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두스 (동프랑크)
1. 개요
베르나르두스는 860년경 동프랑크 왕국의 왕 카를 3세의 서자로 태어났다. 885년 아버지에 의해 정식 후계자로 선포되려 했으나 주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후 로타링기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나, 카를 3세가 폐위된 후 아르눌프에 의해 알레만니아 공작에 임명되었다. 890년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이탈리아로 도주했다가, 891년 혹은 892년 알레만니로 돌아와 라이티아 백작 루돌프에게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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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롤루스 제국의 귀족 -
베고네
베고네는 게르하르투스 1세의 아들이자 란트라드 1세의 형제이며, 알파이스와 결혼하여 리우트하르트 2세 등을 낳았고 서프랑크 왕국 및 신성 로마 제국과 연관된 인물이다. -
카롤루스 제국의 귀족 -
로베르 르 포르
9세기 서프랑크 왕국의 유력 귀족이었던 로베르 르 포르는 앙주 백작과 투르의 생 마르탱 수도원장을 지냈으며, 바이킹과 브르타뉴인의 침략을 막는 데 공헌하고 카페 왕조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브리사르트 전투에서 전사했다. -
892년 사망 -
조덕인
조덕인은 당나라 말기에 활약하며 신주자사, 산남동도 유후 등을 역임하고 형남을 공격하여 절도사를 살해했으나 당나라에 투항하여 충의군 절도사가 되었으며, 진종권 사후 중서령과 회안왕에 봉해졌다가 892년에 사망했다. -
892년 사망 -
아마드 이븐 야햐 알발라두리
아마드 이븐 야햐 알발라두리는 9세기 아바스 왕조 시대 페르시아 출신 역사가이자 지리학자로, 아랍인들의 정복 활동과 영토 역사를 다룬 《푸투흐 알불단》 등의 저서를 남겼다. -
동프랑크인의 왕 -
루도비쿠스 2세 게르마니쿠스
루도비쿠스 2세 게르마니쿠스는 카롤링거 왕조 출신으로 동프랑크 왕국을 건설하고 바이에른을 통치했으며, 형제들과의 분쟁과 서프랑크 왕국과의 갈등 속에서 동프랑크 왕국의 기반을 다졌다. -
동프랑크인의 왕 -
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
샤를마뉴의 아들이자 카롤링거 왕조의 황제인 루도비쿠스 1세 피우스는 '경건왕'이라는 별칭을 가졌으나, 정치적 무능과 상속 분쟁으로 인해 제국 분열을 초래했다.
2. 생애
베른하르트는 860년경 동프랑크 왕국 알레만니아의 왕 카를 3세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생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출생년도는 정확하지 않아 860년, 870년, 876년경 등으로 추정된다.
885년 봄, 카를 3세는 베른하르트를 정식 계승자로 선포하려 했으나 주교, 대주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그해 여름 부왕의 공식 후계자로 임명되었지만 가톨릭 주교들은 그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887년 5월 로타링기아 총독에 임명되었다.
887년 11월 아버지 카를 3세가 아르눌프의 쿠데타로 폐위되고, 888년 1월 사망하자 베른하르트는 알레만니아 공작에 임명되었으나 일부 귀족들의 반란에 가담하였다.
890년 반란을 기도했다가 실패하고 이탈리아로 탈출하였다. 891년 혹은 892년 겨울 알레만니로 돌아왔다가 루돌프에게 살해되었다.
2.1. 생애 초반
베른하르트는 860년경 동프랑크 왕국 알레만니아의 왕인 뚱보왕 카를 3세의 사생아로 태어났으며, 그의 생모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출생년대는 정확하지 않아 860년 혹은 870년, 876년경에 태어났다고 한다.
아버지 카를 3세는 황후인 슈바벤의 리첼다(Richardis)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하자 885년 봄, 서자인 그를 자신의 정식 계승자로 선포하려 했다. 그러나 각지의 주교, 대주교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카를 3세는 곧 교황 하드리아노 3세를 보름스로 초대하였고, 교황의 축성을 받게 한 뒤 그를 로트링겐의 왕으로 봉할 계획을 세웠다. 그해 7월 하드리아노 3세 교황은 알프스산맥을 넘다가 10월 포강에서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주교들은 그가 교황을 죽였다고 의심하게 됐고, 카를 3세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베른하르트를 정식 후계자로 선포하였다.
885년 여름에 부왕의 공식 후계자로 임명되었지만 가톨릭 주교들은 그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비만왕 카를은 그를 로타링기아의 왕으로 삼으려 했다.
2.2. 생애 후반
886년 초 부왕 카를 3세는 적자를 얻는 것을 포기하고, 베른하르트를 적법한 왕위계승자로 승인받기 위해 스테파노 5세를 독일 바이브링엔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스테파노 5세는 카를 3세가 아들 베른하르트의 승인을 요구하려는 것을 간파하고 참석을 취소하였다. 887년 5월 베른하르트는 로타링기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887년 11월 아버지 카를 3세가 아르눌프의 쿠데타로 폐위당했다. 888년 1월 아버지 뚱보왕 카를 3세가 사망하자, 베른하르트는 아르눌프에 의해 알레만니아의 공작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는 알레만니아 지방의 일부 귀족들의 반란에 가담하였다.
890년 아르눌프가 스테파노 5세를 만나러 갈 때 베른하르트는 반란을 기도, 라인하우(Linzgau)와 아르가흐(Argengau)의 백작 울리히, 생 갈 대주교 베른하르트 등이 지원하였으나 실패하고 진압되었다. 베른하르트는 라이티아를 통해 이탈리아로 탈출하였다. 891년 혹은 892년 겨울 알레만니로 돌아왔다가, 라이티아(Rhaetia) 백작 루돌프에 의해 살해되었다.
3. 사후
베른하르트의 매장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암살은 풀다 연대기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아날레스 알라마니키(Annales Alammannici)와 아날레스 라우바켄시스(Annales Laubacenses) 등에는 루돌프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이 간략하게 언급되었다. 루돌프 백작이 누구였는지,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는가도 알려져 있지 않다.
4. 가족 관계
* 아버지 카를 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