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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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이브 앤더슨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활약한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이다. 노팅엄 포리스트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부 리그, 리그컵, 유러피언컵 등 다수의 우승을 경험했다. 이후 아스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셰필드 웬즈데이 등에서 활약했으며,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으로 30경기에 출전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 및 해설가로 활동했으며, 2000년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고, 2004년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바이브 앤더슨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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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노팅엄 포리스트의 앤더슨
이름바이브 앤더슨
훈장MBE
전체 이름Vivian Alexander Anderson
출생지잉글랜드 클리프턴
1.82m
포지션은퇴 (과거 우측 수비수)
선수 경력
클럽1974–1984: 노팅엄 포리스트
1984–1987: 아스널
1987–199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1–1993: 셰필드 웬즈데이
1993–1994: 반즐리
1994–1995: 미들즈브러
합계: 594 (38)
국가대표팀1978: 잉글랜드 U-21
1978–1988: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잉글랜드 U-21: 1 (0)
잉글랜드: 30 (2)
감독 경력
감독 연도1993–1994
감독 클럽반즐리 (선수 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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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바이브 앤더슨은 1974년 노팅엄 포리스트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75년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 부임 이후 주전으로 도약하여, 1977년 팀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고, 1년 후 리그 컵과 리그 우승을 동시에 달성했다. 당시 잉글랜드 1부 리그에서 뛰는 아프리카계 선수 1세대로서, 인종차별적인 야유와 바나나 투척 등에 시달렸다. 유러피언컵 2연패(1979, 1980)를 달성하는 등 노팅엄 포리스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4년, 아스널로 이적하여, 1987년 리그컵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꺾고 우승하는 데 기여했다. 1987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부임 후 첫 영입 선수로 이적했다. 앤더슨은 1987-88 시즌에 팀이 리그 2위를 기록하는 데 기여했다. 1989-90 시즌에는 FA컵 우승을 차지했지만, 결승전에는 결장했다.

1991년, 셰필드 웬즈데이로 이적하여 팀의 2부 리그 승격을 도왔다. 1993년에는 FA컵과 리그컵 결승전에 모두 올랐으나, 두 경기 모두 아스널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1993년 6월, 반즐리의 선수 겸 감독이 되었으나, 1년 후 팀을 떠났다. 1994년, 미들즈브러의 수석 코치로 합류했으며, 1994-95 시즌에 팀의 1부 리그 우승 및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기여한 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1. 노팅엄 포리스트 (1974-1984)

노팅엄셔 주 클리프턴 출신으로, 1974년에 노팅엄 포리스트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75년 1월 브라이언 클러프 감독이 부임하면서 주전으로 도약했다. 그는 1977년 노팅엄 포리스트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고, 1년 후에는 리그 컵과 리그 우승을 동시에 달성했다.

당시 잉글랜드 1부 리그에서 뛰는 아프리카계 선수 1세대 중 한 명으로, 상대 팀 서포터들의 인종차별적인 야유와 바나나 투척 등에 시달렸다.

아약스와의 1979-80 시즌 유러피언컵 준결승전에 출전한 앤더슨(왼쪽)
아약스와의 1979-80 시즌 유러피언컵 준결승전에 출전한 앤더슨(왼쪽)


유러피언컵 2연패(1979, 1980)를 달성하는 등 노팅엄 포리스트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79년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말뫼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1980년에는 함부르크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80년 리그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2.2. 아스널 (1984-1987)

1984년 여름, 앤더슨은 250000GBP에 아스널로 이적하며 재기를 노렸다. 아스널에서 그는 1부 리그에서 팀이 고전하다가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1987년 리그컵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꺾고 우승하며 7년 만에 유러피언컵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대회 준결승 2차전에서는 아스널의 숙적 토트넘 홋스퍼를 상대로 귀중한 골을 기록했다.

그는 3년 동안 하이버리에서 150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기록했다. 1986년 5월에 취임한 조지 그레이엄 감독은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당시 신예였던 토니 애덤스에게 큰 영향을 주며 아스널의 분위기 반전에 기여했다. 30세가 된 앤더슨은 1987년 시즌이 종료된 후 3년 연장 계약 제의를 받았으나, 학창 시절에 방출되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다.

2.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87-1990)

Viv Anderson영어은 250000GBP의 이적료에 합의를 보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부임 후 첫 영입 선수가 되었다.

앤더슨은 올드 트래퍼드에서 퍼거슨 감독의 팀 재건 계획의 핵심 선수였다. 퍼거슨 감독은 1967년 이후 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1986-87 시즌에 11월 5일 론 앳킨슨 감독이 경질될 정도로 팀은 리그 21위로 부진했지만, 퍼거슨 감독 부임 후 6개월 만에 11위로 순위를 끌어올렸다. 앤더슨은 1987-88 시즌에 팀의 문제 개선에 기여했고, 소속팀은 리그 2위를 기록했다. 당시 리버풀을 거의 따라잡을 뻔 했으나, 시즌 막판 2패를 기록하며 40경기 무패 기록은 29경기에서 중단되었다.

앤더슨은 1988-89 시즌에도 주전 우측 수비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 부진으로 시작하여 새해에 들어서면서 상승세를 타 2월 중순에 3위까지 올랐지만, 시즌 마지막 4분기에 부진하며 11위로 떨어졌다. 1989-90 시즌에 13위로 마감했지만, 유나이티드는 FA컵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앤더슨은 결승전에 결장했다. 그는 모든 대회를 통틀어 총 21경기에 출전했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중앙 미드필더였던 폴 인스를 우측 수비수로 기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인스는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1차전 경기(3-3 무승부)에서 우측 수비수로 출전했고, 5일 후 재경기에서도 1-0 승리에 기여했다.

2.4. 셰필드 웬즈데이 (1991-1993)

1991년 1월, 앤더슨은 셰필드 웬즈데이로 자유 이적하여 팀의 2부 리그 승격을 도왔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리그컵 결승전에는 전 소속 구단과의 경기였기 때문에 출전하지 못했다. 단기 계약을 맺고 입단했지만, 앤더슨은 셰필드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며 여러 차례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다. 그는 "올빼미 군단"(셰필드 웬즈데이의 별명)의 일원으로서 1부 리그 1991-92 시즌 3위와 프리미어리그 1992-93 시즌 7위에 공헌했다. 1993년에는 FA컵과 리그컵 결승전에 모두 올랐으나, 두 경기 모두 아스널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2.5. 반즐리 (1993-1994)

1993년 6월, 앤더슨은 멜 마친이 떠나 공석이 된 반즐리의 선수 겸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오크웰에서의 1년 차는 실망스러웠는데, 반즐리는 2부 리그 강등을 간신히 피했다.

2.6. 미들즈브러 (1994-1997)

1993-94 시즌, 앤더슨은 반즐리를 떠나 전 올드 트래퍼드 시절 동료였던 브라이언 롭슨의 수석 코치로 미들즈브러에 입단했다.

1994년에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앤더슨은 미들즈브러의 줄부상 사태로 인해 공식 선수로도 등록되어 1994-95 시즌에 2번의 경기에 출전해 팀의 1부 리그 우승 및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이후, 그는 정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비록 소속 구단은 12월에 부상과 질병을 사유로 뒤늦게 일정 연기를 요청해 승점 3점이 삭감된 것이 화근이 되어 강등당했지만, 앤더슨은 롭슨이 선수단을 조직해 1996-97 시즌 두 국내 컵대회 결승전에 오르는데 이바지했다. (두 대회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앤더슨은 1978년 11월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는데, 이는 잉글랜드 역사상 최초의 흑인 선수 출전이었다. 1980년 유럽 선수권 대회(유로 1980)와 1982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198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튀르키예를 상대로 국가대표팀 첫 골을 기록하는 등 총 30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 1988년 유럽 선수권 대회(유로 1988)에도 참가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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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브 앤더슨의 국가대표팀 득점 목록
#날짜경기장상대점수결과대회
11984년 11월 14일이뇌뉘 경기장, 이스탄불, 튀르키예Türkiye튀르키예어8–08–01986년 월드컵 예선전
21986년 11월 12일웸블리 경기장, 런던, 잉글랜드Jugoslavija세르보크로아트어2–02–0유로 1988 예선전

4. 은퇴 후

앤더슨은 미들즈브러 수석 코치직에서 물러난 이후 축구계에서 은퇴했다.

2000년 1월에는 대영제국 훈장 구성원(MBE)으로 명명되었다.

2004년에는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05년을 기점으로, 스포츠 여행사를 운영했고, 잉글랜드 축구 협회의 친선 대사로도 활동했다. 앤더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TV의 해설 위원으로 가끔 출연한다.

맨체스터의 인민박물관에는 바이브 앤더슨이 1978년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첫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입었던 유니폼이 전시되어 있다.

5. 수상 내역

바이브 앤더슨은 노팅엄 포리스트 소속으로 1부 리그, 리그컵, 채리티 실드, 유러피언컵, 유러피언 슈퍼컵, 앵글로스코티시컵에서 우승했고, 아스널 소속으로 리그컵,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FA컵과 채리티 실드에서 우승했다. 개인적으로는 P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5.1.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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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대회시즌
노팅엄 포리스트1부 리그1977–78
노팅엄 포리스트리그컵1977–78
노팅엄 포리스트채리티 실드1978
노팅엄 포리스트유러피언컵1978–79, 1979–80
노팅엄 포리스트유러피언 슈퍼컵1979
노팅엄 포리스트앵글로스코티시컵1976–77
아스널리그컵1986–8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A컵1989–9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채리티 실드1990
개인
PFA 올해의 팀1986-87 1부 리그

5.2. 개인

* PFA 올해의 팀: 1986-87 1부 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