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철
1. 개요
기철은 고려 말 원나라의 권신으로, 누이동생 기황후를 통해 원나라에서 권세를 누렸다. 조일신, 권겸 등과 연합하여 국정을 농단했으며, 정동행성 참지정사, 요양행성 평장정사, 대사도를 거쳐 고려에서도 정승에 임명되었다. 1356년 공민왕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되었으며, 1301년에서 1312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 《개국》, 《신돈》, 《신의》 등에서 배우가 기철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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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관직) -
설 (상나라)
설은 상나라의 시조로, 제곡의 비 간적이 현조의 알을 삼켜 잉태하여 태어났다는 설화가 있으며, 우의 치수를 도와 순 임금으로부터 상나라 땅에 봉해지고 자(子)라는 성을 받았다고 전해지지만, 갑골문 연구에서는 실존 인물이 아닐 가능성도 제기된다. -
사도 (관직) -
유인 (제무왕)
유인(劉演)은 한나라 경제의 후손으로 신나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켜 녹림군에 합류하여 세력을 키웠으나, 경시제에게 배신당해 죽임을 당하고 동생 유수(光武帝)에 의해 제 무왕으로 추존되었다. -
1356년 사망 -
완원대군
완원대군 이자흥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조부인 도조의 아들이자 환조 이자춘의 형제로, 여러 부인에게서 개흥군 이원, 개령군 이지, 개원군 이매, 동하군 이억천 등의 자손을 두었으며, 특히 개령군 이지는 조선 개국 후 영돈녕부사를 역임했다. -
1356년 사망 -
조반니 그라데니고
조반니 그라데니고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도제였으며, 제노바와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공화국 경제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나 재임 기간 중 전쟁이 발발했고 1356년에 사망했다. -
권문세족 -
지윤
지윤은 고려 말 무녀 출신 어머니를 두었음에도 공민왕의 총애를 받아 판숭경부사에 이르렀으나, 권신 이인임의 심복으로 활동하며 친명파를 탄압하고 권력을 남용했다는 비판과 함께 북원과 심왕의 위협에 맞서기도 했으며, 이인임 제거 실패 후 처형, 조선 개국 후 왕실 외척이 되었지만 반역자로 기록되었다. -
권문세족 -
이인임
이인임은 고려 말 공민왕, 우왕 대에 권력을 행사하며 홍건적 격퇴, 원나라 토벌 등의 공을 세웠으나, 권문세족으로서 친원 정책과 전횡을 일삼다 최영, 이성계 등에 의해 제거되었다.
2. 생애
기철은 누이동생이 원 혜종의 황후가 되어 태자 아유르시리다르를 낳자, 이를 배경으로 권력을 잡았다. 그는 기황후와 원나라를 등에 업고 친원 세력을 규합하여 막강한 권세를 누렸으며, 다른 사람의 토지를 빼앗는 등 횡포를 부렸다. 또한 조일신, 권겸, 노책 등과 결탁하여 국정을 장악하고 농단했다.
원나라로부터 여러 관직을 받았는데, 1340년에는 정동행성 참지정사를 지냈고, 이후 요양행성 평장정사를 거쳐 대사도의 지위에 올랐다. 고려에서도 정승(政丞)에 임명되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아버지 기자오가 원나라로부터 영안왕(榮安王)에 책봉되면서, 원나라 조정은 행주 기씨 일족을 고려에 사는 황실의 일원으로 간주했다. 기철은 영안왕의 후계자로서 왕족에 준하는 대우를 받았으며, 원나라의 공식 행사에서는 고려 왕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높은 예우를 받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는 원나라는 물론 고려 내에서도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1356년, 공민왕이 반원 정책을 추진하면서 그의 권세도 끝을 맺었다. 공민왕은 궁궐 연회에 참석한 기철과 권겸을 연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철퇴를 맞아 처형되었다. 그의 아들 기유걸과 조카 욀제이부카( Öljei Bukamon, 完者不花) 등 일족도 함께 숙청되었다.
3. 가계
* 고조부 : 기윤숙(奇允肅)
* 증조부 : 기홍영(奇洪穎)
* 조부 : 기관(奇琯)
* 아버지 : 기자오(奇子敖) - 경장헌왕(敬莊獻王)으로 추존
* 어머니 : 영안왕대부인(榮安王大夫人) 이씨
형 : 기식(奇軾)
본인 : 기철(奇轍)
* 장남 : 기유걸(奇有傑, ? ~ 1356)
* 차남 : 기인걸(奇仁傑) - 개성윤(開城尹) 역임
* 자부 : 경주 이씨
손자 : 기승민(奇承珉)
* 증손 : 기석손(奇碩孫)
손녀 : 기씨(奇氏)
손서 : 박경(朴經)
* 삼남 : 기세걸(奇世傑)
* 사남 : 기새인첩목아(奇賽因帖木兒, 기샤인테무르) - 평장(平章) 역임
* 계남(혹은 오남) : 기새인불화(奇賽因不花, 기샤인부카 ? ~ 1356)
* 딸 : 기씨(奇氏)
* 사위 : 왕중귀(王重貴)
동생 : 기원(奇轅) - 한림학사(翰林學士) 역임, 덕양군(德陽君)에 봉해짐
* 조카 : 기욀제이부카(奇完者不花, 기올제이부카)
동생 : 기주(奇輈)
동생 : 기윤(奇輪)
누이 : 기황후(奇皇后) - 원나라 혜종의 황후
* 조카 : 원나라 소종 (愛猷識理達臘, 아유르시리다르)
* 족제 (친척 동생) : 기삼만(奇三萬)
4. 기철의 출생년도 추정
이색의 아버지이자 충목왕 사후 공민왕 옹립을 주장했던 학자 이곡(1298-1351)의 문집인 가정집에는 기철의 출생년도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되는 시가 실려 있다.
가정집 제16권 / 율시(律詩)
기 재상(奇宰相)이 새로 정승에 임명되어 신정(新正)을 축하하러 황궁에 들어가는 것을 축하하다
:하늘이 구가의 풍도를 크게 떨치게 해 주려고(天敎大振舊家風)
:강사의 나이에 시중의 임명을 받게 하였도다(强仕之年拜侍中)
:물어보세 지금 누가 이와 같을 수 있는지(借問如今誰得似)
:황조의 척원으로 저궁을 접견하는 이분과(皇朝戚畹接儲宮)
:새벽바람 속에 의장(儀仗)이 동서로 늘어서고(玉仗東西立曉風)
:만국의 의관이 모두 모여 궁정에 도열하리라(衣冠萬國在庭中)
:오늘 황궁에 조회하러 떠나는 그대 부러워라(羨君此日朝元去)
:나도 조관(朝官)의 명단에 올라 양궁에 숙직했었느니(通籍吾曾直兩宮)
이 시에서 '강사(强仕)의 나이'는 40세를 의미한다.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는 "나이 사십을 강이라고 하니, 이때에 벼슬길에 나선다.〔四十曰强而仕〕"라는 구절이 있다. 또한 '황조(皇朝)의 척원으로 저궁을 접견하는 이분'은 기철을 가리키는데, 그의 여동생 기황후가 원나라 순제의 제2 황후가 되어 황태자 아이유시리다라를 낳았기 때문이다. 즉, 기철이 외삼촌으로서 황태자를 만난다는 의미이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기록에 따르면, 충혜왕 복위 후 원나라에서는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을 정동행성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임명했고, 고려에서는 그를 정승에 임명하고 덕성부원군(德城府院君)에 봉했다. 기철은 1340년(충혜왕 후 원년) 3월에 권적(한명회의 증조부 한수의 장인이자, 권람의 증조부 권희의 사촌)과 함께 원나라에 가서 순제의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다.
이곡이 지은 위의 시는 기황후가 원 순제의 제2황후가 된 1340년 이후부터 이곡이 세상을 떠난 1351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시에서 언급된 '강사(强仕)'를 정확히 40세로 본다면, 기철은 1301년에서 1312년 사이에 태어났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기철은 대략 45세에서 56세 전후의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기철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이처럼 이곡의 시는 정부에서 편찬한 관찬 사서의 기록을 보완하여 역사적 사실을 추론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이곡의 아들인 이색의 문집 목은집에도 관찬 사서의 내용을 보완할 수 있는 여러 자료들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