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십국)
1. 개요
민은 오대 십국 시대에 복건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국가이다. 당나라 말기 왕조와 왕심지 형제가 복건 지역으로 이주하여 세력을 확장했다. 907년 후량에 복속되어 민왕에 봉해진 왕심지는 내정을 다스려 복건 지역을 발전시켰다. 왕심지 사후 내분으로 혼란을 겪다가, 933년 독립하여 황제를 칭하기도 했으나, 이후 왕조 간의 다툼과 폭정으로 인해 945년 남당에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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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 십국 시대 -
후량 (오대)
후량은 주온이 당나라 애제로부터 선양받아 907년 건국한 오대 중 하나로, 중원 지역을 중심으로 존속했으나 후계자 간 권력 다툼과 후당과의 전쟁으로 923년 멸망한 3대 16년의 짧은 왕조이다. -
오대 십국 시대 -
발해
발해는 698년 대조영이 건국한 국가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주 구성원으로 하여 당나라 문물을 수용, 해동성국으로 불리며 번성하다가 926년 거란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
중국의 옛 나라 -
청나라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중국 최후의 통일 왕조로, 후금에서 국호를 변경하여 시작되었고 명나라를 멸망시킨 후 중국 대륙을 통일하여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서구 열강의 침략과 내부 반란, 근대화 개혁 실패 후 신해혁명으로 멸망,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다민족 국가로서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
중국의 옛 나라 -
한나라
한나라는 유방이 기원전 206년에 건국하여 220년에 멸망할 때까지 400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전한과 후한으로 나뉘어 문화, 경제, 유교, 실크로드, 과학기술 등 중국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왕조이다. -
푸젠성의 역사 -
강남도 (당)
강남도는 당나라 시대 중국 남부의 광대한 지역을 관할했던 행정구역으로, 733년 강남동도와 강남서도로 분할되었으며, 당나라 말기에는 절도사와 관찰사들이 등장하여 후대 봉건 체제에 영향을 미쳤다. -
푸젠성의 역사 -
남월
남월은 기원전 203년부터 기원전 111년까지 중국 남부와 베트남 북부에 존재했던 조타가 건국한 고대 국가로, 한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었으나 한무제의 공격으로 멸망하고 한족과 월족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2. 역사
당나라 말기 혼란 속에서 왕조(王潮)와 왕심지(王審知) 형제는 복건으로 이주하여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 896년 왕조는 당나라로부터 무위군절도사(武威軍節度使)로 임명되었고, 다음 해 왕조가 죽자 왕심지가 지위를 이어받았다. 907년 주전충이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후량을 건국하자 왕심지는 후량에 입조하여 민왕(閩王)에 봉해졌다.
왕심지는 내정에 힘을 기울여 당시 낙후되었던 복건 지역을 크게 발전시켰다. 남해 교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문인, 승려 등을 초빙하여 문화를 진흥시켰다. 이러한 선정으로 왕심지는 '개민왕(開閩王)'으로 불렸으며, 복주에는 그의 덕을 기리는 민왕덕정비(閩王德政碑)가 세워져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925년 왕심지가 죽은 후 민나라는 권력 승계를 둘러싼 내분에 휩싸였다. 이듬해 왕심지의 장남 왕연한이 즉위했으나, 동생 왕연균에게 살해당했다. 왕연균은 후당에 신하를 자처했으나, 933년 후당의 혼란을 틈타 황제를 칭하며 독립했다.
935년, 왕연균은 아들 왕계붕에게 살해당했다. 왕계붕은 후진에 복종하여 민왕으로 격하되었으며, 도교에 심취하고 폭정을 일삼다가 939년 쿠데타로 살해당했다. 왕심지의 셋째 아들 왕연희가 옹립되었으나, 그 역시 폭정으로 일족을 살해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943년, 왕연희의 동생 왕연정이 건주에서 자립하여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은이라 했다. 944년, 왕연희는 주문진과 연중우에게 살해당하고, 주문진이 민왕을 자칭했으나 왕연정에게 패배했다. 왕연정은 민왕의 지위를 계승했지만, 과도한 세금 징수와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왕연정의 조카들이 자립하는 등 내분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남당의 이경이 침공하여 945년 민은 멸망했다.
2.1. 건국 배경
당나라 말기, 광주 고시(固始)(현재의 하남성 신양시 고시현) 출신의 왕조(王潮)와 왕심지(王審知) 형제는 중앙 정부의 혼란을 피해 복건 지역으로 이주했다. 896년, 왕조는 당나라로부터 무위군절도사(武威軍節度使)로 임명되었고, 이듬해 왕조가 사망하자 왕심지가 그 지위를 계승했다.
907년, 주전충(朱全忠)이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후량을 건국하자, 왕심지는 후량에 입조하여 민왕(閩王)으로 봉해졌다.
2.2. 왕심지의 통치와 번영
왕심지는 내정에 힘을 기울여 당시 낙후되었던 복건 지역을 크게 발전시켰다. 남해 교역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문인, 승려 등을 초빙하여 문화를 진흥시켰다. 이러한 선정으로 왕심지는 '개민왕(開閩王)'으로 불렸으며, 복주에는 그의 덕을 기리는 민왕덕정비(閩王德政碑)가 세워져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2.3. 내분과 멸망
925년 왕심지가 죽은 후 민나라는 권력 승계를 둘러싼 내분에 휩싸였다. 이듬해 왕심지의 장남 왕연한이 즉위했으나, 동생 왕연균에게 살해당했다. 왕연균은 후당에 신하를 자처했으나, 933년 후당의 혼란을 틈타 황제를 칭하며 독립했다.
935년, 왕연균은 아들 왕계붕에게 살해당했다. 왕계붕은 후진에 복종하여 민왕으로 격하되었으며, 도교에 심취하고 폭정을 일삼다가 939년 쿠데타로 살해당했다. 왕심지의 셋째 아들 왕연희가 옹립되었으나, 그 역시 폭정으로 일족을 살해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943년, 왕연희의 동생 왕연정이 건주에서 자립하여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은이라 했다. 944년, 왕연희는 주문진과 연중우에게 살해당하고, 주문진이 민왕을 자칭했으나 왕연정에게 패배했다. 왕연정은 민왕의 지위를 계승했지만, 과도한 세금 징수와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왕연정의 조카들이 자립하는 등 내분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남당의 이경이 침공하여 945년 민은 멸망했다.
3. 문화
왕심지의 문화 진흥 정책으로 복건 지역에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축물들이 많다.
* 개원사 철불(開元寺 鐵佛) : 복주 개원사에 있는 높이 5.3m의 철불로, 왕심지가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민왕사(閩王祠) : 민왕덕정비(閩王德政碑)가 세워져 있는 사당이다.
* 통천사(涌泉寺) : 복주 동남쪽 고산(鼓山) 중턱에 있는 사찰로, 908년 왕심지가 창건했다.
* 천주 개원사(開元寺) : 복주 개원사와는 다른 사찰이며, 왕심지가 세운 탑이 있다.
4. 역대 군주
| 묘호 | 시호 | 이름 | 재위 기간 | 연호 및 연대 |
|---|---|---|---|---|
| 태조(太祖) | 충의왕(忠懿王) | 왕심지(王審知) | 909년–925년 | 후당(後唐)의 연호를 채택 |
| 없음 | 사왕(嗣王) | 왕연한(王延翰) | 925년–926년 | 후당(後唐)의 연호를 채택 |
| 혜종(惠宗) | 제숙명효황제(齊肅明孝皇帝) | 왕연균(王延鈞) | 926년–935년 | 후당(後唐)의 연호를 채택 (926년–933년) 룡기(龍啟) (933년–935년) 영화(永和) (935년) |
| 강종(康宗) | 성신영예문명광무응도대홍효황제(聖神英睿文明廣武應道大弘孝皇帝) | 왕계붕(王繼鵬) | 935년–939년 | 통문(通文) (936년–939년) |
| 경종(景宗) | 예문광무명성원덕대효황제(睿文廣武明聖元德大孝皇帝) | 왕연희(王延羲) | 939년–944년 | 영룡(永隆) (939년–944년) |
| 없음 | 없음 | 주문진(朱文進) | 944년–945년 | 후진(後晉)의 연호를 채택 |
| 없음 | 복공의왕(福恭懿王) (인의 황제이자 민의 황제로서 모두 사용됨) | 왕연정(王延政) | 943년–945년 | 천덕(天德) (943년–945년) |
각 통치자의 이름, 생몰년, 재위년에 대해서는 #민(십국)의 통치자 목록을 참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