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민영휘는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의 문신이자 일제강점기 친일파이다. 1877년 문과에 급제하여 도승지, 평안도 관찰사, 강화도 유수 등을 역임하며 고위 관료로 활동했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청나라에 출병을 요청했으나, 오히려 일본군의 진출을 초래하여 유배되기도 했다. 이후 친러파 정권에서 복권되어 궁내부 특진관 등을 지냈으며, 1906년 사립학교 휘문의숙을 설립하고, 한일 병합 후에는 조선 귀족 자작에 임명되었다. 그는 권력형 부정축재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으며, 사후 친일 행위가 드러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어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휘문고등학교 - 김동영 (배우)
김동영은 2008년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로 데뷔하여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고 최근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 휘문고등학교 - 휘문고등보통학교 육상단
휘문고등보통학교 육상단은 일제강점기 1920년대에 활발히 활동하며 전국체육대회, 조선신궁경기 등 여러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학교의 명성을 드높인 육상팀이다. - 일제강점기의 금융인 - 장택상
장택상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임시정부 활동, 수도경찰청장, 초대 외무부 장관, 국무총리,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이승만 지지 후 야당 정치인으로 반독재 투쟁을 전개했다. - 일제강점기의 금융인 - 한상룡
이완용의 외조카이자 친일파 집안 출신인 한상룡은 한성은행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조선총독부의 지원하에 각종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며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한 인물이다. - 조선자작 - 윤덕영
윤덕영은 조선 말기 문신이자 대한제국 관료, 일제 강점기 조선귀족으로, 한일 병합 조약에 적극 가담하고 순종의 일본 천황 알현을 강요했으며 고종 독살 의혹을 받았고,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 조선자작 - 조민희 (조선귀족)
조민희는 조선 말 관료로 대한제국 시기 요직을 거쳐 한일 병합에 기여한 공으로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으나, 도박으로 파산하여 작위가 정지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민영휘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 | |
본명 | 민영준 |
한글 이름 | 민영휘 |
한자 이름 | 閔 泳徽 |
가타카나 이름 | 민・ヨンフィ |
로마자 이름 | Min Yeong-hwi |
귀족 정보 | |
출생일 | 1852년 5월 15일 |
출생지 | 조선 경기도 광주군 |
사망일 | 1935년 12월 30일 |
사망지 | 일제강점기 경성 관훈동 |
작위 | 자작 |
후임자 | 민형식 |
종교 | 유교(성리학) → 불교 |
아버지 | 민두호 |
어머니 | 청송 심씨 |
배우자 | 평산 신씨 |
2. 생애
민영휘는 민승호의 종제이자 고종의 어머니 쪽 재종 사촌이다. 1877년 과거 문과에 급제한 후, 1887년 종2품으로 승진하여 도승지, 평안도 관찰사, 최초의 주일 공사를 지냈다. 1889년에는 정2품으로 승진하여 강화도 유수, 형조·예조 판서, 협변(次席) 내무부사 등을 역임했다. 1890년 종1품으로 승진하여 이조 판서, 선혜청 당상, 독변(主席) 내무부사, 친군경리사 등을 역임했고, 1893년 정1품으로 승진하여 병조 판서, 의정부 좌찬성을 역임했다.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발발하자 청나라에 출병을 요청했으나, 이는 오히려 일본군의 진출을 초래했다. 김홍집 정권 하에서 전라도 영광 임자도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친러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복권되어 궁내부 특진관, 궁내부 장례원경에 취임했다. 민씨 일족의 굴지의 자산가였던 그는 1906년 사립학교인 휘문의숙을 설립했고, 1910년 한일 병합 후에는 조선 귀족으로 자작에 임명되었다.
2. 1. 척족 세력의 중심 인물
1877년(고종 14년) 별시(別試)에서 병과(丙科)로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동지경연사, 지돈령부사 등으로 승진하며 빠른 속도로 관직 경력을 쌓았다. 명성황후와 촌수가 멀었지만 여흥 민씨의 대표격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샀고, 임오군란 때 가옥이 파괴되기도 했다.민씨 척족의 중심인물로서 청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은 수구파의 우두머리였다. 1884년 갑신정변 때 청나라 군대를 이용하여 일본을 지지하는 개화 세력을 몰아냈으며, 위안스카이(원세개)와 결탁한 뒤 사대당 내각에서 모든 권력을 휘둘렀다. 1886년 참의 내무부사, 1887년 도승지를 역임하였고, 도승지로서 주차 일본 변리공사가 되어 일본에 다녀온 뒤 평안감사에 올랐다. 1889년 강화부 유수로 전직했다가 협판 내무부사에 오르고 이어 형조·예조·공조의 판서,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하였고, 1891년 경리사·이조 판서를 거쳐 연무공원판리(鍊武公院瓣理)를 역임했다. 이후 민씨 세력의 수장으로서 1893년에는 내무부 독판·통영사(統營使)·선혜아문 당상을 겸직하고 이듬해 친군경리사(親軍經理使)가 되었다.
1901년 5월 19일 궁내부 특진관으로 육군 부장(陸軍副將)에 임용되었다.
2. 2. 동학 농민 운동과 갑오경장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때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청나라 위안스카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음력 6월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에 올랐다.[1] 갑오경장 와중에 민씨 척족과 함께 실각하여 탐관오리로 논죄되어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荏子島)로 유배되었다. 이후 평양으로 잠행하여 벽동(碧潼)의 청나라 포대에 잡혔다가 청나라로 도망갔다.[1] 이듬해인 1895년 대사령(大赦令)으로 흥선대원군 측의 이준용과 교환되어 귀국하였다.[1]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발발하자, 청나라에 출병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일본군의 진출을 초래하게 되었고, 김홍집 정권 하에서 전라도 영광 임자도로 유배되었다.[1] 이듬해 친러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복권되어 궁내부 특진관, 궁내부 장례원경에 취임했다.[1]
2. 3. 대한제국과 한일 병합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발발하자, 청나라에 출병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일본군의 진출을 초래하게 되었고, 김홍집 정권 하에서 전라도 영광 임자도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친러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복권되어 궁내부 특진관, 궁내부 장례원경에 취임했다. 민씨 일족의 굴지의 자산가이며, 1906년에는 사립학교인 휘문의숙을 설립했고, 1910년 한일 병합 후에는 조선 귀족으로 자작에 임명되었다.2. 4. 축재와 비판
민영휘는 경제에 밝아 쉽게 갑부가 되었다. 관직에 있을 때 수탈한 재물을 이후에 잘 불려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갑부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귀족 출신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대자본가로 변신에 성공한 경우로, '권력형 부정축재'로 분류된다.[2]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발발하자 청나라에 출병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일본군의 진출을 초래하게 되었고, 김홍집 정권 하에서 전라도 영광 임자도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친러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복권되어 궁내부 특진관, 궁내부 장례원경에 취임했다. 민씨 일족의 굴지의 자산가이며, 1906년 사립학교인 휘문의숙을 설립했고, 1910년 한일 병합 후에는 조선 귀족으로 자작에 임명되었다.
3. 사후 평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2007년 5월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민영휘의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기로 결정[3] 했고, 11월 22일 제3차 재산환수 대상자를 선정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시행 이후 제3자에게 처분한 민영휘의 재산까지 국가에 귀속시킨다는 결정을 내렸다.[4] 민영휘의 후손들은 이 결정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했다.[5]
4.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비고 |
---|---|---|
8대조 | 민광훈(閔光勳, 1595~1659) | 1616년 진사, 1628년 문과. 강원도관찰사. |
8대조모 | 연안이씨(延安李氏) | 연원부원군 이광정(李光庭, 1552~1629)의 딸 |
7대조 | 민시중(閔蓍重, 1625~1677) | 1650년 생원, 1664년 문과,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민정중(閔鼎重)과 민유중(閔維重)의 형. |
7대조모 | 풍산홍씨(豊山洪氏) | 이천부사(利川府使) 홍탁(洪𩆸, 1597~?)의 딸 |
6대조 | 민진로(閔鎭魯, 1662~1684) | |
6대조모 | 함평이씨(咸平李氏, 1660~1717) | 치암(耻庵) 이지렴(李之濂, 1628~1691)의 딸 |
5대조 | 민흥수(閔興洙, 1685~1751) | 돈녕부판관(敦寧府判官) |
5대조모 | 연안김씨(延安金氏) | 평산현감(平山縣監) 김지(金潪, 1643~?)의 딸 |
고조 | 민백인(閔百寅, 1722~?) | 1750년 생원. 배천군수(白川郡守), 사헌부첨정(司憲府僉正) |
증조부 | 민정혁(閔楨爀) | 이조참판에 증직. |
생증조부 | 민단현(閔端顯) | 이조판서에 증직.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처조부 |
조부 | 민치서(閔致敍, 1786~1844) | 안의현감(安義縣監). 의정부좌찬성에 증직 |
조모 | 죽산안씨(竹山安氏[舊]) | 1809년 생원 안후원(安厚遠, 1756~?)의 딸 |
생조부 | 민치우(閔致友, 1803~?) | 공조참의(工曹參議), 의정부좌찬성에 증직. |
생조모 | 통덕랑 유한건(兪漢建)의 딸 | |
아버지 | 민두호(閔斗鎬, 1829∼1902) | 내무독판, 춘천유수(春川留守). 영의정에 추증. 민쇠갈구리[閔鐵鉤]로 불림. |
어머니 | 증 정경부인 청송심씨(贈 貞敬夫人 靑松沈氏) | 심우영(沈愚永)의 딸, 효종의 부마 청평도위 심익현(靑平都尉 沈益顯)의 5대손, 영의정 심지원(沈之源)의 6대손 |
부인 | 평산신씨(平山申氏, ?~1915) | ‘대방(大房)마마’로 불림. |
장녀 | 민윤식(閔潤植) | 연안 이씨 이유익(李裕翼)과 결혼 후 이혼 |
외손자 | 이홍재(李弘宰) | |
외증손자녀 | 이전완·이진승·이문승·이정완·이규승·이사영 | |
양자(적자) | 민형식(閔衡植, 1875~1947) | 1888년 진사, 1891년 문과. 학부협판. 일본 귀족(자작). 중추원 참의. 생부는 금산군수(金山郡守)를 지낸 민영집(閔泳集). |
손자 | 민병주(閔丙疇) | |
측실 | 김기현(金箕賢, ?~1926) | |
측실 | 중국인 나씨 | |
서녀 | 민병옥(閔丙玉) | |
서녀 | 민병완(閔丙琓) | |
측실 | ‘평양(平壤)마마’로 불림 | |
측실 | ‘연당(淵堂)마마‘로 불림 | |
다섯번째 측실 | 안유풍(安遺豊) | 순흥안씨. 풍문여자고등학교 설립자. ‘해주(海州)마마‘로 불림. |
차남(서자) | 민대식(閔大植, 1882~?) | 동일은행(東一銀行) 두취. 한일은행 두취(은행장) |
손자 | 민병수(閔丙壽) | |
증손자 | 민덕기(閔德基, 1915~1980) | 풍문학원 이사장. |
고손자 | 민경목(閔庚穆) | |
증손자 | 민헌기(閔獻基, 1928~2021) | 서울대 의대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주임교수, 대한내과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원로회원 |
증손자부 | 이운경(1931~) | 이운경내과의원 원장, 이병도(李丙燾, 1896~1989)의 둘째딸 |
삼남(서자) | 민천식(閔天植, ?~1915) | |
손자(양자) | 민병도(閔丙燾, 1916~2006) | 조선구락부(朝鮮俱樂部)를 창설. 제일은행, 한국은행 총재. 한양C.C. 사장. 남이섬 설립자. 생부는 민대식으로 둘째아들 |
증손자 | 민웅기(閔雄基) | 남이섬 회장 |
고손자 | 민경현(閔庚玄) | 풍문여자고등학교 이사장 |
증손녀 | 민지 | |
사남(서자) | 민규식(閔圭植, 1888~납북) |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졸업. 동일은행 대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
증손자 | 민인기(閔寅基) | 휘문고등학교 이사장 |
본생가 숙부 | 민장호(閔璋鎬) | 이조참판에 증직 |
본생가 사촌형 | 민영주(閔泳柱, 1846~1920) | 1880년 진사, 1887년 문과. 형조참판. |
본생가 조카 | 민경식(閔景植, 1871~?) | 1891년 진사, 동년 문과. 궁내부협판. |
참조
[1]
웹인용
민영휘(閔泳徽) 신도비
http://archive.ccmun[...]
2019-08-14
[2]
뉴스
"매국노 이완용은 `조선의 현금왕'"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8-07-12
[3]
뉴스
재산 환수되는 친일파 9인은 누구? - 권중현·이완용 등 을사오적 중 일부 포함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7-05-02
[4]
뉴스
왕족 이해승 등 친일파 재산 410억 국가귀속 - 이해승ㆍ이지용ㆍ유정수ㆍ고희경ㆍ민영휘ㆍ민병석ㆍ병준ㆍ한창수 등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07-11-22
[5]
뉴스
친일파 후손, 재산환수 불복 소송
https://web.archive.[...]
연합뉴스
2007-11-27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이완용 차남 땅’ 있는 충북 진천군, 지자체 첫 ‘친일재산 환수’ 나선다
진천군, 이완용·민영휘 아들 등 ‘친일파 재산 환수’ 시동
충북 진천군,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친일재산 환수 나선다
친일 민영휘 일가 재산에서 시민 품으로…‘상당산성 껴안기’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