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콜마이어
1. 개요
베르너 콜마이어는 독일의 축구 선수로, 1951년과 1953년 카이저슬라우테른 소속으로 독일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와 결승전에서 치보르 졸탄의 슛을 막아내는 등 뛰어난 골키핑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서독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1954년 웸블리에서 스탠리 매슈스를 상대하며 공정한 플레이로 제프 헤어베어거 감독의 찬사를 받았다. 은퇴 후 알코올 의존증과 빈곤으로 고통받았으며,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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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슬라우테른 출신 -
마르쿠스 메르크
마르쿠스 메르크는 독일의 전 축구 심판으로, 분데스리가 최연소 주심 데뷔, 독일 올해의 심판상 6회 수상, UEFA 유로 2004 결승전 심판 등 화려한 경력을 가졌으나, 논란이 된 판정들도 있었으며, 은퇴 후에는 해설자, 강사, 치과의사, 자선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
카이저슬라우테른 출신 -
프리츠 발터
프리츠 발터는 독일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과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아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서독의 우승을 이끌며 독일 축구의 전설로 존경받고 있다. -
FC 08 홈부르크의 축구 선수 -
미로슬라프 클로제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폴란드 태생 독일 축구 선수 출신 감독으로, 독일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및 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2014년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현재 1. FC 뉘른베르크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
FC 08 홈부르크의 축구 선수 -
천성훈
천성훈은 FC 아우크스부르크 II, FC 08 훔부르크(임대), 인천 유나이티드 FC 등에서 활동한 축구 선수이다. -
라인란트팔츠주 출신 축구 선수 -
케빈 아크포구마
케빈 아크포구마는 독일과 나이지리아 이중 국적의 축구 선수로, 중앙 수비수로 뛰며 독일 분데스리가의 TSG 1899 호펜하임 소속이고, 독일 청소년 대표팀과 나이지리아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2013년 프리츠 발터 메달 U-18 부문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
라인란트팔츠주 출신 축구 선수 -
베르너 리브리히
베르너 리브리히는 독일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활약하며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과 1954년 FIFA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지만, 월드컵에서 푸슈카시 페렌츠에게 부상을 입힌 행위로 논란이 되었고, 은퇴 후에는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의 감독을 맡았다.
2. 경력
건장한 체격의 콜마이어는 골라인에서 공을 걷어내는 수비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1954년 월드컵 유고슬라비아전에서 여러 차례 몸을 날려 독일 골문으로 들어가는 공을 막아냈다. 결승전에서는 치보르 졸탄의 슛을 막아내기도 했다.
은퇴 후, 콜마이어는 이혼과 세 자식과의 연락 두절, 알코올 의존증과 빈곤에 시달렸다. 그는 기초 수급 복지로 연명하며 마인츠에서 신문 보도사의 방문 배달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향년 49세로 하인츠-몸바흐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2.1. 클럽 경력
콜마이어는 카이저슬라우테른 출신이다. 카이저슬라우테른 소속으로 1951년과 1953년에 독일 리그를 우승했다. 1957년까지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콜마이어는 카이저슬라우테른 출신으로, 1954년 FIFA 월드컵 스위스 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와 결승전에서 치보르 졸탄이 찬 공을 막아내는 등 뛰어난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 소속으로 독일 리그에서 1951년과 1953년에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54년 12월 1일, 웸블리에서 열린 서독과 잉글랜드 간 경기에서 스탠리 매슈스를 상대했을 때, 비록 그를 막아내는 데는 실패했지만 단 한 차례의 반칙도 없이 경기를 치르는 공정한 경기를 펼쳐 제프 헤어베어거 서독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1954년 FIFA 월드컵에서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동료인 프리츠 발터, 오트마어 발터, 베르너 리브리히, 호르스트 에켈과 함께 독일의 첫 우승에 기여했다. 1951년 서독 대표팀 선수로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데뷔했다.
3. 은퇴 이후
콜마이어는 1957년까지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의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은퇴 후, 이혼과 세 자녀와의 연락 두절, 알코올 의존증, 빈곤에 시달렸다. 기초 수급 복지로 연명하며 마인츠에서 신문 보도사의 방문 배달원으로 근무하다가, 향년 49세에 하인츠-몸바흐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콜마이어는 건장한 체격을 바탕으로 골문 바로 앞에서 공을 걷어내는 수비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1954년 FIFA 월드컵 유고슬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여러 차례 몸을 날려 독일 골문으로 향하는 슛을 막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1954년 FIFA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치보르 졸탄의 슛을 막아내기도 했다.
1954년 12월 1일, 웸블리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스탠리 매슈스를 상대했을 때, 콜마이어는 그를 막아내는 데 실패하고 완전히 밀렸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고 매슈스를 단 한 차례의 반칙도 없이 끊어냈다. 이러한 공정한 경기를 펼치는 태도와 수비적 신뢰성은 제프 헤르베르거 서독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