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네천
1. 개요
베르네천은 경기도 부천시를 흐르는 하천으로, 지명 유래에 대한 여러 설이 존재한다. 임진왜란 때의 전투로 인해 "피 비린내"가 났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향토 문헌의 오류에서 비롯된 낭설로 여겨진다. 1911년경의 문헌에는 "별인내"로 표기되어 '벼랑처럼 개울이 깊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베리내', '베르내' 등으로 변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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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시의 지리 -
중동신도시
중동신도시는 부천시에 위치하며 격자형 도로망과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구시가지와의 연계성을 고려한 신도시이다. -
부천시의 지리 -
굴포천
굴포천은 칠성약수터에서 한강까지 흐르는 하천으로, 과거에는 원통천 등으로 불렸으며 고려와 조선 시대에 운하 건설 시도가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수리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산업화 시대를 거쳐 일부 복개되었으나 2008년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다. -
대한민국의 지리에 관한 -
부산민주공원
부산민주공원은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공원 내에 위치하며 부마민주항쟁 20주년 기념으로 1999년에 개관한 공원으로,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부산광역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며, 부산광역시 조례에 따라 관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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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공원
한강공원은 서울과 경기도에 걸쳐 조성된 대규모 공원 시스템으로, 1982년부터 1986년까지의 한강종합개발계획을 통해 조성되었으며,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통해 문화, 예술, 레저 공간으로 발전하여 다양한 행사와 활동을 제공하며 생태계 보전에도 기여한다. -
경기도의 하천 -
한강
한강은 태백산맥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흘러가는 강으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져 한강 본류를 이루며, 총 514km의 길이를 가지며, 수운 교통로, 시민공원 조성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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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천
중랑천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를 흐르는 하천으로, 총 연장 37km, 유역 면적 288km<sup>2</sup>이며, 과거에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일제강점기에 중랑천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현재는 시민들의 여가 공간으로 활용된다.
2. 지명 유래
임진왜란 때 이 하천 일대에서 큰 전투가 있어 사상자의 피로 하천이 물들었고, 이에 “피 비린내가 진동한다” 또는 “강물을 다 버렸다”라고 하여 ‘비리내, 배리내’ 등으로 불렀던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는 향토 문헌의 오류에서 시작된 낭설이다.
《부천예총》(富川藝總, 1977)은 원미산의 ‘큰 망골’과 ‘작은 망골’이라는 지명은 임진왜란 때 무명의 장군이 왜를 무찌른 곳이라 전해지나, 고증은 불가능하다고 기록하였다. 《부천의 흐름》(1982)은 ‘큰 싸움이 있어 죽은 사람의 피비린내가 개울을 메웠다’라고 언급하였다. 《복사골문화》(1985) 창간호는 죽산 박씨계보(竹山朴氏系譜)를 운운하며 베르네천에 관해서는 ‘임진왜란 전투에서 백병전이 벌어져 개울이 피비린내로 뒤덮였다’라고 언급하였고, 원미산에 관해서는 ‘죽산 박씨 세계(世系)에 의하면 계엄(桂奄)이 임진왜란 때 둔대산에서 궐기하였다’라고 적었다. 《부천시사》(부천시시사편찬위원회, 1988)는 《복사골문화》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1592년 5월 부평에 왜군이 침입하여 전투가 벌어졌다’라고 한 《진미록》(鎭尾錄)의 기록을 추가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문중 소장본 《죽산박씨족보》에는 박진(朴震)에 대한 간단한 기록만 있을 뿐, 임진왜란에 관한 언급이 없다. 박진이 임진왜란에 참여하였다는 기록은 부천족보전문도서관 소장본 《죽산박씨족보》(1771)에만 수기로 가필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박진은 조선인의 시체가 산처럼 쌓인 마을에서, 1592년 9월 9일 창의군을 이끌고 둔대산에 진을 친 뒤, 왜군 10여 명을 죽이고 3-4리 바깥으로 무찔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1592년 9월 기사에는 왜군이 부평 지역에서 싸웠다는 내용이 없고, 실록이나 다른 집안에 시신이 산을 이룰 만한 대규모 전투에 관한 이야기가 일절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이 공적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문중 족보에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유추할 때, 박진의 의병 행적은 허구이다. 더불어 《진미록》은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문헌이고, 1529년생인 박진의 맏아들 박문보(朴文輔)의 나이로 추정할 때, 1500년대 초반에 태어났을 박진이 고령의 몸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1911년경의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하오정면 여월리 별인ᄂᆡ(別仁川)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벼랑내’라는 고유어를 한자로 옮긴 이두식 지명으로, ‘벼랑처럼 개울이 깊다’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벼랑내는 시간이 지나며 베리내, 베르내 등으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베르네천이 발원하는 원미산은 둔대산(屯垈山), 장자봉(長者峰), 장대봉(長臺峰), 벼락산 등의 다른 이름이 있는데, 벼락산 역시 벼랑내 및 벼랑과 관련된 지명으로 볼 수 있다.
2.1. 임진왜란 관련 설
베르네천의 이름은 임진왜란 때 이 하천 일대에서 벌어진 격전으로 인해 전사자들의 피가 흘러 "피 비린내가 진동한다" 혹은 "강물을 다 버렸다"라고 하여 ‘비리내’, ‘배리내’ 등으로 불렸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이는 향토 문헌의 오류에서 비롯된 낭설이다.
《부천예총》(1977)은 원미산의 ‘큰 망골’과 ‘작은 망골’이라는 지명이 임진왜란 때 무명의 장군이 왜를 무찌른 곳이라 전해지나, 고증은 불가능하다고 기록하였다. 《부천의 흐름》(1982)은 ‘큰 싸움이 있어 죽은 사람의 피비린내가 개울을 메웠다’라고 언급하였다. 《복사골문화》(1985) 창간호는 죽산 박씨계보를 언급하며 베르네천에 관해서는 ‘임진왜란 전투에서 백병전이 벌어져 개울이 피비린내로 뒤덮였다’라고 언급하였고, 원미산에 관해서는 ‘죽산 박씨 세계에 의하면 계엄이 임진왜란 때 둔대산에서 궐기하였다’라고 적었다. 《부천시사》(1988)는 《복사골문화》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1592년 5월 부평에 왜군이 침입하여 전투가 벌어졌다’라고 한 《진미록》의 기록을 추가하였다.
하지만 문중 소장본 《죽산박씨족보》에는 박진(朴震)에 대한 간단한 기록만 있을 뿐, 임진왜란에 관한 언급이 없다. 박진이 임진왜란에 참여하였다는 기록은 부천족보전문도서관 소장본 《죽산박씨족보》(1771)에만 수기로 가필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박진은 조선인의 시체가 산처럼 쌓인 마을에서, 1592년 9월 9일 창의군을 이끌고 둔대산에 진을 친 뒤, 왜군 10여 명을 죽이고 3-4리 바깥으로 무찔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 1592년 9월 기사에는 왜군이 부평 지역에서 싸웠다는 내용이 없고, 실록이나 다른 집안에 시신이 산을 이룰 만한 대규모 전투에 관한 이야기가 일절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이 공적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문중 족보에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유추할 때, 박진의 의병 행적은 허구이다. 더불어 《진미록》은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문헌이고, 1529년생인 박진의 맏아들 박문보(朴文輔)의 나이로 추정할 때, 1500년대 초반에 태어났을 박진이 고령의 몸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2.2. 벼랑내 유래 설
1911년경의 《조선지지자료》에 기록된 경기도 부평군 하오정면 여월리의 '별인내'(別仁川)는 '벼랑내'라는 고유어를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벼랑처럼 개울이 깊다'는 뜻에서 유래한 '벼랑내'는 시간이 지나면서 '베리내', '베르내' 등으로 변형되었다. 베르네천의 발원지인 원미산의 또 다른 이름인 '벼락산' 역시 '벼랑내' 및 '벼랑'과 관련된 지명으로 추정된다.