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다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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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비다 블루는 1949년생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에서 활약한 좌완 투수이다. 1971년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과 MVP를 동시에 수상했으며, MLB 올스타전에 6번 선정되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1972년부터 1974년까지 3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은퇴 후에는 야구 분석가로 활동했으며, 2023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바이다 블루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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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시절
포지션투수
타석스위치
투구좌투
출생일1949년 7월 28일
출생지미국 루이지애나주 맨스필드
사망일2023년 5월 6일 (73세)
사망지미국 캘리포니아주 트레이시
데뷔 리그MLB
데뷔일1969년 7월 20일
데뷔팀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마지막 리그MLB
마지막 경기일1986년 10월 2일
마지막 팀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통계 (MLB)
승패 기록209승 161패
평균 자책점3.27
탈삼진2,175
소속팀
선수 경력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69–197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78–1981)
캔자스시티 로열스 (1982–198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85–1986)
수상 및 업적
올스타6회 (1971, 1975, 1977, 1978, 1980, 1981)
월드 시리즈 우승3회 (1972–1974)
아메리칸 리그 MVP1971년
사이 영 상 (아메리칸 리그)1971년
아메리칸 리그 평균 자책점 1위1971년
노히터1970년 9월 21일
합동 노히터1975년 9월 28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명예의 전당해당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명예의 벽해당
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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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시절

비다 블루는 루이지애나주 북서부의 맨스필드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철강 주조소 노동자인 아버지 비다 블루 시니어와 어머니 샐리 사이에서 태어난 6명의 자녀 중 장남이었다.

블루는 맨스필드의 데소토 고등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 시절 뛰어난 운동 신경을 보여 야구팀에서는 투수로, 미식축구팀에서는 쿼터백으로 활약했다. 미식축구 시니어 해에는 3,400야드를 던져 35개의 터치다운 패스를 성공시켰고, 직접 1,600야드를 돌파하기도 했다. 야구 시니어 해에는 한 경기에서 7이닝 동안 21개의 삼진을 모두 잡아내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는 뛰어난 투구를 선보였다.

그는 여러 대학으로부터 미식축구 선수 제안을 받았으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프로 야구 선수의 길을 선택하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계약했다.

3. 야구 경력

블루는 많은 왼손잡이 투수들과 달리, 빠르게 투구하며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는 파워 피처였다. 그의 주무기는 꾸준히 94mph를 기록하고 최고 100mph까지 나오는 강력한 패스트볼이었으며, 타자들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예리한 커브볼과 평균 이상의 체인지업도 구사했다. 피트 로즈는 블루가 자신이 상대했던 투수 중 가장 공이 빨랐다고 평가했으며, 야구 역사가 빌 제임스는 그를 당대 최고의 좌완 강속구 투수이자 놀런 라이언 다음으로 빠른 투수로 꼽았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며 전성기를 누렸고, 1971년에는 사이 영 상과 아메리칸 리그 MVP를 동시에 수상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애슬레틱스의 월드 시리즈 3연패(1972–1974)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구단주 찰리 핀리와의 연봉 갈등을 겪기도 했으며, 뉴욕 양키스신시내티 레즈로의 트레이드가 야구 커미셔너 보위 쿤에 의해 무산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캔자스시티 로열스에서도 활약했으며, 1978년에는 자이언츠 소속으로 올스타전에 선발 등판하여 양대 리그에서 모두 올스타전 선발 투수로 나선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선수 생활 동안 코카인 중독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징역형과 출장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3.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69–1977)

1970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유니폼
1970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유니폼

당시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는 1967년 1967년 MLB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블루를 지명했다. 구단은 1968년 오클랜드로 연고지를 이전하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되었다. 블루는 노트르담 대학교, 퍼듀 대학교, 휴스턴 대학교 등에서 대학 미식축구 선수로 뛰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애슬레틱스와 계약하기로 결정했다.

블루는 1969년 7월 20일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다. 1970년에는 마이너 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했으나, 9월에 콜업되어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9월 11일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상대로 8회 2아웃까지 노히트 피칭을 펼치며 1피안타 완봉승을 거두었고, 열흘 뒤인 9월 21일에는 오클랜드-알라메다 카운티 콜리세움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단 하나의 볼넷만 내주며 6-0 노히터를 달성했다. 이는 역대 4번째 최연소 노히터 기록이었다.

1971년은 블루에게 최고의 해였다. 그는 24승 8패, 아메리칸 리그 1위인 평균자책점 1.82, 301 탈삼진, 리그 1위인 8번의 완봉승과 24번의 완투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과 MVP를 동시에 수상했다. 이는 1952년 당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소속이었던 보비 섄츠 이후 처음으로 애슬레틱스 선수가 MVP를 수상한 사례였으며, 블루는 20세기에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한 최연소 선수였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애슬레틱스는 1931년 이후 처음으로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블루는 올스타전에서 아메리칸 리그 선발 투수로 나섰고, 같은 해 리그 개막전(워싱턴 세네터스 상대), 올스타전, 플레이오프 개막전(볼티모어 오리올스 상대)에서 모두 선발 등판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이 해 그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타임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1971년의 성공 이후, 블루와 구단주 찰리 핀리는 연봉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1971년 14를 받았던 블루는 92.5를 요구했으나, 장기간의 버티기 끝에 결국 63에 합의하며 1972년 5월에야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로 인해 시즌 출발이 늦어졌고, 6승 10패(평균자책점 2.80)의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서는 주로 구원 투수로 활약했으며, 1972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4경기에 등판하여 1차전 세이브, 4차전 블론 세이브, 6차전 선발 패배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팀은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72년에는 야구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짐 브라운 주연의 영화 블랙 건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973년 오클랜드 A's에서 투구하는 블루
1973년 오클랜드 A's에서 투구하는 블루

블루는 다시 주축 선발 투수로 복귀하여 1973년 20승(9패), 1974년 17승(15패), 1975년 22승(11패)을 기록하며 애슬레틱스의 5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 우승(1971–75)과 3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1972–74)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인상적인 포스트시즌 활약으로는 1972년 ALCS 5차전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를 상대로 4이닝 무실점 구원 투구를 펼친 것과, 1974년 ALCS 3차전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1-0 완투승을 거둔 것이 있다. 1975년 9월 28일, 블루는 글렌 애벗, 폴 린드블라드, 롤리 핑거스와 함께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상대로 5-0 노히트 노런을 합작했다. 블루는 개인 통산 노히터를 기록한 투수 중 최초로 합작 노히터에도 참여한 선수가 되었다. 그는 1975년 올스타전에도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1976년 시즌(18승 13패, ERA 2.35)을 마친 후, 블루는 구단주 핀리에 대해 "그가 다음 쉬는 숨이 마지막 숨이 되기를 바란다. 그가 얼굴을 땅에 쳐박고 소아마비로 죽기를 바란다."라고 말하며 강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1976년 6월, 핀리는 블루를 뉴욕 양키스에 1.5에 팔려고 시도했으나, 야구 커미셔너 보위 쿤이 이를 무효화했다. 또한 1977년 12월에는 블루를 신시내티 레즈로 보내는 트레이드(선수 1명과 1.75 포함)도 1978년 1월 쿤에 의해 저지되었다. 쿤은 두 경우 모두 이미 강팀인 양키스와 레즈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며 야구계 전체의 균형에 좋지 않다고 판단하여 개입했다. 1976년 시즌이 끝날 무렵, 야구계에 자유계약선수 제도가 도입되면서 오클랜드의 우승 주역 대부분이 팀을 떠나거나 핀리에 의해 트레이드되었다. 계약이 남아있던 블루는 주로 신인과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새로운 팀을 이끌게 되었다. 1977년 시즌, 블루는 약화된 팀 전력 속에서 14승 19패(리그 최다패), 평균자책점 3.83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에서 가장 많은 피안타와 자책점을 허용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3.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78–1981)

1978년 3월 15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바이다 블루를 같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연고지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했다. 자이언츠는 그 대가로 게리 토마슨, 게리 알렉산더, 데이브 헤버로, 존 헨리 존슨, 필 허프만, 앨런 워스 6명의 선수와 현금 300를 애슬레틱스에 지불했다. 이후 마리오 게레로가 추후 지명 선수로 애슬레틱스로 이적하면서 거래가 완료되었다.

이적 첫 해인 1978년, 블루는 시즌 초반 6연승과 6월 10일부터 10연승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전반기에만 12승을 거두었다. 그는 18승 10패,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하며 자이언츠가 89승을 거두고 내셔널 리그 서부 지구 3위(지구 우승팀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올스타전에서는 내셔널 리그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역사상 최초로 양대 리그에서 모두 올스타전 선발 투수를 경험한 선수가 되었다. 시즌 종료 후 스포팅 뉴스가 선정하는 내셔널 리그 올해의 투수상을 수상했고, 사이 영 상 투표에서는 3위에 올랐다.

1979년에는 풀타임 선발 투수로서 14승 14패를 기록했지만, 평균자책점은 5.01로 매우 부진했다. 4월 19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개인 최다인 10실점을 기록했지만 승리 투수가 되었다. 제구가 좋지 않아 불안정한 투구를 이어갔고, 리그 최다인 132 자책점과 개인 최다인 111 볼넷을 기록하며 부진했다.

1980년에는 5월 9일부터 7연승을 기록하는 등 부활했다. 시즌 중 약 한 달간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14승 10패, 평균자책점 2.97을 기록했다.

1981년 시즌은 선수 파업으로 인해 50일간 중단되어 단축 운영되었다. 블루는 9월 6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7회 1사까지 빌 벅너에게 안타를 허용하기 전까지 노히트를 기록했다. 단축 시즌의 영향으로 8승 6패,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하며 8승에 그쳤다.

3.3. 캔자스시티 로열스 (1982–198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1982년 3월 30일 블루를 애틀리 해머커, 크레이그 체임벌린, 레니 마틴, 브래드 웰먼을 받는 조건으로 캔자스시티 로열스로 트레이드했다. 블루는 로열스 이적 첫 해인 1982년, 31경기에 모두 선발 등판하여 13승 12패, 평균자책점 3.78을 기록하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1983년에는 19경기(13선발)에 등판하여 승리 없이 5패만을 기록했고, 평균자책점도 6.01로 크게 부진했다. 결국 블루는 1983년 8월 6일 시즌 중 로열스에서 방출되었다.

한편, 블루는 선수 시절 내내 마약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1983년 시즌 이후, 블루는 전 동료였던 윌리 윌슨, 제리 마틴, 윌리 에이컨스와 함께 코카인 구매를 시도한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MLB 사무국으로부터 1984년 시즌 전체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3.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복귀 (1985–1986)

1985년 4월, 블루는 자유 계약 선수로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복귀하여 1년 계약을 맺었다. 그는 33번의 등판에서 8승 8패, 평균자책점 4.47을 기록했는데, 그 중 20번은 선발 등판이었고 나머지는 중간 계투 및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같은 해, 블루는 피츠버그 마약 재판에서 증언했다.

블루는 1986년에 다시 1년 계약을 맺고, 36세의 나이로 28번의 선발 등판에서 10승 10패,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쳤다. 4월 20일, 그는 통산 200번째 메이저 리그(MLB) 승리를 거두었다. 블루는 1987 시즌을 위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계약했지만, 1987년 2월에 은퇴를 발표하며 선수 경력을 마감했다.

4. 은퇴 이후

야구 선수 은퇴 후, 블루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TV 중계사인 NBC 스포츠 베이 에어리어에서 야구 분석가로 활동했다.

1971년에는 밥 호프와 함께 USO의 베트남 및 기타 군사 시설 방문 크리스마스 투어에 참여했다. 은퇴 후에도 세이프웨이 올스타 챌린지 스포츠, 자동차 기증, 유명인 골프 토너먼트, 어린이 자선 단체 등 다양한 자선 활동을 이어갔다. 또한 코스타리카에서 야구를 홍보하는 데에도 힘썼다.

그러나 블루는 선수 생활 이후에도 약물 남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2005년에는 여러 차례 음주 운전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이러한 문제들이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빠르게 제외되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인정하며, "내 삶에 투표에 영향을 미쳤을 만한 문제가 몇 가지 있었다. 명예의 전당에는 후광이 없는 선수들도 있다"고 언급했다.

1989년 9월, 블루는 캔들스틱 파크의 투수 마운드에서 페기 섀넌과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신랑 들러리는 전 팀 동료 윌리 맥코비였고, 올랜도 세페다가 신부를 마운드까지 에스코트했다. 블루와 섀넌은 쌍둥이 딸을 두었으나 1996년에 이혼했다. 블루에게는 아들 데릭과 두 명의 딸이 더 있다.

은퇴 후 블루는 캘리포니아주 트웨인 하트의 시에라 네바다 산맥 기슭에서 수년간 거주하다가, 2007년까지 트레이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2023년 5월 6일, 블루는 이스트 베이의 한 병원에서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팀 관계자는 사인이 암으로 인한 합병증이라고 밝혔다.

5. 수상 및 기록

* 아메리칸 리그 사이 영 상: 1971년
* 아메리칸 리그 MVP: 1971년 (20세기 최연소 아메리칸 리그 MVP)
* MLB 올스타전 선정: 6회 (1971년, 1975년, 1977년, 1978년, 1980년, 1981년)
* 1971년 아메리칸 리그 선발 투수
* 1978년 내셔널 리그 선발 투수
*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 1위: 1회 (1971년, 1.82)
* 아메리칸 리그 완봉 1위: 2회 (1971년 8회, 1976년 6회)
* 아메리칸 리그 완투 1위: 1회 (1971년 24회)
* 아메리칸 리그 최다패: 1회 (1977년 19패)
* 아메리칸 리그 최다 피안타: 1회 (1977년 284개)
* 아메리칸 리그 최다 실점: 1회 (1977년 138점)
* 아메리칸 리그 최다 자책점: 1회 (1977년 119점)
* 내셔널 리그 최다 자책점: 1회 (1979년 132점)
* 노히트 노런 기록: 1회 (1970년 9월 21일, 미네소타 트윈스 전)
* 합작 노히트 노런 기록: 1회 (1975년 9월 28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전 / 글렌 애벗, 폴 린드블래드, 롤리 핑거스와 합작)
* 스포팅 뉴스 선정 내셔널 리그 올해의 투수: 1978년
* 개인 통산 200승 달성: 1986년 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