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희한
1. 개요
배희한은 190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7년 사망한 대한민국의 목수이다. 1923년 선린상고를 중퇴하고 일본인 목수 밑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했으며, 18세에 대조전 해체 현장에서 궁궐 대목수 최원식에게 전통 목수 수업을 받았다. 그는 삼청동 민영휘 집 사랑채 등을 지었으며, 해방 후에는 경복궁 하향정과 향원정을 수리했다. 1980년 전통 목공 장인으로 인정받아 1982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인이 되었으며, 그의 제자 고택영은 대목장으로 지정되었다.
| 이름 | 배희한 |
|---|---|
| 한자 표기 | 裵喜漢 |
| 로마자 표기 | Bae Huihan |
| 출생일 | 1907년 6월 19일 |
|---|---|
| 출생지 | 대한제국 한성부 |
| 사망일 | 1997년 11월 5일 (향년 90세) |
| 국적 | 대한제국 → 대한민국 |
| 직업 | 대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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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장 -
예수
예수는 기원후 1세기경 갈릴리에서 활동한 유대인으로, 기독교의 중심 인물이자 하느님의 아들로 여겨지며, 복음서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여 가르침을 전파하고 기적을 행했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부활했다고 전해진다. -
대목장 -
나자렛의 요셉
나자렛의 요셉은 기독교에서 예수의 양아버지로, 마태오 복음서와 루가 복음서에 등장하며 다윗의 후손이자 나자렛의 목수로 묘사되고,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를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여 가톨릭 교회, 성공회, 개신교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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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2. 생애
배희한은 1907년 6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09년생으로 기록되었다. 1923년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인 목수 오다 밑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했다. 1921년 조선총독부 철도국 목수로 일하기 시작했고, 대조전 해체 현장에서 최원식에게서 전통 목수 수업을 받았다. 삼청동의 민영휘 집 사랑채, 돈암장 등 고관대작들의 집을 많이 지었다.
해방 후 1959년 경복궁의 하향정과 향원정을 수리했고, 여러 사찰 건물들을 지었다. 1980년 국립민속박물관의 《목공특별연장전》을 통해 전통 목공 장인으로 인정받았고, 1982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1997년 11월 5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배희한은 스승이나 선배 대목장과 달리 투전을 하거나 술을 마시지 않았고, "죽은 나무 깎아 먹고 사는 사람에게 원래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고 한다.
2.1. 초기 생애 (1907-1923)
裵喜漢일본어은 1907년 6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호적에는 1909년생으로 기록되었다. 집안 형편은 여유로웠으나 목수일이 좋아 1923년 17세에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인 목수 오다 밑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하였다. 1921년 학업을 중단하기 전 이미 조선총독부 철도국 목수로서 일을 시작했으며, 18세 때 경복궁 대조전 해체 현장에서 궁궐 대목수였던 최원식으로부터 전통 목수 수업을 받았다. 이후 삼청동의 민영휘 집 사랑채를 짓는 등 고관대작들의 집을 많이 지었다.
2.2. 전통 목공 수업과 건축 활동 (1923-1945)
배희한은 1923년 17세에 선린상업고등학교(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인 목수 오다 밑에서 도제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전인 1921년 이미 조선총독부 철도국 목수로 일을 시작했으며, 18세 때 대조전 해체 현장에서 궁궐 대목수였던 최원식에게서 전통 목수 수업을 받았다. 이후 삼청동의 민영휘 집 사랑채를 짓는 등 고관대작들의 집을 많이 지었다. 1939년 31세 때 내시였던 송성진의 집인 돈암장을 지었다.
2.3. 해방 이후 활동과 문화재 보수 (1945-1997)
해방 후인 1959년 경복궁의 하향정과 향원정을 수리했고, 이후 많은 사찰 건물들을 지었다. 1980년 12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목공특별연장전》을 통해 전통 목공 장인으로 인정받았고, 1982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1997년 11월 5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배희한은 그의 스승이나 선배 대목장과 달리 투전도 하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지만,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그는 스스로 "죽은 나무 깎아 먹고 사는 사람에게 원래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2.4. 개인적 성향
배희한은 그의 스승이나 선배 대목장과 달리 투전(鬪牋)을 하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지만, 그리 큰돈을 벌지 못했다. 스스로는 "죽은 나무 깎아 먹고 사는 사람에게 원래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3. 작품
배희한은 조선 왕실의 마지막 대령목수였던 최원식의 문하였기 때문에 흔히 "마지막 조선 목수"라고 불린다. 화가 김병종은 배희한의 건축에 대해 소박하지만 단단하고 빈틈없다고 평가한다.
3.1. 주요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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