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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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총독은 역사적으로 특정 지역이나 식민지를 통치하는 직책을 의미하며, 다양한 국가와 시대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다. 영국 제국에서는 자치권을 얻은 식민지의 군주 대표를 지칭했으며, 이후 영연방 왕국에서 군주를 대신하여 헌법적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을 의미하게 되었다. 또한, 일본 제국, 러시아 제국, 청나라 등 다양한 국가에서도 총독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그 역할과 권한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랐다. 현재는 영연방 왕국과 이란 등에서 총독이라는 직책이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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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 | |
---|---|
지도 정보 | |
직위 정보 | |
직책 유형 | 부왕 또는 식민지 사무소 |
로마자 표기법 | rektŏ p'ŭrobinshiae (라틴어) ek'sarkhŭ (영어) kŏbŏnŏ (영어) kŏbŏnŏdŭ (스페인어) kŏbŏnŏdŏr (포르투갈어) kŏbŏnŏdŭ (프랑스어) raikhŭkomis'ar (독일어) p'an (헝가리어) paisaroi (영어) kŏbŏnŏ-chenerŏ (영어) adelantado (스페인어) toge (이탈리아어) lordŭ riutenanto (영어) kŏbŏnŏ milt'erŭ tŭ pa'ri (프랑스어) |
다른 뜻 | 총독 (중국사) |
설명 | |
총독 | (총독(總督)은 특정 지역이나 식민지의 행정을 총괄하는 고위 관료를 가리킨다.) (총독은 일반적으로 군사적, 행정적 권한을 모두 가지며, 해당 지역에서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진다.) (역사적으로 식민지 시대에 많이 사용되었으며, 현대에도 일부 국가에서 지역 행정관의 명칭으로 사용된다.) (총독의 역할과 권한은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다르다.) (과거에는 군사적 통제 역할이 강조되었으나, 현대에는 행정 및 외교적 역할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총독은 보통 국가 원수를 대리하여 임명되며, 그 지역의 최고 책임자로서 활동한다.) |
관련 직위 | 부왕 총독 총독 총독 식민지 총독 군사 총독 대리 총독 영주 대리 |
역사적 명칭 | |
고대 로마 | 렉토르 프로빈시아에 (rector provinciae) |
비잔티움 제국 | 엑사르크 (Exarch) |
기타 | 아델란타도 (Adelantado) 도제 (Doge) 반 (bán) |
주요 식민지 총독 | |
뉴욕 | 뉴욕 총독 |
자메이카 | 자메이카 총독 |
마카오 | 마카오 총독 |
프랑스 | 파리 군사 총독 |
2. 역사
동로마 제국에서는 6세기 말에 '''총독''' 직(ἔξαρχος|엑사르코스el)이 설치되었다. 총독은 '방면대장'으로 번역되기도 한다.[14]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후에도 동로마 제국은 고대 후기에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며 영토 확장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재정복 기간 동안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달마티아, 스페인이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 영토 확장은 제국의 제한된 자원에 엄청난 부담이 되었고, 정복 사업에 소요된 군사비는 동로마 제국의 국가 재정 파탄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후계자인 동로마 황제들은 재정복된 영토를 포기하는 대신, 지역 변화에 끊임없이 대처하는 총독부를 설치했다.
로마는 곧 버려졌지만, 6세기 말 황제 모리스에 의해 라벤나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총독부가 설치되면서 동로마 제국은 영토 유지에 힘썼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전제군주제 강화에 따라 속주의 행정권과 군사권은 별개의 체계에 속해 있었고, 총독도 처음에는 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점차 전시 체제 강화를 위해 행정권도 장악하게 되었다. 군사 사령관에게 행정권까지 부여하여 권한을 집중시키는 경향은 후대의 테마 제도(군관구 제도)로 이어진다. 총독은 황제의 대리인일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대리인 역할도 수행했다. 카르타고 총독부는 7세기에 우마이야 칼리파국에 의해, 라벤나 총독부는 8세기에 롬바르드 왕국에 의해 함락되어 동로마 제국에서 떨어져 나갔다.
근대 시대에 여러 식민 제국들이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총독 제도를 활용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대영 제국과 영연방 등이 그러하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어 조선 총독이 통치하였다.[4]
2. 1. 고대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에서는 6세기 말에 '''총독''' 직(ἔξαρχος|엑살코스el)이 설치되었다. 총독은 「'''방면대장'''」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후에도 동로마 제국은 고대 후기에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며 영토 확장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재정복 기간 동안 북아프리카·이탈리아·달마티아·스페인이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 영토 확장은 제국의 제한된 자원에 엄청난 부담이 되었고, 정복 사업에 소요된 군사비는 동로마 제국의 국가 재정 파탄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후계자인 동로마 황제들은 재정복된 영토를 포기하는 대신, 지역 변화에 끊임없이 대처하는 '''총독부'''를 설치했다.
로마는 곧 버려졌지만, 6세기 말 황제 모리스에 의해 라벤나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총독부가 설치되면서 동로마 제국은 영토 유지에 힘썼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전제군주제 강화에 따라 속주의 행정권과 군사권은 별개의 체계에 속해 있었고, 총독도 처음에는 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점차 전시 체제 강화를 위해 행정권도 장악하게 되었다. 군사 사령관에게 행정권까지 부여하여 권한을 집중시키는 경향은 후대의 테마 제도(군관구 제도)로 이어진다. 총독은 황제의 대리인일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대리인 역할도 수행했다. 카르타고 총독부는 7세기에 우마이야 칼리파국에 의해, 라벤나 총독부는 8세기에 롬바르드 왕국에 의해 함락되어 동로마 제국에서 떨어져 나갔다.
2. 2. 동로마 제국
ἔξαρχος|엑살코스el 직은 6세기 말 동로마 제국에서 설치되었다. 총독은 '방면대장'으로 번역되기도 한다.[14]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후에도 동로마 제국은 고대 후기에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며 영토 확장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재정복 기간 동안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달마티아, 스페인이 동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 영토 확장은 제국의 제한된 자원에 엄청난 부담이 되었고, 정복 사업에 소요된 군사비는 동로마 제국의 국가 재정 파탄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후계자인 동로마 황제들은 재정복된 영토를 포기하고 부담을 덜어주는 방책을 채택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위에 따라, 지역 변화에 끊임없이 대처하는 총독부가 설치되게 된다.
로마는 곧 버려졌지만, 6세기 말 황제 모리스에 의해 라벤나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에 총독부가 설치되면서 동로마 제국은 영토 유지에 힘썼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전제군주제 강화에 따라 속주의 행정권과 군사권은 별개의 체계에 속해 있었고, 총독도 처음에는 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점차 전시 체제 강화를 위해 행정권도 장악하게 되었다. 군사 사령관에게 행정권까지 부여하여 권한을 집중시키는 경향은 후대의 테마 제도(군관구 제도)로 이어진다. 총독은 황제의 대리인일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대리인 역할도 수행했다. 카르타고 총독부는 7세기에 우마이야 칼리파국에 의해, 라벤나 총독부는 8세기에 롬바르드 왕국에 의해 함락되어 동로마 제국에서 떨어져 나갔다.
2. 3. 근대 식민 제국
근대 시대에 여러 식민 제국들이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총독 제도를 활용했다."총독"이라는 용어는 영국 제국 내에서 자치권을 얻은 영국 식민지에서 유래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연방과 같이 연방 식민지에서만 사용되었다. 1907년에 도미니언 지위를 부여받은 뉴질랜드는 1917년 6월 28일 리버풀 제2대 백작 아서 폴잠브가 첫 번째 뉴질랜드 총독으로 임명될 때까지 총독을 두지 않았다.[4]
1920년대까지 총독들은 영국 정부의 자문에 따라 임명된 영국 국민이었으며, 군주와 영국 정부를 대표했다. 이들은 명목상 군주의 특권을 행사하고, 행정권도 가지고 있었다. 총독은 식민지 장관으로부터 왕실 재가의 사용 또는 거부와 같은 지시를 받을 수 있었고, 실제로 특권과 행정권을 사용한 사례가 많았다. 군주 또는 제국 정부는 총독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었지만, 거리 때문에 번거로웠다.[4]
총독은 일반적으로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었으며, 군대 통제권 때문에 민간 임명만큼이나 군사적 임명이기도 했다. 총독들은 독특한 군복을 착용할 자격이 있었고, 소장급 이상은 군복을 착용할 수 있었다.[4]

1950년대 이후, "총독"이라는 명칭은 영국이 아닌 독립적인 영연방 왕국의 군주 대표에게 주어졌다. 이들 국가에서 총독은 군주의 대표로서 국가 원수의 의례적 및 헌법적 기능을 수행한다.[4]
현재 총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또 다른 국가는 이란이다. 이란에서는 지방 당국을 내무부 장관이 임명하는 총독(페르시아어: استاندار ''ostāndār'')이 이끈다.[4]
이 외에도, 스페인령 필리핀 총독(1565년 - 1898년), 마카오 총독(1616년 - 1999년), 브라질 총독 등이 있었다. 벨기에령 콩고와 르완다-우룬디에도 총독이 있었다.
2. 3. 1. 스페인
1564년 11월 21일부터 스페인 동인도는 총독을 두었는데, 이는 뉴스페인 부왕(멕시코 소재)의 지휘를 받았다.[1] 1821년 멕시코 독립 전쟁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총독은 스페인에 직접 보고하게 되었다.[1]2. 3. 2. 포르투갈
포르투갈어로는 'governador-geral'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다. 이 칭호는 주요 식민지 총독에게만 사용되었으며, 여러 하급 총독을 관할하에 두고 있음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식민지에서는 주로 'governador'(총독) 또는 이전에는 카피탕-모르(대위장)와 같은 하위 칭호가 사용되었다.포르투갈령 인도(수도 고아)에서는 주로 'vice-rei'(총독)로 칭호가 반복적으로 변경되었다. 총독 칭호는 일반적으로 포르투갈 왕족에게만 부여되었고, 나머지 총독들은 'governador-general'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아프리카에서는 1837년부터 포르투갈이 해외 주인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다스릴 총독을 임명했다. 한동안 이들 영토가 단일 주로 통합되었을 때 카보베르데와 기니를 다스릴 총독도 임명되었다. 1921년부터 1930년 사이에 앙골라와 모잠비크 총독 중 일부에게 추가 권한이 부여되었고, 그들의 칭호는 완전히 'Alto-comissário e governador-geral'(고등판무관 겸 총독)로 변경되었다.
2. 3. 3. 네덜란드
1610년부터 1942년까지 네덜란드는 현재 인도네시아인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통치하기 위해 총독(gouverneur-generaal)을 임명했다. 1942년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항복과 1949년 네덜란드에 의한 인도네시아 식민 통치의 공식적인 종식 사이에는 총독이 임명되지 않았다.[1]카리브해에서는 여러 다른 직함이 사용되었는데, 쿠라카오는 1816년부터 1820년까지 세 명의 총독을 두었다.[1]
재임 기간 | 이름 |
---|---|
1816년–1819년 | 알베르트 키케르트(Albert Kikkert) |
1819년–1820년 | 페트루스 베르나르두스 판 스타르켄보르흐(Petrus Bernardus van Starkenborgh) |
1820년 | 이자크 요하네스 라멜만 엘세비어(Isaäk Johannes Rammelman Elsevier) |
16세기~18세기의 네덜란드 연합 공화국(네덜란드)에서는 각 주의 의회 또는 연방 의회에 의해, 주의 수장으로서 총독(Stadtholder;「총독」 또는 「통령」으로도 번역됨)이 임명되었다. 사실상 군주에 가까운 지위였으며, 후대 네덜란드 왕가인 오라녜-나소 왕가(Oranje-Nassau)의 일족이 거의 세습하였다.[1]
2. 3. 4. 프랑스
프랑스어에서 “총독(Gouverneur général)”은 다음 식민지에서 사용된 직책이다.- 프랑스 인도차이나: 1887년부터 1945년까지 총독을 임명하여 프랑스 인도차이나(오늘날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를 통치했다. 1907년 3월 22일부터 태평양의 고등판무관 직책은 누벨칼레도니 총독이 맡았으며, 이는 누벨칼레도니, 오세아니아의 다른 프랑스 정착지, 다른 프랑스 인도차이나 총독, 뉴헤브리디스의 거주위원들 그리고 왈리스 푸투나의 거주자들을 조정하는 데 사용되었다.
- 뉴프랑스: 1663년부터 1760년까지 뉴프랑스의 부왕직이었으며, 마지막 프랑스 부왕직이었다. 뉴프랑스 함락 후 영국의 퀘벡 주 주지사 직책으로 대체되었다. 몬트리올과 트와리비에르 지역에는 자체 총독이 있었지만, 뉴프랑스 총독과 퀘벡 지역 총독은 동일 인물이었다.
- 프랑스령 인도: 1699년부터 1947년까지 프랑스는 프랑스령 인도 (폰디셰리 포함)를 관리하기 위해 총독 겸 사령관(Gouverneur de Pondichéry et commandant général des établissements français aux Indes orientales)을 임명했다.
- 마스카렌 제도: (1767년 7월 14일까지 특허받은 동인도회사의 통제하에) 1735년 6월 4일부터 (총독을 계승하여) 모리셔스가 분할된 이후 (레위니옹과 세이셸은 하위 직책인 사령관 또는 총독이 있었다) 1803년 9월 25일까지 재임했다.
- 아이티: 1714년 1월 – 1803년 12월 31일; 마지막 재임자 장자크 데살랭은 1804년 1월 1일 독립 후 잠시 제목을 유지하다가 자칭 자크 1세 황제를 선포했다.
- 프랑스 서아프리카: 1895년 6월 16일 프랑스 서아프리카(AOF) 설립 이후 1957년 4월 4일까지.
- 마다가스카르
- 프랑스 적도 아프리카: 1908년 6월 28일부터 1957년 4월 4일까지. 여러 기간 동안 그는 구성 식민지인 콩고 브라자빌의 총독직을 겸임하기도 했다.
나폴레옹 1세 시대에는 유럽에서 프랑스 총독들이 다음 지역에 임명되었다.
- 브란덴부르크: (다른 여러 지역은 "단순한" 총독이 있었다), 프랑스 점령 기간인 1806년 10월 27일부터 1808년 12월 10일 사이에 두 명의 재임자가 있었다.
- 쿠를란트 주: 프랑스 점령 (1812년 8월 1일부터, 쿠를란트와 세미갈리아 공국과 필텐 지역은 명목상으로 1812년 10월 8일 – 1812년 12월 20일까지 프랑스-작센 공동 보호령으로 재건되었다): 자크 다비드 마르탱 드 캄프레돈 남작 (1761–1837)
- 파르마와 피아첸차: 점령 (총재 이후) 1804년 2월 15일 – 1808년 7월 23일, 나중에 "타로의 현령"이 다스리는 ''주(département)''로 합병되었다.
- 피옴비노 공국: 1806년 5월 – 1811년: 아돌프 보베(사망 1811년)
- 토스카나: 합병, 현령들은 아르노, 지중해 그리고 옴브로네를 관할했으며, 두 명의 재임자가 있었다.
- * 1808년 5월 – 1809년 3월 3일 자크 프랑수아 드 부세이 드 메누 남작 (1750–1810)
- * 1809년 3월 3일 – 1814년 2월 1일 엘리사 바치오키 보나파르트 (토스카나 대공비의 예우) (1777–1820)
- 일리리아 지방: (오늘날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그리고 인접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일부를 포함), 프랑스 제국의 일부로 합병, 1809년 10월 14일 – 1813년 8월
2. 4. 대영 제국과 영연방
영국 제국은 과거 광대한 식민지를 통치했으며, 이 식민지들 중 일부는 자치령(Dominion)으로 독립적인 지위를 얻었다. 이후 이들 자치령은 영연방 왕국으로 발전하여, 현재는 독립 국가로서 영국 군주를 국가 원수로 모시고 있다. 이러한 국가들에서 군주를 대표하는 직책이 바로 총독이다.1920년대까지 총독은 영국 정부에 의해 임명되는 영국인이었으며, 군주를 대표하는 동시에 영국 정부의 대리인 역할도 수행했다. 이들은 명목상 군주의 특권을 행사하고 행정권도 보유했으며, 식민지 장관의 지시에 따라 법률에 대한 왕실 재가를 행사하기도 했다.[5] 그러나 1926년 제국 회의와 발포 선언(Balfour Declaration)을 거치면서 총독의 역할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각 자치령이 독립적인 지위를 강화하면서 군주는 각국의 군주로 여겨지게 되었고, 총독은 더 이상 영국 정부에 복종하지 않고 해당 국가 군주만을 대표하게 되었다.
1926년 제국 회의 보고서는 "독립국의 총독은 헌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모든 중요한 측면에서 독립국 공공 행정에 대한 관계에서 영국 국왕 폐하가 영국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동일한 지위를 차지하며, 영국 정부 또는 그 정부의 어떤 부처의 대표자나 대리인이 아니다"라고 명시했다.[5] 이러한 변화는 1931년 웨스트민스터 법령으로 법제화되었고, 영국과의 정부 관계는 각국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이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영국 제국 내에서 총독은 군주에게 책임을 지는 자치 독립국의 대표자라는 정치적 현실이 명확해졌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은 영국의 통제를 받지 않았고, 이들 국가의 군주는 각국의 장관들의 조언에 따라서만 행동했다.
오늘날 영연방 왕국에서 총독은 헌법적으로 군주를 대신하며, 자국의 헌법에 따라 군주의 비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총독은 여전히 군주가 임명하며, 자국 군주에게 충성 서약을 한다. 행정권은 군주에게 위임되지만, 대부분 총독이 행사한다.
총독은 외교 행사에서 해당 왕국의 국왕이나 여왕에게 건배를 하고, 총독에 대한 언급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된다.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총독은 헌법 관례와 총리의 조언에 따라 행동한다.[6] 그러나 1926년 캐나다 총독이 총리의 의회 해산 요청을 거부하거나, 1975년 오스트레일리아 총독이 총리를 해임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도 있었다.[7]
총독은 정치 현장에서 중립적인 심판 역할을 하며, 헌법 준수를 보장하는 책임을 진다. 일부 왕국에서는 군주가 총독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지만, 최근에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총독과 주지사가 국왕의 "대표자"로 정의되지만, 총독이 거의 모든 국가적 왕실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국가 원수로 언급되기도 한다.[8] 캐나다에서는 국가 원수가 누구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총독은 일반적으로 공직 경력이 뛰어난 인물이며, 은퇴한 정치인, 판사, 군 지휘관 등이 임명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학자, 성직자, 자선가 등이 임명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총독은 독특한 군복을 착용했지만, 현재는 대부분 폐지되었다. 총독의 공식 관저는 "정부 청사(Government House)"라고 불린다.
대부분의 영연방 왕국에서 총독의 깃발은 파란색 바탕에 왕실 문장(왕관 위에 서 있는 사자)과 관할 지역 이름이 적힌 두루마리가 있는 표준 패턴이다. 그러나 캐나다, 솔로몬 제도, 피지,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에서는 다른 디자인을 사용한다.
총독은 "그/그녀 각하(Excellency)"라는 칭호를 받으며, 이는 배우자에게도 적용된다.
1920년대 후반부터 총독 임명에 대한 관례가 변화하여, 해당 국가 국민이 총독으로 임명되고 영국 정부의 개입은 사라졌다. 각국의 총독은 해당 국가 총리의 자문에 따라 군주가 임명한다.
총독 임명 절차와 권한은 국가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호주 총독은 호주 대표자의 이름으로 발행된 왕실 위임장에 의해 임명되지만,[9] 벨리즈 총독은 법률에 대한 동의 또는 거부 권한을 가진다.[12]
각국은 총독의 사망, 사임, 무능력 시 총독 대행에 대한 헌법적 조항을 가지고 있다. 호주에서는 연방 행정관이, 바하마, 캐나다, 자메이카, 뉴질랜드에서는 수석 대법관이,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투발루에서는 의장이 대행한다.
다음은 현재 영연방 왕국의 총독 목록이다.
연방 왕국 | 직책 | 시작 시기 |
---|---|---|
앤티가 바부다 | 앤티가 바부다 총독 | 1981 |
오스트레일리아 | 오스트레일리아 총독 | 1901 |
바하마 | 바하마 총독 | 1973 |
벨리즈 | 벨리즈 총독 | 1981 |
캐나다 | 캐나다 총독 | 1867 |
그레나다 | 그레나다 총독 | 1974 |
자메이카 | 자메이카 총독 | 1962 |
뉴질랜드 | 뉴질랜드 총독 | 1917 |
파푸아뉴기니 | 파푸아뉴기니 총독 | 1975 |
세인트키츠 네비스 | 세인트키츠 네비스 총독 | 1983 |
세인트루시아 | 세인트루시아 총독 | 1979 |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총독 | 1979 |
솔로몬 제도 | 솔로몬 제도 총독 | 1978 |
투발루 | 투발루 총독 | 1978 |
다음은 과거 영연방 왕국의 총독 목록이다.
국가 | 존속 기간 | 비고 |
---|---|---|
아일랜드 자유국 | 1922년 ~ 1936년 | |
인도 | 1833년 ~ 1950년 | 1947년부터 1950년까지는 인도 연방 총독으로 존속. |
파키스탄 | 1947년 ~ 1956년 | |
남아프리카 연방 | 1910년 ~ 1961년 | |
실론 | 1948년 ~ 1972년 | |
트리니다드 토바고 | 1962년 ~ 1976년 | |
1970년 ~ 1987년 | ||
모리셔스 | 1968년 ~ 1992년 | |
바베이도스 | 1966년 ~ 2021년 | |
몰타 | 1964년 ~ 1974년 |
2. 4. 1. 영연방 왕국
1950년대 이후로, "총독"이라는 명칭은 영국이 아닌 독립적인 영연방 왕국의 군주 대표에게 주어졌다. 이러한 경우, 식민지 주지사의 이전 직책은 (때로는 동일인을 위해) 독립과 함께 총독이 되었으며, 그 직책의 성격은 이전의 식민 통치의 상징이 아니라 군주의 완전히 독립적인 헌법적 대표가 되었다. 이들 국가에서 총독은 군주의 대표로서 국가 원수의 의례적 및 헌법적 기능을 수행한다.1926년 발포 선언(Balfour Declaration) 발표 이후 제국 회의를 거치면서 총독의 역할과 책임은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독립국(1952년 '왕국'(realms)으로 개명됨; 영국 자체도 포함)의 독립 심화를 반영한 것이다. 군주가 각 영토의 군주로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각국의 국가적 사안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의 장관들의 조언만을 받게 되었고(단일 영국 군주가 모든 독립국을 통치하고 제국 의회의 조언만을 받는 것과는 달리), 총독 또한 단지 국가 군주를 직접적으로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으며 더 이상 영국 정부에 복종하지 않게 되었다. 1926년 제국 회의 결과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영국 연방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지위의 평등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독립국의 총독은 헌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모든 중요한 측면에서 독립국 공공 행정에 대한 관계에서 영국 국왕 폐하가 영국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동일한 지위를 차지하며, 영국 정부 또는 그 정부의 어떤 부처의 대표자나 대리인이 아니다."[5] 이러한 개념은 1931년 웨스트민스터 법령 제정과 함께 법률에 명문화되었고, 영국과의 정부 관계는 각국에 있는 영국 고등판무관의 손에 맡겨졌다.
즉, 영국 제국 내에서 총독이 군주에게 책임을 지는 자치 독립국의 정치적 현실이 분명해졌다. 영국의 독립국에 대한 간섭은 용납될 수 없었고, 독립 국가 지위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는 분명히 영국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이들 국가의 군주(찰스 3세(Charles III))는 법적으로 캐나다 국왕, 오스트레일리아 국왕, 뉴질랜드 국왕이며, 각국의 장관들의 조언에 따라서만 행동하며, 표면적으로는 영국 정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날, 이전의 영국 식민지였던 독립적인 연방 왕국에서 총독은 헌법적으로 군주를 대신하는 인물이며, 자국의 헌법 권한에 따라 군주의 비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총독은 여전히 군주가 임명하며, 자국 군주에게 충성 서약을 한다. 행정권 또한 군주에게 위임되지만, 그 대부분은 독립 왕국의 군주를 대신하여 총독만이 행사할 수 있다. 신임장 또는 소환장은 일부 왕국에서는 군주의 이름으로 수령하거나 발부되지만, 다른 왕국(예: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총독의 이름으로만 발부된다.
총독이 참석하는 외교 행사에서 방문 외교관이나 국가 원수는 총독이 아닌 해당 왕국의 "국왕" 또는 "여왕"에게 건배를 하고, 총독에 대한 언급은 있다 하더라도 후속 건배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며, 직책이 아닌 이름으로 총독에 대한 건배가 이루어진다(예: "스미스 여사", "총독 각하 스미스 여사"가 아님). 때때로 이름과 직책을 함께 사용하여 건배를 할 수도 있다(예: "스미스 총독").
드문 경우(예: 헌법 위기)를 제외하고, 총독은 일반적으로 헌법 관례에 따라 그리고 국가 총리(국가 정부의 수반)의 조언에 따라 행동한다.[6] 총독은 여전히 군주의 현지 대표이며, 역사적으로 수행했던 것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지만, 그 역할은 대부분 의례적인(또는 부분적으로 의례적인) 것이다. 1926년 캐나다 총독 뱅 백작이 총리 맥켄지 킹의 의회 해산 요청을 거부했을 때, 1953년과 1954년 파키스탄 총독 굴람 무하마드가 총리와 헌법 의회에 대해 헌법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그리고 1975년 오스트레일리아 총독 존 커 경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총독과 주지사가 국왕의 "대표자"로 정의되기 때문에 현 국왕이 일반적으로 국가 원수로 간주된다.[8] 그러나 총독이 거의 모든 국가적 왕실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총독은 정치 및 언론 논의에서 때때로 국가 원수로 언급되었다. 덜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군주, 총독, 또는 두 직책 중 어느 직책이 국가 원수로 간주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표명되었다.
총독은 일반적으로 뛰어난 공직 경력을 가진 인물이며, 종종 은퇴한 정치인, 판사 또는 군 지휘관이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저명한 학자, 성직자, 자선가 또는 뉴스 미디어 인물을 임명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총독의 공식 복장은 독특한 군복이었지만, 이 관행은 적절한 경우를 제외하고(그리고 일부 국가에서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남아프리카 연방에서는 남아프리카 연방 총독이 아프리카너(Afrikaner) 국민당 정부가 지명한 총독은 어떤 경우에도 군복을 입지 않았다. 대부분의 총독은 필요할 때 적절한 훈장을 착용한다.
총독의 공식 관저는 일반적으로 "정부 청사(Government House)"라고 불린다.
대부분의 연방 왕국에서 총독의 깃발은 파란색 바탕에 왕실 문장(왕관 위에 서 있는 사자)이 관할 지역의 이름이 적힌 두루마리 위에 있는 표준 패턴이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이것이 메이플 리프를 붙잡고 있는 왕관을 쓴 사자로 대체되었다. 솔로몬 제도에서는 두루마리가 두 개의 머리를 가진 프리깃 조류 모티브로 대체되었고, 피지에서는 전 총독의 깃발에 향유고래의 이빨이 특징으로 나타났다. 뉴질랜드에서는 2008년에 깃발이 파란색 바탕에 왕관 위에 뉴질랜드 국장의 방패로 대체되었다.
총독은 "그/그녀 각하(Excellency)"라는 칭호를 받는다. 이 칭호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배우자에게도 확대 적용된다.
1920년대까지 총독은 영국인이었으며 영국 정부의 자문에 따라 임명되었다.
1920년대 후반 연방 체제의 변화 이후, 1929년 호주 총리 제임스 스컬린은 자신의 선택(호주인 아이작 아이작스)이 영국 정부의 권고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총독 임명에 대한 군주의 자문을 직접 받을 수 있는 도미니언 총리의 권리를 확립했다. 연방 전역에서 총독은 해당 국가의 국민이 되고, 영국 정부의 개입 없이 해당 국가 정부의 자문에 따라 임명된다는 관례가 점차 확립되었다. 1952년부터 캐나다 총독, 1967년부터 뉴질랜드 총독이 그러하다. 1931년 이후 각 전 도미니언이 영국으로부터 헌법을 본국 귀속시킴에 따라 이 관례는 법으로 자리 잡았다. 1947년 본국 귀속 헌법으로 최초로 설립된 왕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설립되었을 때는 항상 법이었으며, 어떤 왕국의 정부도 총독 임명을 포함하여 다른 왕국에 관한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군주에게 자문할 수 없다. 군주는 각 왕국의 총리의 자문에 따라서만 개인 대표로 총독(캐나다에서는 ''총독'')을 임명한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 총독은 뉴질랜드 총리의 자문에 따라 뉴질랜드 국왕이 임명하고, 투발루 총독은 투발루 총리의 자문에 따라 투발루 국왕이 임명하며, 자메이카 총독은 자메이카 총리의 자문에 따라 자메이카 국왕이 임명한다. 파푸아뉴기니와 솔로몬 제도에서는 총리의 자문이 국가 의회의 투표 결과를 기반으로 한다.
총독 임명 절차는 모든 왕국에서 동일하지 않다. 예를 들어, 호주 총독은 임명될 때 호주 대표자와 호주 대표자의 이름으로 선포를 발표하고, 호주 대표자의 이름으로 발행된 왕실 위임장에 의해 임명되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한다.[9] 캐나다의 관행은 캐나다 국왕 대표 인장에 따라 발행된 총독 임명 선포에 캐나다군 총사령관으로 총독을 임명하는 군주의 위임장을 포함하는 것이다.[10][11] 또한 왕국 간에 총독의 권한도 다르다. 벨리즈 헌법은 총독에게 법률에 대한 동의 또는 동의 거부 권한을 부여하지만,[12] 파푸아뉴기니는 왕실의 동의가 전혀 필요하지 않으며, 의장이 의회에서 통과된 것으로 인증하면 법률이 시행된다.[13]
각국은 총독의 사망, 사임 또는 무능력의 경우 누가 총독을 대행할지에 대한 서로 다른 헌법적 조항을 가지고 있다.
- 호주에서는 연방 행정관이 임명되어, 국왕이 총리의 자문을 받아 총독의 영구적인 대체자에 대한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필요한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행정관은 일반적으로 가장 고위급의 주지사였다. 각 주지사는 일반적으로 휴면 위임장이라고 하는 것을 보유한다. 그러나 주지사가 연방 정부의 눈 밖에 나서 연방 정부가 해당 주지사의 휴면 위임장을 취소한 사례가 있었다. 가장 최근의 예는 1975년 퀸즐랜드 주지사였던 Sir 콜린 해너 경의 경우이다.
- 바하마, 캐나다, 자메이카, 뉴질랜드에서는 수석 대법관이다.
- 파푸아뉴기니, 솔로몬 제도, 투발루에서는 의장이다.
- 많은 국가에서는 총독을 대신하여 행동하는 ''총독 부관''이라는 특정 직책이 있지만, 종종 예를 들어 일시적인 무능력의 경우에만 그렇다.
연방 왕국 | 직책 | 시작 시기 |
---|---|---|
앤티가 바부다 | 앤티가 바부다 총독 | 1981 |
오스트레일리아 | 오스트레일리아 총독 | 1901 |
바하마 | 바하마 총독 | 1973 |
벨리즈 | 벨리즈 총독 | 1981 |
캐나다 | 캐나다 총독 | 1867 |
그레나다 | 그레나다 총독 | 1974 |
자메이카 | 자메이카 총독 | 1962 |
뉴질랜드 | 뉴질랜드 총독 | 1917 |
파푸아뉴기니 | 파푸아뉴기니 총독 | 1975 |
세인트키츠 네비스 | 세인트키츠 네비스 총독 | 1983 |
세인트루시아 | 세인트루시아 총독 | 1979 |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총독 | 1979 |
솔로몬 제도 | 솔로몬 제도 총독 | 1978 |
투발루 | 투발루 총독 | 1978 |
2. 4. 2. 과거 영연방 왕국
국가 | 존속 기간 | 비고 |
---|---|---|
아일랜드 자유국 | 1922년 ~ 1936년 | |
인도 | 1833년 ~ 1950년 | 1947년부터 1950년까지는 인도 연방 총독으로 존속. |
파키스탄 | 1947년 ~ 1956년 | |
남아프리카 연방 | 1910년 ~ 1961년 | |
실론 | 1948년 ~ 1972년 | |
트리니다드 토바고 | 1962년 ~ 1976년 | |
1970년 ~ 1987년 | ||
모리셔스 | 1968년 ~ 1992년 | |
바베이도스 | 1966년 ~ 2021년 | |
몰타 | 1964년 ~ 1974년 |
2. 5. 일본 제국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이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대만에는 타이완 총독부가 설치되어 타이완 총독이 통치하였다.[4]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이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어 조선 총독이 통치하였다.[4] 또한, 홍콩을 점령한 일본군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홍콩 점령지 총독부를 설치했다.2. 5. 1. 조선총독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총독이 있었다.[4]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총독부가 설치되었다.[4]2. 5. 2. 대만총독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이후부터 1945년까지 타이완 총독부가 설치되어 타이완 총독이 통치하였다.[4]2. 6. 기타 국가
- 청나라에서는 1644년부터 1911년까지 총독(總督, Zǒngdū중국어)이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성(省)에서 군사 및 민정을 총괄하는 최고 관리였다.
- 1185년부터 1868년까지 일본에서는 쇼군(征夷大将軍, sei-i tai-shōgun일본어)이 천황의 이름으로 통치했는데, 이는 총독과 동등한 지위였지만, 일반적인 총독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 일본 제국:
- * 1895년부터 1945년까지 대만은 일본의 대만총독(台湾総督, taiwan sōtoku일본어)이 통치했다.
- *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은 일본의 조선총독(朝鮮総督, chōsen sōtoku일본어)이 통치했다.
- 이란 이슬람 공화국:
- * 이란의 각 주(州)는 임명된 주지사(ostāndārfa)가 이끌고 있다.[4]
참조
[1]
웹사이트
The Role of the Governor-General
https://www.gg.gov.a[...]
2022-04-04
[2]
웹사이트
The Governor-General
https://gg.govt.nz/g[...]
2022-04-04
[3]
서적
Constitutional Conventions and the Headship of State: Australian Experience
Connor Court
[4]
뉴스
Ambassador: Paris for Further Cultural Cooperation with Iran
https://web.archive.[...]
Islamic Republic News Agency
2007-10-21
[5]
웹사이트
Canadian Independence
https://www.sfu.ca/~[...]
1990-01-01 # 날짜 정보가 연도만 있으므로 01-01로 설정
[6]
위키
Governor General of Australia
[7]
웹사이트
Letter from the Queen's Private Secretary to the Speaker
http://whitlamdismis[...]
2006-02-15
[8]
법률
Constitution, s 2; Australia Act 1986 (Cth and UK), s 7.
[9]
웹사이트
Proclamatrion, 28 March 2014
http://www.gg.gov.au[...]
2014-03-28 # 제목에서 날짜 추출
[10]
웹사이트
Proclamation, February 1995
https://laws.justice[...]
2006-03-22
[11]
웹사이트
Governor-General's Role
https://web.archive.[...]
2015-01-27
[12]
웹사이트
Belize's Constitution of 1981 with Amendments through 2011
https://www.constitu[...]
[13]
웹사이트
Papua New Guinea's Constitution of 1975 with Amendments through 2016
https://www.constitu[...]
[14]
서적
ビザンツ帝国史
白水社文庫クセジ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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