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 네스테렌코
1. 개요
바실리 네스테렌코는 소비에트 연방 출신의 과학자로, 바우만 모스크바 주립 기술 대학을 졸업하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능 피해 연구에 헌신했다. 그는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 에너지 연구소 소장과 벨라루스 최고 회의 대의원을 역임했으며, 1989년 창설된 "Belrad"의 소장을 맡아 체르노빌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려 했다. 1990년에는 민간 벨라드 방사능 안전 연구소를 설립하여 방사능 피해 방지 활동을 지속했으며,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를 추정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2008년 사망할 때까지 체르노빌 사고 관련 연구와 피해자 보호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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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계 우크라이나인 -
빅토르 야누코비치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친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정치인으로, 도네츠크 주지사와 총리를 거쳐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EU 협정 보류로 인한 유로마이단 시위로 2014년 축출되어 러시아로 망명 후 반역죄 및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되었다. -
벨라루스계 우크라이나인 -
아르템 밀레우스키
아르템 밀레우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FC 디나모 키예프에서 프로 데뷔하여 우크라이나 국가대표로 2006년 FIFA 월드컵과 UEFA 유로 2012에 참가했으며, 우크라이나 올해의 선수상을 두 번 수상했다. -
루한스크주 출신 -
세르히 자단
우크라이나 작가이자 시인, 에세이스트, 번역가, 사회 운동가인 세르히 자단은 현대 우크라이나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회의 현실과 개인의 경험을 독특하게 담아내며, 문화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는 우크라이나 국가 근위대에 입대하여 조국을 수호하고 있다. -
루한스크주 출신 -
블라디미르 스미르노프 (펜싱 선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출신의 소련 펜싱 선수 블라디미르 스미르노프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금메달을 포함, 세계 선수권 대회와 유니버시아드에서 다수의 메달을 획득했으나, 1982년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에서 사고로 사망하여 펜싱 장비 안전 기준 강화의 계기가 되었다. -
21세기 물리학자 -
로저 펜로즈
로저 펜로즈는 수학, 물리학 분야에서 일반 상대성이론, 우주론, 양자 중력 이론 연구에 기여하고 펜로즈 타일링을 발견했으며, 등각순환우주론을 제안하고 의식의 양자적 해석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활동을 펼치며 다수의 상을 수상한 학자이다. -
21세기 물리학자 -
남창희 (물리학자)
남창희는 서울대학교, KAIST,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고 KAIST와 GIST 교수를 거쳐 IBS 상대론적 레이저 과학 센터 초대 센터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물리학자로, 펨토초 레이저, 고차조화파, 아토초 펄스, 연엑스선 간섭계 및 현미경 기술 등을 연구하며 IUPAP 등 국제 학술 단체에서 활동했고, 미국 물리학회 및 미국 광학회 펠로우, 한국과학기술한림원상, 숭도광과학상,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했다.
2. 생애
바실리 네스테렌코는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루한스크주 크라스니 쿠트 마을에서 태어나 바우만 모스크바 주립 기술 대학을 졸업했다. 1972년, 벨로루시 국립 과학 연구원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겪은 후, 결과와 원인 등을 연구했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의 핵 에너지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1980년부터 1985년까지 벨라루스 최고 회의 대의원이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정부 당국에 맞서 주민의 건강 피해 방지에 힘썼다. 사고 실태 조사를 시도하자 압력을 받고 협박을 당했으며, 연구소의 방사선 모니터링 장치가 압수되기도 했다.
1990년부터 안드레이 사하로프, 알레스 아다모비치, 아나톨리 카르포프 등의 도움으로 1989년 창설된 "Belrad"의 소장을 맡게 되었다. 그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당시 발생한 방사능의 위험을 대중에게 경고하려 했으나, 벨라루스 국가보안위원회의 활동으로 직장을 잃게 되었다. 1990년, 민간 벨라드 방사능 안전 연구소 (벨라드 연구소)를 설립, 종신 소장으로서 방사능 피해 방지를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일본어 잡지 『기술과 인간』 1996년 2월호에 「체르노빌의 쓴 진실」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1998년, 사고 10년 후를 다룬 스위스 TSI 제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 프로그램의 일본어판은 같은 해, NHK BS 다큐멘터리 "체르노빌 아물지 않는 상처"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2007년, 러시아의 생물학자 알렉세이 야블로코프, 아들로 벨라드 연구소 소원 알렉세이 네스테렌코와 함께, 영어 문헌 및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슬라브계 제어의 기록과 문헌을 바탕으로 보고서 『체르노빌 — 대참사가 사람들과 환경에 미친 영향』을 정리하여, 동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1986년부터 2004년 사이에 적어도 98만 5000명에 달한다는 추계를 발표했다.
이후 아들의 보살핌을 받던 도중, 2008년 8월 25일,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3.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 소식이 전해지자, 네스테렌코는 원자력 전문가이자 전직 소방관으로서 즉시 문제 해결에 참여했다. 그는 헬리콥터를 타고 액체 질소를 원자로 노심에 투하하기 위해 방사능 연기 속으로 들어갔다. 네스테렌코는 심각한 방사능 오염 속에서도 살아남았지만, 함께 탑승했던 다른 3명은 방사선 피폭과 오염으로 사망했다.
네스테렌코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방사능의 위험을 대중에게 경고하려 했으나, 이로 인해 직장을 잃었고 벨라루스 국가보안위원회(KGB)와 갈등을 겪었다.
3.1. 벨라드 방사능 안전 연구소 (BELRAD) 설립
1990년, 네스테렌코는 "체르노빌 지역 주민과 그들의 식량에 대한 방사능 감시, 방사능 안전 유지 및 방호 조치 개발, 필요 과학 연구 수행을 통한 방사성 핵종에 오염된 지역의 인구 보호, 그리고 그 결과의 개발 및 실질적 적용"을 수행하는 벨라드 방사능 안전 연구소(BELRAD)를 설립했다. 안드레이 사하로프, 알레스 아다모비치와 아나톨리 카르포프 등의 도움으로 1989년 창설되었다. 그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실태 조사를 하려고 하자 압력을 받고 협박을 당했으며, 연구소의 방사선 모니터링 장치가 압수되기도 했다고 한다. 종신 소장으로서 방사능 피해 방지를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4. 체르노빌 사고 관련 저술 및 활동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소식이 퍼지자, 바실리 네스테렌코는 원자력 전문가이자 전직 소방관으로서 즉시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는 헬리콥터를 타고 타오르는 원자로 노심에 액체 질소 용기를 투하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심각한 방사능 연기에 노출되었지만 생존했다. 그러나 함께 헬리콥터에 탑승했던 다른 4명 중 3명은 방사선 피폭과 오염으로 사망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네스테렌코는 정부 당국에 맞서 주민들의 건강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사고의 실태를 조사하려 했으나 압력과 협박을 받았고, 연구소의 방사선 감시 장비가 압수되기도 했다.
1990년, 네스테렌코는 안드레이 사하로프, 알레스 아다모비치, 아나톨리 카르포프 등의 도움을 받아 민간 연구소인 벨라드 방사능 안전 연구소(BELRAD)를 설립했다. 그는 이 연구소를 통해 체르노빌 지역 주민과 그들의 음식에 대한 방사능 감시, 방사능 안전 유지 및 방호 조치 개발, 방사성 핵종에 오염된 지역 주민 보호, 그리고 그 결과의 개발 및 실질적 적용을 목표로 활동했다.
그는 체르노빌 폭발 사고로 인한 방사능의 위험을 대중에게 경고하려 했으나, 벨라루스 국가보안위원회의 활동으로 인해 직장을 잃게 되었다.
1996년에는 일본 잡지 『기술과 인간』에 "체르노빌의 쓴 진실"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1998년에는 스위스 TSI 제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며, 이 프로그램은 NHK BS 다큐멘터리에서 "체르노빌 아물지 않는 상처"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2007년, 네스테렌코는 알렉세이 야블로코프, 아들 알렉세이 네스테렌코와 함께 보고서 『체르노빌 — 대참사가 사람들과 환경에 미친 영향』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1986년부터 2004년 사이에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최소 98만 5천 명에 달한다는 추정치를 제시했다.
5. 평가 및 영향
바실리 네스테렌코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능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주민들의 건강 피해를 막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 에너지 연구소 소장, 벨라루스 최고 회의 대의원을 역임했으며, 사고 이후에는 벨라드 방사능 안전 연구소를 설립하여 방사능 피해 방지 활동을 이어갔다.
사고 당시 네스테렌코는 정부 당국에 맞서 주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압력과 협박을 받았고, 연구소의 방사선 모니터링 장치가 압수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안드레이 사하로프, 알레스 아다모비치, 아나톨리 카르포프 등의 도움을 받아 벨라드 연구소를 설립하고, 방사능 피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2007년에는 알렉세이 야블로코프, 아들 알렉세이 네스테렌코와 함께 보고서 『체르노빌 — 대참사가 사람들과 환경에 미친 영향』을 발표하여,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1986년부터 2004년 사이에 최소 98만 5000명에 달한다는 추계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