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신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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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영신은 일제강점기 연극 배우로 활동했으며, 1939년 극단 아랑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조선총독부 후원 연극경연대회에서 연기상을 받았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연극 분야 여성으로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1947년 경 월북하여 북한에서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으며,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거쳐 문화상까지 역임하는 등 문예행정 분야에서 핵심 관료로 활동했다. 1965년에는 남북 공동 영화제작 및 연극경연대회를 제안하기도 했으나, 이후 숙청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박영신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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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박영신은 일제강점기에 연극 배우로 활동했으며, 광복 후에는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극단 아랑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고, 조선총독부가 후원한 연극경연대회에서 황철과 함께 연기상을 받았다. 이로 인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 분야에 선정되기도 했다.

광복 후 좌익 계열에서 활동하다 1947년경 월북하여, 1949년 황철 등과 함께 공로메달을 받았고, 1952년에는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중앙위원을 거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문화상까지 역임하는 등 문예행정 분야의 핵심 관료로 활동했다. 1965년에는 대한민국에 '북남공동 영화제작 및 연극경연대회'를 공식 제안하기도 했으나, 이후 숙청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2.1. 일제강점기 활동

일제강점기에 연극 배우로 활동했다. 1939년 극단 아랑에 참여하여 차홍녀, 문정복 등과 함께 많은 인기를 끌었다.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조선총독부가 후원한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였다. 1943년 열린 제2회 대회에서 박영호 극본, 안영일 연출의 〈물새〉에 출연하여 이 연극에 함께 출연한 황철과 함께 연기상을 받았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 분야에 선정되었다. 박영신은 연극 분야에 선정된 유일한 여성이다.

2.2. 광복 후 월북과 북한에서의 활동

광복 후 좌익 계열에서 활동하다가 1947년월북했다. 1949년 황철 등과 함께 공로메달을 받았고, 1952년에는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중앙위원을 거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문화상까지 역임하는 등 문예행정 분야의 핵심 관료로 활동했다.

1965년 대한민국에 '북남공동 영화제작 및 연극경연대회'를 공식 제안했다. 한설야 몰락 이후 장관급인 문화상에 임명되는 등 남한 출신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비판받는 와중에도 살아남았으나, 이후 숙청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3. 평가

박영신은 뛰어난 연기력과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으나,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과 북한에서의 정치 활동으로 인해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3.1. 친일 행적 논란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박영신을 포함시켰다. 이는 박영신이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후원한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하는 등 친일 행적을 보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943년 열린 제2회 연극경연대회에서 박영호 극본, 안영일 연출의 〈물새〉에 출연하여 연기상을 받았다. 박영신은 연극 분야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된 유일한 여성이다.

3.2. 북한에서의 정치적 활동

1949년 황철 등과 함께 공로메달을 수여받았고, 1952년에는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거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중앙위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의 문화상까지 역임하는 등 문예행정 분야에서 핵심 관료로 일했다.

1965년에는 대한민국에 '북남공동 영화제작 및 연극경연대회'를 공식 제안한 바 있다. 한설야 몰락 이후 장관급인 문화상에 임명되는 등 남한 출신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비판받는 와중에서도 살아남았으나, 이후 숙청되었다는 소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