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불화
1. 개요
박불화는 고려 충숙왕과 충혜왕 재위 기간에 해주 박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원나라 원 문종 재위 기간에 7세의 나이로 원나라 조정에 파견되어 환관이 되었으며, 기황후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동지 추밀원사, 영록대부 자정원사 등을 역임했다. 기황후의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폐위하려다 실패하고, 공민왕 폐위 및 덕흥군 옹립을 모의했으나 실패한 후, 1364년 볼루드 테무르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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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이름 | 박불화 |
|---|---|
| 한자 이름 | 朴不花 |
| 로마자 표기 | Bak Bul-hwa |
| 몽골어 이름 | 부카 |
| 만주어 이름 | ᠪᡠᡴᠠ |
| 출생 | 고려 |
|---|---|
| 사망 | 원나라 |
| 직업 | 환관 |
| 활동 시기 | 14세기 |
| 역할 | 기황후의 측근 |
|---|---|
| 주요 사건 | 권력 남용, 부정부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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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의 환관 -
방신우
방신우는 고려 말 원나라에서 몽골식 이름 망쿠다이로 활동하며 평장정사까지 오른 관리로서, 충선왕 옹호와 고려의 국익을 위한 활동을 펼치다 원나라에서 사망 후 고려에 안장되었다. -
1364년 사망 -
가자 마다
가자 마다는 14세기 마자파힛 제국의 재상으로서, 자야네가라 왕 구출 및 반란 진압에 기여하고 팔라파 선서를 통해 제국 확장을 목표로 삼았으며, 부밧 전투 이후 강등되어 생을 마감했다. -
1364년 사망 -
장 2세 (프랑스)
장 2세는 백년 전쟁 중 잉글랜드군에 포로로 잡혔으며, 브레티니 조약에 따른 몸값 지불을 거부하고 런던에서 사망한 프랑스의 국왕이다. -
원나라의 불교 신자 -
방신우
방신우는 고려 말 원나라에서 몽골식 이름 망쿠다이로 활동하며 평장정사까지 오른 관리로서, 충선왕 옹호와 고려의 국익을 위한 활동을 펼치다 원나라에서 사망 후 고려에 안장되었다. -
원나라의 불교 신자 -
경순왕후
경순왕후 박씨는 원나라 천호 박광의 딸이자 조선 도조 이춘의 비로, 환조 이자춘을 비롯한 5남 2녀를 두었으며 조선 개국 후 경비로 추존되었다가 태종 때 경순왕후로 시호가 올려진 문주 박씨이다.
2. 생애
박불화는 고려 충숙왕과 고려 충혜왕 재위 기간 동안 해주 박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원나라(元) 원 문종(元文宗) 재위 기간(1328~1332)에 박불화는 7세의 나이로 원나라 조정에 파견되어 어린 환관이 되었다. 1333년, 박불화의 절친한 친구 중 하나인 행주 기씨 출신의 기황후는 고려 국왕들이 원나라 황제의 후궁으로 봉사하기 위해 3년에 한 번씩 미모의 십 대 소녀들을 보내야 했던 일환으로 원나라로 보내진 후궁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결국 토곤 테무르 황태자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그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기황후가 황후가 되자 박불화는 그녀의 아들인 아유시리다라를 돌보기 위해 흥성궁으로 옮겨졌다. 박불화는 기황후와 친밀한 관계를 이용하여 여러 직책을 거쳐 결국 원나라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동지 추밀원사(同知 樞密院事)로 승진했고, 이후 영록대부 자정원사(荣禄大夫 資正院使)가 되었다. 그는 몽골 이름 부카 (몽골어: ᠪᠤᠬᠠ)를 받았다.
이후 그는 황실 사신으로 임명되었다. 박불화는 또한 재정을 담당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관리 임명 및 해임에 간섭했다.
기황후의 지원을 받아 박불화는 기황후의 아들이자 태자인 아유시리다라를 폐위하려는 음모를 꾸몄지만 실패했다.
1351년, 고려의 왕위에 오른 고려 공민왕은 반원 정책을 시행하여 기철과 같은 원나라 지지 세력을 제거했다. 이에 박불화는 기황후, 최유와 함께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고려 충선왕의 서자인 덕흥군을 대신 옹립하려 모의했다. 1364년, 최유와 덕흥군은 1만 명의 원나라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지만 최영이 이끄는 고려군은 이 군대를 격파했고 폐위 시도는 좌절되었다.
이 계획이 좌절된 후 박불화는 아유시리다라 태자파와 반태자파 사이의 싸움에 연루되었고, 삭사감파와 함께했다. 박불화는 1364년 바얀 쿠투그 황후의 아버지인 볼루드 테무르(孛羅帖木兒) 추장에 의해 살해당했다.
4년 후인 1368년, 명나라에 의해 원나라는 멸망했다.
2.1. 원나라 환관
박불화는 고려 충숙왕과 고려 충혜왕 재위 기간 동안 해주 박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원나라(元) 원 문종(元文宗) 재위 기간(1328~1332)에 7세의 나이로 원나라 조정에 파견되어 어린 환관이 되었다.
행주 기씨 출신의 기황후가 황후가 되자 박불화는 그녀의 아들인 아유시리다라를 돌보기 위해 흥성궁으로 옮겨졌다. 박불화는 기황후와 친밀한 관계를 이용하여 여러 직책을 거쳐 결국 원나라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동지 추밀원사(同知 樞密院事)로 승진했고, 이후 영록대부 자정원사(荣禄大夫 資正院使)가 되었다. 그는 몽골 이름 부카 (몽골어: ᠪᠤᠬᠠ)를 받았다. 이후 황실 사신으로 임명되었다. 박불화는 또한 재정을 담당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으며,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관리 임명 및 해임에 간섭했다.
기황후의 지원을 받아 아유시리다라를 폐위하려는 음모를 꾸몄지만 실패했다. 1351년, 고려의 왕위에 오른 고려 공민왕은 반원 정책을 시행하여 원나라 지지 세력을 제거했다. 이에 박불화는 기황후, 최유와 함께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덕흥군을 옹립하려 모의했다. 1364년, 최유와 덕흥군은 1만 명의 원나라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지만 고려군은 이 군대를 격파했고 폐위 시도는 좌절되었다.
이 계획이 좌절된 후 박불화는 아유시리다라 태자파와 반태자파 사이의 싸움에 연루되었고, 삭사감파와 함께했다. 박불화는 1364년 바얀 쿠투그 황후의 아버지인 볼루드 테무르(孛羅帖木兒) 추장에 의해 살해당했다. 4년 후인 1368년, 명나라에 의해 원나라는 멸망했다.
2.2. 기황후의 측근
박불화는 고려 충숙왕과 고려 충혜왕 재위 기간 동안 해주 박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원나라(元) 원 문종(元文宗) 재위 기간(1328~1332)에 7세의 나이로 원나라 조정에 파견되어 어린 환관이 되었다.
기황후가 황후가 되자 박불화는 그녀의 아들인 아유시리다라를 돌보기 위해 흥성궁으로 옮겨졌다. 박불화는 기황후와 친밀한 관계를 이용하여 여러 직책을 거쳐 결국 원나라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동지 추밀원사(同知 樞密院事)로 승진했고, 이후 영록대부 자정원사(荣禄大夫 資正院使)가 되었다. 그는 몽골 이름 부카 (몽골어: ᠪᠤᠬᠠ)를 받았다. 이후 그는 황실 사신으로 임명되었다. 박불화는 또한 재정을 담당하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으며,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관리 임명 및 해임에 간섭했다.
기황후의 지원을 받아 박불화는 기황후의 아들이자 태자인 아유시리다라를 폐위하려는 음모를 꾸몄지만 실패했다.
1351년, 고려의 왕위에 오른 고려 공민왕은 반원 정책을 시행하여 기철과 같은 원나라 지지 세력을 제거했다. 이에 박불화는 기황후, 최유와 함께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고려 충선왕의 서자인 덕흥군을 대신 옹립하려 모의했다. 1364년, 최유와 덕흥군은 1만 명의 원나라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지만 고려군은 이 군대를 격파했고 폐위 시도는 좌절되었다.
이 계획이 좌절된 후 박불화는 아유시리다라 태자파와 반태자파 사이의 싸움에 연루되었고, 삭사감파와 함께했다. 박불화는 1364년 바얀 쿠투그 황후의 아버지인 볼루드 테무르(孛羅帖木兒) 추장에 의해 살해당했다.
4년 후인 1368년, 명나라에 의해 원나라는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