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야누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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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1950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정치인으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그리고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우크라이나 총리를 역임했다. 그는 201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우크라이나의 제4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2014년 유로마이단 시위와 그에 따른 유혈 사태로 인해 탄핵되어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재임 기간 동안 부정부패, 권력 남용, 언론 탄압, 정적 탄압, 친러 정책 등으로 비판을 받았으며, 현재는 러시아로 망명한 상태이다. 2019년에는 국가 반역죄 등으로 징역 13년형을 선고받았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 [인물]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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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초상화, 2010년
이름빅토르 야누코비치
원어 이름Віктор Янукович
로마자 표기Viktor Fedorovych Yanukovych
출생일1950년 7월 9일
출생지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도네츠크주 예나키예베
국적소련 (1950–1991)
우크라이나 (1991–2023)
러시아 (2014–현재)
배우자류드밀라 나스텐코 (1971년 결혼, 2016년 이혼)
자녀올렉산드르
빅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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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학력도네츠크 국립 기술 대학교
우크라이나 국립 금융 및 국제 무역 대학교
정치 경력
소속 정당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1980–1991), 지역당 (1997–2014)
우크라이나 대통령제4대
임기: 2010년 2월 25일 – 2014년 2월 22일
전임: 빅토르 유셴코
후임: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총리제9대
임기: 2002년 11월 21일 – 2005년 1월 5일
대통령: 레오니드 쿠치마
제12대
임기: 2006년 8월 4일 – 2007년 12월 18일
대통령: 빅토르 유셴코
도네츠크 주지사임기: 1997년 5월 14일 – 2002년 11월 21일
전임: 세르히 폴랴코프
후임: 아나톨리 블리즈뉴크
도네츠크 주 의회 의장임기: 1999년 5월 14일 – 2001년 5월 14일
전임: 이반 포노마료프
후임: 보리스 콜레스니코프
도네츠크 주 부지사임기: 1996년 8월 – 1997년 5월
주지사: 세르히 폴랴코프
우크라이나 인민 대표5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2006년 5월 25일 – 2006년 9월 12일
6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2007년 11월 23일 – 2010년 2월 19일
기타 정보
웹사이트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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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시절과 초기 경력

1950년 7월 9일, 소비에트 연방 시절 우크라이나 공화국 도네츠크주 예나키예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표도르 볼로디미로비치 야누코비치는 벨라루스인 출신 기관사였고, 어머니는 러시아인 간호사였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극심한 빈곤 속에서 자랐다. 새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집을 나와 빌뉴스 출신 할머니에게서 자랐다.

1967년 12월 15일, 17세에 강도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1970년 7월 8일에는 폭행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78년 12월 27일, 도네츠크주 법원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위 두 판결을 무효화했다.

1969년 중등 교육(고등학교 졸업)을 마치고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다. 1972년 지역 운송부에서 전기 기술자로 일하면서 도네츠크 기술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1974년 운송부 주임으로 승진했고, 1980년 기계공학 학위를 받고 운송부 전체 책임자로 승진했다. 같은 해 우크라이나 공산당에 입당했다.

3. 정치 활동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1990년대 초반 정치에 입문하여 도네츠크주 주지사를 지냈다. 친러시아 성향의 지역당에서 활동하며 영향력을 행사했고, 2002년 11월 총리로 임명되어 중앙 정계에 진출, 2003년부터 지역당 당수를 지냈다.

200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선거 부정 의혹과 오렌지 혁명으로 인해 재선거가 실시되었고, 빅토르 유셴코에게 패배했다.

2004년 대선 1차 투표 (야누코비치)
2004년 대선 1차 투표 (야누코비치)

2004년 대선 2차 투표 (야누코비치)
2004년 대선 2차 투표 (야누코비치)

2004년 대선 결선 투표 (야누코비치)
2004년 대선 결선 투표 (야누코비치)


2006년 총선에서 지역당이 제1당이 되면서 야누코비치는 다시 총리직에 올랐다.

2006년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야누코비치 총리
2006년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야누코비치 총리


2010년 대통령 선거에서 율리야 티모셴코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09년 12월,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에서 야누코비치 지지자들
2009년 12월,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에서 야누코비치 지지자들

2010년 대선 1차 투표 (야누코비치, 35.33%)
2010년 대선 1차 투표 (야누코비치, 35.33%)

2010년 대선 결선 투표 (야누코비치, 48.95%)
2010년 대선 결선 투표 (야누코비치, 48.95%)


2013년 12월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 방문하여 중국-우크라이나 우호 협력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때 "핵 위협에 직면할 경우 상응하는 안보를 제공한다"는 문구가 있어서, 중국이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정권에 핵우산을 제공했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3.1. 대통령 재임 (2010-2014)

야누코비치는 2010년 2월 25일, 제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 율리야 티모셴코 내각은 해산되었으며, 야누코비치의 측근인 미콜라 아자로프가 지역당 내각을 구성하였다.

2010년 4월, 야누코비치는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하르키우에서 회담을 갖고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 있는 흑해함대의 주둔을 2017년부터 25년 더 연장하는 것을 인정하는 합의 문서에 서명하였다. 이 조약은 2010년 4월 27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모두 승인되었다. 야당 의원들은 야누코비치가 "국가 이익을 팔아넘겼다"고 비난했다.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서명하는 모습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서명하는 모습


외교 정책 측면에서 야누코비치 내각은 우크라이나의 유럽 연합 가입을 지지한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정치적으로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다.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가 중립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1년, 티모셴코 전 총리는 직권 남용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었다.

2013년, 야누코비치는 유럽 연합(EU)과의 협력 협정 체결을 중단하고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 경제 연합 가입을 추진했다. 이에 EU 지지 야당 세력의 강한 반발이 일어났고,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유로마이단)가 발생했다. 시위대는 만연한 정부 부패, 권력 남용, 인권 침해에 반대했다.

2013년 12월 키이우의 대규모 시위
2013년 12월 키이우의 대규모 시위


야누코비치는 베르쿠트를 사용하여 시위대를 공격했다. 2014년 2월, 시위대에 대한 발포 명령으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했고, 야권은 더욱 강하게 반발하여 키이우와 의회를 점거하자, 야누코비치는 키이우를 떠나 도주하였다.

2014년 1월 키이우 폭동 당시 내무군으로 구성된 진압 경찰이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베르쿠트 특수경찰이 발포하는 모습
2014년 1월 키이우 폭동 당시 내무군으로 구성된 진압 경찰이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베르쿠트 특수경찰이 발포하는 모습


2014년 2월 22일, 우크라이나 의회는 야누코비치의 대통령 해임을 결의하고 5월 25일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했지만, 야누코비치는 쿠데타라며 사임에 동의하지 않았다.

3.2. 대통령직 축출과 망명

시위대에 대한 발포 허용으로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하자, 야권은 더욱 강하게 반발하여 키이우와 의회를 점거했다. 이로 인해 야누코비치는 키이우를 떠나 도주하였고, 여당마저 등을 돌렸다. 2014년 2월 22일, 국회는 인권침해와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탄핵을 가결하여 대통령직을 상실하였다.

2014년 2월 22일 의회 밖 친혁명 시위대
2014년 2월 22일 의회 밖 친혁명 시위대


2월 22일, 라다(최고 라다)는 447명 의원 중 약 73%인 328대 0으로 야누코비치를 해임하고 5월 25일 조기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기로 투표했다. 결의안은 야누코비치가 헌법상 의무 이행을 거부하여 "국가 통치,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 및 주권을 위협"하고 있으며 "극히 긴급한 상황"을 언급했다. 야누코비치 해임 결의안은 모든 야당과 야누코비치의 지역당 소속 의원 36명의 지지를 받았다. 2004년 헌법에 따라 의회 의장 올렉산드르 투르치노프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이 투표는 야누코비치가 TV 연설에서 사임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지 한 시간 후에 이루어졌다. 그는 이후 자신이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자유로운 투표로 선출된 우크라이나 국가의 합법적인 수반"이라고 선언했으며, 자신의 해임이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하여 러시아로 도망쳤다. 결의안 제목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결의안.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 행사로부터의 자발적 사퇴 및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임시 선거 지정에 관한 것»이었다.

이후 그는 러시아로 잠입하였다가 2월 28일,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자신이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합법적인 대통령이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014년 2월 우크라이나 검찰은 야누코비치와 측근들을 직권을 이용한 공금 횡령 및 탕진혐의로 기소하였으며, 2015년 1월 인터폴에 의해 국제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2019년 1월 우크라이나 법원은 야누코비치에 대해 국가반역죄 등을 인정하여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4. 논란 및 비판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재임 기간 동안 부정부패와 권력 남용 의혹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호화로운 생활과 재산 축적, 측근 비리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키이우 외곽의 호화 저택 메지히리야는 그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시로 꼽힌다.

언론 자유를 억압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을 탄압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2010년 국경 없는 기자회는 야누코비치 정부의 검열을 비난했으며, 익명의 언론인들은 정부를 불쾌하게 하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보도 내용을 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를 투옥한 것은 정치 보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티모셴코 전 총리는 직권 남용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는 서방 정부들에 의해 정치적 동기가 부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나치게 친러시아적인 정책을 추진하여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을 훼손했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2010년 러시아와 체결한 하르키우 조약은 흑해 함대크림반도 주둔 기간을 25년 연장하는 대가로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받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국가 이익을 팔아넘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유로마이단 시위 당시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명령하여 대규모 유혈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4년 2월 18일부터 20일까지 키이우에서 벌어진 시위 진압 과정에서 약 100명의 시위대가 사망했으며, 이는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최악의 유혈 사태로 기록되었다. 야누코비치는 2015년 BBC 뉴스나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보안군에게 발포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5. 기타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 혈통을 가지고 있으며,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한다. 우크라이나의 열악한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그의 호화 저택 메지히리야는 핀란드 통나무집 건설업체 혼카가 만든 가장 큰 목조 건물이었으며, 개인 동물원, 지하 사격장, 18홀 골프장, 테니스장, 볼링장 등을 갖추고 있었다.



야누코비치는 여러 학위를 소지하고 있으나, 학위 취득 과정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는 도네츠크 공과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우크라이나 외무무역 아카데미에서 국제법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우크라이나 경제과학 아카데미 회원이자 경제학 박사 학위 소지자이다. 그러나 그가 외무무역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던 "개별 학습 프로그램"은 국가 관리들을 위한 학위장사(diploma mill)로 여겨진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야누코비치는 웅변가로 유명하지 않으며, 그의 모국어는 러시아어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어를 더 잘 구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를 위해 제출한 자서전에 12개의 철자 및 문법 오류를 포함하는 등 여러 실수를 저질렀다.

6.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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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명직책명대수정당1차 득표수1차 득표율2차 득표수2차 득표율결과당락
2004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우크라이나의 대통령3대우크라이나 지역당11,008,731표39.26%12,848,528표44.20%2위낙선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우크라이나의 대통령4대우크라이나 지역당8,686,642표35.32%12,481,266표48.95%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