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식 (육상 선수)
1. 개요
박봉식은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로, 특히 원반던지기 선수로 활동했다. 농구 등 여러 종목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육상과 원반던지기에 전념했으며, 한국과 중국에서 체육 교육을 받았다. 1948년 국내 대회에서 세계 기록을 세웠으나 국제 육상 경기 연맹(IAAF)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같은 해 열린 1948년 하계 올림픽 여자 원반던지기 종목에 참가하여 22명 중 18위를 기록했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올림픽 참가 선수로 기록되었다. 1949년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고, 1950년에는 급성 충수염에도 불구하고 전국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그러나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뇌수막염으로 사망했다.
| 이름 | 박봉식 |
|---|---|
| 원어 이름 | 朴鳳植 |
| 출생일 | 1930년 |
| 사망일 | 1951년 (21세) |
| 사망지 | 알 수 없음 |
| 국적 | 대한민국 |
| 키 | 알 수 없음 |
| 몸무게 | 알 수 없음 |
| 대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
|---|
| 종목 | 육상 농구 빙상 |
|---|---|
| 육상 세부 종목 | 원반던지기, 포환던지기 |
| 소속 | 이화여자대학교 |
| 종목 | 원반던지기 |
|---|---|
| 기록 | 37m 08 |
| 연도 | 1948년 |
| 종목 | 3,000m |
|---|---|
| 기록 | 6분 39초 |
| 연도 | 1947년 |
| 비고 | 빙상선수권대회 (조선일보, 1947-01-29) |
| 종목 | 원반던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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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여자 육상 선수 -
김혜연
김혜연은 1991년 전국노래자랑에서 데뷔하여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히트시키고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여자가수상, SBS 가요대전 트로트부분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등을 수상한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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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서연
심서연은 대한민국의 여자 축구 선수로, WK리그 수원 FC에서 수비수로 활약하며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2015년 FIFA 여자 월드컵 16강 진출, 2009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아시안 게임 동메달, 평화컵 우승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수막염으로 죽은 사람 -
주공삼
주공삼은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시기를 거치며 월남을 시도하고 피난 생활을 하다가 1953년 뇌수막염으로 사망한 인물이며, 주요 자녀로 주요한, 주요섭, 주영섭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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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의 시인이자 작가인 스레치코 코소벨은 짧은 생애 동안 다양한 예술 사조를 섭렵하며 슬로베니아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고, 파시즘 저항 정신과 사회 비판적 시각을 담은 작품으로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며 사후에도 재평가받고 있다. -
일제강점기의 육상 선수 -
손기정
손기정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육상 선수이자 체육인으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일본 대표로 출전해야 했으며, 광복 후에는 육상 지도자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체육 발전에 기여했다. -
일제강점기의 육상 선수 -
남승룡
남승룡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대의 마라톤 선수이자 육상 지도자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고 전남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그의 삶은 드라마와 영화로도 다뤄졌다.
2. 경력
박봉식은 농구 등 여러 스포츠를 경험한 후 육상, 특히 원반던지기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1948년 하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선수로 참가하여 한국 여성 체육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올림픽 이후에도 국내 기록을 경신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나,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수막염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1. 선수 경력 초기
박봉식은 본래 농구 등 여러 종목에 참여했으나, 이후 육상, 특히 원반던지기에 전념하게 되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공부하면서 외국의 선진 체육 교육을 받았다.
1948년 한국 국내 대회에서 세계 기록에 준하는 우수한 기록을 세웠으나, 이는 IAAF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같은 해 런던에서 열린 1948년 하계 올림픽 여자 원반던지기 종목에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하여 22명의 선수 중 18위를 기록했다. 박봉식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에 참가한 여성 선수였다. 그는 1948년 6월 20일 자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 "여자가 저 혼자이기 때문에 좀 섭섭해요. 압흐로는 이런 대회에 우리 조선 여성도 만히 참가하도록 해주기를 미리 부탁해요. 조선 여성을 대표하야 아니 전 조선민족을 대표하야 나가느니만큼 조선사람도 이러타는 것을 뽐내도록 힘을 다할 작정이요."
1949년에는 39.65m를 던져 자신의 한국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했다. 1950년 6월 급성 충수염 진단을 받았으나, 전국 선수권 대회 참가를 위해 수술을 미루고 대회에 출전하여 39.57m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전쟁 중이던 1951년 수막염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2.2. 1948년 올림픽 참가와 세계 기록
박봉식은 농구 등 여러 종목에서 활동하다가 육상, 특히 원반던지기에 전념하게 되었다. 1948년, 한국에서 열린 국내 대회에서 세계 기록에 해당하는 성적을 냈으나, 이는 국제 육상 경기 연맹(IAAF)으로부터 공인받지는 못했다.
같은 해 열린 1948년 하계 올림픽 여자 원반던지기 종목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하여 22명의 선수 중 18위를 기록했다. 박봉식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올림픽 참가 선수라는 역사적인 기록을 남겼다.
올림픽 출전을 앞둔 1948년 6월 20일, 박봉식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 선수가 자신 혼자인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며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여성들이 국제 대회에 참가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자가 저 혼자이기 때문에 좀 섭섭해요. 압흐로는 이런 대회에 우리 조선 여성도 만히 참가하도록 해주기를 미리 부탁해요. 조선 여성을 대표하야 아니 전 조선민족을 대표하야 나가느니만큼 조선사람도 이러타는 것을 뽐내도록 힘을 다할 작정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