했다. 이 정책은 당시 정부의 주요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과 사회당 내부로부터 노동자의 휴식권을 침해한다는 강한 비판에 직면했다. 의회 표결 통과가 어려워지자, 마크롱은 헌법의 예외 조항을 이용하여 정부 발표만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방식을 동원해 정책을 관철시켰다. 또한 사회당의 대표적인 노동 정책인 주 35시간 근무제 개정을 시도하며 "기존에 좌파는 기업에 대항하거나 기업 없이도 정치를 할 수 있었고, 국민이 적게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장관 재임 중 르노의 프랑스 정부 보유 지분율을 15%에서 20%로 높이고, 2년 이상 장기 보유 주주에게 이중 의결권을 부여하는 플로랑주 법(Florange law) 시행을 주도했다. 다만 이후에는 정부의 르노 경영 개입 권한을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마크롱은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며 공공재정 적자 감축을 주장해왔다. 그는 자신을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라고 규정하며,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인 사회 자유주의자 또는 제3의 길 노선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출간한 저서 혁명(Révolution)에서는 자신을 "좌파이면서 동시에 자유주의자"라고 칭했다.
대선 출마를 위해 2016년 8월 장관직을 사임한 마크롱은 법인세 인하(33.3%에서 25%로), 공공부문 일자리 12만 명 감축, 5년간 공공지출 60 삭감, 부유세 개편(투자소득 제외, 부동산 중심 과세), 지방세 감면 폐지 등을 주요 경제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최고 소득자에 대한 증세에 반대하며 올랑드 정부의 75% 소득세율 인상안을 "쿠바식 조세제도"에 비유하기도 했다. 노동 정책으로는 El Khomri 법을 지지하며 추가적인 노동 유연화 개혁 의지를 보였고, 주 35시간 근무제에 대해서는 폐지보다는 기업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무역 분야에서는 캐나다-EU 간 CETA 협정을 지지했으며, TTIP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또한 유로존 공동 예산 창설을 지지하고, 독일의 과도한 무역흑자에 대한 문제 제기와 재균형을 요구했다.
대통령 당선 후 마크롱 정부는 공약에 따라 경제 개혁을 추진했다. 재정적자 감축을 목표로 설정하고, 사회보장기여금(CSG)을 인상하는 증세 조치를 우선 시행한 뒤 단계적인 감세 정책을 추진했다. 법인세는 25%까지 인하하고, 부유세(ISF)는 과세 대상을 부동산으로 한정했으며, 자본이득에는 30%의 단일세율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또한 프랑스 가구의 80%를 대상으로 지방세를 폐지하는 정책도 추진했다. 노동 시장 개혁의 일환으로 해고 보상금 상한선을 낮추고, 기업의 해고 요건을 완화했으며, 해고 불복 소송 제기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 공무원 12만 명 감축 계획에 따라 2018년에는 자발적 퇴직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 정책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2017년 7월, 850 규모의 군사 예산 삭감에 반발한 피에르 드 빌리에 합참의장이 마크롱과의 갈등 끝에 사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8년 11월에는 경유 및 휘발유 가격 인상과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는 노란 조끼 운동이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시위는 점차 마크롱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한 반대와 대통령 퇴진 요구로 격화되었으며, 도로 점거, 방화, 약탈 등 폭력적인 양상을 띠며 1968년 5월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사회 불안을 야기했다. 결국 마크롱 정부는 2018년 12월 유류세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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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조끼 운동에 대응하기 위해 마크롱은 전국적인 대토론회를 거쳐 2019년 4월,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대상으로 총 5 규모의 소득세 감면과 연금 인상을 약속했다. 또한 엘리트주의의 상징으로 비판받아 온 자신의 모교이자 프랑스 최고 엘리트 양성 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의 폐쇄를 약속하며 국정 운영 방식의 변화를 시사했다.
2019년 12월에는 복잡한 기존 연금 제도를 단일 국가 연금 제도로 통합하는 대대적인 연금 개혁안을 발표했으나, 이는 즉각적인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촉발했다. 정부는 프랑스 헌법 제49조를 발동하여 의회 표결 없이 법안 통과를 시도했으나, 2020년 3월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국가 봉쇄 상황 속에서 결국 개혁안 추진을 잠정 중단했다.
한편, 마크롱 정부는 미래 산업 육성에도 관심을 보여 2018년 3월에는 인공지능(AI) 분야 연구 개발 및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1.5(1.9)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4.2. 외교 정책
마크롱은 대통령 선거 당시 공약으로 유럽 연합(EU)의 강화를 내세웠으며, 브렉시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되 EU의 틀을 지키면서 체제를 개혁하는 임무를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유럽 연합을 통한 유럽의 통합과 세계화의 폐단은 고치되, 앞으로 나가자"고 주장하였다. 전반적으로 다자주의를 중시하고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강화를 추구하는 외교 노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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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연합 및 유럽 ===
마크롱은 유럽 연합(EU) 통합 강화를 기본 입장으로 삼았다. 2017년 5월 25일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브뤼셀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2020년 2월 제56차 뮌헨 안보회의에서는 EU 강화를 위한 10개년 비전을 제시하며 더 많은 예산, 통합 자본 시장, 효과적인 방어 정책, 신속한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NATO, 특히 미국과 영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러시아와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NATO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반복하자, 마크롱은 유럽의 안보를 미국 의존에서 벗어나게 하고 EU에 의한 안보 강화를 호소했다. 2018년 8월에는 "유럽은 더 이상 자국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진정한 유럽군" 창설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도 자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구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모욕적"이라며 비판했지만,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세계 다극화를 위해 좋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NATO를 보완하는 개념으로 찬성 의사를 밝혔다.
EU 통합 유지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브렉시트)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2023년 4월 중국 방문 후에는 유럽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과 중국 간의 타이완 문제 등에서 중립을 유지하며 "세 번째 초강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전략적 자율성 이론을 강조했다. 그는 유럽의 자체 방위 산업 강화와 미국 달러 의존도 감소를 주장했으며, 헤이그 연설에서 이를 더 자세히 설명했다. 유럽외교위원회(ECFR)의 2023년 6월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인 다수가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5월 브라티슬라바 GLOBSEC 포럼에서도 유럽 주권에 대해 연설했다.
2019년 2월, 이탈리아의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가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 지도자와 면담하자, 프랑스는 주이탈리아 대사를 소환하며 양국 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2022년 10월에는 새로 취임한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를 가장 먼저 만난 외국 지도자가 되었다. 2022년에는 미국, 노르웨이 등 우방국의 높은 천연가스 가격을 비판하며 "우정의 의미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미국 ===
2012년 프랑스계 미국인 재단의 젊은 리더였으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2017년 5월 브뤼셀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처음 만났으며, 두 사람의 악수는 권력 투쟁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2018년 4월 미국 방문 시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국 정부의 파리협정 및 이란 핵 합의 탈퇴 등 일방주의를 비판하며 다자주의 유지를 촉구했다. 같은 해 10월 미국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탈퇴를 선언하자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럽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재고를 요청했다. 11월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는 트럼프의 일국주의를 겨냥한 듯한 연설을 했다. 2019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 75주년 기념식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다자주의 약화 시도를 비판하며 "노르망디의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마크롱은 미중 대립 속에서 유럽이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최악은 미국이나 중국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러시아 ===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지속을 지지하며 친러 성향의 프랑스 정치인들과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2017년 대선 당시에는 러시아가 허위 정보 유포와 사이버 공격을 통해 선거 운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개입 중단을 경고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베르사유 궁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났으나, 러시아 투데이와 스푸트니크를 "선전 기관"이라고 비난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8년 월드컵 참관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하여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당시 영국과 러시아 관계가 악화된 상황이라 논란이 있었다. 2019년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앞서 푸틴을 초청해 러시아가 유럽의 일부임을 강조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독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파리에서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회담을 중재하여 포로 교환과 휴전 이행 합의를 이끌어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후로 푸틴 대통령과 10여 차례 회담하며 외교적 해결을 시도했으나 침공을 막지는 못했다. 이후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2022년 6월에는 독일, 이탈리아 정상과 함께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는 승리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이전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형제 국가다"와 같은 발언으로 우크라이나 내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23년 5월 브라티슬라바 연설 후 질의응답에서는 푸틴과의 협상이 우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2023년 6월에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적인 무기 제공을 약속했고, 7월 NATO 정상회담에서는 스칼프 장거리 순항 미사일 제공을 발표했다. 2023년 11월에는 러시아의 행동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로 규정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이 "의무"라고 밝혔으나, 평화 협상의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2024년 2월에는 우크라이나에 지상군 파병 가능성을 제기하여 논란을 일으켰고, 5월에는 우크라이나가 프랑스 제공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의 군사 시설을 공격하는 것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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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
경제장관 시절 툴루즈 블라냐크 공항 지분 매각을 지지하고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인용하는 등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으나, 대통령 취임 후에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2018년 중국 기업의 프랑스 농지 매입에 제동을 걸겠다고 밝혔고, 2019년 3월 EU 정상회의에서는 "중국에 대한 온정적인 생각을 가질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같은 달 시진핑 주석의 프랑스 방문 시 독일, EU 정상과 4자 회담을 갖고 경쟁 관계임을 인정하면서도 다자주의 협력을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양국 간 균형 잡힌 관계를 강조하며 중국의 투자 공세를 견제하는 한편, 약 400억 유로 규모의 경제 협력에도 합의했다.
2020년 4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대응과 관련하여 중국 정부의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비판했다. 중국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사망 당시 그를 "자유투사"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2023년 4월 중국 방문 후 귀국길에 "대만의 위기는 우리의 위기가 아니다"라고 발언하여, 대만 유사시 미국의 개입에 유럽이 동참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왔으나, 미국 및 동맹국들로부터 중국에 대한 억제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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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물자역무상호제공협정(ACSA)을 체결하고 해양 대화를 본격화했으며, 같은 해 10월 아베 신조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양국 협력 강화 및 중국 견제에 합의했다. 2019년 4월 아베 총리의 프랑스 방문 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위로를 전하고 자유무역 증진 등에 공감대를 확인했다. 이 회담에서 마크롱은 일본을 "파트너 이상의 우호국"이라 칭하며, 중국의 해양 진출에 대응하여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실현을 위한 방위 협력 가속화와 북한의 CVID 달성까지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2021년 7월 2020년 도쿄 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방일하여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회담하고, 올림픽 경험 공유 및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협력, 홍콩 및 위구르 인권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 한반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2017년 북핵 위기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공조하면서도 평화적 해결을 주장했으며, 전화 통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 제재 방안을 논의했다. 2018년 10월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하여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했을 때, 마크롱은 북한의 CVID 이행 전까지는 유엔 제재를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여 제재 완화에 찬성하는 중국, 러시아와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프랑스는 북한과 수교하지 않은 상태다.
=== 중동 ===
전반적으로 친이스라엘 노선을 취하며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에 부정적이고, 이스라엘 보이콧 운동(BDS)에 반대한다. 그러나 2018년 5월 가자 지구 접경 시위 당시 이스라엘군의 폭력을 규탄했으며,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초기에는 하마스를 비난하고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했으나, 11월에는 휴전을 촉구하며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민간인 살해 중단을 요구했다. 2024년 10월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 중단을 각국에 요청하여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의 강한 반발을 샀다.
시리아 내전에서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 퇴진을 주장하며, 반군 지원 또는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특히 화학무기 사용 시 독자적인 군사 행동 가능성을 경고했으며, 2018년 두마 화학무기 공격 이후 프랑스군의 시리아 정부군 공습을 지휘했다. IS 격퇴를 위한 국제 협력을 강조했다.
2017년 이란 핵 협정 지지 의사를 밝혔고, 2019년 G7 정상회담에서는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을 초청하여 미국과의 긴장 완화를 시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예멘 내전 개입을 지지하고 사우디 주도 연합군에 대한 프랑스의 무기 판매를 옹호하여 인권 단체들의 비판을 받았다.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 발생 이틀 후 현장을 방문하여 레바논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촉구했다.
=== 아프리카 ===
2017년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화를 "반인륜 범죄"이자 "야만적 행위"로 규정하며 사과 필요성을 언급했으나, 지지율 하락 등의 반발에 부딪혔다. 2021년에는 알제리 독립전쟁 관련하여 "회개도 사과도 없다"면서 대신 화해 노력을 강조했다.
2011년 리비아 군사 개입을 "역사적 실수"라고 평가했다.
2023년 2월, 티그라이 전쟁으로 긴장이 고조되었던 에티오피아의 아비 아흐메드 총리를 파리에서 만나 양국 관계 정상화를 모색했다.
=== 기타 국가 및 지역 ===
* 터키: 2020년 튀르키예가 그리스, 키프로스의 해상 주권을 침해하고 리비아 내전에 개입한 것을 비판하며 EU 제재를 촉구했다. 터키가 아프린의 시리아 쿠르드족을 공격한 것에 대해서도 시리아 주권 존중을 요구했다. 2020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당시 터키의 "성급하고 위험한" 발언과 "전쟁적 메시지"에 우려를 표하며 NATO 회원국으로서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 미얀마: 로힝야 무슬림 박해를 "대량학살"과 "민족정화"로 규정하며 유엔 주도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 베네수엘라: 2017년 베네수엘라 정부를 "독재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 브라질: 2023년 5월 브라질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와 만났다.
=== 국제 현안 ===
국내외 이슬람 테러리즘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2023년 6월, 기후변화와 빈곤 대응을 위한 세계 금융 정상회의를 주최하여 저소득 국가 부채 문제 해결과 국제 조세 시스템 개혁 등을 제안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국장(2022년)과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2023년)에 참석했다.
5.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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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책명||대수||정당||1차 득표율||1차 득표수||2차 득표율||2차 득표수||결과||당락 | |||||||||
|---|---|---|---|---|---|---|---|---|---|
|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 대통령 | 25대 | 앙 마르슈! | 24.01% | 8,656,346표 | 66.10% | 20,743,128표 | 1위 | |
| 202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 대통령 | 25대 | 앙 마르슈! | 27.85% | 9,783,058표 | 58.54% | 18,779,641표 | 1위 |
6. 개인사
에마뉘엘 마크롱은 1977년 12월 21일 프랑스 아미앵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피카르디 대학교 신경학 교수인 장-미셸 마크롱이고, 어머니는 의사인 프랑수아즈 마크롱(결혼 전 성씨 누게)이다. 부모는 2010년에 이혼했다. 마크롱에게는 남동생 로랑(1979년생)과 여동생 에스텔(1982년생)이 있다. 부부의 첫 아이는 사산되었다.
마크롱 가문의 뿌리는 프랑스 북부 오드프랑스 지역(옛 피카르디) 솜주의 오티 마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영국인 조지 윌리엄 로버트슨(George William Robertson)이다. 외조부모인 장과 제르맹 누게(결혼 전 성씨 아리베)는 피레네 산맥 기슭의 바녜르드비고르 출신이다. 마크롱은 할머니 제르맹(그는 그녀를 "마네트(Manette)"라고 불렀다)을 자주 방문했으며, 독서의 즐거움과 좌파적 정치 성향을 그녀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여긴다. 제르맹은 역장 아버지와 가정부 어머니 밑에서 소박하게 자라 교사가 되었고 이후 교장까지 역임했으며, 2013년에 세상을 떠났다.
종교적으로는 비종교적인 가정에서 자랐지만, 12세 때 자신의 요청으로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현재는 불가지론자로 여겨진다.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기 전, 자신을 불가지론적 가톨릭 신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같은 해 로마의 라테라노 대성당 명예 참사회원직을 수락했다.
마크롱은 주로 아미앵의 예수회 계열 사립학교인 라 프로비당스 고등학교(Lycée la Providence)에서 교육을 받았다. 재학 중이던 1994년에는 프랑스 문학 분야에서 콩쿠르 제네랄(가장 우수한 고등학생을 선발하는 전국 경시대회) 수상자로 지명되었고, 아미앵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여 학위를 받았다.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은 파리의 명문 공립학교인 앙리 4세 고등학교(Lycée Henri-IV)에서 마쳤다. 이는 당시 마크롱이 세 자녀를 둔 기혼 여교사였던 브리짓 오지에르(훗날 마크롱의 아내가 됨)와 맺은 관계에 대해 부모가 우려하여 파리로 보냈기 때문이다. 마크롱은 이과 계열 바칼로레아를 우수한 성적(Mention Très bien)으로 통과했다.
파리에서 파리 고등사범학교(ENS) 입학 시험에 두 번 응시했으나 실패했다. 대신 파리 서부 낭테르 라 데팡스 대학교(현 파리 낭테르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여,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에 관한 논문으로 DEA 학위(석사 과정 학위)를 취득했다. 1999년경에는 프랑스 개신교 철학자 폴 리쾨르의 편집 조수로 일하며 그의 저서 《기억, 역사, 망각》(La Mémoire, l'histoire, l'oubli, 2000년)의 주석과 참고 문헌 작업을 도왔다. 리쾨르는 책 서문에서 마크롱에게 감사를 표했다. 마크롱은 문학 잡지 에스프리(Esprit)의 편집위원이 되기도 했다.
이후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에서 공공 정책 및 경제학을 전공하여 공공행정 석사 학위를 받았고(2001년 졸업), 프랑스 엘리트 공무원 양성 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에 진학하여 2004년 졸업했다. ENA 재학 중에는 나이지리아 주재 프랑스 대사관과 오드프랑스 레지옹 오아즈주의 도청(préfecture)에서 실무 수습을 받았다.
마크롱은 대학원 과정을 이수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1977년 12월생인 그는 병역이 의무였던 마지막 세대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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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마크롱은 24세 연상의 브리짓 트로뇌(결혼 전 성씨 오지에르)와 결혼했다. 당시 마크롱은 29세, 브리짓은 54세였다. 브리짓은 마크롱이 아미앵의 라 프로비당스 고등학교에 다닐 당시 프랑스어 교사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마크롱이 15세(프랑스 학제상 10학년) 학생이었고 브리짓이 39~40세 교사였을 때, 브리짓이 담당하던 연극 워크숍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브리짓은 결혼한 상태였고 세 명의 자녀가 있었으며, 그중 장녀 로랑스는 마크롱과 같은 반 학생이었다. 로랑스는 집에서 어머니 브리짓에게 "모든 것을 아는 미친 소년이 있다"며 마크롱을 소개했다고 한다. 마크롱은 학교 연극 ‘Jacques and his Master’의 주연을 맡았을 때 연극부 고문이기도 했던 브리짓에게 대본 수정을 상담하면서 가까워졌고, 매주 금요일 만나 대본 작업을 했다. 브리짓은 훗날 마크롱에 대해 "10대 아이답지 않은 말투나 행동을 하지 않고, 어른과 동등하게 대했다", "나는 점점 그의 지성에 매료되었다. 나는 내가 빠져들고 있음을 느꼈다. 그도 그랬다"라고 회고했다.
마크롱의 부모는 처음에 아들이 브리짓의 딸 로랑스와 교제한다고 생각했으나, 상대가 브리짓임을 알게 되자 관계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브리짓에게 마크롱이 18세가 될 때까지 만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또한 17세의 마크롱에게 브리짓과 헤어지고 파리의 앙리 4세 고등학교로 전학 갈 것을 명령했다. 파리로 떠나기 전, 마크롱은 브리짓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든, 나는 반드시 돌아와 당신과 결혼할 것"이라고 약속했고, 두 사람은 키스를 나눴다고 한다. 파리와 아미앵 사이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고, 마크롱의 꾸준한 연락 끝에 브리짓은 결국 이혼하고 파리로 이주하기로 결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은 망쳐질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져다주었고, 나를 이혼으로 이끌었다"라고 브리짓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고 한다. 브리짓은 2006년 1월 이혼했고, 2007년 10월 마크롱과 결혼했다. 결혼 후,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도 여러 곳에서 포옹과 키스를 나누며 화제가 되었다.
브리짓은 20세 때인 1974년 6월 지방 은행원과 결혼하여 세 자녀(장녀 로랑스, 차녀 티파니는 변호사)를 두었고, 손자가 7명 있다. 마크롱에게는 자녀가 없다. 브리짓의 친가는 19세기에 설립되어 7개의 매장을 가진 아미앵의 과자·초콜릿 판매점 「장 트로뇌(Jean Trogneux)」이며, 현지에서는 마카롱이 명물이다. 브리짓의 장녀 로랑스는 의붓아버지가 된 마크롱의 지지자 중 한 명으로 대통령 선거 집회에도 참석했으며, 차녀 티파니는 마크롱의 선거 운동 본부에서 일했다.
마크롱의 결혼식 베스트맨은 금융감찰관 출신인 앙리 에르망(1924–2016)이었다. 에르망은 마크롱이 파리에 첫 아파트를 구입할 때 550를 빌려주었으며, 마크롱의 정치 운동 앙 마르슈가 샹젤리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 일부를 사용하도록 허락하기도 했다.
개인적인 정치 성향으로는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주권주의자 장피에르 슈브네망에게 투표했고,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2차 투표에서는 사회당 후보 세골렌 루아얄에게 투표했다. 2011년 프랑스 사회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프랑수아 올랑드를 지지했다.
마크롱은 피아노 연주를 즐기며, 어린 시절 10년간 피아노를 배웠다. 특히 로베르트 슈만과 프란츠 리스트의 작품을 좋아한다. 또한 스키, 테니스, 권투를 즐긴다. 모국어인 프랑스어 외에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한다.
2017년 8월, 마르세유에서 휴가를 보내던 마크롱의 개인 주택에 한 사진 기자가 무단 침입하여 경찰에 6시간 동안 구금되는 사건이 있었다. 마크롱은 "괴롭힘"을 이유로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2017년 9월 "화해의 제스처"로 고소를 취하했다.
2017년 8월 27일, 마크롱 부부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네모(Nemo)라는 이름의 검은색 래브라도 리트리버-그리펀 믹스견을 입양하여 "퍼스트 독"으로서 엘리제궁에서 함께 살고 있다.
축구 팬으로 프랑스 클럽 올랭피크 드 마르세이유를 응원한다. 2018년 FIFA 월드컵 당시 프랑스와 벨기에의 준결승전을 벨기에의 필리프 국왕, 마틸드 왕비와 함께 관람했으며, 크로아티아와의 결승전에서는 크로아티아 대통령 콜린다 그라바르키타로비치와 함께 경기를 지켜보며 프랑스의 우승을 열정적으로 축하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마크롱은 현장 방문이나 주민과의 대화 도중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2021년 6월 8일, 방문지인 드롬주에서 28세 남성에게 뺨을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 남성은 같은 달 10일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4개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9월 27일에는 리옹에서 열린 외식업·숙박업 박람회 시찰 중 19세 남학생에게 계란을 맞았고, 해당 학생은 현장에서 제압되었다. 2022년 4월 27일에는 파리 교외 세르지의 야외 시장에서 주민과 대화하던 중 미니 토마토에 맞았다.
일본 만화와 게임 등 대중문화에 관심을 보여왔다. 2021년 7월 프랑스 대통령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화 《아키라》의 작가 오토모 가츠히로, 《페어리 테일》의 작가 마시마 히로, 게임 《다크 소울》 시리즈의 디렉터 미야자키 히데타카, 영화 《빛》의 감독 가와세 나오미 등과 회담했다. 마크롱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일본어로 "이 순간을 여러분과 공유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아키라」, 「페어리 테일」, 「다크 소울」, 「빛」을 비롯한 여러분의 수많은 작품들은 일본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신화가 되고 있습니다. 문화는 사람들을 연결합니다. 우정을 담아."라고 게시했다. 또한 만화 《원피스》의 작가 오다 에이치로에게서 그림을 선물 받은 것에 대해 감사를 표명했다. 일본 NEWS 포스트 세븐에 따르면, 당시 마크롱은 "일본의 총리인 스가 요시히데보다 먼저 《귀멸의 칼날》 작가 고토게 코요하루를 만나고 싶다"며 주일 프랑스 대사관에 일정 조정을 요청했으나, 작가가 바쁘고 대중 앞에 나서지 않아 어렵다는 답변을 듣자, "그렇다면 《진격의 거인》의 이사야마 하지메는 어떻겠냐"고 재차 요청하는 등 일본의 인기 만화가와의 만남을 희망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